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5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51화(251/302)
250화. 고민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이렇게 왔는가?”
세티아가 묻자 은호는 기가 막힌 얼굴로 보았다.
“아니, 세티아. 내가 무슨 사고나 치는 줄 알아?”
“아니었나?”
세티아가 빤히 쳐다보는 것 같자 은호는 그냥 기댔다.
괜히 마음이 찔렸다.
“저 꼬맹이는 왜 날 째려보는 것인가?”
“질투쟁이라서.”
은호가 작게 속삭이자 흑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
“정답인가 보다.”
흑견이 발끈하자 세티아가 크게 웃자 은호도 덩달아 웃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가, 꼬맹이? 아니면 어차피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고백할 건데, 나한테 으르렁거린 게 미안해서 그런가?”
세티아가 건네는 말에 흑견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뒤틀려버렸다는 걸 은호에게 말한 건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흑견의 물음에 세티아는 별거 아닌 듯 대답했다.
“꼬맹이 네가 편해 보였다. 설마하고 말을 건넸을 뿐, 자발적으로 걸려든 건 너다.”“…뭐라고 했는가?”
“보거라. 은호는 너를 이해해준다고 말했는데, 하여튼,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세티아는 흑견을 보며 혀를 찼다.
저 고집은 은호하고 아주 판박이였다.
“아. 세티아.”
“꼬맹이의 상태를 어떻게 되돌리는지는 네가 알고 있다.”“…내가? 세티아한테 묻고 싶었는데?”
은호는 당근을 베어 물며 눈을 깜박거렸다.
세티아가 모르면 누가 알까.
“그 당근, 나한테 주려고 온 거 아닌가?”“주러도 왔고, 놀러도 왔지.”
은호는 손가락을 뻗었다.
이번에는 더 많이 데리고 왔다.
연구소에 있던 환수들까지 같이 왔다.
라비의 자랑으로 호수에 가고 싶은 환수들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지금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다 들릴 텐데 무슨 섭섭한 소리인지.
애들이 와서 제일 좋아한 건 단연 세티아였다.
“왜 은호 네가 당근을 먹고 있는가?”“에이, 한 개째야. 이 정도는 티도 안 나.”
“두 개째다.”
“벌써? 이야, 이거 진짜 달다. 역시 마트 사장님 표 당근이 최고라니까?”
버니멀이 있는 마트 제품보다 더 싱싱한 건 보지 못했다.
“은호도 당근이 좋은가?”“이게 먹다 보니까, 맛있네? 중독될 것 같아.”
“그렇지?”
세티아도 당근을 먹으며 우물거렸다.
이 맛에 먹는 거였다.
멍한 눈으로 호수를 바라보았다.
은호가 오면 시끌벅적해졌다.
그게 참 신기했다.
“…아! 이게 아니라, 어떻게 내가 안다는 거야? 진짜 모르겠는데?”
은호가 묻자 세티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연은 정답을 알고 있다.”“나한테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아.”
“은호.”
“응?”
“자연은 이미 너한테 수많은 정답을 안겨주었다. 이미 사라진 식물을 불러오지 않았는가.”“…어떻게 알았어?”
은호가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흑견에게 시선을 멈췄다.
시선을 받은 흑견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저 영감탱이한테 알려줬겠는가?”“아니. 그건 아니지.”“여기는 내 영역이라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다 보인다.”
늘 봄인 은호의 뒤편에 그리운 식물들이 하나씩 보였다.
세티아는 시선을 내려 위그드라실을 보았다.
그저 작았던 씨앗이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씨앗 뒤로 내포하고 있는 아득한 힘이 보였다.
“계속, 자연에게 묻거라. 요구하거라. 자연은 반드시 너에게 응답해줄 거다.”“그랬으면 좋겠다.”
정말이었다.
뭐든 자연이 알려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불친절했다. 태블릿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테니까.
“세티아는 마나석이 뭔지 알아?”“벌써 그것까지 발견했는가? 참 많이도 돌아다닌다 싶다.”
세티아는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했다.
초연한 건지, 이미 다 내려놨는지 몰라도 무덤덤했다.
“놀랄 줄 알았는데. 뭔가 좀 김이 빠지는데?”“사용도 못 하는 걸 안고 있어봤자 뭐하겠는가. 그냥 네가 발견한 게 놀라울 뿐이지. 대체 얼마나 돌아다닌 건가?”“아니야. 오해야, 세티아!”“은호. 지금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아는가?”“진짜 오해라니까? 내가 이렇게 보여도, 돌아다닌 적은 별로 없어. 그냥 다 알아서 왔어. 그렇지, 멍멍이 형님?”
은호가 묻자 흑견은 크게 하품을 내뱉었다.
대답하기 싫은지 귀를 머리에 붙였다.
‘이 꼬맹이가!’
은호가 인상을 찌푸리자 세티아는 그를 안아주었다.
“은호여. 네가 올 때마다 다양한 냄새를 묻혀온다는 걸 알고 있는가?”“…아, 아니, 세티아는 대체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은호가 뻣뻣해질 것만 같은 고개를 치켜올린 채 세티아를 보았다.
자신이 올 때마다 이곳에 있기에 웬만하면 가만히 있는 줄 알았는데, 말하면 다 알고 있었다.
“정말 말을 안 듣는 아이구나.”
세티아는 머리로 은호의 이마에 부딪혔다.
아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세티아 주변으로 은은하게 꽃잎이 휘날렸다.
“여기는 나의 영역이다. 은호 너의 발자취가 내 눈에 보인다.”
눈감아주려 해도 눈감아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은호 뒤에 펼쳐진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딱 하나였다.
낯설되, 익숙한 힘이 숨어 있었다.
날카로웠다.
숨을 죽인 살기에 가까웠다.
마음이 편해지려고 온 모양이라,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은호, 조심하거라. 누군가 너를 노리고 있다.”“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알고 있어.”
은호는 몰랐으면 했던 그 마음을 안고 말을 꺼냈다.
숲에 피로 된 말뚝을 박은 건 분명히 환수였다.
그 환수가 자신을 보았다.
“잠을 못 이뤘는가?”
세티아의 물음에 은호는 호수를 보았다.
뒤엉키고, 뒹굴고, 흙을 매만지고, 수영하는 환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꼬맹아.”
세티아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흑견은 기분 나쁜 티를 대놓고 냈다.
“잠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관여하지 말라고 수없이 말했다.”
그럼에도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호는 개입하겠다고 말했다.
―멍멍이 형님이 싫어하는 거 알아. 나도 그 말을 너무나도 들어주고 싶어. 그렇지만, 너희가 사라질 미래를 견딜 수 없어. 그래서야.
더는 말릴 수 없을 만큼 은호가 너무도 간절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니까.”
세티아는 은호의 머리에 다시금 발을 올려 쓰다듬었다.
“어쩌면 당분간 이곳에 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담담하나, 쓸쓸함이 느껴지는 세티아의 말에 은호는 손을 뻗어 세티아를 쓰다듬었다.
“그렇지 않아.”
“이제 왕을 만날 셈인가?”“만나야지. 세티아는 내가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잖아?”“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건 그저 예측이었고, 선택은 너의 몫이었으며 나는 너의 무엇이든 존중하니까.”
세티아의 말은 깊었다.
무얼 보고 있는 건지 알고 싶을 정도였다.
“세티아. 자주 올 거야. 앞으로도 지금처럼 말이야.”
은호가 웃었지만, 세티아는 웃지 못했다.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날, 친구를 보냈던 일을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약속해.”
은호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은호, 너는 김대한보다 더 못된 걸 알고 있나?”“이건 진짜 영광인데?”
은호는 머쓱했다.
세티아가 소중히 하던 친구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관계란 말이 아닌가.
“칭찬이 아니다.”
“그래도, 괜찮아. 나한테는 칭찬 그 이상으로 들리니까.”
세티아는 앞발 하나를 더 내밀어 은호를 안았다.
흑견이 앞발을 뻗어 은호를 데려오자 세티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꼬맹이다운 질투다.”“시끄럽다, 영감탱이.”
흑견은 은호를 안은 채로 세티아를 째려보았다.
“여길 찾아온 건 고민이 있어서인가?”
“고민이라….”
은호는 흑견에게 기댄 채 눈을 깜박거렸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도무지 감쌀 수도 없고, 용서도 할 수 없는 환수가 있으면 어떡하지?”
자신은 환수의 임시보호소였다.
모든 환수를 아우르는 그런 임시보호소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정말 만약에 자신이 감쌀 수도 없는 그런 존재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 설마 그런 멍청한 고민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흑견의 앞발에 발톱이 아주 살짝 삐져나왔다.
온몸에 털 같은 어둠이 곤두서며 꼬리로 땅을 때렸다.
화가 났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멍청한 고민이라니.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한테도 중요하고.”“인간을 공격한 존재다. 죽여버리거라.”
흑견의 단호함에 세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구나. 현명했다, 은호. 저 꼬맹이가 꺼내는 말에는 ‘죽인다’와 ‘살린다’라는 선택지밖에 없을 테지.”“멍청한 영감탱이. 방금 내가 인간을 공격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들었다. 하지만…….”“그 존재의 공격으로 배에 구멍이 뚫린 건 알고 있나? 인간은 죽다 살아난 거다.”
“……?”
세티아는 입을 살며시 벌렸다.
덩달아 은호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벌써 진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게 말이야. 죽다 살아난 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구멍은 두 개였다.”
흑견이 자랑하듯 말을 꺼내자 세티아는 은호에게 다가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 존재가 널, 노리는 존재인가?”
“그렇…지?”
은호의 대답에 세티아는 괴로움을 표정에 드러냈다.
평소 큰 변화가 없기에 은호는 괜히 손에 든 당근을 먹었다.
아사삭.
“그런 존재를 지금.”
세티아는 말을 하다 말고 기가 찬 듯이 반응했다.
하아.
이내 긴 숨이 흘러나왔다.
“…걱정하고 있었는가?”
세티아의 표정이 가득 찌푸려졌다.
“아니야. 걱정한 건 아니야. 정말이야. 그냥,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널 다치겠다. 널, 공격했단 말이다.”
세티아는 목이 메는 것만 같았다.
착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은호는 자연의 대리자였다.
흑견이 있음에도 그가 다친 걸 보면 예사롭지 않은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의 힘만 봐도 자연의 대리자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공격했다.
이건 좋지 않았다.
“알아. 나만 공격한 것도 아니니까. 사실, 화가 나기도 해. 그런데 바로 손을 놓을 수는 없어.”“그게 은호 너의 긍지인가?”“그럴지도 몰라. 나마저 포기해버리면 그 환수는 정말로 혼자일 테니까. 이 힘을 가진 내가 최소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솔직히 꼬맹이처럼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말해도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은호 너의 고민은 옳다. 하나를 쉽게 포기하면 다른 것들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있을 테니까.”
몸을 낮춘 세티아는 말을 끝나자 은호를 바라보았다.
마치 정답을 들킨 것처럼 놀라고 있었다.
그제야 세티아가 잔잔하게 웃었다.
“아주 깊은 고민이겠구나.”“…맞아. 나는 이제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은호 너는 잘하고 있다.”
부드럽게 귀를 감싸는 세티아의 말에 은호는 호선을 그렸다.
세티아는 정말 포근했다.
어떤 고민도 세티아 앞에서는 사르르 녹는 게 꼭 아버지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하고 있었다.
세티아는 은호를 안아주었다.
“은호오!”
라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눈동자를 굴리다가 앞발을 벌리며 뛰었다.
은호의 품에 안겨서는 배시시 웃었다.
“무슨 일이야, 사고뭉치? 배고파?”“간식은 좋다! 아! 이게 아니다, 애들이 같이 놀자고 부르니라.”
“…나?”
은호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렇다.”
다시금 이어진 라비의 대답에 은호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편안하게 누워있으려고 했는데, 글러 먹었다.
“행운을 빌어주겠다.”
세티아가 잔잔히 말을 꺼내자 은호는 배신을 강하게 느꼈다.
“…세티아?”
“갔다 오거라. 다 인간을 기다린다.”
흑견은 말을 내뱉은 뒤, 크게 하품했다.
“둘이 똑같아!”
은호는 폭풍 같은 말을 던지며 라비와 함께 사라졌다.
고요함만이 남았다.
똑같다니.
고개마저 돌리고 싶지 않았다.
“…못 들은 걸로 하거라.”
흑견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당연하지.”
이건 세티아도 사양이었다.
같아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에 은호의 웃음이 들렸다.
그렇게 겁을 먹더니, 호수로 가서는 환수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세티아가 고개를 돌리자 흑견은 은호를 즐겁게 보고 있었다.
평소에 엿볼 수 없는 눈동자였다.
샛노란 눈동자가 살아 숨 쉬는 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저런 감정을 내내 숨기고 다니니 안 답답하고 배기겠는가.
“왜 평소에 그렇게 은호를 쳐다보지 않는 거지?”
“내 마음이다.”
“부끄럽나?”
“시끄럽다, 영감.”
“그래도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지?”
세티아가 물었다.
“은호라서 말을 한 거다. 은호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거다.”“다시 말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다, 꼬맹이.”
세티아의 말이 끝나고서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세티아가 고개를 돌리자 흑견 역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여주기 싫은지 아예 돌려 앉았다.
“…알고 있다.”
뒤이어 꺼내는 그 말에 세티아가 크게 웃었다.
“시끄럽다!”
“그나저나 말 안 듣는 저 아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세티아가 말을 바로 돌렸지만, 흑견이 제법 진지하게 받아쳤다.
“내 그림자에 가둬버리면 되긴 한다.”
“……?”
세티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좋은 생각이지 않은가.”
흑견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세티아는 이내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좋은 생각이다.”
짧은 고민이 금방 해결이 됐다.
다만, 이럴 때만 통하는 건 기분이 좀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