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6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62화(262/302)
261화. 천천히 자랄래?
“…하.”
비웃음이 터졌다.
기가 막혔다.
얼굴이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중년의 남자가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대체! 대체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단 말이냐!”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율이 잡혀도, 이도현이 잡혀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설태호가 HWM에 왔다.
그 소식 하나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설태호가 다 알아버렸다는 걸.
빤히 찾아가지 않아도 박창식이 설태호에게 이야기했다는 건 예상됐다.
다만, 그 전 사이의 공백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조용하다며?”
남자, 허태인은 고개를 돌려 부하들을 보았다.
까드득.
이빨이 다 씹힐 것처럼 소리가 났다.
“환수 관리국에서 아무 일도 없다고 보고 하지 않았나. 조용하다고. 잠잠하다고 말이야.”“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부하는 대답하며 눈치를 살폈다.
“하, 하하하하!”
허태인이 웃었다.
너무도 우스웠다.
밀려드는 웃음이 끝나지 않자 눈치를 보던 부하들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웃음이 뚝 끊어졌다.
적막함이 흘렀다.
짙고, 짙은 싸늘함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허태인은 시선을 내렸다.
다리를 꼬아 주먹을 쥔 손을 향해 머리를 살짝 뉘었다.
장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 하나에 얼마나 큰 가치가 움직이는 건지 이 멍청이들은 하나같이 몰랐다.
긴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귀찮았다.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에 부하들을 발작했다.
“교, 교주님! 교주님!”“살려주십시오, 교주님!”
어차피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저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무슨 상관일까.
“물어.”
그 말이 허태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바닥에서 커다란 입이 튀어나왔다.
와그작.
그대로 씹어버렸다.
허태인은 의자를 돌려 창문 쪽으로 바라보았다.
‘자, 어떡할까나.’
허를 찔린 상황이었다.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허를 찌를까.
뒤쪽에서 씹히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빠지던 차, 갑자기 서늘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느낌이 밀려오자 허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 사람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건넸다.
쪽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데려와야 하는 존재가 있다.」
‘참, 우아하게도 시켜 먹네.’
* * *
은호는 다가오는 환수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퇴원하는 환수들이었다.
저번에는 사람들 사이에 섞였지만, 오늘은 그들이 나가려는 길목에 서 있었다.
“잘 가, 애들아.”
은호는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대로 뿔뿔이 흩어지려던 환수들이 은호를 향해 다가왔다.
“은호!”
“어제 인사했잖아. 그런데 또 여기 있네?”“은호, 운 거 아니지? 우리가 없어서 슬퍼한 거 아니지?”
웃음이 터졌다.
“오히려 너희가 운 것 같은데?”
은호가 쪼그려 앉아 바라보았다.
그중에서 고슴도치를 닮은 환수가 보였다.
이들은 하이프 사건과 얽힌 정화자들에게서 구출해온 환수들이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커 회복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퇴원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나는, 안 울었어.”
갑자기 한 환수가 꺼내는 말에 방긋 웃던 표정이 달라졌다.
“……나도.”
눈물이 한 마리씩 물들어가자 은호는 당황했다.
“아, 아니, 왜 울어? 울면 안 돼. 이건 중요한 출발이잖아.”
“은호.”
고슴도치를 닮은 환수, 뾰치가 은호를 불렀다.
“응?”
“또, 널 찾아와도 돼?”
툭 건드리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당연하지. 나는 명예 연구소의 직원이나 다름없거든.”“또, 오면 우리를 반겨줄 거야?”“혹시, 내가 너희를 모르는 척할까 봐, 무서운 거야?”
은호가 그대로 주저앉아 물었다.
“…맞아. 여긴 특별한 공간이니까.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고, 인간들도 따뜻하고, 모두가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정말, 정말 특별한 곳이야.”
뾰치는 앞발로 흙을 쓸었다.
밖으로 나간다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여기랑 다를 테니까.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연구소 밖을 나가도 특별해질 수 있을 거야. 내가 사는 집 주변에는 이런 분위기거든.”“은호, 집 주변에?”
“맞아. 그쪽으로 와도 돼. 그런데 강요는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면 좋잖아?”
붙잡아도, 저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가까이 할 수 있지만,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게 환수였다.
환수들은 머뭇거렸다.
대답하기에는 미안한 모양이었다.
“내가 힘내야겠는데?”
은호는 활짝 웃으며 한 마리씩 쓰다듬어주었다.
“뭘 힘낸다는 거야?”“모든 곳이 연구소 같은 곳이라면 너희가 안심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확 들어서 말이야.”“그러면 너무 좋겠다. 그렇지?”“응. 너무 좋은데? 거기에 은호가 있으면 더 좋아.”
환수가 눈을 반짝거리며 묻는 말에 은호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인데? 분신술 같은 거 쓸 수 없을까.”“…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흑견은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꺼냈다.
잠자코 있으려고 했는데, 보다 보니 기가 찼다.
“인간이 가만히 있을 것도 아닌데, 무슨 걱정인가.”
은호가 바라보자 흑견의 시선이 묘하게 동떨어져 있었다.
불만이 보였다.
입이 간지러웠지만, 일단 참았다.
“그건 그렇네.”
은호가 씩 웃자 환수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아. 나는 여기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와. 나는 언제든지 너희를 도울 테니까.”
“…늘 그랬듯이?”
“늘 그랬듯이.”
환수의 물음에 은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있잖아, 은호.”
뾰치가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응.”
“우리 때문에 은호가 곤란해지는 일이 생기면 어떡해?”“어떤 게 곤란해진다는 걸까?”“은호는 인간이잖아. 인간은 우리를 싫어해. 모두가 그런 건 아닌데, 싫어하는 인간들이 많아. 그 인간들이 은호를 공격하면 어떡해?”“…나도 그건 걱정이 돼.”“나도 그게 제일 무서워. 은호가 너무 좋은데, 그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하나씩 꺼내는 솔직한 이야기에 은호는 저들의 슬픔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버렸다.
‘…나구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들을 걱정하는 것보다 저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게 더욱 컸다.
온몸이 포근함으로 감싸지는 것만 같았다.
은호는 더 밝게 말을 꺼냈다.
“괜찮아. 태호 형이 나를 지켜주고 있어. 태호 형뿐만 아니라, 가을 씨랑 이지혜 국장님도 나를 지켜주니까.”
은호는 고개를 돌려 흑견을 보았다.
“그리고 내 옆에 멍멍이 형님도 있잖아?”“멍멍이 형님! 맞아! 엄청 든든해!”“은호를 꼭 지켜줘!”“멍멍이 형님이 지켜줘야 해. 은호는 말이야, 약한 인간이야.”“약하지. 엄청 많이 입원했어.”“…은호는, 계속 다쳐.”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말이 틀어지자 은호는 당황했다.
배웅 중에 이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아? 이제 가야지, 그렇…….”“인간이 약한 인간이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부러지지 않게 잘 지키마.”
흑견은 기분이 좋아져 평소보다 더 목소리가 가벼웠다.
“고마워, 멍멍이 형님.”“그럼, 우리 멍멍이 형님을 믿고 갈게.”“은호. 또 아프면 안 돼.”
환수들이 한 마리씩 다가와 은호를 안아주며 꺼내는 말은 점점 걱정으로 변질했다.
은호는 어색한 얼굴을 하며 인사를 받아줬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그들이 밝게 웃으며 간 뒤에도 은호는 그대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 이상한가? 다 인간을 본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뭘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저 존재들이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흑견이 코웃음을 치며 걸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얼마나 기분이 좋으면 콧노래마저 불렀다.
“멍멍이 형님.”
“왜 그러는가?”
“혹시, 그날 일. 아직도 삐진 거야?”“…무슨 소리인가?”
흑견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밥말이야. 사고뭉치한테 다 들었을 거잖아.”
드라벤은 요리를 할 수 있는 환수였다.
손도 빠르고, 맛도 무척이나 좋았다.
다 나눠주려고 들고 왔는데, 흑견만 먹지 못했다.
라비가 그만 참지 못하고 흑견의 몫까지 먹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자신의 탓이 아니었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럼, 그날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은호의 물음에 흑견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무슨 일 있었어?”
“…산책을 가다가, 익숙한 힘을 느꼈다.”
“익숙한 힘?”
“동족의 힘 같았다.”
“……뭐?”
은호가 놀라며 물었다.
동족이라니.
또 다른 흑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은호는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동족을 찾아 헤맸던 건 흑견일 테니까.
“확실하지 않다. 도중에 밤이 되자마자 흔적이 사라졌으니까.”“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니까?”“그렇다. 그래서 늦었다.”
흑견은 몸에 힘을 뺐다.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자신은 거의 다 잊었는데, 은호는 잊지 않았다.
동족이 사라진 이유마저 알게 해주었다.
동족이 사라진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존재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라니.
고작 그 이유라니.
공허함이 맴돌아 가슴이 조여왔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동족의 흔적이었다.
기대가 멋대로 일어날 것만 같았지만, 억눌렀다.
기대는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었다.
“인간.”
“응.”
은호는 손을 뻗어왔다.
“고맙다.”
손아귀에 얼굴을 묻은 흑견을 보며 은호는 미소로 화답했다.
* * *
“은호.”
라비가 위그드라실을 보며 풀밭 위에서 뒹굴뒹굴했다.
“응?”
은호는 마당에 키운 식물을 도닥거리다가 바라보았다.
“위그드라실이 다 자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더냐?”
라비의 물음에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아주, 커다란 나무가 되지 않을까?”
사라진 식물을 불러올 때마다, 지금까지와 다른 힘을 사용할 때마다 커다란 나무가 나타났다.
이게 무엇인지 태블릿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모릅니다. 저는 서은호 님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태블릿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사라진 식물을 어떻게 불러올 수 있냐고 물으니 태블릿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잠겨 있습니다.
잠겨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이 너무 이상해 가방의 요정인 코코를 찾아가니, 코코 역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태블릿이 말할 수 없는 건, 나도 못 해. 세계 차원 보호? 뭐 그런 게 있어. 그냥, 좀 복잡한 뭔가가 있다고만 알아둬.
코코 역시 말할 수 없는 건 똑같았다.
다만, 그 뒤에 조용히 힌트를 주긴 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알지도?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야 하는 게 많아 뒤로 미뤘다.
“커다란 나무가 되더냐?”
라비는 위그드라실을 보며 다시 물었다.
위그드라실에 맞는, 깨 정도의 공을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나는, 위그드라실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정말, 크지 않았으면 좋겠어?”“나무는 한자리에 머물게 된다. 더는 같이 움직일 수가 없지 않더냐. 위그드라실도 슬퍼할지도 모른다.”
슬픔이 가득한 라비의 말에 위그드라실은 공을 쫓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다가와 좌우로 얼굴을 흔들었다.
“아니더냐…?”
위그드라실이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와 라비를 안아주었다.
“그러면 내가 슬퍼할지도 모르겠다. 더는 같이 달릴 수 없지 않더냐.”
그 말에 위그드라실은 행동을 멈췄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으니까.
은호는 그 말에 덩달아 위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라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자란다면… 확실히 사고뭉치처럼 섭섭할지도 모르겠네.’
은호는 시선을 돌려 식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 * *
은호가 하품하며 방으로 들어오다 말고 멈칫거렸다.
위그드라실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방금 사라졌다던 환수의 아이를 찾고 오던 길이었다.
“왜 안 자고 있어, 위그드라실?”
은호가 묻자 위그드라실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뭔가 고민이 있어 보였다.
은호는 다가가 손을 뻗자, 위그드라실은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은호는 그대로 내려가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 앉아 위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아까 사고뭉치가 한 말 때문이야?”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위그드라실도 슬펐구나?”
위그드라실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슬프더라.”
은호가 짓는 표정에 위그드라실이 다가와 손가락에 매달렸다.
“사고뭉치가 꺼낸 말이 나한테도 와닿았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네가 자랐으면 좋겠어.”
성장을 어떻게 억누를까.
그건 당연한 과정이었다.
이건 싫다고 거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네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자란다면 사실 바랄 게 없어. 아마, 꼬맹이들도 성장한 뒤에 내 곁을 떠나게 되겠지?”
성체가 됐으니, 다른 삶을 살아갈 시기였다.
그날은 생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몰랐다.
오지 않았으면 하고, 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도 슬프겠지만, 지금처럼 기쁘게 환영할 거야.”
위그드라실은 은호의 손가락을 토닥거렸다.
“네가 자란다고 해도, 꼬맹이들이 성체가 되어 내 곁을 떠난다고 해서 우리가 가족이 아닌 건 아니잖아?”
담담한 은호의 말에 위그드라실은 손을 멈췄다.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따스한 은호의 눈길에 위그드라실은 양팔을 뻗고 다가왔다.
“그런데 그날이 조금 천천히 오면 좋겠어. 해주고 싶은 것도, 나누고 싶은 것들도 참 많으니까.”
위그드라실도.
꼬맹이들도.
죄다,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