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5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55화(255/302)
254화. 바닷속으로(2)
“그냥 무기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무기죠.”
은호가 씩 웃었다.
재해란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당장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적어도 바다가 오염되고, 동물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람들은 ‘아, 뭐가 죽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경각심을 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저 동물이 죽었을 뿐이고, 바다를 보러 가면 여전히 푸르렀으니 생각이 희석되기 마련이었다.
“재해는, 달랐다며?”
태호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물었다.
“달라요. 그냥 단순히 오염됐다는 느낌이 아니라, 생물 같아요. 살아 움직이는 생물 말이에요.”
까맣고, 까만 생물이었는데, 흑견과 달랐다.
당연히 라비와도 달랐다.
모든 질척함이 섞인 검정이 뭉친 느낌이었다.
“잘 찍혀야 하는데 말이야. 협상 카드로 무조건 쓰여야 해.”
태호는 조바심을 살짝 섞어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왕을 지킬, 어쩌면 유일한 수단이었다.
“형도 생각하고 있죠?”“어떤 생각 말이야?”
태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재해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요.”
은호가 살며시 뜬 눈을 보며 태호는 입을 다물었다.
같은 생각일까.
그걸 의심하며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설령 재해가 사라지더라도 존재해야 해요.”
은호는 의견을 주저 없이 던졌다.
자신은 재해를 정화할 수 있었다.
시간이 충분하면 언젠가는 모든 재해를 다 정화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정화가 끝나는 즉시, 왕이 버려질 수 있었다.
“쓰임이 다했다고 버려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어요. 왕은 재해를 막기 위해 지금도 몸을 갈아가고 있으니까. 지금보다 더 환수를 보호할 수단을 견고히 해야 해요.”“그걸 찾아내기 전까지, 재해는 완전히 사라질 수 없지. 나도 알고 있어, 은호 씨.”
태호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건, 자신의 이름값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문제였다.
환수가 아직 사람들하고 너무도 멀었으니까.
억지로 붙잡아둔 관계에 불과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자 긴 숨만 새어 나왔다.
* * *
“…바다다.”
라비가 눈을 초롱초롱
떴다.
훌쩍.
코를 먹자 은호는 모자를 씌웠다.
어차피 벗긴 하겠는데, 그건 잠깐이었다.
“바다얌!”
레비아탐이 앞발을 높이 뻗으며 제자리에서 뛰었다.
칼같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리는가 싶더니, 꼬리로 중심을 유지했다.
“은호. 저번보다 좀, 추워졌는데?”
폭시가 놀란 눈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저번하고 바람이 달랐다.
얼굴이 다 따가웠다.
웅크려 있어야 하는 계절이 찾아왔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습관적으로 꼬리를 안으려고 했지만, 은호에게 달려가 안겼다.
“거봐. 내가 아직 나가지 말라고 했지?”
은호가 따끔하게 말하자 그의 목에 휘감긴 일렉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들은 미리 준비한 임시 거처로 달려갔다.
“맞아. 여기가 제일 따뜻해.”
은호 품이 제일 좋았다.
있기만 해도 녹아내리는 기분에 두 눈이 다 감겼다.
“잠시만 기다려봐.”
은호는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얼굴을 때리는 바닷바람에 눈이 반사적으로 감길 정도였다.
옷을 단단히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칼바람을 맞으며 모래에 피를 떨어트렸다.
바로 반응이 왔다.
모래 위로 싹이 얼굴을 살며시 내밀자 은호는 웃음이 났다.
“식물 친구들아. 바람 좀 가려줄래?”
은호의 바람에 식물들은 신이 난 듯 움직였다.
바다로 갈 수 있게끔, 임시 거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자라나 바람을 막아주었다.
아무래도 바닷속에 있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친절했다.
뭔가 들떴다고 해야 하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돼.”
은호가 밖으로 나와 쪼그려 앉아서는 싹으로 된 식물을 건드렸다.
고마워.
느리지만, 힘찬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안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찮아?”
기뻐.
그 말에 은호는 덩달아 웃었다.
“아. 친구들아. 내가 전 자연의 대리자와 다른 사람이라고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자라난 식물들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살짝 나온 태호는 혀를 내둘렀다.
봐도 봐도 참 신기했다.
식물들이 어떻게 저렇게 생생하게 움직일까.
은호가 가진 피를 통해 이곳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추측하긴 했어도 신기한 건 별개였다.
“서은호 씨.”
가을이 태호를 제치고 밖으로 나왔다.
“네?”
은호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까?”
고민도 없이 던진 가을의 말에 은호가 그대로 멈췄다.
눈동자가 요동쳤다.
가을은 주장을 확신하며 자연스럽게 웃었다.
“농담입니다.”
“…노, 농담이죠? 농담 맞죠?”
“그럼요.”
가을은 슬쩍 고개를 돌려 태호를 보았다.
이런 걸 보면 가을도 참 심술꾸러기였다.
진짜 궁금한 건 참지 못한 편이었으니까.
설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이야.
“제가 긴장했거든요.”
가을은 말을 꺼내며 숨을 가다듬었다.
“가을 씨가요…?”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을을 보았다.
긴장과 거리가 너무도 멀어 보이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을의 눈빛이 살며시 가늘어지자 은호는 바로 다른 말을 내던졌다.
“그런데 이번에 괜찮아요? 젖는 걸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바닷속에 가을도 들어가기로 했기에 은호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젖는 걸 싫어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무섭습니다.”“그러니까, 안 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태호는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왜 무서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물 공포증이 있는 거예요?”
은호의 물음에 가을은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했다.
“실적이라고 하죠. 돈을 벌어오지 못해서 자주, 물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무섭습니다.”
“…….”
은호는 너무도 직접적인 이유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저 놀랐다.
가을이 비소속 초능력자였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가을 씨.”
“두 분에게 불편함을 느끼라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정보란, 가두면 가둘수록 여러 상상을 하게 됩니다. 확실한 이유를 말해줘야 더 확장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급한 겁니다, 박사님.”
가을의 시선은 올곧았다.
그래서 은호는 더 궁금해졌다.
진짜 담담한 건지, 아니면 담담한 척하는 건지.
“게다가 은호 씨가 절 나쁘게 생각할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고, 질 낮은 동정을 할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은호는 가을이 뒤이어 꺼낸 말에 이유를 알아버렸다.
이런 말을 꺼낼 정도로 자신을 믿는다는 말이었다.
가을은 생각보다 직진으로 다가왔다.
왠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도 가을 씨를 믿으니까. 힘든 기억은 꺼내지 않아도 돼요.”“이 정도는 알려드려도 괜찮습니다. 저한테 문제 될 것도 없고요. 그리고 앞으로 알고 있어 달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유를 계속 언급하기에는 번거롭잖습니까.”
가을은 말을 끝내고 갑자기 태호를 보았다.
태호가 찔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예상 밖의 일을 저질러서 갑자기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덩달아 은호가 태호를 보자 태호는 진땀을 흘렸다.
“혹시 장난으로 물을 뿌려본 적이 있는 거 아니죠?”
“…가, 가볼까?”
태호가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있는 모양이었다.
가을이 뻣뻣해진 태호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가을 씨.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정말 괜찮습니다. 지금은 그냥 싫은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른 기억이 덮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다른 기억이요?”
“…바닷속, 아름다웠습니까?”
“아름다웠어요.”
은호가 미소를 짓자 가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충분했다.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밖으로 나오자 가을은 깃털에 파묻혀 눈을 크게 떴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상당히 부드러웠다. 계속 파묻혀 있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래?”
“그 친구가 왔어.”
“웨핀이?”
“맞아.”
“……뭐?”
“형. 웨핀이 왔대요.”
“저, 정말?”
“정말이죠.”
은호가 앞으로 달리자 태호 역시 달렸다.
그 소리에 가을이 멈칫거렸다.
“박사님! 은호 씨!”
장비를 다 챙겨야 하지 않은가.
하.
긴 숨이 내쉬어졌다.
둘이 똑같았다.
* * *
“…아차, 이걸 깜박했네.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은호가 묻자 웨핀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은호 냄새가 났어. 정말 많이 났어. 그래서 바로 알았지. 태호도 왔나 싶어 너무 설렜어.”
웨핀이 기분 좋게 웃자 꼬리가 흔들렸다.
웨핀에게 매달린 가을의 입에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진정해요!”
“진정해, 가을 씨!”
은호와 태호가 가을을 말렸다.
공포라는 게 한 번에 극복이 될 리가 없었다.
“저 인간, 물을 무서워하는 거 맞지?”
웨핀이 묻자 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한대.”
“으으음.”
웨핀이 고민할 사이에 은호는 잠깐 옆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내가 제일 빠르니라!”“천천히 가, 까망아!”“으어어엄. 기다렴!”
라비와 폭시, 그리고 레비아탐이 신나게 헤엄쳤다.
처음에 가장 먼저 물속에 적응한 건 레비아탐이었다.
그 뒤로 폭시였고, 라비는 물속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 엉엉 울었다.
제일 먼저 용감하게 출발했으면서 이렇게 될 줄이야.
가을을 걱정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녀 역시 라비를 걱정할 정도였다.
결국, 일렉트와 함께 자신의 몸에 매달려 바다로 들어갔다.
일렉트는 물에 뜨는 건 잘했지만, 헤엄은 치지 못했다.
계속 물에서 뜨기에 할 수 없이 지금도 자신의 목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헤엄칠 수 있는데.”
일렉트가 툴툴거리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맞아. 삐죽이가 헤엄 잘 치는 거 내가 잘 알지.”
자신의 옆에 여유롭게 헤엄치는 윈디드를 힐끔 바라보았다.
날개가 없다면 물에 살던 생물처럼 부드러웠다.
어쨌든,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래도 될까 싶었다.
“인간. 나만 믿어.”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웨핀은 아래로 내려갔다.
가을이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이내 멈췄다.
발이 땅에 닿았다.
“이제 괜찮을 거야. 인간은 땅에 닿아야 안심할 테니까.”
웨핀의 말이 들리는 것처럼 가을은 발을 움직였다.
“괜찮아?”
태호가 아래로 내려와 가을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더, 편안해졌습니다.”
보글보글.
가을은 웨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두려움이 전해진 걸까.
웨핀이 자신을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신기했다.
이렇게 환수가 가까이 있는 것도, 걱정을 받는 것도 전부 다.
보석을 박은 듯은 눈동자가 깜박거리자 가을은 눈웃음을 지었다.
웨핀은 가을을 생각해 바닥에 닿을 만큼 낮게 헤엄쳤고, 은호는 윈디드의 등에 매달려 그 뒤를 쫓았다.
얼마나 헤엄쳤을까, 저 멀리 아름다운 환수가 눈에 들어왔다.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는 비늘이 제일 먼저 눈에 보였고, 머리에서 길게 내려온 면사포 같은 얇은 천이 뒤이어 흩날리자 시선이 홀릴 것만 같았다.
꼬리와 지느러미에 나비 날개 같은 무늬가 선명히 박힌, 상어와도 같은 외형을 가진 환수였다.
“에르쿠나!”
반가움에 은호는 그 이름을 불렀다.
에르쿠나 옆에 다른 환수들이 가득했다.
“……와.”
태호는 입을 벌렸다.
비늘 모양도, 비늘의 색도, 형태도, 전부 화려했다.
환수들이 바다를 가득 채울 정도로 몰려왔기에 눈을 어디에다가 둬야 할지 몰랐다.
바다에 이렇게 많은 환수가 있었던가.
자신들이 발견한 환수는 정말 손톱만 하다는 걸 알았다.
“예쁩니다…….”
가을은 홀린 듯한 목소리를 냈다.
바다에 이렇게 많은 생물이 있을 줄이야.
“어서 오세요, 은호.”
에르쿠나는 은호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이어 꼬맹이들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시선이 따스했다.
저 작은 몸으로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은호가 끼고 있는 장치를 다른 환수들 역시 착용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에르쿠나는 태호와 가을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은호를 볼 때와 달랐지만, 날을 세우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에르쿠나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바다에 올 수 있게 허락해줬다.
은호는 에르쿠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 바다의 흐름이 달라졌다.
물살을 따라 은호는 에르쿠나를 향해 손쉽게 다가갔다.
그대로 에르쿠나를 안아주었다.
“오랜만이에요.”
바다이기에 자주 갈 수 없었다.
이 마음을 에르쿠나가 알아줄까.
에르쿠나는 지느러미를 뻗어 은호를 안아주었다.
“은호. 당신이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도 감사할 뿐입니다.”
은호가 이곳에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건네준 선물이 너무도 컸으니까.
멀찍하니 떨어져 있던 꼬맹이 중 레비아탐이 다가가 에르쿠나에게 앞발을 흔들었다.
“고마웜! 바다에 올 수 있게 해줘섬.”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자 에르쿠나의 두 눈이 살포시 감겼다.
“모두 바다로 올 수 있습니다. 육지니, 바다니, 구분 짓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요.”“…안녕하느니라!”
라비가 다가가 인사했다.
붕붕 흔들리는 꼬리를 따라 물살이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엄청 커! 멍멍이 형님보다 더 커!”
폭시 역시 다가와 눈을 깜박거렸다.
“하!”
그림자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흑견은 물이 싫다는 이유로 은호의 그림자로 파고들었기에 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영광입니다.”
에르쿠나가 폭시의 말에 대꾸하며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날카로운 눈동자에 일렉트가 움찔거렸다.
“당신은, 이 바다에서 힘을 쓰면 안 됩니다. 큰일이 납니다.”“알고 있어! 나도 그건 알고 있어.”“그럼 다행입니다. 우선, 갈까요? 진짜 바다로 말입니다.”
에르쿠나가 잔잔하게 웃었다.
여기는 고작 바다의 손톱 끝부분 같은 곳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