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6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68화(268/302)
267화. 꿈일까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이번에는 두 마리입니다.》
《왕.》
‘…이름이, 왕이라고?’
은호는 고개를 힐끔 돌렸다.
공간 너머로 상체만 내민 라이엔을 바라보았다.
라이엔의 존재로 집이 너무도 환해졌다.
《빛으로부터 탄생한 존재입니다. 마성을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소리로 모두를 홀릴 수 있을 만큼 감미롭습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아무 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몸이 빛으로 둘러싸여 계속 빛이 납니다. 빛을 조절할 수 있지만,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 빛에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지배의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아도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힘입니다. 모두가 왕에게 고개를 조아립니다. 현재 자연의 축복으로 그 힘이 더 강해진 상태입니다.》
‘아. 그래서 왕을 보면 다들, 압박감을 느끼는 거구나.’
원래부터 지배의 힘을 타고난 환수였다.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런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슬플지도 몰랐다.
애초에 라이엔이 원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은호는 과자를 집어 먹으며 인식한 다른 환수인 디올린을 보았다.
《발견되었지만,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이름을 불러옵니다.》
《테미카.》
‘디올린이 가진 힘으로 그랬을까?’
분명히 복종의 힘을 가졌다고 했다.
그 힘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주 특별한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힘에는 상대를 복종시킬 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몸에 파고들며 힘이 다할 때까지 상대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강한 의지력이나 비슷한 정신 계열의 힘이 아니라면 이 힘에서 벗어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공격을 조심하십시오.》
‘…원래부터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래서 자신이 봤던 힘에 피가 있었다.
자신의 피가 생명을 싹틔운다면 디올린의 피는 누군가를 복종하게 했다.
《타고난 힘이 강하지만, 나서길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누군가를 모시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충성심이 무척 강합니다. 정이 무척 깊으며 공감을 잘하는 편입니다.》
모든 건 타고난 성격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억눌렀다.
하지만 약속이 깨진 지금은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겠지.
‘이걸 어떻게 하지?’
은호가 미간을 찌푸리자 어둠이 그의 볼을 찔렀다.
“더는 생각하지 마라.”
“생각이 나는데?”
“그러니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그러니까…….”
“미안합니다.”
라이엔의 목소리가 들리자 흑견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너한테 꺼낸 말이 아니다.”
흑견이 딱 잘라 말하자 폭시와 라비가 기겁했다.
“머, 멍멍이 형님. 왕이라고.”“마, 마, 맞다. 왕이니라.”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압도감이었다.
어디에다가 눈을 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 꼴을…….”
은호가 흑견의 입을 잡았다.
“그러면 부끄러워서 가버릴 거라고.”
날이 선 은호의 말에 흑견은 코웃음을 쳤다.
부끄러워하게 만든 게 누구인데.
저게 무슨 꼴인가.
왕이라는 존재가 상체만 집으로 들어온 꼴이라니.
“저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잖아. 나무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서 멀어지게 된다면 끊어진다고.”
와이파이 같은 느낌이었다.
현재 왕은 이곳 세계에 있는 자연과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식물들은 왕의 도움을 거부했다.
현재 약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래 세계에서 함께 왔던 나무와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 계약은 내가 체결해줘야 하는 거고.’
계약을 바로 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계약이라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 자연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이걸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내가 자연의 대리자가 아니라 두리뭉실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이엔의 말을 빌려보자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식물에게도 미움을 받는 자신이 어떻게 의지를 물어볼까.
고민이 길어졌다.
“…지금 은호의 말이 나를 더 부끄럽게 합니다.”
라이엔은 머쓱함을 드러냈다.
기껏 잊어버렸는데,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 말에 은호는 깜짝 놀라다 말고 라이엔을 보았다.
사실 몸의 반만 공간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조차 우아했다.
이 와중에도 신성하다는 느낌이 들기에 괜히 웃음이 났다.
“아니야. 생각보다 잘 어울려. 정말이야.”“은호. 이러면 곤란합니다.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있잖암.”
혀가 짧은 소리가 들리자 라이엔은 고개를 돌렸다.
레비아탐은 라이엔에게 다가가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어딜 봐도 신기했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레비아탐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태어날 때 들었던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닿고 있었다.
신기했다.
놀라웠다.
“왕은 태양을 삼킨 거얌?”
레비아탐의 물음에 라이엔은 웃음을 터트렸다.
참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었다.
“아닙니다. 나는 그저 빛에서 태어났습니다.”“그래서 멍멍이 형님이 싫어하는 거얌?”
레비아탐은 흑견을 보았다.
흑견은 어둠이었고, 라이엔은 빛이었다.
“아닙니다. 내가 저 존재에게 저지른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롬?”
레비아탐은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앞발을 꼼지락거리다가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용서를 구하는 건 어려웜. 그래도 받아줄 때까지 잘못했다고 해야 햄. 그렇지 않으면 멍멍이 형님 마음이 아팜.”
똑 부러진 레비아탐의 주장에 은호는 흐뭇한 얼굴을 했고, 흑견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네. 그래야지요. 계속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대는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아니얌. 왕도 좋은 존재얌.”
레비아탐이 웃자 폭시가 다가왔다.
라이엔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몇 번을 보아도 감정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이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 것 같은데, 감정을 보는 것마저 어려웠다.
“너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여. 왜 안 보이는 거야?”“아, 이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힘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무섭게 해드렸네요.”
라이엔이 웃자 폭시는 밀려드는 감정을 어쩔 줄 몰라했다.
황송한 느낌이 뭔지 처음을 알아버렸다.
그대로 눈을 질끈 감고는 은호에게 달려갔다.
은호는 폭시를 안은 채 라이엔에게 다가갔다.
그의 뒤를 따라 라비가 따라왔다.
“아이고, 다들 라이엔이 어려운가 보다.”“뭔가, 있어! 밀려드는 느낌이 달라! 그게 뭔지 모르겠어! 싫은 게 아니야, 이건, 이건 달라!”
폭시의 눈이 커졌다.
억울함이 번져갔다.
이렇게 말하면 라이엔이 슬플 걸 아는지, 미안함도 섞여 있었다.
“……맞느니라. 계속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은호가 라이엔 앞에 앉자 라비가 은호의 옷자락을 쥔 채 바라보았다.
“하긴 멍멍이 형님도 달랐어. 날뛰고 있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좀 다르긴 해.”“…내가 가지고 있는 지배의 힘 때문입니다. 이름만 거추장스러운 힘이죠.”
이 힘은 자신을 다른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웃어도, 아무 감정을 섞지 않아도 그들은 늘 자신을 어려워했다.
“나는 괜찮은데 말이야.”“그게 신기합니다.”
라이엔은 은호를 보며 웃었다.
“…아, 이 미소는 달라. 되게, 신성하다고 해야 하나. 뭔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고백해야 할 것만 같아.”
은호는 말을 던지고서는 곧 눈을 크게 떴다.
“…신. 오오, 맞아. 그런 느낌이긴 해.”“아쉽지만, 신은 아닙니다. 신이라면 모든 사태를 해결했을 테니까요.”
라이엔은 잠깐의 숨을 돌린 사이 떨쳐놓았던 걱정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디올린이 자연의 대리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언젠가 이날이 올 걸 예상했음에도 걱정이었다.
디올린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니까.
“…그런데 말이다.”
라비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말문을 열었다.
라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지금까지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냐? 다들 너를 기다렸느니라. 나도 네가 도와주길 원했던 때가 있었다.”
아빠를 도와달라고.
아빠를 살려달라고.
그 외에도 다른 존재들은 왕의 도움을 바랐다.
도와주지 않는 왕을 많이 원망했다.
“미안합니다. 목소리를 듣고도 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아니니라. 은호가 와줘서 괜찮았다. 그냥, 궁금해서 묻고 싶었느니라.”
라비는 말을 끝낸 뒤 라이엔을 빤히 보았다.
예뻤다.
아니, 예쁘다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화려하게 핀 꽃 같은 저 갈기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런데 왜 가면을 쓰고 있더냐?”
누가 만들어준 걸까.
태양 같았다.
“내 얼굴이 흉측해서 쓰고 다닙니다.”“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왜 흉측하더냐? 누가 가면을 줬더냐? 나도 가면을 써봤으면 좋겠다.”
라비가 꼬리를 잡은 채로 묻고, 또 물어보자 라이엔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 순간이 너무도 그리웠다.
언제 마지막으로 아이를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라비는 라이엔의 미소에 심장이 쿵쿵 울리는 기분을 느꼈다.
“이 가면은, 여러 존재가 날 위해 만들어줬습니다. 눈을, 가져가 버렸거든요.”“…누, 누가 가져갔더냐?”
“뭐…?”
라비와 은호가 기겁했다.
눈이라니.
은호는 손을 뻗어 라이엔의 얼굴을 만졌다.
“누가, 네 눈을 가져간 거야? 누구야?”
은호의 목소리 낮아지자 라이엔은 살짝 당황했다.
이게 화를 낼 일일까.
“이건 정당한 대가입니다.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
은호는 차원 이동의 대가가 바로 저 눈이라는 걸 알아들었다.
마나석만으로 그 대가를 채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화를 내지 말라고?’
“괜찮습니다. 빛이 내 눈을 대신해주고 있어서 보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너는, 대체 어디까지 널 내놓을 셈이야?”
은호는 이어지는 라이엔의 말에 언성을 올렸다.
얼마나 희생했는지조차 몰랐다.
인생에 온통 ‘희생’뿐인지, 눈을 바쳤다는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하!”
흑견은 기가 찬 소리를 내뱉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말을 은호가 하니 참 우스웠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가?”“멍멍이 형님.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저렇게는 하지 않았다고.”“만약에 인간의 눈이 자란다면, 그 눈을 왕에게 넘길 수 있다면 다 알고도 가만히 있겠는가?”“…눈이 자란다면야 주겠지.”
“이것 보거라!”
흑견은 소리치며 어둠으로 은호의 볼을 꾸욱 눌렀다.
머리를 눌렀다.
“…아악, 잠깐만. 잠깐만, 멍멍이 형님!”“인간도 똑같다! 둘 다 똑같다! 인간은 왕에게 말할 자격 자체가 없다!”“에이, 나는 솔직히 라이엔만큼은 하지 않았어. 라이엔이 본인을 얼마나 갈아버렸는데.”
은호는 고개를 들며 딱 잘라 말했다.
폭시와 라비, 그리고 레비아탐이 그를 빤히 보았다.
시선이 묘했다.
“멍멍이 형님 말이 맞아. 들어보니까 은호랑 똑같아.”
폭시는 그제야 안도했다.
마냥 어려운 줄 알았는데, 왕은 은호였다.
“나, 나도 뭐가 다른지 모르겠엄.”
레비아탐은 앞발로 입을 가리며 눈치를 힐끔 살폈다.
“은호다. 나는 듣자마자 바로 알았다.”
어느새 의기양양해진 라비가 크게 웃었다.
하나씩 살피던 라이엔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따뜻하고, 정겨웠다.
윈디드에게 들은 것보다 더 포근한 곳이 아닌가.
“라, 라이엔. 그거 좋은 의미가 아니야. 웃지 마.”“나는 좋습니다. 은호는 좋은 존재니까요.”
진심이 섞인 말에 꼬맹이들은 왕을 바라보다 그제야 공간을 넘지 못하는 모습에 시선을 뒀다.
조금 전, 같이 간식을 나눠 먹었다.
라이엔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솔직히 존재 자체가 불편했다.
지금도 밀려드는 압박감이 커 은호의 옆에 붙어야 편해졌다.
하지만 라이엔은 너무도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나씩 눈에 닿았다.
폭시가 귀를 갑자기 내렸다.
―저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잖아. 나무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서 멀어지게 된다면 끊어진다고.
조금 전 은호가 꺼냈던 말이 신경 쓰였다.
“있잖아.”
폭시는 왕에게 입을 열었다.
라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거기에 머물렀던 거야? 바다도 가보지 못하고, 호수에도 가보지 못하고, 마트에도 가보지 못하고, 거기 있었던 거야?”“그렇습니다. 늘 그대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은호.”
라비가 은호를 바라보았다.
왠지 울 것만 같았다.
“은호가 왕을 도와주면 안 되더냐?”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싫은 건지 알고 있었다.
은호가 벌을 주면 늘 가만히 있게 했으니까.
“내가 왜 라이엔을 보러 갔겠어?”
은호의 미소가 길어지자 라비는 환하게 웃었다.
“왕을 도와주러 간 것이니라!”“맞았어, 사고뭉치.”“은홈. 그러면 왕을 괴롭히는 나쁜 존재가 있는 거얌?”“맞아. 그걸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왬?”
“라이엔의 외출이잖아? 물론, 내 집이긴 한데, 외출은 외출이니까. 즐거웠으면 해.”
활짝 웃는 은호의 미소를 보며 라이엔은 빛을 느꼈다.
늘 빛을 몸에 지닌 자신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빛이기도 했다.
“암!”
레비아탐은 그 말에 놀라 라이엔을 보았다.
발을 동동 굴리다가 눈을 질끈 감고는 달렸다.
푹신.
라이엔의 털에 얼굴을 묻자 레비아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폭신폭신햄!”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잠깐 저 멀리 떠나버렸다.
“…정말이더냐?”
라비는 더는 밀려드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갔다.
앞발을 조심스럽게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라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갈기가 손끝에 닿자 라비의 귀가 나비의 날갯짓처럼 파르르 떨렸다.
“부드럽다아!”
라비가 내지른 소리에 폭시는 이끌려왔다.
라이엔 앞에 멈춰 빤히 쳐다보았다.
새하얗고, 새하얘 빛이 털이 된 것만 같았다.
앞발을 뻗어 라이엔의 앞발 위에 올렸다.
토닥토닥.
위로인지, 응원인지 모르겠지만, 폭시가 다시 고개를 올렸을 때, 배시시 웃고 있었다.
라이엔은 놀란 듯 꼬맹이들을 보았다.
저들의 마음이 밀려들었다.
이걸 위해 지금까지 버텼나 싶을 정도였다.
저 너머로 가고 싶었다.
은호가 사는 집을 보고 싶었고, 그 주변을 같이 돌아보며 저들하고 말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 갈 수 없었다.
그걸 앎에도 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지금 정말로, 즐겁습니다. 정말입니다.”
라이엔은 꼬맹이들을 안아주었다.
심장 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