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6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69화(269/302)
268화. 전조
띵동.
초인종이 울리자 밥을 먹던 꼬맹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꼬맹이들은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가장 좋아했다.
누군가가 오는 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잠깐만!”
은호가 바로 소리쳤다.
꼬맹이들은 그대로 멈췄다.
“밥을 다 먹고 움직여야 한다고 했지?”“하지만 밥을 다 먹으면 밖에 온 존재가 가버릴 수 있지 않더냐.”
라비가 밥그릇에서 고개를 올리며 웅얼거렸다.
“괜찮아, 사고뭉치.”“하지만 기다리느라 심심할 수 있잖암.”
레비아탐이 나무껍질을 먹다 말고 더듬이를 꿈틀거리며 슬쩍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한테 방긋 웃으면서 인사하려고 하는데, 나오지 않으면 저 존재가 슬플 수도 있어.”
입가에 묻은 꿀을 핥으며 폭시 역시 은호를 힐끔 바라보았다.
“괜찮아. 내가 갈 거거든.”
은호는 빈 그릇을 보여주며 크게 웃었다.
“…반칙이다! 아까 음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라비가 꼬리를 올렸다.
“나도 봤어!”
“나돔. 나도 엄청 쌓인 걸 봤는뎀?”“전직 직장인을 얕보면 안 된단다, 꼬맹이들아.”
은호는 우쭐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리의 미소를 짓고는 밖으로 나갔다.
“누구…….”
은호가 문을 열자마자 하이프가 들어왔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뒤, 뒤를 봐봐.”
은호가 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윈디드가 있었다.
눈이 돌아간 듯 광기가 어려 있었고, 깃털이 부풀어 올라 덩치마저 커진 상태였다.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오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급하게 왔으면 저럴까.
은호는 급히 안으로 뛰어와 냉장고를 열었다.
윈디드 전용 고기가 있었다.
“먹어, 삐약아!”
은호가 고기를 던지자 윈디드는 날름 받아먹었다.
몇 번 씹더니, 점점 깃털이 가라앉았다.
곧 눈빛이 돌아왔다.
“……?”
하이프가 바라보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들어와, 삐약아.”
은호는 그대로 뛰어 거실 창문을 열어주었다.
다시 문으로 간 그는 하이프에게 손을 뻗었다.
“오느라고 고생 많았어. 배고프지?”“…왜 저러는 거야? 갑자기 이상해졌어.”“아니야. 배가 고파서 그랬을 뿐이야. 전혀 이상하지 않아.”
하이프가 손을 잡아 은호는 그대로 일으켰다.
그렇구나.
하이프는 그 대답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친구는 뭘 좋아해?”
은호의 물음에 답하려다 말고 꼬맹이들과 마주했다.
몇몇은 낯이 익었다.
약속을 깬 상태에서 본 적이 있었으니까.
분명, 자신을 좋아하진 않겠지.
“안녕!”
하지만 환하게 인사해주자 하이프는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
“약속을 다시 하고 온 거야?”
폭시가 묻자 하이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때의 너는 진짜가 아니라는 걸 말이야.”
폭시의 미소에 하이프는 고마움을 느꼈다.
화가 나고, 원망도 할 법하나, 폭시는 그러지 않았다.
“꿀 좋아해?”
오히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내밀며 폭시가 물었다.
“좋아해. 아, 나는 아무 과일이면 돼.”
하이프는 폭시에게 대답한 뒤, 은호를 보았다.
“딱 좋은 게 있지.”
은호는 자신감 있게 냉장고를 열었다.
“그럼, 고기는 싫어하더냐?”
라비가 밥그릇에 담긴 고기를 살짝 내밀었다.
“제안은 고마운데, 미안해. 고기는 먹지 못해.”“있잖암. 그럼, 나무껍질은 좋아햄?”
레비아탐이 나무껍질을 내밀자 하이프는 손을 뻗었다.
“좋아해.”
“정말롬?”
“꿀에 발라 먹으면 맛있어.”“응! 그것도 맛있엄!”
레비아탐은 방긋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나무껍질을 좋아하는 존재가 드디어 나타났다.
하이프가 먹을 수 있게 폭시는 꿀을 내밀었다.
라비의 입꼬리가 내려가자 은호는 라비의 코를 건드렸다.
라비가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삐졌어?”
“아,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은호는 키득거리며 라비를 쓰다듬었다.
“어서 먹어.”
은호는 과일을 내밀었다.
“은호.”
과일에 손을 뻗다 말고 하이프는 은호를 불렀다.
“응?”
“도와줄게.”
“뭘 도와줘?”
“은호 네가 하고 싶은 일 말이야.”
왕이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 말을 꺼낼 때부터 하이프는 짐작했다.
마치 디올린이 가진 복종의 힘을 풀 수 있냐고 묻는 것 같았으니까.
사실 이게 가능할지는 잘 몰랐다.
정신의 힘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었고, 자신의 힘에 잠식된 존재만 수없이 봤을 뿐이었다.
당장 자신보다 정신 계열의 힘을 가진 존재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자신일까’라는 생각만 계속 떠올랐다.
‘나는 이미 한 번… 약속이 깨졌는데.’
자신이 약속을 깬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을 죽이고, 그 시체를 농락한 인간을 향한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라이엔은 자신을 믿었다.
‘해내고 싶어.’
배신자라고 욕할 수도 있었음에도 왕은 자신을 보듬어주었다.
그 마음에 답해주고 싶었고, 자신을 붙잡아준 은호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다.
은호는 하이프가 꺼내는 말에 주저하다가 잠깐 자리에 앉았다.
티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디올린의 힘을 파괴해야 했다.
이건 사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파괴하는 법을 알아야 디올린의 힘에 대항할 수 있을 테니까.
“위험할 거야.”
“알아. 나도 오면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 나는 상대를 조종하는 힘을 가졌으니까. 조종이라는 게 과연 이번 일과 맞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
하이프는 똑바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더는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생기 가득한 눈동자 속에 간절함 역시 있었다.
“……혹시, 티토 이야기야?”
폭시가 묻자 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티토가 왜?”
“지금 어떤 힘이 티토를 지배하고 있대.”“정신 계열의 힘이었어?”
폭시는 물어보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정신 계열의 힘을 가졌는데, 몰랐다.
가까이 있었는데,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다.
“…내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였는데.”
폭시가 눈꼬리를 내리자 은호는 섣부른 위로보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만큼 감쪽같아서 그래. 핏속에 담긴 힘이라서 눈치채는 게 어려웠을 거야.”
“…피?”
“피에 힘이 담겨 있다고? 그게 정말이야, 말썽꾸러기?”
폭시의 의문 뒤로 윈디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태블릿 씨가 알려줬어.”“피라니. 이러니까, 모를 수밖에 없잖아.”
윈디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피라는 건 밖에서 볼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스며들기까지 하면 이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바로 그거야. 그래서 폭시가 모를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은호는 윈디드의 의견을 등에 업으며 폭시를 보았다.
폭시가 몰랐던 건 실수가 아니었다.
숨겨진 힘을 보려면 숨겨진 곳으로 향해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지독해.”
하이프는 인상을 썼다.
핏속에 정신 지배와 관련된 힘이 숨겼다니.
영원히 잡아두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나는 정신 지배와 관련된 힘을 몰라. 이걸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는지도 모르고. 혹시, 폭시와 하이프는 감이 잡혀?”
하이프는 대답보다 푸른 불꽃부터 만들어냈다.
“피에 깃든 그 힘을 파괴해야 해. 나는 불꽃으로 최면을 걸어. 이게 파괴되면 최면이 풀려. 너도 그렇지?”
말을 마친 하이프는 자연스럽게 폭시를 보았다.
정신 계열의 힘은 어디에 좀 더 초점이 가 있느냐 차이지, 그 틀은 비슷했다.
“하지만 나비랑 불꽃은 바로 보이는데, 피는 아니야. 눈에 보이지 않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폭시는 말을 하면 할수록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어려웠다.
당장 티토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괴로웠는데, 지금도 괴로운 상태라니.
마음이 아팠다.
“그럼, 둘이 합치면 되는 게 아니더냐?”
라비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뚫고 말을 던졌다.
“폭시랑 하이프랑? 맞엄?”
레비아탐이 솔깃하며 물었다.
“맞느니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우면 머리를 맞대면 된다고 했느니라.”
배시시 웃는 저 모습에 하이프와 폭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였다.
하이프는 웃었고, 폭시는 웃지 않았다.
* * *
“…은호.”
폭시는 티토의 병실로 가는 와중 복도를 거닐며 그를 불렀다.
“걱정돼?”
“…응. 정신은 잘못 건들면 큰일 나. 돌아오질 않아. 그래서 티토에게 쓴 그 힘이 무섭고, 화가 나.”“나도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어.”
은호는 어깨에 앉아 있는 위그드라실을 보았다.
라이엔의 친구인 그 나무를 만나고 난 뒤, 잎사귀는 다섯 장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자신이 땅에 깊게 박힌 디올린의 힘을 빼내지 않았는가.
이전처럼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하이프도, 폭시도.
둘이 가진 힘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태블릿도 그렇게 말해주었다.
―테마르가 가진 그 힘은 더 강한 정신 계열의 힘으로 부서트릴 수 있습니다. 피를 굳이 빼지 않아도 피에 깃든 힘만 부서트려도 복종을 풀 수 있습니다.
“그럼, 만약에.”
폭시는 말문을 열며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유난히 더 짙고, 칙칙했다.
“…정말 만약에 내가 해봐도 안 된다면, 은호가 도와줄 거야?”
폭시는 꼬리를 내리며 고개마저 숙였다.
마치 폭시 위로 먹구름이 낀 것만 같았다.
“물론이야. 나는 언제나 폭시 뒤에 서 있을 건데?”
은호가 꺼낸 말은 주문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주문에 이끌리듯 폭시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올렸다.
은호는 웃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그 웃음에 폭시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내가… 실수해서, 티토의 정신이 무너지면 어떡해.”
정신이 무너지면 모든 게 망가지게 되어 있었다.
빨간 나비를 쓸 때마다 마주하는 상대의 텅 빈 눈이 얼마나 무서운가.
“왜, 티토야? 왜 하필, 정신 계열인 거야?”
폭시는 울부짖고 싶은 감정을 꾹 누르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앞서갔던 하이프가 돌아왔다.
폭시 앞에서 당당히 말했다.
“내가 감당할게.”
“……?”
“내가 네 몫까지 할게.”“왜…? 무섭지 않아?”
폭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과 하이프는 나쁜 관계로 얽혔다.
하이프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이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미 수많은 존재의 정신을 건드렸어. 수없이 속죄해야 해. 너의 친구라는 게 걸리지만, 하나 더 늘어난다고 티도 나지 않아.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뭐가… 다르다는 거야?”
“아이잖아.”
은호와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성체야. 아이를 보호하는 게 내 몫이기도 해. 너는,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면 좋겠어.”
하이프의 감정이 보였다.
너무도 선명한 감정이었다.
두려움.
하이프도 웃었지만, 이 상황을 두려워했다.
성체라고 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폭시는 앞발을 들어 눈가를 닦았다.
“은호. 정말로 내 뒤에 있어 줄 거야?”“폭시도, 하이프도 괜찮아. 내가 그 힘을 지워봤으니까.”
은호의 감정은 평온했다.
고요한 바다 같고, 드넓은 하늘 같기도 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응!”
폭시가 그제야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 같이 하는 거야.”
하이프를 바라보며 샘솟은 용기를 불태웠다.
“그래. 같이 하는 거야.”
‘같이’라는 말에 낯설게 반응했지만, 하이프의 입꼬리에 호선이 드리웠다.
앞서 달리는 폭시를 따라 하이프가 뒤따랐다.
은호의 그림자에서 흑견이 나와 옆을 걸었다.
“인간도 안 된다면 다른 존재를 부르면 된다.”“맞아. 다른 환수들도 있어.”“더 많은 존재가 인간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
흑견의 조언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부드럽게 올라간 그 입꼬리를 보자 흑견은 고개를 돌렸다.
“그놈을 박살 내고 싶을 뿐이다. 저 존재 하나만 당했겠는가. 어떻게 파고드는지 모른다면 곤란한 건 우리다.”“맞아. 부수는 법을 알아야 해. 그래야 다음에도 또 부술 수 있을 테니까.”
이건 티토 하나를 구하는 게 아니었다.
디올린에게 당했던, 앞으로 당할 모두를 구하는 길이었다.
혹시 몰라 라비와 레비아탐을 데려오지 않았으니까.
* * *
“티토.”
폭시는 티토를 바라보았다.
꽤 진지한 그 얼굴에도 티토는 웃으며 환영했다.
“어서 와, 막내야.”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목이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는 티토를 조종한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어.”“…정말? 정말 안 거야?”“응. 누구인지 알았어.”
폭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가갔다.
“이제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하이프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폭시는 입을 열었다.
“맞아. 티토의 정신을 붙잡은 나쁜 걸 없앨 거야. 우리가 말이야.”
폭시는 눈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