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4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48화(248/302)
248화. 나는 네가 부럽다(2)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라비가 힘을 사용했을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다치지 않았어?”
은호가 흑견의 등에서 내려 폭시와 라비를 살피며 물었다.
“안 다쳤어! 멀쩡해!”
폭시의 대답에 은호는 고개를 돌려 라비를 보았다.
귀가 접혔다.
혼이 날까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고뭉치를 믿어. 일부러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정말이더냐?”
“사고뭉치가 얼마나 생각이 깊은데.”“맞느니라! 나는 생각이 깊다. 나는 괜찮다! 급해도 다른 존재들이 다치지 않게 했다!”
혼나지 않는다고 하니, 라비는 으쓱거리며 말했다.
“잘했어, 사고뭉치.”
은호는 라비를 칭찬하며 폭시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물어보았다.
“너희도?”
은호는 환수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라마를 닮은 얼굴이었다.
속눈썹이 무척 길어서일까.
그런데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근육질의 몸에 은호는 잠깐 눈을 깜박거렸다.
마치 근육이 가득한 캥거루를 닮아 있었다.
얼굴과 몸이 조화롭지 않은 생김새였다.
“우리도 괜찮아.”
대장이 대답했다.
“다행이다.”
은호는 안도했다.
사태가 이렇게 벌어지긴 했지만, 다 무사했다.
‘…아니지. 아직은 아니지.’
라비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번 일로 다른 환수들이 휘말렸는지까지 알아봐야 했다.
가방에서 피를 뽑는 기계를 꺼냈다.
손등을 찍자 환수가 움찔거렸다.
지금 뭐 하는지 몰랐다.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저건 인간이었다.
“…대장. 인간이 왔어.”
환수가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인간은 위험했다.
“나도 알아.”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대장. 인간이라니까? 인간.”
환수는 다시금 말을 꺼냈다.
늘 인간이 위험하다고 수없이 경고하던 건 대장이었다.
“나도 안다니까, 핀?”
대장의 똑같은 대답에 핀은 기가 찼다.
진짜 인간을 앞에 두니 입을 싹 닦는 건 너무나도 이상했다.
저 인간이 당장 자신들의 마을에 오면 어떡할 텐가.
“지금 도망쳐야지, 뭐하는 거야?”“그런데 핀. 봐. 저 인간이 위험해 보여?”
대장의 말에 핀은 은호를 보았다.
무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인간의 등장과 함께 주변 공기가 달라진 걸 왜 모를까.
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데.
하지만 이건 기만이었다.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정한 건 대장이었다.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대장은 무리를 이끌어야 했다.
위험을 배제해야 하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또,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내가 대장이 되지 못해서?’
핀은 속으로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오늘도 그랬다.
쳐다만 봤다고 시비가 걸렸다.
대체 얼마나 무시를 당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은호가 피를 떨어트리며 물었다.
저녁밥을 준비하다가 커다란 소리에 놀라서 왔다.
흑견이 산책하러 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저 존재가 다른 존재랑 싸우다가 갑자기 우리한테 왔느니라! 폭시한테 손을 뻗었다!”
라비는 핀을 가리켰다.
그 말에 은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한 번 꾹 참았다.
“정말이야, 폭시야? 정말 너한테 손을 뻗었어?”“저 존재가 다른 존재랑 싸운 게 맞아. 그때, 나무가 부러졌고, 부러진 나무가 다른 나무를 건드리면서 우리 쪽으로 쓰러졌어. 그리고 음……. 우리한테 다가온 건 맞아.”
폭시가 입을 열었다.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폭시가 말을 하면 할수록 핀의 얼굴이 굳어졌으니까.
오해가 있는 걸까.
“내가 봤다. 폭시한테 손을 뻗었느니라. 그래서 놀라서 힘을 썼다.”
라비가 이어 꺼낸 말에 핀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다 그만뒀다.
말하면 통할까.
지레 포기하게 됐다.
“…잠깐만. 너, 애들한테 그런 것도 모자라서 또 싸우기까지 했어?”
대장은 놀라며 핀을 추궁했다.
“저건… 하. 싸운 건 맞아. 그게 왜?”“그게 왜…? 너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 여기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고 수없이 말했잖아.”“날 보고 더럽다고 했어. 거기서 내가 참아야 해?”“널 보고 그렇게 말했다고?”“다른 말도 했는데?”
―하긴, 이러니 구석에 박혀 있겠지. 내가 이 주변에서 네 무리를 봤는데, 같은 무리인 줄 못 알아봤네? 너, 무리에서 겉돌지?
핀은 그 환수가 지껄였던 말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걸 참을 수 없었다.
핀은 라비와 폭시를 바라보았다.
성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은 대장이 그랬던 것처럼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냥 구하려고 했을 뿐인데, 지금 상황이 참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왜.
자신만 이렇게 상황이 꼬이는지 몰랐다.
“이게 뭐가, 대체 뭐가 잘못된 건데? 대장도 그 말을 들어보면 참을 수 없었을걸?”“그래. 이제 가서 이야기하자.”
대장은 일단 핀을 말렸다.
“나는, 저 애들을 건드리지도 않았어. 괴롭힌 적도 없고, 구하려고 했다고. 내가 저지른 싸움에 휘말렸으니까.”“그러면 저 애들은 왜 그렇게 말하는 건데?”“…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핀. 일단, 그만하자.”“나는 가만히 있었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내 쪽으로 오길래 그 존재를 쳐다봤어. 몸에 박힌 크리스탈이 되게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게 다야. 그런데 내가 왜 더럽다느니, 무리랑 어울리지 않는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핀, 그만해.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하자.”“대장은 왜 나만 이상한 존재로 만드는 건데?”
“핀!”
대장이 언성을 올리자 핀은 입을 다물었다.
가뜩이나 넓은 대장의 어깨가 더 좌우로 벌어진 기분이 들었다.
핀은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자신만 이상하게 만들었다.
늘 저랬다.
대장 옆에 있으면 늘 자신이 이상해지고, 작아지고, 병신같아졌다.
“…이번 일도 그래. 대장이 분명 인간이 위험하다고 했잖아.”
핀의 표정이 굳어졌다.
“핀. 그만하라고 했어.”“대장이 어떻게 한 입으로 다른 말을 꺼내? 일관성이 없잖아. 대장이면 그래도 되는 거야? 말을 바꿔도 되는 거냐고.”“…핀. 두 번 말 안 해. 마을로 돌아가.”
대장은 핀에게 다가가 어깨를 쥐었다.
당장 뼈가 바스러질 것처럼 힘이 너무나도 강했다.
핀은 굳어진 표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숲으로 사라지는 핀을 보며 대장이 다시 라비와 폭시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정말 진심으로. 무리의 대장으로서 사과할게.”
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몰랐다.
“친구야. 핀이라는 그 친구, 원래 저렇게 불안정해?”
은호는 머릿속으로 식물들에게 이미지를 받으며 물었다.
“억울해 보였다. 열등감도 좀 강하게 보였고.”
흑견은 핀이 간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
“…우리를 공격하려고 한 건 아니야. 진짜 억울해했어. 오해가 생긴 모양이야.”
폭시는 귀를 살짝 내렸다.
열등감이 강했다.
다른 분노도 강해 헷갈렸지만, 공격의사가 없는 건 확실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보이더라. 걱정되네.”
은호는 핀이 간 그곳을 바라보았다.
열등감이 무조건 나쁜 감정은 아니었지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에 가까운 게 문제였다.
“정말이더냐…….”
라비가 놀라며 굳어졌다.
이러면 잘못한 게 아닌가.
사과해야 했다.
“으음, 핀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어. …아마 나 때문일 거야.”
대장은 손을 올려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친구 때문이라고?”
식물로부터 다친 환수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은호는 물어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리였으니까.
“맞아. 나랑 대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어. 핀이라는 저 친구, 능력이 뛰어났거든. 나도 사실 대장은 핀이 될 거라 생각했어.”
대장이 말을 꺼내는 내내 겸손이 엿보였다.
폭시는 눈을 깜박거렸다.
왜 핀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 존재가 대장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표정뿐만 아니라 품은 감정마저 진짜였다.
정말로 핀을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됐어. 그 뒤로 핀이 흔들리더니 완전히 달라졌어. 내가 잡아주고 싶은데, 나만 보면 도망갔어. 그 뒤로, 이런 일이 좀 많이 벌어졌어. 매일 싸우고, 매일 이래.”
대장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은호는 대장에게 걸어가 토닥거려주었다.
“친구야. 혹시 괜찮다면 내가 너희 마을에 가도 될까?”
직접 핀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정말로 핀이 대장의 자리에서 내쫓겼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열등감을 품고 있는 건지.
아니면 대장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제대로 보고 싶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고, 라비와 폭시 역시 찝찝할 게 분명했다.
“…네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인간을 들일 수는 없어.”
대장은 멈칫거리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게 규칙이었다.
지금은 마을 밖이라 괜찮지만, 안은 별개였다.
“들키지 않게 숨어서 갈게. 그래도 안 될까?”“핀이 신경 쓰이는 거야?”
대장은 속으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맞아. 신경 쓰여.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이번 일이 핀의 역린이라고 해야 할지, 건드리면 안 되는 마지막 버튼을 건드려버렸다는 생각도 들어서 찝찝하기도 했다.
폭시와 라비가 얽힌 일이고, 오해도 있었고, 이렇게 만났으니 그냥 갈 수도 없었다.
“고마워.”
대장은 미소를 지으며 허락했다.
“내가 더 고맙지. 허락하기 어려운 일이잖아?”
규칙을 깨는 일임에도 대장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핀을 걱정하는 마음이 무척 깊은 모양이었다.
“혹시 괜찮다면 핀하고 어떤 관계인지 물어봐도 돼?”“…어릴 적 친구라고 하기엔 좀 씁쓸하니, 그냥 친구라고 할게. 나는 지금도 핀을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대장은 몸을 살짝 돌려 얼굴을 가렸다.
아무래도 둘이 소꿉친구인 모양이었다.
“그럼, 친구야.”
은호는 대장에게 다가가 미소를 그렸다.
“네가 핀을 설득해줘.”“…뭐? 나만 보면 도망간다는 말, 못 들었어?”“어쩌면 말이야. 이 세상에서 핀을 이해해줄 존재는 너밖에 없을지도 몰라.”
“내가… 될까?”
“너라서 되는 거야. 소꿉친구인 너 말이야.”
은호의 격려에 대장은 손아귀를 바라보았다.
핀이 피하기에 늘 그 손을 놓치고 살았다.
이제라도 뻗으면 닿을까.
“아, 가기 전에 잠시만.”
은호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비어버린 땅을 바라보았다.
휑했다.
그대로 무릎을 굽혀 땅을 만졌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갈 땐 가더라도 숲을 복구시켜야 했다.
은호의 말이 끝나자 라비의 힘이 휩쓸어버린 그곳에 다시 새롭게 식물들이 자라났다.
하나씩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대장은 그대로 입을 벌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우람한 근육이 굳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식물이 이렇게 빨리 자라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일까.
* * *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라거루.》
《.》
《타고난 육체적 능력으로 근육이 굉장히 발달 되어 있습니다. 압축된 근육으로 보기보다 품고 있는 힘이 굉장합니다. 무리를 이루며 그 무리의 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근육이 가진 힘과 세련됨이 중요합니다.》《‘지랄 라거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난폭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하지만 평소 육체를 단련하는 데 신경을 쓰는 편이라, 다른 곳에는 상당히 둔한 편입니다. 주로 모난 곳 없는 둥글둥글한 성격이 많습니다. 사고를 치는 건 주로 무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예민한 라거루입니다.》
‘…아. 핀이, 어쩌면 예민한 라거루일 수도 있겠는데?’
은호는 태블릿이 알려준 내용을 읽고 난 뒤에 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장 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 이외에 핀을 자극하는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인간.”
흑견이 은호를 불렀다.
“응?”
“들어가라.”
흑견은 은호를 번쩍 들어 그림자로 내려놓았다.
“…벌써?”
은호는 놀라며 앞을 보았다.
그냥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벌써다.”
흑견의 대답을 끝으로 그림자로 빨려 들어간 은호를 빤히 보던 라비는 몸을 떨었다.
폭시는 라비의 떨림을 보며 귀를 살며시 내렸다.
백학이 찾던 꽃을 가지러 동굴에 들어갔다가 잠깐 아래로 떨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 일이 라비에게 무서운 기억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까망아.”
“왜 그러더냐?”
“날 도와줘서 고마워.”
폭시가 다가가 라비의 귀에 속삭였다.
바로 라비의 꼬리가 크게 흔들었다.
“당연하다. 나는 폭시가 위험에 빠지면 몇 번이고 힘을 쓸 것이니라!”“오늘 까망이가 제일 멋있었어.”
폭시가 또 속삭이는 말에 라비는 작은 이빨을 내보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머릿속에 그 말이 몇 번이고 맴돌았기에 두 눈동자마저 초롱초롱해졌다.
은호한테 혼이 나지 않았고, 칭찬도 받았다.
이건 아주 기쁜 일이었다.
“이제 금방이야.”
대장이 말문을 열었다.
그대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기다란 나무 위쪽에 나뭇잎으로 덮인 집이 하나씩 보였다.
위장을 꽤 잘해 놔, 대장이 말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였다.
‘…왜 이렇게 높아?’
은호는 그림자 속에서 기겁했다.
어딜 봐도 사다리가 없었다.
그냥 매일 이 나무를 오르는 걸까.
“대장.”
정말로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냥 내려오지 않았다.
몸을 옆으로 뉘어 다리를 곱게 뻗은 상태에서 팔의 힘만으로 지탱해서 내려왔으니까.
‘…….’
은호는 할 말을 잃었다.
저렇게도 내려올 수 있다니.
가히 엄청난 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