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6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63화(263/302)
262화. 왕
“…으함.”
은호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햇볕을 쐬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요새 점점 춥기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까지 좋았다.
‘…형이 꺼낸 말 때문인가. 이상한 꿈을 꿨네.’
뭐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꿈에서 니르바나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까만 호랑이의 등장에 깜짝 놀라던 차, 머리 위에 양쪽으로 손을 뻗은 듯한 굵은 뿔을 보자 니르바나라는 걸 알았다.
무어라 말한 것 같은데, 그게 잘 들리지 않았다.
니르바나의 뿔 사이에 있는 초승달이 유독 반짝거리는가 싶던 차,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누군가 걸어 나왔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시감이 강하게 들었다.
왠지 웃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자마자 꿈에서 깨어났다.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너무도 생생했다.
진짜 꿈이긴 할까.
은호는 코를 훌쩍이며 기지개를 켰다.
“말썽꾸러기.”
윈디드의 목소리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안녕, 삐약아. 잘 잤어?”“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괜찮아?”“괜찮아.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럴까.”
윈디드는 은호의 옆으로 걸어갔다.
“말썽꾸러기.”
“응.”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무섭지 않아?”“어떤 걸 말하는 거야?”“그냥, 여러 가지 말이야. 내 탓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
“삐약아.”
은호의 목소리가 조금 단호해지자 윈디드는 웃었다.
이럴 때만 화를 내는 게 웃겼다.
“내가, 나쁜 걸 몰고 온 기분이야. 약속을 깬 존재들 말이야. 말썽꾸러기는 몰랐잖아.”
자신이 나타남으로써 은호는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고, 얽히지 않았는가.
은호가 괜찮다고 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계속 마음에 남았다.
“삐약아. 내가 선택한 일이야. 너의 의견과 상관없어. 원망할 이유도 없고, 원망할 생각도 없어. 나는, 너와 만나서 기쁘고, 좋아. 되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은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윈디드에게 감정을 전달했다.
웃지 않았다.
단호하기까지 한 그 표정에 윈디드는 몸에 힘을 빼냈다.
“…말썽꾸러기는 말이야, 가끔 정말 치사한 거 알아?”“폭시도 그렇게 말하더라. 그런데 정말이야. 나는 너를 만나 행복했으니까.”“다행이다. 말썽꾸러기가 행복했다니, 정말로, 다행이야.”
윈디드가 날개를 펼치자 은호는 슬그머니 들어왔다.
바람을 막아줘 따뜻했다.
“삐약아. 그래서 나한테 무섭지 않냐고 물어본 거였어?”
“그랬어.”
“삐약아. 내가 가장 무서운 건, 너희가 사라지는 미래야. 그 이외에는 무서운 게 없어.”
저들은 자신이 기댈 곳이었다.
은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 오늘, 왕을 만날 수 있는 거야?”“맞아. 오늘이나 내일, 이때가 가장 좋아. 가장 감시가 덜한 편이야.”
―최근 말이야. 왕의 행동이 이상해서 나를 부르더라고. 그래서 말이야. 혹시, 준비됐어?
태호가 어제 저녁때쯤에 연락이 왔다.
왕이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그 말에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윈디드의 말을 들으니 왕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올 수 있게 기회를 열어준 모양이었다.
“삐약아. 왕도 내가 오는 걸 원하고 있어?”“왕께서는 늘 말썽꾸러기를 만나고 싶어 했어.”“그건 기쁜데? 나 혼자만 그러면 어쩌나 싶었어.”
은호는 콧잔등을 건드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말썽꾸러기가 우리를 위해 뭘 했는지 다 알고 계시니까.”“그런데 삐약아. 왜 감시가 그때 덜 한다는 거야?”“이맘때쯤, 그 존재가 없어.”“그 존재? 그게 누구야?”
은호는 흥미를 담아 물었다.
직접 보고 싶은 마음까지 있었으니까.
“이인자라고 해야 하나. 왕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지시하는 존재가 있어. 그 존재가 있으면 주변 경계가 더 까다로워져서 그래.”“…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더더욱 오늘 가야지.”
“결심한 거야?”
“결심했어.”
“…이날이 오다니. 믿을 수가 없어.”
윈디드가 즐겁게 말을 하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사실 자신도 이날을 기다려오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윈디드의 행동이 그대로 굳어졌다.
눈동자를 돌리자 어둠이 드리웠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흑견이 나타나자 윈디드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이 존재를 깜빡했다.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다.
“왕을 만나러 갈 거야. 오늘 말이야.”
은호가 말을 꺼내자 흑견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날이 왔다.
절대로 오지 말았으면 하는 그날이 오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꺼낸 말이 아니야. 이미 예상했잖아? 그렇지, 멍멍이 형님?”
“…안다.”
은호는 수없이 말했다.
설득하고, 호소마저 했다.
이날이 올 거라 예상했다.
“이건 고집이 아니야. 반드시 그래야만 해.”
“안다.”
“내가 왕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줘, 멍멍이 형님.”
은호가 손을 뻗자 흑견은 눈을 질끈 감고는 천천히 떴다.
언제나 자신이 아는, 그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표정과 저 얼굴에 어떻게 약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부탁이라는 말까지 해버리면 자신은 거절할 수 없었다.
“……인간은, 정말 치사하다.”“방금도 삐약이한테도 들었는데.”
은호가 웃자 흑견은 다가왔다.
손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싫다.”
“알아. 그래서 마음이 좋지 않아.”“…거짓말하지 마라, 인간.”“거짓말을 왜 해? 지금,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인데.”
은호는 얼굴에 웃음을 지웠다.
미소에 숨긴 표정을 드러내듯 미안함이 가득했다.
“…정말이야.”
흑견은 복잡함이 담긴 은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안아주었다.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지만, 또 치사하게 구니 아니꼬웠다.
은호는 자신이 무엇에 약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 *
“…형.”
은호가 문을 열고 보자 태호는 서류를 넘기다 말고 시선을 움직였다.
“어서 앉아. 오늘은, 생각보다 더 빨리 왔는데?”
태연하게 반응했다.
힐끔 시계를 보자 살짝 눈이 커졌다.
아직 오전 9시가 되지 않았다.
“오늘이에요.”
“…진짜? 진짜 오늘 갈 거야?”
태호가 되묻자 은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여기서 주저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 해요. 그렇잖아요.”“하긴 어제 물어보긴 했지.”“오늘 삐약이한테 들었어요.”“어떤 걸 들었는데?”“왕을 만나러 갈 아주 좋은 시간이라고요.”
우연이 일어났다.
이런 우연이 또 언제 일어나겠는가.
“정말?”
“그래서 오늘이에요. 오늘밖에 없어요.”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왕을 보러 갈 수 있을지 몰랐다.
왕이 자신과 생각이 같은지 알고 싶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환수가 왕인지 확인받고 싶었다.
약속을 깬 자들 중 본인을 노린 존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나누고 싶은 말이 많았다.
고생이 많았다며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그렇겠다. 오늘밖에 없겠네.”
태호는 숨을 멈췄다.
서류로 시선을 돌린 뒤, 입술을 잠깐 깨물었다.
“…미안해요, 형.”
“아아,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그냥 ‘이 망할 놈의 서류. 끝까지 발목을 잡네’라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서류가 아니었다면 오늘도 은호에게 물어봤을 텐데.
더 빨리 준비할 수 있었을 테고.
“가야지. 날 대신해서 처리해줄 사람은 많아. 하지만 은호 씨는 아니야.”
누가 은호를 대신할까.
없었다.
태호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여보세요. …아, 네. 오늘 시간이 됩니다. 네네. 바로 준비하죠. 나중에 거기서 보겠습니다.”
태호의 통화를 기다리며 은호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윈디드와 시간을 맞춰야 했다.
“준비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나도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갈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태호의 대답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다려야죠. 바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아침밥은 먹었어?”
태호가 묻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들 밥은 먹였어요. 왕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어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그럼, 같이 먹자. 나도 아직 먹지 않았으니까.”
무엇이든 밥을 먹어놔야 든든했다.
* * *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 왜 이렇게 어렵다는지, 은호는 배를 보자마자 바로 알았다.
왕이 보호 대상이기도 하지만, 무려, 바다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움직이는 그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운 정도였다.
‘왜 형이, 그렇게 각오를 다졌는지도 알겠네.’
태호는 환수 연구소에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지냈다.
왜 그렇겠는가.
환수 관리국과 별개로 환수 연구소는 하나였다.
업무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걸 다 떠맡고 있으니, 몸을 갈지 않고는 유지가 되지 않았다.
‘삐약이가 왔다 갔다 하는 데도 오래 걸리는 이유가 있었어.’
은호는 아쉬웠다.
더 빨리 왕을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공간을 이동해 약속을 깬 환수들도 인도해주고, 왕과 수없는 대화도 나누고, 왕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서 수많은 곳에 데려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
방으로 들어온 태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 은호는 태호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그게 가장 좋았다.
그림자 속에서 태호를 보았다.
배를 탄 그때부터 그는 앉질 못했다.
그를 부르는 사람이 많았고, 태호 역시 배에 확인해야 하는 게 많았다.
듣자 하니, 이 배에서 왕이 있는 곳으로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태호 혼자인 모양이었다.
그가 잠깐 침대에 눕는가 싶더니, 바로 그림자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에 녹음이 되고 있다는 소리였다.
태호에게 이렇게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조금 있으면 도착이라는데, 토할 것 같네.”
태호는 혼잣말을 꺼냈다.
곧 도착이다.
이걸 자신에게 알리기 위한 말이라는 걸 알자 은호는 괜스레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은호는 손을 내밀어 엄지를 올렸다.
그제야 태호는 피식 웃었다.
은호는 아래로 내려가 흑견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멍멍이 형님.”
“왜 그러는가?”
“혹시 왕을 만나면 해줄 말이 있어?”“모르겠다. 생각해본 적 없다.”
흑견은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원망을… 할 것 같아?”
은호가 머뭇거리며 꺼낸 말에 흑견은 눈을 떴다.
원망이라.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도 모르겠다.”
왕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어본 적 없었다.
애초에 왕이 자신을 만나준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만약에 말이야. 멍멍이 형님이 흥분하면… 내가 말려줄까?”
은호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흑견은 앞발을 들어 은호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그렇게 하거라. 솔직히 나도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그 어떤 순간보다 예측하기 어려웠다.
“내가 말릴게. 약속해.”
은호가 손을 뻗던 차, 손목에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흐릿하지만, 사슬이었다.
‘…웬 사슬이야?’
지금은 위험한 순간도 아니었고, 그림자 속에 수없이 있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사슬이 아래와 연결되어 있자 시선이 내려갔다.
흑견의 앞발을 지나 더 아래로 향했다.
은호의 시선이 내려가자 흑견은 앞발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건가?”“어? 아니, 뭔가 보여서. 저 아래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은호가 꺼낸 말에 흑견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보이는가?”
“음…….”
은호는 아래를 빤히 보았다.
사슬이 여전히 그쪽으로 향했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
은호의 대답에 흑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언가 살짝 실망한 눈치였지만, 은호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에 뭐가 있다는 걸까.
물어봐도 흑견은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 * *
배가 정박했다.
얼마나 갔는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은호는 알 도리가 없었다.
배 어디에서도 시계가 보이질 않았으니까.
배가 정박하자마자 정말로 태호 혼자만 그곳에 내렸다.
어떤 예고도 없이 바로 배가 떠나버렸다.
은호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배는 일정 거리 떨어진 채 그대로 멈췄다.
혹시나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하려는 모양이었다.
태호는 익숙하게 앞으로 걸었다.
그가 앞으로 몇 걸음을 걸었을까.
항구 쪽을 향해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달려왔다.
여차하면 배를 부술 생각인지, 항구 주변에 나란히 선 채 경계했다.
“설태호 소장님. 어서 오십시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태호를 반겼다.
“오는 게 쉽지 않습니다.”“쉽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켜야 하는 존재가 엄청나니까요.”
대장은 왕을 겨냥하며 말을 꺼냈다.
“그렇긴 하죠. 무조건 지켜야 하는 존재니까요.”“알고 계시겠지만, 저쪽으로 가서 검사하고 들어갈 겁니다. 절차상 어쩔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새로 바뀐 기계는 괜찮습니까? 온 김에 점검하고 가도 되겠습니까?”“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점검이라는 말에 대장의 미소가 더 자연스러워졌다.
이곳은 실수 하나라도 일어나면, 그날로 바로 모가지였다.
예전처럼 점검까지 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대장이 앞에 걸었고, 다른 사람들은 태호를 둘러쌌다.
그 거리가 무척 가까웠지만, 태호는 익숙하게 반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태호는 홀로 우뚝 솟은 수많은 기둥을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거람.’
초능력자는 물론, 환수까지 파악할 수 있는 레이더에 가까웠다.
저것 때문에 왕이 머무는 곳의 입구까지 흑견이 갈 수가 없었다.
왕이 머무는 곳은 왕의 힘으로 저 레이더가 통하지도 않았고,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달라는 왕의 부탁이 섞이기도 했다.
따라서 저 레이더를 끄는 게 가장 첫 번째였다.
“그럼, 점검하겠습니다.”
태호가 가지고 온 물건을 꺼내는 사이, 흑견이 어둠을 이용해 교란에 필요한 물건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그 물건을 쥔 태호는 점검하는 척하며 교란과 함께 레이더를 꺼버렸다.
모두 한 신호를 보내기에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분이었다.
탁탁.
꺼지자마자 사전에 약속했던 신호를 보냈다.
‘빨리 가!’
태호는 속으로 재촉했고, 그 짧은 사이에 옅은 바람을 느꼈다.
흑견이 자신의 그림자에서 출발했다는 걸 느꼈다.
바람이 향한 곳을 보며 태호는 부드럽게 웃었다.
‘은호야. 왕을, 꼭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