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5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53화(253/302)
252화. 서율은 서럽다(2)
* * *
“형!”
은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깜짝아.”
태호가 기겁했다.
하마터면 젓가락을 놓칠 뻔했다.
“와. 치사하게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있었어요?”
어딜 봐도, 옆으로 봐도, 위에서 봐도 치킨이었다.
“…어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내도록 굶다가 겨우 먹는 건데?”
태호가 정색하며 말하자 은호는 조용히 물었다.
“…음료수 꺼내 줄까요?”“괜찮으니까, 은호 씨도 먹……. 아, 이미 젓가락을 들고 있네?”
은호가 젓가락을 딱딱 부딪치자 태호는 기가 찼다.
“…은호 씨도 굶었나?”“아뇨. 굶었을 리가요. 잘 먹고 왔는데요?”
은호의 눈동자가 반짝거리자 태호는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었다.
“그러면 이 빠른 속도는 뭔데?”“아니, 형이 그랬잖아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튀긴 음식은 꼬맹이들한테 좀 안 좋을 수 있다고요.”“그렇지. 튀긴 그 성분이 애들한테는 안 좋아. 성체일 때는 괜찮은데 말이야.”“지금, 눈이 돌아가겠죠?”
은호의 미소가 생각 이상으로 진했다.
장엄한 감정마저 드러났다.
“확실히 돌아갈 만하네. 먹어, 많이 먹어.”
태호는 안타까운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이 맛있는 걸 먹지도 못한다니.
바사삭.
입안에 터지는 튀김의 소리가 먼저 귀를 자극했고, 이빨에 씹히는 맛을 따라 퍼지는 기름의 고소함에 은호는 탄성을 내뱉었다.
“…와, 미쳤는데요? 이건 진짜 미친 거예요.”“맞지? 내가 이 맛에 이 집만 시킨다니까?”
태호가 낄낄 웃으며 치킨을 뜯어 먹다 말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은호가 들어올 때 꽤 격렬하게 자신을 부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야?”
“……아.”
은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입에 들어오는, 익숙하되 그리웠던 그 맛에 혼이라도 나갔던 모양이었다.
“형.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곰곰이?”
태호가 옆에 물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은호를 보았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생각을 확립하려면 일단, HWM과 환수의 관계가 필요해요. 혹시 아는 거 있나요?”“거기 환수를 싫어해. 내가 말했잖아? 자동 운전 모드부터 안 바꿔준다고. 거지 같은 기능 때문에 환수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거 봐.”“형.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어요?”
“…증명이라니?”
태호는 말을 꺼낸 뒤 은호를 지그시 보았다.
장난기가 없었다.
“대체 뭘 발견한 거야?”“나온 것들을 정리해봤어요.”
은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노트를 건넸다.
태호는 노트로 시선을 뒀고, 은호는 잠깐 기다렸다.
“거기에 있던 마나석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숨겨둔 것 같단 말이죠.”“그게 정화자의 우두머리라는 거야?”“맞아요. 그리고 정체를 모르는 환수. 이 사건과 얽힌 흑견. 이걸 조합하면 정화자의 우두머리와 정체 모를 환수가 손을 잡은 건 과거가 돼요.”“현재가 아니라, 과거, 그러니까, 십 년 전으로 간다는 거지?”
흑견이 멸종된 지가 벌써 10년이었다.
10년.
“맞아요. 그만큼 오래된 거죠.”“…HWM이 인수된 시간은 그거보다 더 오래전이야.”“이러면 더더욱 마나석을 캔 사람은 HWM의 전 주인밖에 없겠는데요?”“어째서 그런 거지?”“환수가 와서 마나석이 다 사라졌으니까요. 이걸로 한탕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잖아요. 그놈 이외에 환수에게 이만큼 증오를 품을 사람이 있을까요? 멀쩡한 회사가 인수되는 건 보통 돈 문제잖아요.”
식물이 그 장면을 보여줬다.
마치 꿈처럼 느껴졌지만, 과거의 일이었다.
환수들이 이세계에 오자마자 마나석이 사라졌으니까.
“…그래서 정화자의 우두머리가 HWM의 전 주인인, 허태인이라는 거네?”
태호가 더듬거리면 그 이름을 꺼냈다.
“맞아요. 그 사람이 되는 거예요.”
확신을 내린 은호의 말에 태호는 놀랐다.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그 새끼가 흑견 사건을 일으킨 진짜 범인인 거예요. 흑견이 허태인과 환수가 손을 잡는 모습을 다 본 거예요. 마나석이 허태인을 숨기기 위한 일이었다면, 흑견 사건은 환수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일이었던 거예요.”“그런데 사실, 둘이 소통할 방법이 없지 않아?”“하이프, 기억 안 나세요? 레드독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 환수가 정신 계열의 힘을 가졌다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아니면 그 환수를 따르는 다른 환수가 있을 수도 있고요.”
은호가 힘을 주어 꺼낸 말에 태호는 물끄러미 노트를 보았다.
“…그러면 가능하지.”
시선을 움직이던 태호는 흑견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췄다.
지금도 볼 때마다 너무도 아픈 단어였다.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지킨 걸까.
후회와 자책만이 담긴 그 사건이 이어져 있다니.
태호는 이를 악물었다.
노트에 수없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은호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왜 모를까.
손을 뻗어 글자를 매만졌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이렇게 조합했다.
이에 대한 근거 역시 꽤 그럴듯했다.
“…은호 씨.”
태호는 흔들리는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만약에 이게 진짜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닐 수도 있어요. 목적도 몰라요. 하지만 이게 맞아야 해요.”
은호는 강하게 주장했다.
이게 최선이었다.
이 이상의 일을 더 그릴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끌어모으고, 모은 결과였다.
“정말, 은호 씨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태호는 이 주장에 강한 확신을 느꼈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내가, 찾아서 은호 씨에게 알려줬어야 했는데.”“형. 형이 늦은 게 아니에요. 나는 하나만 팔 수 있어요. 백수니까요. 하지만 형은 아니잖아요. 이 사건 하나에 매몰될 수 없어요.”
이 환수 관리국에 벌써 수백 이상의 환수가 있었다.
이를 신경 쓰고, 지금 벌어진 사건까지 어떻게 신경을 다 쓸까.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나를 팔 수 있는 자신과 시간적인 여유 자체가 달랐다.
그럼에도 태호는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줬다.
누구한테 대단하다고 말해야 하는지 뻔하지 않은가.
“아직, 확신을 내릴 수 없어요. 하지만 형. 이 가설이 맞다면 이 둘만 잡으면 돼요.”
은호는 미래를 바라보듯 희망이 어린 눈빛으로 태호를 쳐다보았다.
자잘한 일들은 나중에 봐도 됐다.
지금 태호의 속도로도, 지혜의 속도로도 다 잡을 수 있을 테니까.
“형. 내게 확신을 주세요. 허태인, 이 사람이 맞다고 알려주세요.”
이 가정에는 힘이 필요했다.
확신이 있어야 나아갈 수 있었다.
사람과 환수를 위해서.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일을 처단하기 위해서.
지이이잉.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호는 진중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으로 걸어갔다.
휴대전화에 떠오른 글자를 보았다.
이지혜 국장.
심장이 떨렸다.
저 전화를 받으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향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태호는 숨조차 몰아쉬지 못했다.
손가락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무거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장님.>
덩달아 무거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화자의 우두머리를 찾았습니다.>
이어 밀려오는 건 기쁨이었다.
<은호 씨가 건네준 그 모든 것들 조합했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은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당연했다.
여기까지 수없이 많은 걸 던져준 건 은호였으니까.
<마나석.>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은호도 저기에서 확신을 내렸으니까.
<그 마나석을 얻을 수 있는 건 허태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들어 보지도 못한 그 광물을 허태인 이외에 손을 댈 수 없을 테니까요.>
수많은 머리를 맞댄 뒤, 지혜 역시 그쪽으로 접근한 모양이었다.
태호는 이다음 말을 기다렸다.
<서율을 시켜 허태인을 감시시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확실히 알았습니다.>
입술이 다 다물어졌다.
심장이 조이는 기분마저 느꼈다.
<정화자의 우두머리는 허태인이 맞습니다.>
태호는 두 눈을 감았다.
기어코 그 말이 떨어졌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말이.
태호는 겨우 날뛰는 심장을 다스리며 말문을 열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식을 은호 씨에게 알려줘도 되겠습니까?”<아, 지금 옆에 있습니까?>
“네. 옆에 있습니다.”
태호는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앞으로 나올 여러 말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초조함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았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그럼, 허태인을 잡기 위해, 긴급회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태호는 연락을 끊었다.
그대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휴대전화를 내린 뒤, 은호를 보았다.
“은호 씨.”
“네, 형.”
“은호 씨의 추측이 맞았어.”
그 대답에 떨어지자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
두 주먹을 꽉 쥔 채 밀려오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만 같았다.
“지금 긴급회의 들어갔고, 나중에 결과가 나올 거야.”“형. 조금만 더 하면 돼요. 정말 조금만 남았어요.”“그래, 조금만 더 하면 돼.”“물론, 이 뒤에 남은 문제들이 아직 많긴 해요.”
은호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당장 숨이 벅찬 것처럼 가슴까지 닿는 여러 감각이 참 낯설었다.
“재해가 남았고, 왕의 문제가 있고, 약속을 어긴 환수 문제도 있으니까요.”“천천히 하자, 천천히. 그건 천천히 해도 되는 거잖아?”
“맞아요.”
“은호 씨.”
“네?”
“오늘은 긴장 좀 풀어. 상대는 정화자고, 목적도 모르고, 무엇보다 증거마저 없는 상태야. 그러니까 오늘은 아무것도 못 해.”“알아요. 이거 먹고 집에 갈 거예요.”
은호는 활짝 웃으며 젓가락을 딱딱 부딪쳤다.
“그래, 많이 먹어. 갈 때, 입 잘 닦고. 냄새를 귀신같이 아니까.”“귀신 같긴 하더라고요. …소리 하나만 들려도 벌써 다 집합해 있어요.”
그 모습이 참 귀엽긴 한데, 한편으로는 간이 쫄리긴 했다.
탁탁.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은호는 움찔거렸다.
일렉트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뭐 먹어, 은호?”
그 물음에 은호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귀여운 귀신이 왔네요.”
태호를 보며 은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 * *
‘…서럽다, 진짜.’
서율이 택시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 환수 관리국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이것저것 알아낸 게 많아서 칭찬해줬으면 했다.
어쩌면 또 뭔가를 시킬지도 모르고.
부국장 자리가 비어 있는 터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그 자리에 욕심이 있는 줄 아는데 실제는 달랐다.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국장님도 진짜, 위험한 임무라고 귀띔 좀 해주지. 아니다, 해주긴… 했지? 했나?’
기억이 저 멀리 날아간 것만 같았다.
서율은 눈을 깜박거렸다.
그대로 멈췄다.
지친 표정이 지워지고, 껄렁하게 보이던 자세 역시 풀었다.
무언가 싸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서율은 자신의 육감을 믿었다.
뒤로 물러나는 듯하다 이내 몸을 감췄다.
조용히 싸늘함이 맴도는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는 환수 관리국이지만, 도심과 떨어져 있었다.
환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도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이거였다.
하지만 지혜는 날아왔다.
혼자 치사하게.
마찬가지로 치사하게 초능력을 쓰는 불청객이 있었다.
서율은 칼을 꺼냈다.
자신은 투명하게 하는 것 이외에는 재주가 없어 무기가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건드리고 있자, 서율은 손을 들어 휴대전화를 저 멀리 던졌다.
“……?”
어리둥절할 사이에 서율은 몸을 낮췄다.
“꼭 있더라.”
서율은 익숙하게 다리를 잡고는 힘줄부터 끊어버렸다.
서걱!
“끄아아아악!”
“너 같은 녀석들 말이야.”
서율은 그대로 뒷덜미를 잡아 땅에 박게 했다.
콰앙!
놈의 몸이 앞으로 기운 그사이에 나머지 다리의 힘줄까지 끊어버렸다.
스으윽.
피가 튀었지만, 그마저도 투명하게 변했다.
‘아까 허태인하고 환수 관리국 이야기를 하더니. 이거였네.’
말속에 숨겼지만, 명백히 감시를 암시하는 말을 꺼냈다.
이럴 줄 알았는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대체 어디에서 살피나 했더니, 저 숲에서 숨고 있다니.
‘저놈의 숲을 다 밀어버리던가…….’
서율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다. 그냥 말자.’
지혜가 무서웠다.
서율은 적의 팔 하나를 뻗게 해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끄어어억!”
다른 단검을 꺼내, 손목 힘줄을 끊어버렸다.
깔끔하고, 빠른 솜씨였다.
서율은 피를 털며 반대쪽 손으로 걸어갔다.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그 소리에 놀라길 바랐다.
공포가 커지면 초능력 사용이 둔해졌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혼자 살아 있는 팔을 발로 짓누르고는 몸을 숙여 아래에서 위로 그어버렸다.
이번에도 힘줄만 건드렸다.
“이렇게 될 걸 생각했어야지.”
서율은 머리카락을 쥐어서는 끌고 갔다.
‘아차.’
던져버린 휴대전화 쪽으로 뛰어가 주웠다.
큰일 날 뻔했다.
돌아오면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했다.
“아, 국장님.”
<무슨 일이지? 습격을 받은 건 아니지?>
“한 놈 잡았습니다.”
칭찬을 바랐다.
<대충 끌고 와. 지금 긴급회의가 열리니까. 네가 빠지면 되겠어?>
“……네?”
<긴급회의가 열렸다고.>
지혜는 그 말을 끝으로 끊어졌다.
아니, 대체 왜.
뭐 때문에.
긴급회의가 흔한 것도 아니고.
‘서럽다, 서러워.’
서율은 놈의 머리카락을 잡아서는 끌고 갔다.
묘한 소리가 나자 고개를 올렸다.
나무 끝에 꼬리가 민들레 씨 같이 생긴 쥐를 닮은 환수가 앉아 있었다.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그래도 뭐, 잘하고 있는 거겠지.’
환수 불모지에 가까웠던 환수 관리국에도 한 마리씩 환수들이 보였으니까.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