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4화(274/302)
273화. 건드린 건 너희야(4)
‘이게 성체의 맛인가?’
라비는 시선이 쏠림에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밤은 언제나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밤에 움직이면 아빠한테 혼이 났다.
아빠가 입원하는 동안에는 은호한테 혼이 났다.
은호 말고도 밤에 몰래 움직이면 흑견과 윈디드에게 걸려 혼이 났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다른 밤이었다.
은호가 깨우지 않아 섭섭했던 모든 것이 싸악 사라졌다.
‘저렇게 좋아하면 안 되는데.’
은호는 가볍게 웃었다.
오동통한 볼살이 올라간 뒷모습을 보니 지금 무척이나 신이 난 상태라는 걸 알았다.
얼마나 행복한지 다 보일 정도였다.
기분이 묘했다.
지금 가는 곳은 허태인이 있는 곳이었다.
라비를 데려가면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이미 몇 번이나 말을 나눴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만 못 하는 건 싫느니라. 나는 매일매일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떼를 부리는 방향이 달랐다.
누가 봐도 분함이었다.
무조건 안 돼.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날이었다.
애초에 물러날 조짐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도 있었다.
만약에 오늘 안 된다고 한다면 라비는 어떤 반응을 할까.
그걸 생각하자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같이 가자.
그렇게 말했고, 라비는 아주 활짝 웃었다.
어리고, 새끼였지만, 라비는 환수였다.
벌써 물러나지 않을 때를 배운 걸까.
“그렇게 좋아?”
일렉트가 물어보았다.
“좋다!”
“그럼, 나도 좋아.”
일렉트는 꼬리를 흔들었다.
오늘, 아니 어제 너무도 거대한 일이 벌어졌다.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갈 거라 생각했지만, 달랐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환수들은 평소와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온통 은호 이야기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은호가 해냈으니까.
정말로 말 그대로 자신들을 보호해줬으니까.
그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힘은 처음이었다.
은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레비아탐이 제일 기뻐했다.
그 힘은 레비아탐의 힘이기도 했다.
“삐죽아. 너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어.”
은호는 라비 옆에 앉은 일렉트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라비는 가을에게 안겨 왔지만, 일렉트는 지혜에게 들은 장소로 가려는 도중에 만났다.
“은호가 아플까 봐, 걱정됐어.”
말을 꺼낸 일렉트는 은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흔들리던 꼬리가 멈췄다.
“많이 아파?”
“살만해.”
괜찮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혹시 몰랐으니까.
“삐죽이는 졸리지 않아?”
그 물음에 일렉트는 품에 안은 건전지를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전기의 힘으로 버틸 수 있어. 그런데 조금 졸리긴 해.”
역시나.
잠이라는 건 너무나도 버거운 무게였다.
“사고뭉치는 졸리지 않아?”
“졸리다.”
“그럼, 둘 다 대체 왜 따라왔는가?”
흑견이 기가 찬 듯이 물었다.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은호는 오늘 무리하려고 가는 게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자신이 화가 났던 것도 있지만, 상대의 허를 찌르는 거라면 이미 은호가 수없이 했던 행동이었기에 말리지 않았다.
“나는 강해지고 싶다. 멍멍이 형님도 알지 않더냐?”“아주 잘 알고 있다. 매일 조르지 않았는가.”
흑견은 귀찮음을 드러냈다.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를 수없이 물어보았다.
그래서 알려줬다.
새끼였을 때부터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는 동안 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내가 어려서 은호가 나를 보호하는 것도 안다. 폭시도, 레비아탐도, 삐죽이 역시 가장 먼저 나를 감싸는 것도 안다.”
은호는 오늘따라 기특한 말을 계속 꺼내는 라비가 참 낯설었다.
평소에 그릇만 깨는 줄 알았는데, 생각이 참 깊었다.
“하지만 나도 모두를 지키고 싶다. 오늘 은호는 모두를 지켰다.”
초록색 눈이 내려왔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이라 생각했다.
그 조용한 힘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말도 안 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은호는 힘이 없는 인간인데, 강했다. 어떻게 레비아탐의 힘을 은호가 빌릴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니라.”
바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은호의 품에 있어 따뜻했다.
라비는 시선을 올렸다.
하늘에 자신의 몸처럼 별이 가득했다.
“나는 말이다, 은호.”
라비는 들뜬 듯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그냥 모든 게 좋았다.
“은호가 나와 아빠를 구해준 뒤로, 은호에게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은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은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갑자기 라비가 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은호는 내게 있어 가족이기 전에 영웅이다.”
아빠의 약초를 잃어버리고, 은호의 손을 물었다.
자신은 나쁜 아이였다.
―그런 거 아니야. 가족은 언제나 소중하잖아? 잃어버리면 다시는 볼 수가 없으니까. 그만큼 간절했잖아?
하지만 은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간절함을 이해해주었다.
―위험한 거 알면서도 용기를 내서 나간 거잖아?
멍청한 게 아니라 용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넌 나쁘지 않아.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이 모든 게 기뻐서 그날, 펑펑 울었다.
“나는, 은호처럼 되고 싶다. 모두에게 따뜻하고, 다정하고, 잘못도 보듬어주는 정말 정말 멋진 존재가 되고 싶다.”
그 모든 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지금 자신을 안아주는 이 품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주고 싶었다.
은호는 라비다운 말에 고개를 올렸다.
‘…큰일이네.’
이미 가을이 자신의 마음을 울렸다.
자신의 편에 서서 말을 해줬다.
낡디낡아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바람을 이뤄주었다.
그런데 라비까지 저런 말을 해버리면 어쩌자는 걸까.
‘진짜 큰일이야.’
은호는 일렉트도, 라비도 같이 안아주었다.
다른 환수들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괜찮았다.
폭시와 하이프를 통해 정신 상태를 확인했으니까.
가장 놀란 것도, 가장 분노한 것도 자신이었다.
과거의 아픔은 이제 다 나았다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습격이되 습격이 아닌 이 일에 이성이 모조리 날아갔다.
엄지손톱이 다 뜯길 정도로 고민했고, 결국, 지혜에게 찾아가지 않았는가.
‘지금 기쁘면 안 되는데.’
은호는 그 마음을 꼭꼭 간직하며 앞을 보았다.
허태인과 정화자들이 사는 곳은 한 마을이었다.
작고, 소담하고, SNS에 예쁜 마을이라며 소개되었던 그 장소.
그곳에 그토록 추악한 일을 벌였다.
―그 마을에 환수는 없습니다. 몇 번이고 살펴봤습니다.
지혜가 알려주었다.
환수들이 없는 건 의심을 피하려던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서 그럴까.
무엇이 되었든 하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다들, 나를 도와줄래?”
은호는 방긋 웃었다.
* * *
은호는 마을을 걸었다.
찰랑찰랑.
손목에 찬 사슬 소리가 은호의 귀에만 들렸다.
새벽에는 문을 연 가게는 없었지만, 전등 덕에 밝았다.
조용했다.
새벽에 산책하는 사람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 적막함.
너무도 기분이 나빴다.
은호는 걸으면 걸을수록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 있던 식물들이 그에게 하나씩 알려주었다.
지금 이렇게 적막한 이유는 오늘 환수 연구소에서 일어날 일 때문이라는 걸.
‘긴급회의라…….’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이었다.
참 재미있었다.
이대로 마을을 버리고 떠나버릴 생각이라도 하려는 걸까.
―이번 일이 상당히 커져도 마지막으로 허태인을 도와주겠죠. 그게 거래였을 테니까요. 환수를 받고 기뻐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영원히 보고 싶어서 박제라도 했으려나.
가을이 말한 대로 윗대가리들에게 보호라도 받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건 서둘러야 할 테니까.
‘아니, 아니. 그건 안 되는 일이지.’
이곳에 외부인이 존재했다.
마을로 놀러 온 모양이었다.
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고, 휩쓸리면 안 되기에 은호는 솎아내는 작업부터 했다.
그의 뒤로 검은 망토가 길게 늘어졌다.
외부인을 차례대로 한 명씩, 한 명씩 어둠으로 감쌌다.
위치는 식물이 알려줬다.
외부인이 있는 그곳에 빨간 꽃이 피어났으니까.
흑견 역시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잠이 든 시각이기에 저항은 적었다.
은호는 공원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곳에서 앉아 식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마지막 외부인을 내보낸 뒤에야 은호는 주저앉아 땅을 만졌다.
“친구들아.”
은호가 시선을 내리자 자신의 발밑에서 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아플 수도 있어.”
식물들이 버틸 수 있을 만큼 피를 뿌렸다.
몇 통이 되었든 상관없었다.
쏟아질 게 너무도 거대했으니까.
“하지만 해야 해. 저 새끼들을 쓸어버릴 생각이거든.”
은호의 손을 향해 식물들이 휘감겼다.
라이엔의 친구인 이세계 나무를 만난 뒤로 식물들이 자신을 향한 노골적인 시선이 줄어든 걸 느꼈다.
“…너희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은호는 쓰다듬었다.
이들이 이곳에서 저놈들을 가장 많이 본 존재였다.
가증스럽고, 역겨운 그들의 진짜 가면을 봤을까.
다 알면서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스레 라이엔이 생각이 났다.
왜 이렇게 식물들과 닮았는지 몰랐다.
은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목에 세 개의 사슬이 걸려 있었다.
“갈게.”
은호는 말을 내뱉었다.
식물들이 알려주는 이미지를 통해 정화자들이 모여 있는 그곳을 정확히 알았다.
세상에 어둠이 깔린 지금은 밤이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든 나타나도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은호 주변으로 더 짙은 밤이 휘감긴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정화자들 모두의 다리를 휘감아 그림자의 세계로 딱 발이 잠길 정도로만 끌어 잡았다.
하나는 흑견의 것이었다.
은호는 앞을 보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전기였다.
불꽃놀이처럼 사방에서 튀는 게 보였다.
찬란하다고 느꼈다.
손가락을 위로 뻗었다.
머리카락이 위로 살짝 솟으며 손가락 끝에서부터 전기에 감전된 듯 파지직 소리를 냈다.
손가락 끝에 무언가 통통 튀는 느낌이 몰려온 그 순간, 까맣던 하늘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왔다.
콰아아아앙!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거대한 벼락이 떨어졌다.
사방으로 뻗어져 가는 빛의 줄기는 가시덩굴처럼 날을 세웠고 푸르른 색을 머금고 있었다.
마을을 어둠에 잠식되게 했다.
은호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다른 하나는 일렉트의 것이었다.
그리고 은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하나의 사슬이 팔랑팔랑 흔들리며 은호의 눈동자에 별이 어렸다.
은호의 주변에 은하수가 생긴 것처럼 수많은 별이 나타나 맴돌았다.
빙글빙글 돌고, 좌우로 움직이며 화려한 빛깔로 우주에 휘감긴 느낌을 주었다.
은호는 신이 났다.
정말로 저 하늘의 별이 너무도 가까이 느껴졌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별이 자신의 옆에서 속삭여 귀를 간질였다.
불러.
날 불러.
그 마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은호는 힘차게 외쳤다.
“떨어져라!”
가슴이 끓어올랐다.
온몸이 불타는 것처럼 달아올랐다.
하늘에 있는 저 별들을 끄집어 당기는 느낌이 맴돌던 차, 주변이 환해졌다.
은호는 위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별이 떨어졌다.
‘보고 있어, 사고뭉치?’
은호는 라비가 있을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건 라비의 힘이었다.
운석을 닮은 힘.
‘별이 떨어진다.’
콰아아앙!
머리를 땅에 박으며 쓸었다.
콰아앙!
하나가 아니었다.
거센 바람이 일어나 은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콰아아앙!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모든 걸 박살 내기 전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 역시 보였다.
은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기다렸다.
파편은 튀었지만, 닿지 않았다.
몸에 두른 어둠이 모든 걸 삼켜버렸으니까.
콰아아아앙!
그 소리를 신나게 들으며 은호는 놈들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능력자가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잖아.’
지금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운석이 떨어지는 그 사이를 은호는 걸어갔다.
* * *
“즐거웠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허태인.
그 얼굴은 가을로부터 받았다.
무너지고, 파괴된 마을 한복판에 모두가 나자빠져 있었다.
최소한 죽진 않았다.
다른 놈들은 관심 없었다.
그곳에 똑같이 나뒹굴고 있는 허태인만 노렸다.
어둠을 이용해 멱살을 쥔 채 끌어올렸다.
“나도 지금은 즐거워.”
미소가 입가에 가득 걸렸다.
콜록, 콜록.
피냄새가 자욱한 이곳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한순간에 파괴될 것만 같은 그 공포, 너희도 느껴야지.”
“……누, 누구.”
은호는 허태인을 보며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차가운 미소가 번져갔다.
“다 끝났어, 허태인.”
은호는 막을 내려주었다.
정화자인지 뭔지 그따위 개같은 집단은 이제 끝났다고.
“드디어, 정화자의 막을 내릴 시간이야.”
그 말에 허태인은 눈을 떴다.
뚝뚝 떨어지는 피가 시야를 가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너, 너…….”
말조차 하지 못했다.
충격이 어지간히도 큰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잘 도망쳤고, 잘 먹고 잘 살았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물음이 이어졌다.
허태인은 입을 벙긋거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말도, 안 돼.”
꿈일지도 몰랐다.
갑자기 모든 게 무너지다니.
이건 정말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네가 틀렸어.”
저 남자는 남아 있는 희망마저 모조리 긁어다가 부서트렸다.
누굴까.
대체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시야가 흐릿해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너무도 어두워 볼 수조차 없었다.
“네가 했던, 네놈이 하려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을 부숴버리기 전까지 잘 살아 있어야 해. 내가 다 지워버릴 테니까.”
살벌한 경고가 이어졌다.
허태인은 온몸을 떨었다.
이토록 어두운데, 사방에서 쏘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온몸을 베어내는 듯한 날카롭고, 서늘한 감각이 찔러왔다.
“그러게 왜 건드렸어?”
환수 연구소.
허태인은 이어지는 말에 그곳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이 빨라졌다.
‘……설태호.’
설태호였다.
건드리면 안 된다는 소리가, 사실이었다니.
절망이 밀어왔다.
또.
마나석을 잃을 때처럼 또.
다 잃어버리다니.
더는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지 못한 채 허태인은 눈을 감았다.
축 늘어진 허태인을 보던 은호는 땅으로 내던졌다.
당장이라도 저 머리를 밟아 터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삼켰다.
그렇게 쉽게 죽으면 되겠는가.
조용히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