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3화(273/302)
272화. 건드린 건 너희야(3)
지혜를 향한 은호의 시선은 너무도 매서웠다.
흠칫 놀랄 정도였다.
“내가 못 할 것 같습니까?”
은호가 태연하게 물었다.
“내가 못 해서 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은호는 또 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누가 제일 잘 알 것 같습니까?”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 눈가가 좁혀졌다.
지혜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정말로 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정말로 은호라면 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부서트려버릴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당신들의 일이었습니다. 당신들이 해야 하는 몫이고요. 이미 훌륭히 잘하고 있는데 이걸 내가 뺏으면 되겠습니까?”
뒤바뀐 환수 관리국을 존중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욱 선을 지키려고 했다.
“눈에 띄는 짓거리도 싫습니다. 내가 해내 버린다면 더 많은 일이 나한테 올 텐데,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이전 세계에서 했던 자발적 호구 짓을 또 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었다.
“나는 그저.”
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저, 환수들을 만나고, 그들을 도와주고, 같이 즐겁게 살아가는 일상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아직 만나보지 않은 환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매일 새롭고, 즐거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내가 많은 걸 바랐습니까? 내가… 너무도 어려운 걸 바란 것 같나요?”
“…아닙니다.”
지혜는 은호의 감정을 선명히 느꼈다.
“먼저 날 건드린 건 저 새끼들입니다. 내가 발을 디딘 이곳을. 내 여정과 함께한 여기를 건드렸습니다. 여긴… 내 심장입니다.”
분노와 함께 은호의 눈가가 붉어졌다.
“…내, 전부인 여기를 건드린 건, 그 새끼들이라고요.”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치고, 얼굴이 뜨거웠다.
그럼에도 은호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국장님. 국장님이 생각한 것보다 내가 더 절실해요.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국장님한테 부탁하는지…….”
“그만해라, 인간.”
흑견이 앞발로 은호의 얼굴을 가리며 나타났다.
어딜 갔나 했는데, 여길 왔을 줄이야.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인간이 무슨 감정을 품었는지, 안다. 진정해라, 인간.”“나는… 너희가 없으면, 죽어.”
은호의 어깨가 떨렸다.
그가 품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똑같다. 그러니까 진정해라, 인간. 지금 눈이 돌아갔다.”
흑견은 은호를 자신의 방식으로 다독거렸다.
아직 자신도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은호는 오죽할까.
자신은 은호를 바라보지만, 그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존재를 보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이 짜증 나다가도 이렇게 자신의 몸에 기댄 은호를 보면 또 확 식었다.
“…말려도 나는 갈 거야.”“말리지 않을 거다.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알고 있는데.”
이건 꺾지 못할 고집이었다.
과연 이 고집을 꺾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흑견 역시 화가 났다.
“데리고 가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상대는 인간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짜증 났다.
왜 하필 인간일까.
약속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어떤 힘인지 들었기에 왕에게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흑견은 고개를 돌렸다.
가을이 걸어오고 있었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은호 씨.”
그녀의 품에 라비가 있었다.
은호를 보자마자 바로 뛰어 그에게 달려왔다.
“은호!”
귀에 닿는 목소리에 은호는 흑견의 앞발을 내렸다.
“…가을 씨, 사고뭉치도?”
왜 둘이 같이 오는지 몰랐다.
분명 여기 오기 전에 라비가 자는 걸 봤는데.
은호는 당황한 것도 잠시, 밀려드는 사실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그 말, 정말이에요?”
“……오가을 씨.”
지혜가 가을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눈가가 좁혀졌다.
“네. 제가 알고 있습니다.”
가을은 지혜의 표정을 보지 않고 은호에게 말했다.
정화자들이 붙잡혔기에 추적은 쉬웠다.
작은 단서 하나만 있어도 어디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럴 때마다 자신의 초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꼈다.
실패해도 무슨 상관일까.
쳐들어온 건 저놈들이었다.
부담이 전혀 없는, 추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죽이지는 마십시오.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어차피 죽이려고 해도 어려울 겁니다. 목을 베어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거든요.”
가을은 은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비초능력자로서 굴렀다.
뭘 못 해봤을까.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오가을 씨?”“국장님께서 움직이면 위에서 억압이 들어올 겁니다.”
가을은 그제야 지혜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을의 손가락은 위를 가리켰다.
“그만 멈추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허태인이 누굴 꼬드겼겠습니까? 어디까지 이어져 있었겠습니까?”
지혜는 가을이 꺼내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하나율에게 받은 고객 명단이 있었다.
그걸 지혜에게 넘기지 않았는가.
“명단에는 없는 놈들이 존재한다는 겁니까?”“네. 명단에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져 있네요? 높은 분이 여럿 걸려 있습니다. 세상이 아주 떠들썩해지겠네요.”
가을의 미소가 길어졌다.
원래 다 세상이 그런 게 아니겠는가.
애초에 뿌리까지 썩은 집단이 뭘 붙잡을 수 있을까.
그저 뉴스나 언론에 ‘우리 이렇게 붙잡고 있어요’라고 보여주기식으로 할 뿐이었다.
“이번 일이 상당히 커져도 마지막으로 허태인을 도와주겠죠. 그게 거래였을 테니까요. 환수를 받고 기뻐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영원히 보고 싶어서 박제라도 했으려나.”
가을은 하이프의 사건을 떠올렸다.
남편이 박제됐다고 했다.
그걸 보고 하이프가 얼마나 절망하고 좌절했을까.
“동물보다 더 많이 귀엽고, 예쁜 환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습니까. 희귀하고,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그 우월함. 이걸 충족시켜주는 존재인데, 포기할까요?”
가을은 지혜를 쏘아보았다.
정신 좀 차리라고.
현실 좀 보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잡히지 않는 겁니다. 정의감? 그딴 게 윗대가리들에게 있을 것 같습니까? 있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오가을 씨. 회의감과 허탈함을 느낄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당장 가을 옆에 태호가 있지 않은가.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알고 있어요. 모두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니 사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국장님. 이 기회를 놓치면 허태인을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습니까?”
가을은 잔인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겨우 붙잡은 기회라는 걸 지혜가 왜 모를까.
“국장님. 이게 얼마나 어려운 기회인지 아시잖습니까.”
가을은 지혜를 설득했고, 은호는 가을의 시선과 마주하자 그대로 우두커니 멈췄다.
“그 기회를 붙잡게 해준 사람이 바로 서은호 씨입니다.”
가을은 이를 악무는 듯 말을 꺼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사실은 말리고 싶습니다, 국장님. 은호 씨가 만일 하나 큰일이라도 난다면, 저 자신이… 너무도 싫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을은 밀려오는 온갖 감정을 꾹 눌렀다.
환수 연구소가 자신의 실수로 습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실수의 증거가 하이프였고.
똑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은호가 막았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은호 씨뿐입니다. 그걸 알기에 은호 씨 역시 국장님을 설득한 겁니다.”
“……가을 씨.”
은호는 충격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이렇게 해줄 거라고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부탁한 적도 없었다.
아니,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설득은 혼자보다 둘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웃음이 섞이는 듯한 가을의 말에 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는 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었다.
가슴이 뭉클거렸다.
“제가 은호 씨를 하루 이틀만 본 것 같습니까?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더 받아낼 테니까요.”
가을은 은호의 마음이 편할 수 있게 말을 던졌고, 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다잡으며 목소리를 꺼냈다.
“…서류 정리, 확실히 도와줄게요.”“네. 그걸로 충분합니다.”
“……하.”
지혜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러니 제가 나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잖습니까.”“…아, 아니에요.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은호는 뒤늦게 두 손을 흔들었다.
괜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에 지혜에게 사납게 군 건 사실이었으니까.
“……눈이, 돌아간 건 맞아요. 그런데 정말로 국장님을 나쁘게 말한 건 아니에요.”“솔직히 놀랐습니다. 당황했고요.”“미안해요. 너무 흥분했어요.”
은호는 사과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적을 쳐부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3분이면 됩니다.”
지혜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떠안아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국장님. 아시죠? 저는, 흔적을 남기지 않아요.”“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이제 생각하셔도 돼요.”
은호는 간단하게 자기 자신을 피력했다.
습격에는 습격이 아닌가.
조용히 다가가 얼마든지 뒤통수칠 수 있었다.
그걸 지혜 역시 알고 있겠지만, 강조는 필요했다.
은호는 피식 웃는 지혜를 본 뒤, 눈에 보이는 의자로 걸어갔다.
당장 숨이 길게 나왔다.
“고마워요, 가을 씨.”
결과가 어떻든 자신은 갈 생각이었다.
가을이라면 자신의 힘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박사님이라면 그랬을 테니까요.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은호 씨에게 여러 말을 나눠줄 수가 없을 뿐입니다.”“정신없어 보였어요. 가을 씨도 그렇지 않나요?”“정신… 없죠. 사실 음……. 예. 걱정됩니다.”
은호는 가을의 말에 잠깐 웃었다.
“저도 잠시만 일 좀 하겠습니다.”
가을도 자리에 앉았다.
왠지 조금 전 일을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워, 멍멍이 형님.”
가장 고마운 건 역시 흑견이었다.
은호가 흑견을 껴안자 작은 앞발이 느껴졌다.
아차.
“사고뭉치.”
라비는 자신도 안아달라고 두 앞발을 뻗다 말고 커다란 눈을 굴려보았다.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었으니까.
자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긴 게 아닐까.
잘못한 걸 알자 괜히 목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왜 안 자고 가을 씨하고 온 거야?”
은호는 라비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쓰다듬었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손길이 부드러워 라비의 꼬리가 붕붕 흔들렸다.
“은호한테 데려달라고 했다.”
라비는 눈을 감았다.
“자고 있는데, 그냥 갑자기 눈이 떠졌다. 그래서 은호를 찾으러 나왔느니라.”
오늘 너무도 많은 존재가 이리저리 움직였기에 냄새가 수없이 섞여 정신이 없었다.
은호 냄새는 특별해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잠이 와서 구분이 어려웠다.
그때, 가을이 지나고 있었다.
다가가 붙잡았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미소를 짓자 자신 역시 활짝 웃었다.
좋은 인간이었다.
이렇게 은호한테 데려다주지 않았는가.
“아까 일어난 일이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아니다. 아주, 아주 조금만 무서웠느니라.”
라비는 구불구불 감긴 눈을 억지로 떴다.
잠을 버티기에는 너무도 어린 몸이었다.
“…나는, 속상했다.”“속상했어? ……으음.”“나한테 속상했다. 은호가 아까 왜 혼자서 무리하면서, 그렇게 막, 힘을 사용했는지 안다.”
라비는 말을 하다 말고 하품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려야 무거워질 수 없었다.
그저 기특해 바라보았다.
“정말?”
“우리는 인간을 공격하면 안 되느니라. 그래서 은호가 다 떠안은 거다. 맞지 않더냐?”
은호는 놀란 눈으로 흑견을 바라보았다.
흑견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 그런 걸로 놀라냐는 표정이었다.
“아니, 멍멍이 형님. 기특하지 않아?”“당연하다! 나는 기특하느니라.”
우쭐한 라비의 표정에 흑견은 어둠으로 라비의 머리를 눌렀다.
“아아악. 누르지 말거라.”“우쭐하지 마라, 꼬맹이.”“우쭐하는 게 아니다, 멍멍이 형님!”
라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소리쳤다.
“나는, 오늘 잠이 들지 않고, 은호를 도우러 갈 생각이다!”“알겠습니다. 장소가 어딘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라비와 지혜의 말이 동시에 들렸다.
은호는 잠깐 눈을 깜박거렸다.
“알겠더냐? 나는 오늘 아주 위대하고, 거대한 결심을 했느니라.”“가을 씨도 알고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또 둘 다 이야기를 꺼냈다.
소리가 또 겹쳤다.
“…어.”
“나도, 레비아탐이랑 한 그거 하고 싶느니라!”“무리하지 마십시오. 저도 여기 수습되는 즉시 따라가겠습니다.”
라비는 방긋 웃었고, 지혜는 고개를 숙였다.
일에는 절차와 중요도라는 게 있었다.
환수 연구소 수습이 우선이었다.
무턱대고 적들에게 들어갈 수도 없었다.
적이 머물고 있는 주변 상황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지.
은호가 자신을 위해 무얼 해주었던가.
‘…지금이 적기니까.’
그건 지혜 역시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은호는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저어, 다시, 말해주실래요?”
은호는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네…?”
“사고뭉치 말이랑 섞여서 제대로 못 들었어요.”
지혜는 눈을 깜박거렸다.
이내 민망함이 밀려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하하하!”
라비가 크게 웃었다.
바람을 맞으며 가슴을 쭉 펼쳤다.
밤이었다.
성체만이 즐길 수 있는 밤.
이걸 지금 자신이 즐기고 있었다.
일렉트가 가늘어진 눈으로 라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