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6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64화(264/302)
263화. 왕(2)
* * *
“알고 있지, 멍멍이 형님?”
은호는 위에서 태호를 보았다.
“알고 있다.”
흑견의 대답을 들으며 태호의 신호를 기다렸다.
탁탁.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흑견이 움직였고, 은호는 시간을 쟀다.
―그 레이더는 내가 만든 것 중에 가장 많은 자본이 들어간 거야. 환수의 작은 움직임마저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져서 흑견 역시 걸릴 수 있어. 레이더를 끄고 들어가는 게 맞아.
은호는 태호가 사전에 알려줬던 말을 떠올리며
‘3분.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했어.’
레이더가 꺼진 상태였다.
초 단위의 숫자가 빠르게 움직였고, 은호는 그림자 위로 수없이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건물과 커다란 무기,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모두 왕을 지키기 위한 이들이었다.
마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흑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함께 그림자와 그림자를 옮겨 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경쾌한 박자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 기둥을 넘기면 된다고 했어. 그 너머에는 인간이 아니라 환수의 영역이라고 했고.”
은호는 시간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영역에 침범하지 않기, 그게 왕과 한 약속이자 계약이라고 했다.
사람 역시 그 정도는 들어줄 의향이 있던 모양이었고.
어차피 왕의 힘 때문에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30초.
기둥이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흑견의 시야에는 보일까.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로 옮겨지는 그 순간도 제대로 보이지 않기에 은호는 그저 초시계를 보았다.
은호는 더 빨리 사라지는 초의 숫자를 보며 초조함을 느꼈다.
하지만 믿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흑견이 아닌가.
힘껏 달리던 흑견은 그림자에서 거의 쓸다시피 하며 멈췄다.
은호는 그대로 초시계를 보았다.
3초.
2초.
1초.
은호는 그제야 기둥을 보았다.
저 뒤쪽에 존재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흑견은 당당하게 말하며 조금은 느긋하게 다음 그림자로 향했다.
은호는 그제야 안도하며 태블릿을 꺼냈다.
“최고였어, 멍멍이 형님.”
찬사를 보내며 은호는 윈디드를 추적했다.
꽤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이 근방이야.”
윈디드 역시 제시간에 와준 모양이었다.
“가자.”
은호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 * *
‘…제대로 왔을까?’
윈디드는 초조함을 느꼈다.
‘오고는 있을까.’
점점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적당한 시간이라는 건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신이 이번에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영역이 지나면 곧 자신들의 영역이 펼쳐졌다.
왕은 곧 빛이었고, 그 힘의 영향으로 다른 어떤 곳보다 환한 곳이었다.
빛이 환한 만큼 그림자가 다른 그 어떤 곳보다 줄어든 곳으로 흑견이 옮겨 다닐 발판이 자신 이외에는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제발, 친구. 빨리 와야 해.’
저 앞에 이제 그림자는 없었지만, 걸음을 이 이상 늦출 수 없었다.
“오늘 또 왔나?”
익숙한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그럴 리가.
오늘은 없어야 했는데.
“…….”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기에 윈디드는 행동을 멈췄다.
고개를 돌렸다.
머리 뒤로 쓸어 넘긴 것처럼 아름다운 뿔을 가진 존재였다.
붉은빛이 맴도는, 예리하고도 매서운 눈동자와 마주했다.
아주 가끔, 소름이 끼친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그만큼 날카로운 눈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네가 이렇게 자주 찾아온 걸 보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눈이 살포시 감기자 윈디드는 숨을 삼켰다.
“오늘은… 계셨습니까?”
윈디드의 물음에 그 환수는 오히려 눈을 크게 떴다.
오늘 분명히 밖으로 나갈 때였는데.
이건 지금까지 달라진 적이 없었다.
“내가 반갑다는 말, 거짓말이었나 봐?”“아닙니다. …그냥 좀 놀라서 그랬습니다.”“아, 나를 밖으로 태워주던 존재가 아프다고 해서 말이야. 급한 것만 다른 존재에게 부탁했어.”
능청맞게 목소리를 냈지만, 윈디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다를, 걸을 수 있잖습니까.”
저 존재는 바다를 걸을 수 있었다.
괜히 이인자가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힘이, 남달랐으니까.
“너도 알잖아? 왕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셔. 이런 일일수록 내가 옆에서 보필해야지.”
환수는 왕이 있는 나무를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곧 시선을 움직였다.
“그런데 왜, 불안해 보일까?”
눈꼬리가 날이 섰다.
조용히 이어지는 압박에 윈디드는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여 왕을 배신할만한 행동이라도 했나?”
“…제가요?”
윈디드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며 환수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깊은 불쾌함을 담았다.
“제가, 지금 누굴 배신한다는 겁니까?”
윈디드의 언성이 올라갔다.
행여나 입에 담는 것도 불경한 말이었다.
“진정해. 요새 말이야, 분위기가… 뭔가 달라져서 말이야.”
환수는 윈디드에게 다가왔다.
그때,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뭔가 왔다.’
환수가 멈칫거리던 차, 시선을 올렸다.
윈디드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착각인가?’
“확실히 말씀하시죠. 제가 왕을 배신했다는 말씀입니까?”
윈디드는 오히려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했어. 말실수도 했고. 네가 그럴 리가 없지.”
환수의 사과에 윈디드는 비로소 표정을 풀었다.
“그런데 정말, 수상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수상한 움직임이라뇨?”“…정확해지면 말해줄게. 나는, 주변을 좀 더 봐야겠어.”
방금, 알 수 없는 느낌이 맴돌았다.
아주 낯익은 그 느낌이.
정말 착각이 맞을까.
환수의 시선이 윈디드의 그림자로 향하던 차 윈디드가 말을 내뱉었다.
“어쨌든,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더는 안 봅니다.”“알았어, 알았으니까 화내지 말고.”
환수가 웃자 윈디드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제야 풀리는 긴장과 함께 윈디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왜, 왜 그때 오는 거야?’
흑견이 왔다.
느낌이 확 들었다.
일부러 왔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윈디드는 숨을 짧게 내쉬며 앞으로 걸어갔다.
‘다행이다.’
어쩌면 흑견의 존재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걸음이 더 빨라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물음이 들렸다.
“저 존재가 네가 말한 이인자인가?”
윈디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굉장히 우아하게 생겼어.”
은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당장 윈디드에게 가야 한다는 선택지밖에 없던 상황임에도 그 환수는 눈길을 끌었다.
선명한 근육은 조각한 것처럼 매끄러웠고, 머리 뒤로 넘겨진 커다란 뿔은 나무로 만든 조각상 같았다.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윈디드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저 존재가 자신마저 의심할 일이 생겼다.
그게 뭐겠는가.
은호가 발견한 그 존재가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닐까.
그 존재가 원하는 내부 분열일까.
* * *
태양이 이곳에서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안으로 들어갈수록 빛이 끊임없이 뿜어나왔다.
―태호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잠입은 어려울 거야. 내가, 도와야 해.
왜 윈디드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거센 빛으로 그림자가 존재하기란 어려웠다.
흑견이 머물 곳이기에 그림자의 크기가 작은 곳은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로 덩치가 큰 윈디드의 그림자에 들어가 왕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게 가장 안전했다.
은호는 다른 곳보다 유독 크게 자란 나무를 바라보았다.
식물을 성장시키는 힘을 왕도 가지고 있는 걸까.
여러 의문이 맴돌던 차, 묘한 느낌이 자신을 감쌌다.
왕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들리는 것 같아.’
그림자에 있어 그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간절했다.
그 감정이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림자에 있는 게 처음으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있는 걸까.
이곳에 뭐가 있길래 자신에게도 선명한 고통이 느껴지는지 몰랐다.
마치 숨통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은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왜 그러는가, 인간?”
흑견이 물었고,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 여기에 뭔가 있어. 그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어. …괴로워하고 있어.”
은호는 말을 하면서 눈가가 다 시큰거렸다.
빛이 가장 찬란한 그곳을 향할수록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원망이 밀려왔다.
왜 자신에게 다 쏟아붓는지 몰랐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왔을 뿐이었다.
‘식물인가? 그래서 또. 또 나를 원망하는 거야?’
은호는 마음이 쓰라렸다.
단순히 미워하는 게 아니었다.
공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미움이 자신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다.
윈디드는 왕이 있는 나무 앞에 섰다.
윈디드가 나무의 입구를 가린 문을 열려던 그때, 먼저 문이 열렸다.
환한 빛이 쏟아지자, 그림자가 지워졌다.
눈을 채 뜨지 못할 만큼 환한 빛에 흑견은 끌려가듯이 밖으로 나와버렸고, 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은 걸어 나와 은호를 안아주었다.
“……울지 마십시오.”
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호는 그 말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당신의 탓이 아니니까요. 당신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 힘을 원래 받았어야 하는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는 겁니다.”
“……?”
은호는 놀란 눈을 하며 눈동자를 돌렸다.
분명히 눈이 아플 법하나, 아프지 않았다.
‘…어떻게, 안 거야?’
의문이 묻어나는 그 시선에 왕은 부드럽게 웃었다.
“다들, 안으로 오세요.”
귀를 홀리는 감미로운 말에 은호는 홀린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윈디드도, 흑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힘도 쓰지 않았음에도 이만큼 혼을 빼낼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은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왕은 태양, 그 자체를 떠올릴 만큼 찬란한 은빛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 뒤로 사자를 닮은 것처럼 하얀 갈기가 휘날렸다.
눈이 아닌, 빛 그 자체가 환수가 된 것처럼 새하얘 가면을 장식한 긴 장신구도, 머리 뒤로 뿜어져 나온 광채도 뒤늦게 알아버렸다.
신성하다는 느낌 이외에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게 왕이었다.
흑견과 윈디드보다 크기가 컸지만, 이 나무 속을 다 채워버릴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자연의 대리자. 혹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더 괜찮겠습니까?”
“…….”
은호는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괜찮습니다. 당황하실 거라는 걸 압니다.”“진정해, 말썽꾸러기. 무슨 느낌인지 알아.”
윈디드 역시 은호를 진정시켰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랬다.
왕은 동떨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달랐다.
왜 자신들의 왕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동자를 움직여 흑견을 보았지만, 당황한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싸늘하게 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모든 희망을 품은 씨앗이여.”
왕은 위그드라실에게 인사했다.
위그드라실은 손을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여.”
마지막으로 왕의 시선이 닿자 흑견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분명히 같은 존재일 텐데, 혼자 달랐다.
동시에 반사적으로 느껴지는 이 반가움이 너무도 불쾌했다.
태어났을 때 축하해주던 그 목소리 그대로였기에 가슴에서 잠잠하던 원망이 꿈틀거렸다.
“내가 반갑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미안할 뿐입니다.”“내가 뭐라고 말을 하면 잡아갈 셈인가?”“아뇨. 이곳에서 나오는 말은 밖으로 새어 나가지도 않을 겁니다.”
왕이 미소를 짓자, 그 주변으로 작은 빛 덩어리가 날아다녔다.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흠칫 놀랐다.
저게 뭔지 몰랐다.
은호 혼자만 반응하자 흑견의 시선이 움직였다.
“인간에게 뭘 한 거지?”“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분이 자연의 대리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겁니다.”“…뭘 느낀다는 거예요? 방금 그냥 웃음소리가 들렸는데요?”“자연이 내게 내린 축복을 느끼신 겁니다.”
“축복이요?”
은호가 눈을 깜박거리자 왕이 웃었다.
바라만 봐도 좋았다.
“일단, 앉으세요. 혹시, 지금도 슬픕니까?”“……아뇨. 사라졌어요.”
가슴을 찌르던 느낌이 사라졌다.
언제부터 사라졌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행입니다. 당신의 슬픔은 내게도 전해지니까요.”
감미로운 목소리 때문일까.
왕의 슬픔이 느껴지자 은호 역시 가슴이 아팠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곳에 뭔가 있는 거예요?”“네. 있습니다. 나중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잠깐만 자연의 대리자와 말을 나눠도 되겠습니까? 길게 걸리지 않을 겁니다.”
왕은 흑견과 윈디드에게 허락을 구했다.
“괜찮습니다, 왕이시여.”
윈디드가 허락하자 왕은 자연스럽게 흑견을 보았다.
“왜, 내 허락을 구하는 거지?”“나는 그대의 우위에 서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존중하는 겁니다.”“존중…? 나를 존중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내버려 두거라. 더는 휘두르려고 하지 말거라.”“…그건, 곤란합니다.”
“어째서인가?”
“이미, 저분의 삶을 뒤흔들었습니다. 내, 욕심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