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5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50화(250/302)
249화. 나는 네가 부럽다(3)
“핀은? 왔어?”
대장의 물음에 라거루는 고개를 돌려 뒤를 가리켰다.
“왔지. 오늘따라 팔 쪽이 굉장히 단단해 보이길래 무슨 운동하고 왔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왔다고 하더라고. 왜 이렇게 숨기는지 모르겠네. 좀생이도 아니고.”
라거루는 아니꼬운 표정을 지었다.
좀 알려주면 덧나나.
“그럴 일이 좀 있어. 핀한테 별다른 말은 없었어?”“없었어. 그런데 저 존재는 누구야? 이야, 체격이 건장하네.”
라거루는 흑견을 보며 감탄했다.
“아아, 손님이야. 운동 잘하고 있어.”
대장은 라거루를 향해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당연하지. 대장을 따라잡고 싶으니까.”
라거루가 그 상태로 다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이쪽으로.”
대장은 나무가 아니라 땅으로 걸어갔다.
저쪽이라면 핀이 자주 가는 그곳이었다.
* * *
핀은 가만히 앉아 호수를 보았다.
무리에 있으면 늘 숨이 막혔다.
자신은 무리와 달리 무언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게 되었다.
자신이 대장이 된다면 이곳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왔다.
이곳은 자신의 무리였고, 자신은 이곳을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대장이 되지 못했다.
이곳을 바꾸지 못했다.
늘 동떨어진 이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시비가 걸린 쪽은 나라고. 그 애들을 내가 도와주려고 했어.’
대장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매일 잘도 지껄였다.
바스락.
발소리가 들렸다.
대장일까.
누가 오든 싫었다.
“가.”
핀은 냉정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이, 핀. 너무 냉정하잖아.”
라거루가 다가왔다.
대장이 아니었다.
“뭐야. 왜 또 토라졌을까. 핀. 너는 너무, 자주 토라져.”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수없이 들어온 그 목소리에 핀은 짜증이 났다.
“가라.”
“기분이 나쁘면, 몸을 움직여야지. 매번 이렇게 있으면 어떻게.”
“가라고.”
“또 대장 때문이야? 아니면 또 싸웠어? 당연히 네가 이겼겠지?”
라거루는 핀 옆에 앉아 다리를 살짝 위로 올렸다.
비스듬히 상체를 누운 상태로 돌을 들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붕붕.
바람 소리가 들렸다.
“핀. 너도 알잖아. 대장은 널 진짜 생각한다는 걸 말이야. 가끔 너무 걱정이 많다 싶은데, 그래도 우리 대장이잖아.”
라거루의 말은 죄다 가시가 되어 찔러왔다.
그래서 어쩌겠는가.
딱 그런 식의 말은 신경을 참 거슬리게 했다.
“대장이 하는 일이 다 옳다는 건 아닌데, 우리가 잘 따라줘야지. 그렇잖아? 너는 능력도 좋으니까. 네가 대장과 합심하면 우리 마을은 더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시비 걸고, 싸우지도 말고. 어때?”
해맑은 저 말을 듣는 순간, 은호는 기겁했다.
솔직히 좋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냥 들어도 시비조로 들렸다.
‘…저런 말들을, 계속 들어온 건 아니겠지?’
우선, 핀은 대장이 되고 싶어 했지만, 실패했다.
원했다는 걸 이루지 못하면 상상 이상으로 애통한 감정을 느꼈다.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계속 저런 소리를 들었다면 지긋하다는 걸 넘어 거의 트라우마 급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대장, 대장. 너는 나만 보면 왜 매일같이 그 소리인데?”
핀의 감정이 터졌다.
“……어?”
“내가 뭐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진짜 몰라서 하는 말이야?”“…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기분이 나쁜 건 다 대장 때문에 그런 거 맞잖아.”
“그래, 맞아!”
“거봐. 맞는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라거루는 잠깐 다리와 돌을 내려놓았다.
“내가 단순히 화를 낸다고 생각해?”“그렇지. 이전에 넌 대장하고 친했잖아. 네가 대장 자리에 떨어진 뒤로 완전히 달라졌어.”“그걸 알면 그 입 좀 제발 다물면 안 돼?”“다시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에 꺼낸 말이지. 다들 네 눈치를 얼마나 보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왜 자꾸 화만 내는 건데?”“…방금도 그냥 가라고 했잖아. 내가 화가 났으니까, 가달라고 말했잖아.”“솔직히 다들 궁금해한다고. 네가 매일같이 싸움만 하니까.”“내가 매일같이 싸움을 해…?”“맞잖아. 하지만 네 눈치 본다고 아무도 말을 못 하고 있었던 거야. 나도 그냥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본 거고.”“말을… 못 했다고? 눈치를 봐?”
핀은 말을 내뱉은 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
기가 막혔다.
대장 자리에 도전해 떨어진 그때부터 자신을 건드리는 말을 수없이 꺼내지 않았던가.
―너도 잘했는데, 대장의 근육이 좀 더 세련된 것 같더라고.
대체 그 세련이라는 기준이 뭔지.
―나는 네가 될 줄 알았어. 그런데 그날, 따라 대장이 좀 더 믿음이 가더라. 근육이 울부짖고 있는 기분 말이야.
그 근육이 대체 뭔지.
애초에 대장이라는 자리를 결정할 때, 왜 근육이 포함되어 있는지 몰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수없이 근육 타령을 했다.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악에 받친 감정으로 근육을 늘려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대장 자리에서 그 근육이었다면 분명히 뽑았다면서.
더 우람해진 게 보기 좋다면서.
수많은 칭찬이 무리의 존재들에서 흘러나왔고, 우상을 보는 그 기분에 취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대장하고 수없는 비교가 흘러나왔다.
“나만 보면 대장 타령을 하잖아! 제발, 좀 그 말 지껄이지 말라고 해도 내뱉잖아! 수없이 나를 무시해놓고, 내가 매일 싸움만 한다고?”
건드린 건 저들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수없이 비교한 건 저들이었다.
“나하고 왜 대장하고 비교하는데?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건데? 왜 자꾸 나를 무시하는 거냐고!”“무시한 적 없어. 네가 다음 대장이 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관심이 가는 거지.”“그럼, 처음부터 나를 뽑지! 내가 대체 대장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데?”
핀이 화를 참으려 온몸에 힘을 주자, 몸의 근육이 돋아났다.
라거루는 핀을 빤히 보더니, 대답했다.
“…근육?”
“…….”
핀의 어깨에 힘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 모습을 그림자에서 보고 있던 은호가 불안함을 느꼈다.
‘이거, 좋지 않은데? 좋지 않아.’
당장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긴 마을이었다.
대장이 걸렸다.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을 데려다줬는데,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옆을 보았다.
대장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갈고 있었다.
당장 나가고 싶어 했다.
“너 요새 좀 왜소해졌어. 그러니까 다들 걱정하는 게 아니겠어? 잘 좀 먹고, 운동도 열심하고.”
라거루는 미소를 지으며 핀의 어깨를 두드렸다.
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똑같았다.
또, 되풀이되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핀. 그러면 정말 한결 나아질 거야.”
뭘 다 안다는 듯한 얼굴인지.
꽈악.
핀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저 얼굴을 치고 싶었다.
정말이지,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다 죽이고 싶어.’
왜.
대체 왜,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무리는 자신을 봐주지는 않는 건지.
근육만 보고 있는 건지.
이해하는 것도 지쳤고, 이해하는 척하는 것도 지쳤다.
‘그냥 다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 감정이 어떤지 말해도, 그냥 씹어버리는 거라고.’
아이를 구해도 잘못했다는 취급을 받는데.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그냥 이 무리가 잘못됐을 뿐이었다.
‘…그래.’
핀은 라거루를 사납게 쳐다보았다.
애초에 죽이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래. 그거야.’
속에서 부르르 끓는 감정을 더는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미 몇 년이나 참았다.
핀은 그대로 웃으며 라거루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쿵!
그 주먹은 라거루가 아닌, 다른 라거루의 얼굴로 파고들었다.
흠칫.
핀은 뒤로 물러섰다.
언제 온 건지 몰라도 대장이 서 있었다.
방금 아래에서 올라온 것만 같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미안하다, 핀.”
고개가 돌아간 대장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솔직히 핀이 이런 상황에 부닥쳤을 줄은 몰랐다.
그냥 단순히 대장 자리를 뺏겨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핀이 굉장히 섬세하다는 건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기존의 동족과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까.
―우리 무리는 다 좋은데, 모든 걸 ‘근육’에 치중하고 있어. 왜 그런지는 알아. 우린 원래 이러니까. 하지만 근육으로 밥을 배불리 먹을 순 없어. 식량을 좀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근처 타 종족하고 교류도 해야 해. 다들 우리보고 괴짜라고 도망가잖아?
핀이 낄낄 웃으며 꺼내는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았다.
자신은 그런 핀이 좋았다.
꼭 대장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못 하는 걸 핀은 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핀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신이 대장을 때려버렸다.
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나는… 정말, 네가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대장은 고개를 돌리며 핀을 보았다.
핀이 비록 대장 자리에서 떨어졌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줬으니까.
“널 괴롭히던 건, 나였어.”“야, 핀! 너 지금…….”“넌 물러나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
대장은 고개를 돌려 라거루를 쳐다보았다.
늘 실실거리기만 했던 대장이 무언가 씹어 먹어버릴 듯 살벌한 표정을 짓자 그대로 경직됐다.
라거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달려 나갔다.
대장은 그제야 핀을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왜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무리에서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왜 말을 하지 않았어?”“지금 그게 중요해? 너 입에 피가 난다고.”“나한테는 몹시 중요해.”“……지금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내가 멍청해서 네가 이런 상황인 줄도 몰랐으니까. 아까도 그랬잖아? 널 의심하고, 또 믿어주지 못했어. 네가 이런 상황에 부닥쳤다면 이 자리, 당장 때리쳤을…….”
대장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핀이 다가가 어깨를 꽈악 쥐었다.
“…미쳤어? 그 자리를 버리겠다고?”
핀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 자리를 얼마나 원했는지, 알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켜야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저 소리를 참고 있었는데?”“이 자리 때문에 네가 저런 취급을 받는데, 내가 어떻게 계속 남겠냐고!”
대장 역시 핀처럼 언성을 올렸다.
애초에 핀이 저렇게 된 건, 자신하고 멀어진 건 모두 다 ‘대장’이라는 자리 때문이 아닌가.
“남아야지! 악착같이 남아서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해야지! 대체 날 얼마나 더 비참하게 만들 건데?”“네가 왜 비참한데?”
대장의 물음에 핀은 주먹을 꽉 쥐고, 휘둘렀다.
쾅!
대장의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몸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말이야. 이 세상에서 핀을 이해해줄 존재는 너밖에 없을지도 몰라.
조금 전에 인간이 말했다.
핀을 이해해줄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고.
그때, 자신은 그게 정말일까, 수없이 의심했다.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믿었어야 했는데.
―너라서 되는 거야. 소꿉친구인 너 말이야.
인간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대장은 핀을 보았다.
일그러진 얼굴로 핀은 소리쳤다.
“네가 버린 걸 나보고 주우라고 지껄이는데, 내가 비참하지! 수없이 너하고 비교당했어. 계속, 계속 말이야! 네가 버린 걸 내가 주워봤자…….”
퍼억!
대장은 핀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커헉!”
“나는 네가 내 자리를 가져갈 때까지 기다렸어! 네가 무리를 변화시킬 거라며! 그 열망은 대체 어디로 갔는데? 비교할수록 이를 더 악물어야지 왜 열등감에 사로잡힌 건데?”
대장은 한 번 더 주먹을 휘둘렀지만, 핀은 이를 잡았다.
“잠깐만, 친구들아!”
은호는 더는 참지 못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그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흑견이 그를 말렸다.
“멈추거라, 인간.”
“아니, 지금, 싸우잖아.”
한 방, 한 방 휘두르는 소리가 달랐다.
주변에 바람이 거세게 부는 소리 같았다.
“그래야 사라질 문제다.”
흑견은 핀과 대장을 쳐다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얽힌 감정을 풀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둘은 친구였으니까.
“너흰 보지 마라.”
흑견은 시선을 내리며 그림자 속에서 위를 지켜보고 있던 라비와 폭시를 쳐다보았다.
둘은 동시에 움찔거렸다.
흑견은 앞발로 그림자를 건드리자 다른 그림자로 연결이 됐다.
갑자기 하늘이 보이자 라비는 심통이 나 볼을 부풀렸다.
“치사하느니라!”
“아니. 이건 멍멍이 형님이 아주 잘 선택한 거야.”
은호가 똑 부러지게 말하며 눈길을 떼지 않았다.
핀과 대장은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 하나하나에 감정이 세게 담겨 있었다.
휘두를 때마다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허억. 헉.”
둘 다 깊은숨을 내쉬며 잠깐 멈췄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널 부러워했어.”
대장이 꺼낸 말에 핀은 멈칫거렸다.
“무슨… 소리야?”
“여기에서 최고로 치는 건 근육이야. 타고난 본능에 가깝지. 나조차도 좋아하니까. 하지만 나는 네 말을 듣는 순간, 아니라는 걸 알았어.”“대체 무슨 말이냐고!”“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지, 넌, 우리 무리를 바꿀 존재야. 더 풍요롭게 바꿀 수 있다고!”
이 주변으로 무리가 많았다.
늘, 식량과 관련된 일, 영역 등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근육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 대장 역시.
근육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대장은 코피를 흘리며 웃자 핀은 땅으로 침을 퉤 뱉었다.
피와 함께 이빨이 떨어져 나갔다.
“그 능력을 썩게 두지 마, 핀.”
“…….”
“너는 진짜 멋진 존재라고.”“…참, 멋지게도 말하네. 썩을.”
핀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녀석은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머릿속에 근육밖에 가득 찬 듯하지만, 달랐다.
지금도 그랬다.
결국, 자신을 알아주는 건 저 녀석뿐이었다.
그게 정말 짜증 났다.
“진짜 재수 없다, 트론. 날, 의심할 때는 언제고?”“그건 미안해. 하지만 대장은 원래 재수가 없어야 해.”“그 자리, 버린다며?”“마음이 바뀌었어. 늘, 널 위해 둘 테니 가져가. 하지만 그전까지 날 위해 너의 능력을 써줘.”
트론이 씩 웃자 핀은 기가 막혔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왜 무리에서 트론을 대장으로 뽑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재수 없었다.
핀은 주먹을 쥐고 트론의 얼굴을 후렸다.
“…컥!”
트론이 비명을 질렀다.
몸이 휘청거렸고, 피를 뱉었다.
퉷.
이빨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이 미친. 힘만 좋아가지고.”“그동안 너 때문에 들은 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모르지.”
“그리고 돕겠다는 말, 그냥 바로 말하면 부끄러우니까, 좀 때렸다. 왜? 꼬와?”
“뭐야. 정말이야?”
트론은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 활짝 웃었다.
저 둥글둥글한 성격이 짜증 났지만, 오늘은 참 반가웠다.
“…그래. 얻어맞으니까, 훨씬 낫네.”
“더 때려줘?”
“…미친.”
핀이 얼굴을 찌푸리자 트론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을 뒤로하며 핀은 비틀거린 채 은호에게 다가갔다.
“인간.”
얼굴이 엉망이었다.
“네가 트론에게 무슨 말을 한 거지? 멍청한 쟤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맞아.”
은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창한 말은 하지 않았어. 그냥 널 알아줄 존재는 저 친구뿐이라고 했어.”
은호는 말을 끝낸 뒤 미소를 지었다.
하.
핀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짧은 만남이었고, 그것도 좋게 끝난 게 아님에도 인간은 자신을 알아보았다.
이게 참 웃겼다.
“…아까는, 미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인간도, 싸웠던 크리스탈이 박힌 환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너도, 미안하고.”
핀은 트론을 보았다.
“나도…?”
“계속 쌈박질이나 한 건 맞으니까.”
“…와.”
트론의 말에 핀은 얼굴을 구겼다.
“눈치 좀 챙겨!”
“알았어. 챙겨줄게.”“어쨌든, 미안해. 정말이야.”
핀의 솔직한 고백에 은호는 웃음이 터졌다.
완전히 다른 존재를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괜찮아.”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폭시와 라비가 있었다.
라비가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핀은 폭시와 라비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구부려 엉망이 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너희에게도 미안해. 놀라게 했어.”“…나도, 미안하느니라.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멋대로 오해했다.”
라비는 우물쭈물하다 말을 꺼냈고, 폭시가 앞으로 나가 핀을 바라보았다.
“나도 미안해.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못했어. 그랬으면 네가 덜 슬펐을 텐데.”“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어쨌든, 사과해줘서 고마워.”
폭시는 핀의 감정을 읽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던 검은 감정이 지워졌다.
눈빛 역시 맑아졌다.
“있잖아.”
폭시가 입을 열었다.
“말해.”
“감정을 쌓지 말고, 말하는 게 좋아. 그러면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폭시의 걱정에 핀은 웃었다.
“고맙다.”
핀은 다시 일어나 호수를 보았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야 마음이 후련했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치고받으면 다 해결된 것을.
‘나도, 머리에 근육밖에 안 들어있나 보다.’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되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핀은 트론을 보았다.
“나는 네가 부러웠어.”
솔직한 고백에 트론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래, 핀.”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웃음은 길게 이어졌다.
“자, 여기까지 하고. 이제 치료하자.”
은호는 딱 잘라 말했다.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였다.
은호는 가방을 뒤졌다.
“둘 다 이리 와봐.”
핀과 트론은 은호에게 이끌려갔다.
그 모습에 핀과 트론은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지금은 대장과 부하가 아니라 그저 친구의 모습이었으니까.
마치 옛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