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1화(271/302)
270화. 건드린 건 너희야
폭시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은호가 없어.”
왜 없을까.
하이프를 바라보며 폭시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은호가 없어.”
“잠시만 기다려 봐.”
하이프 역시 당황했다.
은호라면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했다.
정신에 들어가면 오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아주 짧은 시간만 흘렀을 뿐이었다.
콰아아앙!
소리가 들렸다.
“…….”
폭시는 다급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멍한 표정을 했다.
너무도 이상했다.
왜 여기에 이런 낯선 소리가 들리는 건지 몰랐다.
주변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은호하고 이곳을 거닐었는데.
폭시는 복도를 달렸다.
은호 냄새가 묻어 있었다.
은호가 여기를 지나갔다.
흑견의 냄새도 있었다.
윈디드도, 라비와 레비아탐마저 있었다.
왜 여기에 이렇게 많은 냄새가 나는 걸까.
‘어디 간 거야, 은호? 다들 어디로 간 거야?’
폭시는 주변을 바라보다 말고 급히 멈췄다.
발소리가 너무도 많이 들렸다.
우르르르.
다들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폭시는 복도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밀려드는 혼란에 경악했다.
한 감정이 이토록 거대해진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폭시가 물었지만, 환수들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달렸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폭시는 환수들에게 떠밀리며 또 물었다.
이런 상황은 위험했고, 자신은 앞으로 가야 했다.
무엇보다 무슨 상황이 펼쳐진 건지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
은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나 말 좀 해줘!”
폭시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푸른 나비가 등장했다.
그제야 환수들이 멈췄다.
폭시는 어깨로 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애들아. 제발, 말 좀 해줘. 은호가 사라졌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공포가 어린 건 폭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자,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습격이야.”
누군가 꺼낸 말에 폭시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보자,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
조금 전에 정신 속에서 디올린의 힘이 그러지 않았는가.
―그래, 그걸로 하자. 인간의 포악함을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이에 저항했다. 괜찮은 명분 같지 않아?
꿍꿍이가 바로 이거라는 걸.
쿵.
폭시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 누가 습격한 건데?”“인간이! 인간이 습격했어!”
환수의 두 눈동자에 공포가 보였다.
“…은호는 그럼, 거기로 간 거야?”“맞아. 우리를… 먼저 피신시켰어.”“은호가 이곳으로 가라고 했어.”
이어지는 말에 폭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 왜 갑자기 습격했는지 몰랐다.
은호가 아닌 인간들은 위험했다.
힘이 있는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까맣고, 까만 손이 뻗어오는 듯한 느낌이 몰려왔다.
폭시는 두 눈을 찔끔 감다가 숨을 크게 내뱉고는 그대로 달렸다.
‘은호!’
복도가 이렇게 길었던가.
‘은호…!’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건드려서 그런 거야? 내가 디올린을 건드려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폭시는 입을 꼭 다물었다.
티토를 구하겠다는 그 생각만 했지, 이게 은호에게도 여파가 있을 줄은 몰랐다.
‘…진정해. 진정해. 멍멍이 형님이 있잖아?’
그럼에도 이 불안함은 멈추질 않았다.
‘…내 탓이야.’
자신이 머물러 있던 무리에 인간들이 습격했던 이유는 자신 때문이었다.
아주 비싸게 팔린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내 탓이야!’
환수들을 헤치며 달려가던 폭시는 입구를 나와, 은호의 냄새가 나는 곳으로 뛰었다.
그 끝에서 도달해서야 멈출 수 있었다.
“……?”
모르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무가 너무도 높게 자라 있었다.
그중 아주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컸다.
그 위로 초록색 빛이 별처럼 반짝거리자 입이 반사적으로 벌어졌다.
모든 생각을 지워버릴 만큼 아름다웠다.
“…미안, 놀랐어?”
그리고 은호가 있었다.
활짝 웃는 미소를 보자 폭시는 울먹거리며 달려갔다.
* * *
“…으음.”
은호는 고민했다.
폭시가 어떤 힘을 깨우쳤는지 몰라도, 폭시마저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졌다.
아무래도 정신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왜 그러는가?”
흑견은 크게 하품하며 물었다.
“아니. 돌아오면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생각 중이야.”“달리 말이 필요한가?”“말은 언제나 필요하지. 폭시가 가진 힘을 깨우친 그런 날이잖아? 그리고 티토와 함께 돌아올 테니까, 힘이 나는 말을 해주고 싶어.”“‘실패한다’라는 가정은 없는 건가?”“당연히 있지. 하지만 실패할 것 같진 않아.”
“근거가 뭔가?”
“그냥 감이지.”
은호는 낄낄 웃으며 손을 올렸다.
그 행동에 흑견은 귀를 꿈틀거리며 물었다.
“공간을 열려는 건가?”
“맞아.”
“어차피 데리고 갈 거였으면 왜 놔두고 갔는가?”“라비랑 레비아탐을 걱정했어?”“같이 가겠다고 떼를 부리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흑견이 아예 눈을 감아버리자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지 몰랐다.
“혹시나 했지. 여파가 클 수도 있잖아. 그리고 삐약이도 함께 있으니까, 안심이…….”
와장창!
공간을 열자마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바로 질겁했다.
“……삐약아?”
“은홈!”
“…으, 은호?”
레비아탐과 라비가 깜짝 놀랐다.
“…마, 말썽꾸러기.”
윈디드마저 그대로 굳어졌다.
마치 레비아탐과 라비를 뒤쫓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깨진 물건은 윈디드의 날개 근처에 존재했다.
은호의 시선이 내려갔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그러니까, 이건 실수인데. 이러려고 한 게 아니라…….”“일단, 넘어올래? 치우는 건 나중에 하지 뭐.”
은호가 태연하게 말하자 윈디드는 꼬리를 흔들었다.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뭐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윈디드는 웃으려다 말고 그만뒀다.
은호의 시선이 깨진 그릇들로 향했으니까.
“내가 깬 거 아니다.”
라비가 당당하게 말하며 공간 너머로 달려왔다.
“까망이가 깬 건 아니얌. 이번에는. 음. 음.”
레비아탐이 공간으로 달려가다 말고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축 처져 있었다.
“나도 한몫했엄. 삐약이랑 같이 혼내면 됌.”
레비아탐은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부엌에서는 뛰면 안 된다고 했는데, 너무 신난 나머지 그렇게 해버렸다.
같이 혼나는 게 맞았다.
‘…레비아탐. 너는 진짜, 너무 착해.’
누가 봐도 반성하는 얼굴과 솔직함, 그리고 윈디드를 감싸는 저 마음까지.
은호는 반사적으로 나오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오늘 일기를 써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는 안 했느니라.”
그때, 당당히 들려오는 라비의 말에 은호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말해야 라비였다.
“빨리 안 오면 닫는다?”“안 됌! 안 됌! 멈췀!”
레비아탐이 허겁지겁 달렸고, 윈디드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을 닫기 전까지 은호는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좋았다.
어떻게 하루하루마다 다른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이제 넘어왔지? 슬픈 건 다 사라졌어?”
은호는 라비보며 물었다.
집에 있으라는 말에 싫다고 가장 많이 운 건 라비였다.
“다 사라졌느니라! 그런데 폭시랑 하이프랑 뭘 하더냐?”
라비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다가가자 은호가 붙잡았다.
“지금 정신으로 들어갔어. 건들면 큰일 나.”“크, 큰일 나더냐? 하이프랑 폭시랑 몸이 바뀌더냐?”
요새 뭘 보는 건지 의심이 될만한 소리였다.
“그럴 수 있지?”
은호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며 말을 꺼내자 레비아탐이 하이프와 폭시에게 멀어져서는 은호 뒤로 움직였다.
“하.”
흑견은 윈디드를 보자마자 비웃었다.
덩치는 산만해서 그릇이나 깨다니.
“…오늘은 할 말이 없네.”
윈디드는 괜히 민망해 몸을 최대한 구겨 넣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삐약아?”
“얼굴이 뜨거워서 견디기가 어려워. 모르는 척해줄래, 말썽꾸러기?”
그릇을 깨버렸다.
성체답게 의젓하지 못했다.
왕의 수호자인데 이것도 제대로 못 했다.
“사실 말이야, 멍멍이 형님도 그릇을…….”“조용히 해라, 인간!”
흑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윈디드의 시선이 쏠리자 흑견은 더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큰일이잖아, 멍멍이 형님. 여기 병원이야.”
은호가 따끔히 말하자 흑견은 어둠으로 온호의 얼굴을 잡아 흔들었다.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던 차, 레비아탐이 은호를 보았다.
“은홈.”
“응?”
“그러면 말이얌. 지금 폭시도, 하이프도 다 티토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는 거얌?”
“맞아.”
“그럼, 둘 다 응원할램.”
레비아탐은 앞으로 걸어가 은호 앞에 앉았다.
“그러자. 두 친구 모두 정신에서 빠져나오면 크게 박수치는 거야. 어때?”
“좋암!”
“나도 치겠느니라! 나도 하겠다!”“그래. 사고뭉치도 같이 하자.”
은호는 방긋 웃으며 자신의 앞에 앉은 라비와 레비아탐의 뒷모습을 보았다.
둘 다 얼굴이 오동통했기에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이프하고 폭시만 잘 되면 되는데.’
만약에 안 된다고 가정하면 뭘 해야 할까.
은호는 이 둘을 도와주기 위해 필요한 환수는 레비아탐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머리에 충격을 가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티토에게 미안했지만, 그래야 하이프와 폭시를 구할 수 있었다.
‘또 누가 있더라.’
은호는 태블릿을 꺼내려다 말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가?”
흑견이 고개를 올리며 물었다.
“왜 그램?”
“벌레라도 있더냐?”
레비아탐도, 라비도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벌레? 내가 잡아줄까, 말썽꾸러기?”
이때다 싶어 윈디드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은호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실실 웃던 두 꼬맹이도, 자신감 넘치는 윈디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흑견마저 은호를 보았다.
“왜 그러는가, 인간?”
흑견이 묻자 은호는 눈가를 좁혔다.
“……습격이야.”
은호는 숨을 토하듯 말을 꺼냈다.
갑자기 식물들로부터 수많은 이미지가 들어왔다.
사람이 오고 있었다.
“빨리 애들부터 대피해야 해!”
은호가 병실 밖으로 나가자 흑견이 일어났다.
“내가 먼저 가겠다.”
두 말도 없이 그림자로 녹아내렸다.
“나한테 타,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다급히 말했다.
그게 더 빨랐다.
라비와 레비아탐이 달려 윈디드의 등에 탔다.
은호는 라비와 레비아탐이 이 위험한 상황에 동행한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어라 말할 정신이 없었다.
그의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형.”
<…왜 그래?>
“습격이에요. 직원분들 대피시키세요.”<이런, 미친!>
태호는 소리를 치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다급한지 느껴졌기에 은호는 지혜에게 연락했다.
“국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연구소가 습격당했어요.”<…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지혜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지만, 침착했다.
연락이 끊어진 휴대전화를 쥔 채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식물들이 보내주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친구들을 죄다 집 쪽으로 옮겨야 할까?’
은호는 생각하다 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물러날 수 없어.’
이곳을 절대 사수해야 했다.
여기는 환수 연구소였다.
환수들의 보금자리이자, 마음이든 몸이든 치료하는 장소.
여기를 빼앗겨버린다면, 지키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을 테지.
‘내가 지켜야 해.’
자신은 환수의 임시 보호소였다.
이걸 잊어버렸는가.
은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계를 꺼내 피를 뽑았다.
건물 밖에 나오자마자 또 피를 뽑았다.
윈디드에게 내려 앞으로 걸어갔다.
뽑았던 피를 뿌렸다.
땅이 붉게 물들었다.
“죽이지만 마.”
쳐들어온 건 저들이었다.
이때를 위해 나무들을 키우지 않았는가.
이 순간이 올 거라 생각했다.
은호는 붙잡았던 식물들의 고삐를 놔버렸다.
“애들아.”
은호는 앞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에게 인사하러 오던 환수들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평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어라 할 수 없는 힘이 존재했다.
명령에 가까웠다.
환수들은 눈치를 보다 안으로 달렸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은호는 숨을 들이켜며 몸에 힘을 주었다.
‘저 새끼들을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까지 해줘야 할까.
은호는 흘러내리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은호?”
일렉트가 반가움을 담아 다가오다 말고 멈칫거렸다.
“삐죽아. 내 옆에 있어.”
은호는 단호히 말했다.
뽑은 피를 또 뿌리며 땅을 짚었다.
“손이 남은 친구들은 환수들의 대피를 도와줄래?”
부탁했지만, 명령처럼 느껴졌다.
일렉트는 변해버린 은호를 보며 잠깐 굳은 표정을 하다 이내 앞을 보았다.
숲이 소란스러워졌다.
“나쁜 인간이 온 거야?”
“맞아.”
“내가 도와줄게, 은호.”“걱정하지 마, 말썽꾸러기.”
윈디드 역시 말을 꺼냈다.
“맞느니라. 그러니까 무서운 표정 그만 지으면 안 되겠더냐?”
라비가 윈디드의 등에서 고개를 숙인 채로 말하자 은호는 표정을 풀었다.
“미안해, 사고뭉치. 잠깐 열이 확 받았네.”
예상했어도, 그게 오늘일 거라 예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은호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레비아탐을 보며 손을 뻗었다.
“레비아탐.”
평소와 똑같은 은호의 눈빛에 레비아탐은 환하게 웃었다.
“…응!”
“도와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