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2화(272/302)
271화. 건드린 건 너희야(2)
“내감…?”
레비아탐은 깜짝 놀랐다.
이곳에 자신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들 많았다.
왜 자신일까.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너의 힘이 필요해, 레비아탐.”
이어진 은호의 말에 레비아탐은 이내 밀려드는 설렘을 느꼈다.
정말 자신이 필요하다니.
“응! 내감! 내가 은호를 도울 거얌!”
레비아탐은 힘껏 외쳤다.
이런 자신이라도 도움이 되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고마워, 레비아탐. 그리고 다들, 기다려줘.”
은호의 말에 윈디드는 초조했다.
저 너머에 동족들이 많았다.
아직 습격이 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존재들이 많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삐약아. 네 마음 알아. 그런데 잠깐만 기다려줄래?”
은호가 절실히 부탁하자 윈디드는 부리를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인간이었다.
약속이 자신들의 뒷발을 잡는다는 걸 왜 모를까.
은호가 자신들을 말리는 이유가 약속 때문이라 생각하니 윈디드는 마음이 무거웠다.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식물 친구들아, 미안한 부탁을 해야겠어.’
은호는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정화자들이 숲에 발을 디뎠다.
놈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단단히 이를 갈고 왔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이 흐름이 어떻게 번질지 몰라 두렵고,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환수 연구소에도 이곳을 지키는 초능력자가 있었다.
알고 있지만, 저들이 지키는 건 환수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는 환수들을 지켜야 했다.
‘그게 내가 된 것뿐이야.’
은호는 앞을 보았다.
거대하게 펼쳐진 화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버티자. 조금만 더 버티자.’
은호는 기다렸다.
이곳에 펼쳐진 채 살고 있는 환수들이 아직 병실로 오지 않았으니까.
식물들이 환수들을 데려주고 있었다.
‘미안해. 조금만 버텨줘.’
정화자들은 초능력자였다.
이들을 안일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저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 내뿜기 전에 조용히 처리할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용히란 존재할 수 없는 날이었다.
초능력자가 온전히 쏟아내는 힘을 두 눈으로 보았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던 나무가 뽑히고 있었다.
울창하게 존재하던 꽃나무들이 잔악하게 불태워졌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무를 시들게 했다.
사방에서 꽃잎이 찬란하게 흐드러졌다.
꼭 저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은호는 마음이 미어졌다.
다시 자랄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자신이 내몰고 있으니까.
저들의 고통을 따라 속이 파헤쳐지는 느낌이 맴돌았다.
아픔이, 통증이, 절박함이 스며들었다.
콰아아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토네이도가 등장해 모든 걸 휩쓸어갔다.
저 힘 하나로 이 땅에 쌓였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식물들의 괴로움이, 절망이 사방에서 들렸다.
은호의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거야.’
은호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가장 피를 많이 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식물이 자라 은호의 팔목을 붙잡았다.
하지 마세요.
목소리가 전해졌다.
흠칫 놀라던 차 어느새 팔로 올라온 위그드라실을 보았다.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은호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빛을 쪼개어버리는 것처럼 허공에 나타난 어둠이 이곳을 지배했다.
‘……멍멍이 형님.’
토네이도를 향해 어둠으로 온몸을 감쌌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고 있어,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그제야 은호가 뭘 기다렸는지를 알아차렸다.
환수들이었다.
‘고마워, 멍멍이 형님.’
은호는 눈을 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발소리가 전해졌다.
이쪽으로 오는 환수들의 모습을 이미지로 받았다.
‘됐다.’
은호는 다시 눈을 떴다.
환수들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버티지 않아도 돼.’
앞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조용한 분노가 스며들었다.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을 느꼈다.
“레비아탐. 이제 날 좀 도와줄래?”
은호의 부탁에 레비아탐은 그를 바라보았다.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간절함이 느껴졌다.
도와주고 싶었다.
“응! 나는 준비됐엄!”
힘껏 외치는 레비아탐의 목소리를 따라 은호는 그 힘을 느꼈다.
촤르르륵.
손목에 레비아탐의 힘이 감겼다.
늘어지는 사슬을 따라 은호는 손을 올렸다.
비어버린 그 땅에서 은호의 피를 머금은 생명이 자라났다.
드드드드득.
이전, 전기의 힘을 사용하던 크라카들을 상대할 때, 일렉트와 그 힘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걸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연결되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때, 식물이 새롭게 자라났다.
전기 나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윈디드가 말문을 열었다.
나뭇잎 대신 초록빛을 품은 비눗방울이 잎처럼 몽글몽글하게 붙은 나무가 자라났으니까.
이런 건 처음 봤다.
이런 모습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지 않을까.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뭘 보는 걸까.
무언가 다른 걸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 힘, 왜 이렇게 낯익어 보이는지 몰랐다.
“…와아아암!”
레비아탐이 환호했다.
자신의 힘이 뭉게뭉게 펼쳐진 상황이 너무도 신기했다.
“……이게 뭐더냐?”
라비가 입을 벌리며 물었다.
“나랑… 헙.”
레비아탐이 말하다 말고 입을 가렸다.
라비는 모를 수 있었다.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외롭고, 질투했던가.
라비도 그럴지도 몰랐다.
“아, 아무것도 아니얌.”“이거 레비아탐의 힘이 같다. 맞더냐?”“아, 맞아! 작은 친구의 힘 같은데?”
윈디드는 그제야 알아보았다.
이건 레비아탐의 힘이었다.
‘이걸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놀랍지만, 은호하고 너무도 잘 어울렸다.
“레비아탐의 힘이 맞아.”
일렉트가 은호를 대신해 대답했다.
자신도 저 힘을 경험했다.
은호가 자신의 힘을 빌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바로 그 힘이었다.
“도와주고 올게,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일렉트의 대답을 듣고는 바로 이해했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할까.
저 인간들을 제압해야 했다.
“잠시만, 삐약아.”
은호는 윈디드를 붙잡았다.
윈디드는 움직이다 말고 그대로 멈췄다.
은호의 눈동자가 빛이 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안 돼, 휩쓸릴 수 있어.”
은호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갑자기 나타난 이 힘에 놈들 역시 긴장했다.
어느 누가 식물들이 난데없이 공격할 거라고 생각할까.
‘그럴 리가 없지.’
식물들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보면 예쁜 딱 그 정도의 수준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어디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의 공격은 더 큰 두려움을 안길 수 있었다.
비눗방울의 잎을 가진 나무들이 머리를 흔들었다.
수많은 비눗방울이 떨어졌다.
경악하는 놈들의 얼굴이 이미지를 통해 전달됐다.
하지만 열매처럼 땅으로 떨어질 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준비하던 이들 모두 비웃음을 터트렸다.
‘…왔다.’
은호는 자신의 그림자로 들어온 흑견을 느끼며 손가락을 튕겼다.
원하던 곳에서 비눗방울이 나타났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비눗방울이 이어졌다.
초록색 빛을 품고 있었다.
수없이 반짝이는 빛깔을 보자 라비가 꼬리를 흔들었다.
“초록색 눈이니라!”
라비의 해맑은 소리를 따라 은호는 덩달아 웃었다.
가볍게 손뼉을 마주치려다 멈췄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미안, 놀랐어?”
은호는 폭시를 보며 웃었다.
빨리 가려고 했는데.
폭시는 울먹거리며 달려갔다.
“은호!”
짝.
은호는 폭시를 보며 손뼉을 마주쳤다.
빛을 품은 비눗방울이 터졌다.
타타타타타!
소리가 숲에서 울렸다.
그리고 조용했다.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날아가던 정화자도, 달려가던 정화자도, 크게 몸을 날리던 정화자들도, 무언가를 하던 이들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은호는 폭시를 안아주었다.
폭시는 눈물을 흘리며 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늘한 분노가 눈에 담겼다.
“……?”
윈디드는 갑자기 조용해진 상황에서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제 달려가면 되더냐?”
라비가 묻자, 그림자에서 나온 흑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왜 그러냐? 나는 은호를 돕고 싶다.”
라비가 은호를 간절히 바라보자 흑견은 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힘에 익숙해진 건지, 무리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서 있는 자들은 없다는걸.
“이제 뒤는 맡기면 될 거야.”
은호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 뭘 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
은호는 주르륵 흐르는 코피를 닦았다.
그의 눈빛은 뒤바뀌지 않았다.
‘…건드린 건 너희야. 그렇지?’
이다음을 바라보았다.
지금 벌어진 습격을 고스란히 돌려줄 방법을 생각하며.
* * *
습격은 환수의 병실 쪽에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환수 연구소의 모든 곳을 휩쓸었다.
환수들이 있는 쪽은 무사했지만, 연구소 직원이 있는 쪽에는 피해가 있다고 했다.
환수 관리국의 빠른 출동과 연구소에 상주해 있던 경비대의 대처로 그 피해가 덜할 뿐이었다.
‘…그래. 덜할 뿐이지.’
은호는 지혜에게 걸어갔다.
그를 말리는 환수 관리자들을 보다 지혜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물러나 있어.”
지혜는 부하들을 보냈다.
“…어디인지 아시죠?”
은호의 물음이 무거웠다.
지혜는 그를 바라보았다.
뭘 했는지 몰라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식은땀에 손끝도 떨렸다.
열이 있는 걸까.
“서은호 씨. 다음에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은 주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하면 됩니다.”
환수 연구소에 피해가 있었다.
주변 수색은 물론, 붙잡은 정화자들을 싹 다 환수 관리국으로 옮겼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해 새벽까지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아뇨. 다음은 없어요.”“환수들이,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지혜의 말에 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 재웠어요. 충격을 받은 애들은 진정제도 맞았고요.”“서은호 씨가 지킨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지혜는 진심을 담았다.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은호는 환수를 지켰다.
환수는 단 하나의 부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로지 은호의 상태만 좋지 않을 뿐이었다.
“아뇨. 아직 안 끝났어요.”
은호가 웃지 않았다.
오히려 가득 찌푸리고 있어 참 낯설다 싶었다.
“한 환수를 노리고 왔다고 합니다.”
지혜가 입을 열었다.
“……하.”
은호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티토였다.
입막음을 위해 디올린이 허태인을 시킨 게 분명했다.
‘…봐. 디올린은 아무것도 몰라.’
그 사실이 참 눈이 부시도록 고마웠다.
하긴, 어떻게 알까.
라이엔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뭘 예측할까.
초능력 관리국에서 자신을 보고 이 모든 게 들킬까, 초조했던 모양이었다.
티토는 다 봤으니까.
디올린의 얼굴도, 목소리도, 했던 행동도.
“그 새끼가 있는 장소, 알고 계시잖습니까. 알려주십시오.”
은호가 정중히 묻자 지혜는 입을 잠깐 다물었다.
이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정신 잡으셔야 합니다. 이건 서은호 씨답지 않습니다.”
충격이 얼마나 클지 알고 있었다.
은호는 환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 사랑이 눈에 보일 만큼, 어떻게 저러나 싶을 만큼 거대했다.
환수 보호 구역을 제외한 곳 중 환수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니라 환수 연구소였다.
그곳이 습격당했으니, 가족이 위험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저 말은 너무 섣불렀다.
습격의 실패를 적이 알았을 테지.
그 뒤,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적은 겨우 환수를 데려가려고 했을 뿐입니다.”
딱 거기까지였다.
습격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진짜 습격은 아니었다.
“여기서 어제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환수 연구소가 어떤 곳인데, 여길 건드렸다.
국가와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해도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보다 더 큰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릅니다.”
지혜는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화자들.
저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미친 새끼들이었으니까.
“큰 계획 말입니까?”
은호는 비웃음을 토했다.
미소가 사라졌다.
지금껏 마주했던 그 모습이 다 가짜처럼 표정이 달랐다.
“놈들이 원하는 게 뭐겠습니까? …환수를 죽여버리는 일.”
은호는 무언가를 꼬집는 듯 말을 꺼냈다.
“그 외에 다른 게 있을 것 같습니까?”
천천히 은호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이러는 이유요? 궁금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환수가 본인의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HWM을 운영하면서 발견한 마나석.
그 마나석으로 여러 가지를 하려는 와중에 환수가 이 힘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미울 수밖에 없었다.
“고작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듯한 그 이유를 내가 왜 들어야 합니까?”
그건 그저 본인의 욕망일 뿐이었다.
그 어떤 바람도 타인의 목숨 위에 설 수 없었다.
환수가 짐승의 형태를 한다고 죽여도 되는 게 어디 있는가.
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이 허용된다면 결국, 사람 역시 똑같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대체 왜 모르는가.
“여기서 큰일이요? 그게 있을 것 같습니까?”
은호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벌어질 큰일 같은 건 없었다.
“내가 모조리 부서트릴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