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6화(2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6화
26화. 나비에 한눈팔면 안 돼요(3)
길게 올라간 은호의 미소를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자연이 분노를 품었기에 그 바람마저 매서웠다.
동시에 땅의 떨림이 일어났다.
흑견도 그 떨림을 느끼자 눈이 살짝 커졌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뭔지 몰랐기에 바닥을 쓸 듯이 길게 내려가 있던 흑견의 꼬리가 바짝 섰다.
“…인간.”
“괜찮아, 멍멍이 형님. 놀라지 마.”
은호는 웃었다.
이 흔들림은 땅에 깊게 박아두었던 나무의 뿌리가 움직였기에 일어났으니까.
“저 사람들, 도망가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잖아?”
초능력자였다.
대비는 뭐든 단단해야 하는 법이었고.
은호의 주변에서 자라나던 나무부터 뿌리를 다리 삼아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죠, 자연님들?”
단 한 발걸음.
그 걸음으로 땅이 흔들렸다.
쿵.
제법 경쾌한 소리가 퍼져 나오자 새들이 하늘로 힘차게 날아갔고, 나뭇잎이 흔들리며 일어난 떨림은 푸르른 너울을 그려나갔다.
나무를 따라 여러 식물마저 뒤를 따랐다.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행진에 맞춰 노래하듯 동물들의 울음이 이어지자 은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동물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살살 움직일래요? 동물들 밟지 마시고요.”
은호는 자연에게 부탁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맹금류의 눈을 통해 오두막이 무척이나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저들을 가둬야만 했다.
그 누구도 나가지 못하게.
한 번쯤은 똑같이 우리에 가둬지는 느낌을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태블릿 씨.”
은호가 식물들의 행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대가인 피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식물을 키우고, 성장하게 하는 대가는 피였다.
자신을 중심으로만 식물들이 움직이게 하는 건 앞으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해도 효율성이 없어 보였다.
그 범위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그걸 할 수 없으면 오두막 근처까지 간 뒤에 저들을 가둬야 했다.
식물들이 움직이는 그 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도망부터 가지 않을까.
이미 도망을 친 뒤에 가둔다면 무슨 소용일까.
《검색 중.》
《.》
《.》
《해당 내용이 존재합니다.》
태블릿에 글자가 떠올랐다.
《대가를 움직이고 싶으신가요?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마법사가 마나를 이용해 무언가를 옮기는 것처럼 드루이드 역시 무언가를 이용해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은 식물과 땅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피에 집중하고, 이용하려는 대상에게 접착제처럼 달라붙는다는 상상을 하면 준비는 완료됐습니다. 뭐 하는 거죠? 지금 바로 원하는 장소로 대가를 움직이세요!》
그 내용을 읽은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
심상찮은 미소에 흑견이 그를 불렀다.
“…인간. 무얼 할 셈인가?”
“당연히 신나게 날뛸 준비지. 멍멍이 형님, 나 지금 되게 설레.”
해보지 않은 행동을 할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후.
은호는 숨을 고른 뒤, 눈을 감았다.
욱신거리는 손바닥을 통해 피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 피가 땅으로 스며들었기에 은호는 거꾸로 피가 땅에 달라붙는 상상을 했다.
그 순간, 놀랍게도 피가 땅속으로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은 그 지점에서 자석에 붙은 것처럼 고이는 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간단하네?’
은호는 장난감 자동차를 앞으로 미는 느낌처럼 피를 움직였다.
앞으로.
더 앞으로.
식물들의 뿌리를 지나며 빠르게 나아갔다.
마치 자신이 직접 달리는 듯한 속도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오두막 근처에 도달하자 은호는 뒤늦게 신기함을 얼굴에 가득 담았다.
‘멋진데?’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자 은호는 대가로 실었던 피를 넓게 퍼트렸다.
번지는 피를 따라 식물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이밀자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뭔가 바뀌고 있었다.
흑견의 고개가 위로 올라가며 그 시선이 오두막으로 향했다.
“인간, 뭘 한 건가?”
“혹시, 역지사지라는 말 알고 있어?”
“그게 뭔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역으로 지랄을 해줘야 사람은 지 잘못인 줄 안다. 내가 어디에서 봤던 말인데, 사실 이것보다 그 뜻을 잘 표현한 말은 없더라고. 딱 그 뜻이기도 하고.”
은호는 오두막을 중심으로 빠르게 자라는 식물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규칙을 깨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무시하더라고. 본인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한가 봐.”
양쪽에서 자라난 식물들은 하늘에서 서로를 만나서는 몸을 배배 꼬았다.
그렇게 하나, 둘 끝과 끝에서 만난 식물들이 이어지며 둥근 원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이 꼭 실뭉치를 닮아 있었다.
식물들이 완전히 오두막을 포위하자 은호는 흑견에게 걸어갔다.
“누군가 ‘절대 당하지 않을 거야’라는 그 자신감을 한 번쯤은 깨줄 필요가 있어. 이 사실을 깨우쳐주지 않으면 이런 일을 계속해서 하지 않을까.”
은호는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올렸다.
그의 시선이 움직이는 식물들을 향했다.
어느새 멀어졌기에 땅이 울리는 그 감각 역시 흐릿해졌다.
“자연이 너한테 시켰는가?”
“아니야, 멍멍이 형님. 이번에는 내가 선택했고,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환수든, 사람이든 누군가에게 강제로 납치당하고, 가둬지는 행동 자체는 겪어서는 안 되며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도 아는 아주 간단한 사실이었다.
“……열받잖아?”
은호의 서늘한 시선에 흑견은 그가 만든 모든 걸 바라보았다.
오두막 밖으로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가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식물들이 몰려들었다.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산 자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기에 흑견은 실소를 막지 못했다.
‘……열받는다니.’
지금 이 상황을 더 자세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저 인간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통쾌함보다 옳지 않은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행동에서 흑견은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멍청해서 인간들에게 당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공감한다, 인간.”
흑견은 몸을 낮췄다.
얼른 흑견의 몸에 탄 은호는 앞을 가리켰다.
“가자, 멍멍이 형님!”
* * *
“……대, 대장!”
누군가 호들갑스럽게 안으로 들어오자 패드를 잡은 남자의 손이 미끄러졌다.
“…에이씨!”
잠깐 부하를 바라본 남자는 이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게임 오버’라고 적힌 글자에 두 눈을 가득 찌푸렸다.
“미쳤어? 내가 게임 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죽었잖아! 이거 어쩔 거냐고! 헬 난이도라 다시 처음부터라고!”
역정을 내는 남자의 눈에 불꽃이 튀기는 것 같았다.
“…그, 그게 아니라 대장. 지금 큰… 일이 났습니다.”
“그 새끼들이 또 철창을 물어뜯었어?”
“아, 아닙니다!”
“그럼, 또 뒈져버렸어? 그러게 내가 수면제 잘 놓으라고 분명히 말했지! 그놈들 개복치라고! 스트레스만 조금만 받으면 다 죽어버린다고 했어, 안 했어?”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라고?”
남자는 그제야 패드를 손에서 놓았다.
철장을 물어뜯은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로 죽어버린 것도 아니면 환수한테서 일어날 일이 뭐겠는가.
“……친구들이 나타났나 보네?”
남자의 입꼬리가 길어지며 이빨이 다 보였다.
앞니 중 하나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병신같은 환수들.
한 놈만 잡으면 우르르 몰려오는 꼴이 아주 좋았다.
우정이니, 의리니, 동족 보호 의식이니 뭔지 몰라도 그런 낡아빠진 정신머리가 있으니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겠는가.
남자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부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의 시선을 받자 부하는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아닙니다.”
콰앙!
남자가 주먹으로 모니터를 뚫어버렸다.
“나랑 지금 뭐 맞추기 게임이라도 하자는 거야? 빨리 안 지껄여?”
“가, 가, 갇혔습니다!”
“……하.”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어떤 병신이 꼬리가 길어서 붙잡혔는지 몰라도 하필 초능력자를 달고 올 줄이야.
‘결계… 관련 능력인가?’
초능력은 굉장히 넓어 현재 분류법을 통해 같은 계통의 능력이라고 해도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고 할 정도로 달랐다.
‘까다로운 놈이 왔는데?’
희귀 계통이었다.
이질적이든 뭐든 무언가를 가둔다는 것 자체는 몹시 힘들었으니까.
“어디 쪽에서 왔는데? 뭘 원한대?”
남자는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냈다.
이런 경우, 싸우기보다는 요구를 들어주는 게 나았다.
가뜩이나 정부에 쫓기는데, 뭐 하러 시끄럽게 굴겠는가.
“그게…, 그게 나와 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남자는 부하의 말에 웃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하에게 다가갔다.
“너, 내 밑에서 얼마나 일했지?”
“2… 년입니다.”
“2년?”
남자는 손가락 끝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가만히 부하를 바라보았다.
후.
담배 연기가 천장을 향해 올라갈 때쯤, 담배를 손가락으로 잡으며 그대로 부하의 목에 지졌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2년이나 있었으면 누가, 어떻게, 무슨 일을 했는지를 딱 잘라 말할 줄 알아야지?”
남자는 부하의 머리카락을 쥔 채 또박또박 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말로 넘어갈 수 있으면 규칙이 왜 있겠어?”
남자가 웃으며 부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붙잡았다.
그 순간, 남자의 손아귀에서 불이 일어났다.
“아아아아악!”
불로 부하의 얼굴을 지져 버리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대장! 대장!”
고통을 호소하며 남자를 불렀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늘은 거지 같은 날이었다.
공들여 키운 캐릭터도 날아갔고, 2년이나 지난 부하 놈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이었으니까.
그를 보자 부하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눈동자에 처음 보는 형태의 공포심이 어렸다.
“…대, 대장.”
“보고해.”
“식물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여길 완전히 잠식해버렸습니다!”
후.
남자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걸 보고라고 하다니.
“이 병신들아. 기껏해야 식물을 뽑거나 들고 내리는 것밖에 못 하는데, 무슨 개소리야?”
“결, 결계입니다!”
“개소리하지 마. 누가 식물로 결계를 만들 수 있는데?”
초능력을 사용할 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쉽사리 따라주지 않는 존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식물이었다.
뿌리째 뽑고, 흔들고, 그런 간단한 행동은 가능하지만, 성장 시킨다든지, 성질을 바꾸는 등 좀 더 복잡한 부분은 불가능하다는 건 초능력자라면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탁!
남자는 갑자기 아래에서 철장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동자를 굴렀다.
분명 재웠을 텐데, 환수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뭔가를 느낀 걸까.
“다시 재워.”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꺼트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남자는 명령한 뒤, 완전히 밖으로 나갔다.
이미 창문으로 봤을 때부터 어둠이 내려온 듯 까만 세상이라는 걸 확인했다.
나오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든 게 어둠에 잡아먹힌 기분을 느꼈다.
남자의 손아귀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불꽃으로는 이 어둠을 떨쳐내기에는 턱없이 불가능했다.
겨우 어둡다는 이유 하나로 몇 년이나 죽치고 있던 이곳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크르르릉.
그때,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소리에 남자의 눈이 커졌다.
수없이 들어본 울음소리였다.
“……흑견이다!”
기쁨이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10년 전, 멸종한 걸로 알려진 흑견이 등장했다.
죽어 있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흑견이라면 얼마짜리인가.
그 존재 자체로 돈다발을 흔들 멍청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흑견이 나타났다고, 이 멍청이들아! 빨리 나와! 이놈만 잡으면…….”
“잡으면 뭐 어떻게 되는데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누구야?”
목소리의 위치는 위쪽이었다.
“모르는 사람한테 이름 알려주지 말라고 부모님한테 안 배웠어요?”
키득거리는 소리에 남자는 응축된 불꽃을 위로 올렸다.
빛을 따라 무언가 하나씩 보였다.
남자의 눈동자를 따라 뒤이어 나온 부하들의 눈동자마저 흔들렸다.
“……대장.”
꿀꺽.
“……나무가, 저렇게 컸어요?”
분명 불꽃이 꽤 위를 향했음에도 나무가 보였다.
자신이 알기에 그 정도로 큰 나무는 보지 못했다.
뭔가 이상했다.
“아, 너무 어둡죠?”
정체 모를 목소리는 해맑게 웃었다.
“너 대체 누구냐고!”
그쪽으로 남자는 불꽃을 던졌다.
하지만 밀려오는 바람에 불꽃은 너무도 허망하게 꺼져버렸다.
고개를 꺾어야 볼 수 있는 허공에서 빛이 나왔다.
그 빛은 순식간에 퍼지며 어둠을 지워나갔다.
‘……꽃?’
남자는 그 빛이 꽃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나무 한 그루.
아니, 20그루.
아니. 더 많이.
번져가는 빛을 따라 눈으로 셀 수도 없이 늘어나는 나무의 숫자에 그들은 압도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가운에 흑견이 걸어오고 있었다.
빛이 드리운 만큼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 움직임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남자의 눈동자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어떻게.”
흑견의 위에 정체 모를 존재가 앉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이 어떻게 흑견과 함께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존재는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이 쓰레기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