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5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54화(254/302)
253화. 바닷속으로
타닥.
불이 타올랐다.
은호는 불을 보며 길게 하품했다.
덩달아 은호 옆에 옹기종기 모인 블라스가 하품했다.
쥐를 닮은 블라스의 등에 활짝 피어난 꽃처럼 흩날리는 푸른 불꽃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푸른 등불 같았다.
한 마리씩 이어가던 하품이 마지막 블라스까지 이어지자 웃음이 터졌다.
“하품은 전염된다고 했는데, 정말이네.”
은호는 키득거리며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꼬맹이들이 다른 환수와 뭔가를 속삭이는 걸 보았다.
오늘도 그랬다.
폭시가 대표로 말을 꺼냈다.
―오늘은 애들이랑 연구소에 잘 거야! 그러니까, 은호는 우리 없다고 못 자고 있으면 안 돼.
자신 없이는 잠도 못하던 꼬맹이들이 이렇게 훌쩍 떠나니, 뭔가 마음이 헛헛해 잠이 오지 않았다.
성장은 기쁘나, 이 허전함은 참 슬펐다.
‘그런데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
그 대상이 꼬맹이들이라 참 무서웠다.
사고를 치는 건 아닐까.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은호는 숨을 내쉬며 다시 불을 보며 멍을 때렸다.
“있잖아, 친구들아.”
“응?”
블라스 중 오른쪽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존재가 반응했다.
“애들을 왜 이렇게 빨리 크는 걸까?”
은호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흑견은 기가 찼다.
왜 잠을 못 이뤘나 싶었는데, 겨우 그 이유라니.
“고작 하루다.”
흑견이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고작 하루라도 느낀 게 너무 많다고. 우리 집이 이렇게 횅했나. 집이 이렇게 조용했나. 그런 느낌 말이야?”
“인간, 잊었나?”
“뭘 잊어?”
“원래 그 집에는 나와 인간뿐이었다. 다른 존재들이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것뿐이다.”
흑견의 말에 은호는 눈을 깜박거리며 흑견을 보았다.
블라스들이 먼저 웃었다.
그제야 은호 역시 목청을 높였다.
아무래도 블라스들이 먼저 알아챈 모양이었다.
흑견이 얼마나 질투쟁이인지를.
“너희는 왜 웃는 것인가?”
흑견의 으름장에 블라스들은 입을 다물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에 깃든 날카로움은 제법 강했다.
“에헤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멍멍이 형님. 이 친구들이 무서워하잖아.”
은호는 블라스들을 쓰다듬었다.
푸른 불꽃은 보는 것과 달리 뜨겁지 않았다.
햄스터만큼이나 작기에 옹기종기 모인 블라스들의 모습에 웃음이 감돌았다.
“여긴 친구들의 집이고, 친구들이 우리를 초대해준 거라고.”
은호가 따끔히 말하자 흑견은 어깨에 힘을 주었다.
지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집 마당도 넓다. 왜 여기인가?”“그거야, 친구들이 보고 싶었으니까.”
은호는 블라스들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그냥 문득, 생각이 났다.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날 보았던 블라스들의 푸른 불꽃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보고 싶었어.”“계속 보고 싶었어. 꽃을 보면서 은호를 생각했어.”
블라스들이 은호의 손바닥에 파묻혀 한 마리씩 말문을 열었다.
“이 꽃에는 은호가 묻어 있었어.”“언제 올까, 언제 찾아올까, 매일 밤 은호가 왔던 길을 봤어.”“…그 정도로 날 기다리고 있었어?”
은호는 이어지는 블라스들의 고백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마치 시간대가 다른 듯 느껴졌다.
자신이 많은 환수를 봤던 시간 동안 블라스들이 자신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괜찮아. 그 기다림이 좋았어.”“맞아. 설렜어. 매일 설렐 수 있어서 좋았어.”
블라스가 작은 웃음을 지었다.
“억지로 오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은호가 우리를 좋아하고, 늘 생각하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우리는 우리의 삶이 있고, 은호는 은호의 삶이 있어. 구속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어.”
길들여지지 않는다.
환수의 절대적인 특성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았다.
블라스들이 딱 그랬으니까.
기다리되, 그 기다림에 끌려가지 않았다.
그저 기분 좋은 만남, 딱 거기에서 흐트러지지 않았으니까.
“봐, 은호가 결국 우리를 보러 왔잖아?”
블라스들은 은호를 바라보았다.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동자는 더 많은 걸 보는 듯했다.
무얼 보고 있는 걸까.
그 시선 끝에 자신은 어떻게 보일까.
은호는 몹시 궁금했다.
“내 몸이 여러 개면 좋겠네.”
은호는 진심을 담아 말을 꺼냈다.
여러 개면 이 친구도 만나고, 저 친구도 만나며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인간의 몸이 여러 개면…….”
뭐라고 말을 하려던 흑견은 불쾌함을 담아 하늘을 보았다.
까드득.
이를 악물자 은호는 덩달아 하늘을 보았다.
이 반응을 내보일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눈이 커졌다.
“…말썽꾸러기의 몸이 여러 개라면 정말 좋겠지만, 누군가는 싫어할걸? 그렇지, 친구?”
바람이 잔잔하게 몰아왔다.
조용히 윈디드가 내려왔다.
“삐약아! 언제 온 거야?”“안녕, 말썽꾸러기. 안녕, 친구.”“여기를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길이 엇갈릴 뻔했는데?”
은호는 손을 뻗으면서 웃었다.
신기했다.
여긴 집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가니 아무도 없더라고. 연구소에 갈까 생각하다가 물어보니까, 다들 말썽꾸러기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더라고.”
“…지, 진짜야?”
말을 더듬으며 은호는 황당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몰랐는가?”
도리어 놀란 건 흑견이었다.
그렇게 집 주변을 쏘아 다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게 아닌가.
지금 당장 집 주변에 있는 환수들에게 은호의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모르는 존재가 없을 테지.
그 정도였다.
왜 본인만 모르는 건가.
집 주변에 있는 환수들이 은호를 중심으로 뭉쳤다는 걸.
아니, 더 나아가 점점 몰릴 만큼 영향력이 올라가는 걸 왜 모르는 건지.
“와…. 진짜 신기하다. 다들 코가 좋구나.”
은호의 대답에 흑견은 앞발로 은호의 얼굴을 눌렀다.
“이 멍청한 인간!”
흑견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잠깐만, 잠깐만!”“이건 우리가 이해 해야지, 친구. 말썽꾸러기는 말이야. 다른 존재의 고민을 해결하면 그걸로 만족해서 본인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윈디드가 웃으며 말하는 것과 달리 말이 묘하게 날이 선 것 같아 무서웠다.
왕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삐약이는 왜 화가 난 건데?”“봐봐, 친구. 이러면 말썽꾸러기가 몰라.”
윈디드는 은호를 이해했다.
살아가면서 중심에 서본 적이 없으면 이럴 수 있었다.
이러면 알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분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왕의 부탁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왕의 수호자와 은호의 친구.
부탁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 어중간했던 자리가 드디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은호를 돕는 건, 은호를 위하는 건, 곧 왕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썽꾸러기.”
“으, 응?”
“지금, 우리의 중심에 말썽꾸러기가 있어. 여기서 우리는 나랑 저 친구를 말하는 게 아니야. 우리 모두를 말하는 거야. 다른 존재의 코랑 별개로 은호를 주목하고 있어.”
“……왜?”
은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호 네가 먼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으니까. 그렇지, 작은 친구들?”
윈디드는 블라스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느낌은 저 친구들도 알고 있을 테니까.
“맞아. 우리는 보잘것없는 존재야. 그냥 나뭇가지에 앉아서 조잘거리는 다야. 아무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아.”
특별한 것 없는, 그냥 흔하게 널려 있는 돌멩이 같은 존재였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게 슬프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루하루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고, 새로운 걸 보고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그런데 은호는 우리를 존중해줬어. 특별하게 만들어줬어.”
늘 흐리고, 흐린 세상에 선명한 색을 볼 수 있게 도와줬다.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세상을 보게 해줬다.
다른 동족들도 있겠지만, 은호의 손이 거쳐 간 자신들은 특별해졌다.
은호가 웃으며 건네는 인사가, 목소리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 순간은 온 세상이 자신들을 향해 빛을 비췄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은호가 좋아.”
왜 자신들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은호가 위험해지면 우리는 도울 거야. 미약해도 괜찮아. 은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손을 뻗을 거야.”
블라스들은 은호의 앞발을 뻗었다.
아주 작고, 여린 앞발이었다.
무지개처럼 그려진 블라스들의 눈웃음은 푸른 불꽃과 맞물려 화사하게 빛이 났다.
타닥.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요동쳤다.
아주 기분 좋은 소리로 들렸다.
어쩌면 또, 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닥불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까지 스며드는 것만 같았으니까.
손을 뻗어 블라스들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기뻐.”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다.
“정말 기뻐.”
나오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저 감정이 잘 전달됐으면 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 거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앞으로도 똑같을 것 같아. 뭔가 특별한 건 하지 못할 것 같고. 뭔가 기대한 게 있다면 실망만 안겨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뭐 하러 특별해지는가. 그냥 늘 하듯 그대로 하면 된다.”
흑견이 일으킨 어둠은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있는 그대로가 좋은 거니까.”
윈디드 역시 비슷한 말을 꺼내자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도 그래.”
“그냥 은호라서 좋은 거야.”
블라스까지 이어지는 말에 은호는 괜스레 웃음이 터졌다.
“그냥 다, 내가 좋았구나?”
쉽게 말해서 그거 아니겠는가.
은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큰일이네.”
잘난척하는 표정이 지어지자 흑견은 어둠으로 은호의 볼을 찔렀다.
“잠이나 자라. 늦었다.”
이 이상 우쭐거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럴 때 우쭐거려봐야지. 그렇지, 친구들아?”
은호가 블라스들을 보며 말하자 웃음이 번졌다.
모닥불의 불이 번지고, 별이 깊어져 갔다.
* * *
“……?”
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호가 불러 찾아왔는데,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난생처음 본 제품이었다.
뭔가 사료를 풀 때 쓰는 받침대 같기도 하고, 타원형으로 된 물건이라는 건 분명했다.
“신제품이에요? 내가 좀 꼼꼼히 보는데 괜찮아요?”“은호 씨. 우쭐거리기 전에 조금만 더 자세히 봐줄래?”
뭘 잘못 먹었길래 오늘따라 우쭐거리는지 몰랐다.
자신감이 아주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이거 음, 뭔가, 푸는 건가요?”“아니야. 이건 그거라고, 산소마스크.”“…저번이랑 다른데요?”“당연하지. 환수용이니까.”
태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은호는 물건을 쥐어 다시금 바라보았다.
“지금 쓸 수 있나요?”“쓸려고 만든 거니까. 일단 크기 조정이 되게 만들었는데, 손을 조금 더 보긴 해야 해. 아무래도 환수들의 얼굴이나 주둥아리가 종마다 다르게 생겼잖아?”“드디어 바닷속에 가는 거예요? 진짜, 진짜 아름다운 그 풍경을 다 같이 보러 가는 거예요?”
은호는 그때 바닷속을 떠올리며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산호초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왜 에르쿠나가 그토록 아쉬워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자신도 기절을 해버려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기도 했다.
바닷속을 가보자고 태호에게 제안하긴 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조사를 위해서 가는 거야.”
“조사요?”
“재해를 보러 갈 거야.”
“재해를요…?”
“맞아. 근래에 높으신 분 중 한 명이 의문을 던지더라고. 재해가 진짜 있냐고.”
태호는 콧바람을 내쉬었다.
어딜 들어도 기가 찬 말이었다.
얼마나 평화에 찌들었으면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낼 수 있을까.
“왕을 압박하려는 거죠?”
은호의 물음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가 참 절묘하긴 해. 불과 얼마 전에 정화자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야.”“그저 우연이길 빌어야죠.”“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환수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은호 씨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태호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환수 밀렵꾼을 무너트렸을 뿐, 이와 관련된 사람을 다 잡은 건 아니었다.
거래했던 사람까지 싹 다 잡는 게 맞았다.
“이지혜 국장한테 들으니까, 하나율이 명단을 넘겼다고 하더라고.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그 잘난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깨끗한지 말이야.”
관자놀이를 누르던 태호가 손을 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 중에 과연 없을까.
“그럼, 재해는 무기로서 손에 쥐려는 거예요?”
은호의 질문에 태호가 웃었다.
“이 무기는 환수를 지킬 무기니까. 당연히 손에 넣으러 가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