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화(2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7화
27화. 나비에 한눈팔면 안 돼요(4)
은호는 손을 내린 채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환수 밀렵꾼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그냥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어떤 사람일까 하고.
왜 정부 소속을 거부한 걸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하지만 직접 본 그들은 완전히 쓰레기였다.
흑견을 타고 그림자 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럼, 또 뒈져버렸어? 그러게 내가 수면제 잘 놓으라고 분명히 말했지! 그놈들 개복치라고! 스트레스만 조금만 받으면 다 죽어버린다고 했어, 안 했어?
마음이 빠르게 가라앉는 말에 은호는 흑견을 더 꽉 안아주며 안도했다.
흑견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적어도 지금 아래에 보이는 이들은 환수를 생명체로서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돈. 오직 돈으로만 보고 있었다.
씁쓸했다.
이런 상황에 내던진 채 도움을 받지 못한 환수들이 얼마나 많을까.
환수는 사람과 맞먹는 지성을 가진 존재였다. 동물보다 못한 존재 취급받는데 이를 어떻게 맨정신으로 견딜까.
“지금 뭐라고? 쓰레기라고?”
저 남자의 주변에서 하나씩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저게 초능력이었다.
마치 어떤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힘 같았다.
“당신 같은 쓰레기에게 저 불꽃이 아까워요.”
은호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드루이드의 피를 머금은 자연은 잠들어 있던 분노를 일깨우며 그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떴다.
늘 보던 산이 모습을 바꾸었다.
서늘한 시선이 여기저기 느껴졌기에 부하들은 동요했다.
“대, 대장!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요?”
뭔가 심상찮았다.
“닥쳐!”
남자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손아귀에 퍼트린 불꽃과 함께 일렁거리는 눈빛은 점점 탐욕으로 물들어갔다.
흑견.
오직 흑견만 보일 뿐이었다.
저 검은 털에서 매끄럽게 뿌려진 금빛은 갓 떠오른 태양처럼 갈증을 일으켰다.
목이 탔다.
발끝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저놈만 잡는다면 쏟아지는 돈이 얼마나 될까.
부르는 게 값이겠지.
‘저건 내 거야.’
탐욕이 얼굴로 번져갔다.
‘내 거라고!’
남자의 눈이 커질 무렵, 무언가 움직였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는가 싶더니 맹렬한 소리를 터트렸다.
콰아아앙!
거친 바람이 몰아치자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붕이 날아가 있었다.
그 끝에 거대한 나무줄기가 보였다.
“……하!”
남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눈에 핏줄이 바짝 섰다.
감히.
감히 자신의 집을 부서트리다니.
“이 자식들아! 뭐하냐? 손님 왔는데!”
남자의 이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야, 환영해주는 거예요? 기뻐서 눈물 나는데요?”
도발에는 도발이지.
은호는 웃었다.
“그런데 어떡해요?”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려왔기에 남자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어차피 다 태워버리면 그만인 것을.
“여기 주인이 나가래요.”
저 말에 공명하듯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렸다.
그 떨림은 서 있는 그들의 발을 묶을 정도였다.
쿵.
쿵.
예사롭지 못한 소리에 무언가 오고 있다는 걸 그들이 느꼈다.
“이자는 잊으면 안 되고요.”
은호의 손가락이 위를 가리킨 그 순간 땅을 뚫고 나무가 자라났다.
드드드드득.
오두막을 피해 뻗어진 굵직한 줄기는 문어 다리처럼 놈들을 낚아채며 휘어 감아버렸다.
꽈아아악.
“이거 뭐야? 이거 뭐냐고!”
“괴물이다! 괴물이야!”
몸을 옥죄는 힘에 환수 밀렵꾼들은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나무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 소리마저 거슬리는지 가지에서 자라난 또 다른 가지가 놈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톡톡.
가지가 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를 가리켰다.
눈동자를 움직이던 은호는 가지를 피해 날아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와.”
“인간. 지금 감탄할 때인가?”
흑견은 기가 막혔다.
한껏 분위기 잡았건만 이렇게 무너트리는 게 어디 있는가.
“하지만 멍멍이 형님. 지금 사람이 날고 있잖아? 사람이 난다니까?”
“원래 인간은 날 수 있다. 그걸 왜 모르는가?”
한심함이 섞인 흑견의 시선에 은호는 당황했다.
“……어?”
사람이 날아다니는 게 당연하다니.
은호는 머릿속을 건드리는 혼란을 뒤로하며 땅으로 내려왔다.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식물들로 이루어진 군단이 든든하게 서 있었다.
혹시 몰라 우르르 데리고 왔는데, 너무 많이 데리고 왔나 싶기도 했다.
“우리 식물 친구들. 날아다니는 사람들도 잡아야 하는 거 알죠?”
하나도 빠짐없이 잡아야 했다.
저들은 역병이었다.
식물들이 고개를 끄덕이듯 나뭇잎을 흔들자 은호는 만족스러워하며 앞으로 걸었다.
환수 밀렵꾼을 잡으러 자라났던 나뭇가지가 은호의 걸음걸이에 맞춰 양쪽으로 움직였다.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나누어지는 모습에 은호는 괜히 웃음이 났다.
‘피가 아깝지 않은데?’
사아아아.
갑자기 바람이 서늘해졌다.
뭔가를 경고하는 것 같아 은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올렸다.
공기가 떨렸다.
“죽… 어!”
환수 밀렵꾼들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힘을 쓰는 건 아닌지, 떨림이 더 거세졌다.
순식간에 하나둘, 바위들이 위로 떠올랐다.
짓눌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함을 드러낸 채 앞으로 걸었다.
그 걸음걸이에 맞춰 식물들이 빠르게 꽃을 피우며 서로의 몸을 엮었다.
은호의 머리 위에 단단한 꽃 우산이 만들어지자 뒤에서 검은 바람이 불어왔다.
“신경 쓰지 마라.”
흑견의 목소리가 은호의 귓가에 잔잔히 울렸다.
한 걸음.
흑견은 앞으로 나아가며 앞발을 휘둘렀다.
발끝에 맺힌 어둠이 은호를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바위에 닿자 순식간에 덩치를 크게 부풀렸다.
밤에 잡아 먹힌 듯한 모습에 환수 밀렵꾼들은 소름을 느껴야만 했다.
그 많던 바위들이 모조리 사라졌으니까.
사뿐히 착지한 흑견은 제자리에 서서는 맹렬히 놈들을 노려보았다.
몸집을 부풀리며 앞발을 땅으로 내리치자 바닥에서 어둠이 일어났다.
크르르르릉.
벼락이 내려치는 듯한 소리까지 이어지자 두려움을 바람처럼 퍼져나갔다.
“하하하하!”
그때, 누군가 웃음을 터트렸다.
화르르륵!
수많은 환수 밀렵꾼들을 붙잡은 가지 중 하나에서 불이 타올랐다.
순식간에 재가 될 만큼 불길이 거셌다.
단번에 시선을 붙잡을만한 불길이었기에 은호 역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거 흥분되는데?”
타들어 간 가지를 부서트리며 남자는 땅으로 내려왔다.
천천히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흑견을 바라보았다.
달랐다.
급이 다른 환수였다.
어째서 흑견을 그렇게 목에 매는 이들이 많은지 이제야 알아버렸다.
밤의 지배자. 그 외에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저런 존재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밀려오는 흥분이 꽤 강렬했다.
“널 더 가지고 싶잖아?”
환수라면 이미 수없이 손에 넣어봤다.
하지만 흑견은 달랐다.
내다 파는 게 아니라, 직접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남자의 몸에서 천천히 불이 일어났다.
처음과 달리 그의 눈빛마저 달라지자 은호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봐요. 쓰레기 같은 말로 우리 멍멍이 형님의 귀를 더럽히지도 말고, 힘 자랑하며 나무도 태우지 말아요. 둘 다 화가 났잖아요.”
남자는 은호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에서 이런 게 튀어나왔을까.
“…우리 멍멍이 형님?”
남자가 걸어오자 그곳에 불길이 일어났다.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저거 네 거였어?”
“아뇨. 멍멍이 형님은 멍멍이 형님 거죠.”
“널 누가 보냈는데? 누가 이런 개짓거리를 시킨 건데?”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다 내가 한 건데요? 열받아서요.”
은호는 불이 나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슬렸다.
“산에서 불장난하면 안 된다고 안 배웠어요? 아니면 그 정도 기억력도 없는 건가요?”
식물 일부를 움직여 불을 향해 흙을 뿌렸다.
치이이익.
불을 꺼트린 뒤에야 은호는 목소리를 살짝 깔았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요. 이 짓거리, 대체 왜 하는 건데요?”
“당연히 돈이지.”
남자는 비웃음을 드러냈다.
“명쾌해서 좋네요.”
은호 역시 웃었다.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럼 나도 간단하게 말해줄게요.”
손아귀에 무언가를 쥔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끝났어요.”
은호가 다른 손을 올렸다.
저들을 잡았으니 이제 뭘 해야 하겠는가.
“자연님들, 분노를 터트릴 시간이에요.”
은호의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그제야 식물들이 움직였다.
쿵!
쿵!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의 울림이 땅을 통해 전해졌지만, 은호의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디서 병신 한 명이 영웅 행세하러 온 모양인데. 그래, 재미는 좀 있었나?”
남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점점 거세졌다.
강한 자신감이 대놓고 보일 정도였다.
“식물이 불을 이기다니. 어디서 같잖은 소리나 지껄이는지.”
입꼬리가 길어졌다.
덩달아 은호 역시 웃었다.
“누가 그래요? 식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절망이나 해라, 이 병신아!”
남자가 내지르는 소리를 따라 그의 몸에서 불꽃이 주변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모든 식물을 태우러 달려드는 불은 굶주린 짐승들과 닮아 있었다.
은호는 불로 뛰어들며 손아귀에 든 작은 조각상을 내밀었다.
“그걸로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남자의 말은 끊어졌다.
불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은호에게 쏟아졌다.
당장이라도 그를 태울 것 같던 불은 무언가에 잡아먹히며 빠르게 사라졌다.
“할 수 있어요. 아주 많이요.”
은호는 웃음기를 드러냈다.
토템의 앞에 ‘불’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내민 방향은 흡수의 힘을 가진 뒷면이었다.
토템이 굉장히 쓸만하다는 건 일렉트의 전기를 흡수할 때 체험했기에 당연히 하나 만들어두었다.
원래는 혹시 모를 화재를 대비할까 싶어 만들었는데 운이 좋았다.
“자나 깨나 불조심해야죠.”
은호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자, 잠깐! 잠깐!”
“뭐가 잠깐이에요? 그거 알죠? 공격 실패 후에는 뭐가 찾아오는지요.”
은호의 손끝을 따라 힘껏 주먹을 쥔 듯한 형태를 한 나뭇가지가 움직였다.
콰아아앙!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붙잡아둔 환수 밀렵꾼을 향해 모두 주먹을 휘둘렀다.
식물들이 사람을 치다니.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은호는 남자에게 걸어갔다.
부러진 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잠깐 붙잡아 볼래요?”
은호가 넌지시 말하자 주변에 있던 나무가 남자를 붙잡으며 위로 올렸다.
“여기 앞에 받침대도 만들어줘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손바닥 크기의 넓적한 판이 만들어졌다.
“고마워요.”
은호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손목을 풀듯 좌우로 흔들었다.
혼미한 의식을 붙잡으며 고개를 올리는 놈을 향해 앞으로 달렸다.
이를 악물고.
앞발에 힘을 가득 쥔 채 주먹을 휘둘렀다.
“……어헉!”
남자가 신음을 터트리자 은호는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엄살떨지 말고 아까 하려고 했던 말 지껄여봐요. 우리 멍멍이 형님을 어떻게 한다고요?”
“……너도, 너도 소유하고 싶으면서.”
“머리가 달려 있다면 생각 좀 해요. 환수들을 어떻게 소유해요? 본인 입으로 스트레스받으면 죽어버린다고 말해놓고, 기억력에 문제라도 있어요?”
은호는 말을 내뱉은 뒤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차, 짐승이었죠? 아니다, 동물들한테도 미안한 말이긴 하네요. 당신하고 같이 취급할 수준이 아닌데요.”
나무가 만들어준 판 위에 토템을 올렸다.
흡수의 힘을 띠게 뒷면을 내보였다.
“돈에 환장한 쓰레기 주제에, 왜 나한테 더러운 걸 튀겨요?”
그냥 같이 취급된다는 것 자체가 몹시 기분이 나빴다.
“그럼 너는 여기 왜 왔는데?”
“당신 잡으러.”
“……뭐?”
“아저씨. 오늘 나하고 어디 가는 줄은 알아요?”
“……?”
“감옥으로 다이빙해야죠. 이 정도 눈치도 없을 줄은 몰랐는데요?”
“너 미쳤어? 환수 때문에 인간을 잡는다고?”
“전제가 틀렸어요. 나는 그냥 쓰레기를 주웠을 뿐이라고요.”
은호는 손을 들어 남자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거기 얌전히 가만히 있어요. 우리 친구들을 구해줄 때까지.”
“야! 야! 절반! 절반 줄게!”
그 말에 은호가 우뚝 서자 남자는 웃었다.
“가격이 꽤 될 거야.”
“그래요?”
“그래. 저 흑견 말이야, 지금은 너를 따르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 쟤들은 짐승이야. 언제가 될지 몰라도 널 찢어버릴 수 있는 놈이라고. 그러니까, 나랑 손잡자. 내가…….”
흑견의 뒤에서 남자의 머리를 쥐었다.
“끄아아아악!”
“시끄럽게 굴었다.”
덤덤한 흑견의 말에 은호는 키득거렸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어째서인가?”
“멍멍이 형님의 발가락이 더러워지니까?”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흑견은 앞발을 들어 더러운 걸 털어내듯 크게 숨을 불었다.
후.
발을 내린 뒤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물을 바라보듯 시선을 주며 은호의 뒤를 따랐다.
“고마워, 멍멍이 형님.”
“그런 말, 필요 없다.”
“그래도 고마워.”
은호가 웃자 흑견은 고개를 돌리며 귀를 꿈틀거렸다.
“……지하에 있다. 그쪽에 냄새가 난다.”
“좋지 않은 장소네.”
은호는 다소 굳은 얼굴로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의 걸음을 따라 나뭇가지가 뒤를 따르며 빛의 꽃을 피웠다.
번져가는 빛을 따라 우리에 갇힌 환수들이 보였다.
경계.
불안.
증오.
처음 받는 시선이 우르르 쏟아졌음에도 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차분히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고,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벗은 뒤, 환하게 웃었다.
“안녕, 친구들. 너희를 구하러 왔어.”
그 한마디에 환수들의 눈빛이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