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6화(276/302)
275화. 흑견
“…이제 어떤 사정인지 알겠죠?”
은호는 태호와 가을, 그리고 지혜를 바라보았다.
셋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환수의 왕이 있다고 했다.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왕이 있다는 걸 모를 위치에 있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디올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환수, 테미카.
이인자라고 하는 그 존재가 이 모든 걸 꾸몄다고 했다.
환수끼리 일어난 싸움에 인간이 꼈다고 해도 되겠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허태인을 심문하지 못했습니다. 난동을 피우더군요.”
지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허태인에게 물어야 은호의 가정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릴 수 있었다.
환수와 손을 잡았다.
이걸 확실히 할 증거가 필요했으니까.
그래야 허태인을 처벌할 수 있었다.
‘…디올린은.’
지혜는 생각하다 주저했다.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으니까.
‘정말, 그 방법뿐일까.’
지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허태인도 죽사발로 만들었을지언정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환수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국장님. 혹시 정신 지배를 막을 수 있게 여러 조치를 했나요?”
은호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지혜에게 물었다.
이제 디올린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디올린이 가진 힘이 상황을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지 모른다는 점 역시 아주 커다란 변수였다.
할 수 있는 건 정신의 힘을 예방하는 길이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환수 관리국이 디올린 손에 넘어가 버린다면 그만큼 최악인 상황은 없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정신 계통의 위협은 언제나 대비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정신 계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그만큼 피해가 크기도 했다.
조치는 이전부터 되어 있었다.
“환수 연구소도 그래. 이것만큼 위험한 건 없잖아? 다만, 디올린의 파동이 조금 특별하긴 했어.”
태호의 대답까지 들리자 은호는 안도했다.
어쩐지 태호의 행동이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했는데, 이미 많은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래.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이상한 거지.’
환수 연구소와 환수 관리국은 자신처럼 환수만 생각할 순 없었다.
사람도 상대해야 했으니까.
“은호 씨. 그러면 디올린이라는 그 환수.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가을은 가장 먼저 밀려오는 의문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해를 억누르는 건 왕이었다.
왕을 죽이면 환수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환수들은 죄다 왕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을 향한 위협이 대체 왜 이득일까.
“모르겠어요.”
나올 말은 하나였다.
“모르겠다고?”
태호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저 당당함으로 보면 이미 목적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일단 추정되는 건 있어요.”
―수많은 종족의 시체가 있고, 그 존재는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어.
하이프가 알려주지 않았던가.
디올린의 힘이 계속 시체를 보고 있었다고.
종족의 시체를 보며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사람이요. 복수를 하고 싶은 모양이에요.”“…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잠깐 생각하던 태호는 말문을 열었다.
복수와 허태인하고 손을 잡은 일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허태인이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의 보스였어. 복수를 하려고 했으면 손을 잡는 건 맞지 않잖아.”“그러니까요. 거기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건 충분히 이해돼요. 하지만 디올린의 행동을 보면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어요.”
은호는 태호의 의문을 이해했다.
자신 역시 그랬으니까.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겁니까? 디올린만의 특별한 행동이 있었습니까?”
지혜는 꽤 깊게 파고들었다.
목표와 행동의 모순.
이걸 이해하지 않으면 디올린에게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약속을 깨고 싶어 해요.”“그러면 야성이 사라진다며?”
태호의 물음이 이어졌다.
“그걸 감수할 만큼 왕의 힘을 소비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에요. 약속이 깬 존재가 많을수록 왕은 그 약속을 위해 한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어요.”“요컨대 시선을 돌리려고 했을 뿐, 왕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건 아니라는 말씀인 거죠?”
지혜는 은호의 대답을 들으며 머리를 굴렸다.
“바로 그거예요. 디올린은 왕을 죽이려고 위협에 가까운 행동은 하지만, 정작 죽이진 않았어요. 디올린은 현재 왕이 죽으면 발생하는 불안정함을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라이엔이 죽으면 환수들이 죽는다.
절대적으로 보이겠지만,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큰 사실이기도 했다.
저 사실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디올린의 불안정함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닐까.
“약속을 깨는 조건은 ‘간절함’으로 보였어요. 보통 간절함이 언제 생기냐고 한다면, 가장 흔한 건 위협 받거나 위험한 순간이잖아요? 혹은 소중한 누군가가 죽었을 때도 있고요.”“…그래서 디올린은 허태인과 손을 잡았다는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환수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놈들은 정화자와 환수 밀렵꾼뿐이었으니까요.”
사람을 이용해 환수들의 절박함을 강제로 만들게 한다.
가을은 자신이 생각하고도 기가 찼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은호의 대답에 가을은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환수들의 생김새는 달라도, 같은 종족이잖습니까.”“디올린의 눈에는 그저 왕을 따르는 종족으로 보이겠죠. 왕은 사람과 잘 지내고자 가장 노력하는 환수니까요.”
은호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왕을 무조건 따르는 환수들을 보며 얼마나 꼴사나웠을까.
“어쩌면 왕의 가증스러움을 밝히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네요. 사람이 본인들을 팔아치우고, 죽인다는 걸 알림으로써요. 사람이 이런데, 그런 사람과 손을 잡은 왕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어요?”“허태인은 그 조건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는 거고?”
태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맞아요. 살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잖아요? 이걸 실천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허태인은 했어요. 아예 다른 종인 환수라도 생명이니 죽이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허태인은 해버렸어요. 얼마나 기뻤겠어요?”
은호는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두 눈에 안광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기에 묘하게 소름 끼치는 미소 같아 보였다.
사람을 죽이려 결심해봤을까.
지혜는 그 표정에 의문을 느꼈다.
“어쨌든, 제 생각일 뿐이에요. 디올린의 생각을 아는 누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은호는 추측은 마무리하며 태블릿을 살폈다.
곧 눈꼬리가 올라갔다.
“현재 디올린은 허태인이 있는 그 장소로 가고 있네요.”“아무래도 상황을 확인하러 가는 모양입니다.”
가을이 입을 열었다.
생각 이상으로 철저한 환수였다.
“디올린을 잡길 원하십니까?”
지혜가 물었다.
인력을 보충하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잡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왕의 곁에 있음에도 우리가 발견도 하지 못한 환수니까요.”
태호가 넌지시 주장했다.
강한 환수였다.
전력도 모르는 상태에서 괜히 습격해 경계심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형하고 의견이 같아요. 디올린은 사람을 향한 경계심이 극도로 높았어요. 이 이상 경계심을 세우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물려 주시면 좋겠어요.”“저도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을은 안경을 올리며 주장을 펼쳤다.
그곳에서 디올린이 맡을 수 있는 건 사람 냄새뿐일 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까.
습격일지, 도망일지, 단순 싸움일지. 이 모든 건 추측뿐일 테니까.
“의견이 그러시니 알겠습니다.”
지혜는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했다.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에 철수시키면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은호는 디올린을 직접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서율아. 그쪽 철수해.”
지혜는 간단히 말하고는 연락을 끊었다.
“믿어줘서 고마워요.”
은호가 미소를 내보였다.
“새삼스럽게 인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서은호 씨를 무척 신뢰하고 있으니까요.”
지혜는 휴대전화를 집어넣으며 은호를 향해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이미 몇 번의 사건을 같이 겪었던가.
이도현을 잡게 해준 은혜도 있는데, 뭘 망설일까.
“국장님.”
“말씀하십시오.”
“기왕 하는 김에 부탁을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편하게 말씀하십시오.”“허태인을 심문할 때 말이에요. 흑견을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봐 주셨으면 해요.”
지혜의 은인이자 존경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아버지와 같았던 전 초능력 관리국의 국장, 문승호.
그 사건은 이도현이 일으킨 권력욕과 질투로 발생했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흑견은 아니었다.
누가 죽이라고 지시를 내렸는지, 이제는 뻔하지 않은가.
디올린이었다.
다만, 정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디올린과 허태인이 은밀히 손을 잡는 모습을 흑견을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냥 그 모든 걸 듣고 싶었다.
허태인이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까.
“멍멍이 형님도, 형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됐잖아요?”
흑견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그 사건의 막도 내릴 차례였다.
* * *
“삐약아.”
은호는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깃털을 고르던 윈디드는 병원 침대에 앉아 있는 은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해 봐, 말썽꾸러기.”“이제 티토를 데려갈 때가 됐지?”“맞아. 회복 속도도 빨라졌고, 정신을 옭아매던 힘을 풀었다고 해도 약속은 별개잖아? 가야 해.”“그럼, 삐약아. 삐약이가 생각하기에 디올린은 지금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아?”“왕에 관해서 말이야?”“맞아. 삐약이가 가장 많이 디올린을 봤잖아.”
윈디드는 그 말에 힘이 빠진 얼굴을 했다.
현실을 봤어도 기분이 늘 이상했다.
“왕께서는 늘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으셔. 내가 아는 정도? 거기서 살짝 많지 않을까.”
‘대부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은호는 라이엔을 떠올렸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성격이긴 했다.
많은 걸 혼자 품에 안고 있기도 했고.
“말썽꾸러기.”
“응.”
“디올린을 어릴 적부터 봤어. 적어도 나한테 있어서는 멋진… 존재였어.”
은호는 아무 말 없이 내려와 윈디드를 안아주었다.
어릴 적부터 봤다면 얼마나 배신감에 치밀어오를까.
밀려오는 충격은 생각 이상일지도 몰랐다.
“나한테 잘해줬어. 왕께 돌아가서 디올린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웃어. 그게 최고의 무기야, 삐약아.”
웃는 얼굴이야말로 감정을 읽기가 제일 어려운 표정이기도 했다.
윈디드는 그 대답에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부리를 몇 번 부딪쳤다.
“말썽꾸러기.”
“응.”
“지금쯤, 왕 주변에 있는 대부분 존재가 디올린 손아귀에 있겠지?”“신경 쓰이는 게 있어?”“있어. 왕께서는 여러 존재 중 나를 제일 가까이하셨어. 모두가 그걸 알 정도였어. 그런데 디올린이 왜 나한테 힘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가장 먼저 표적이 될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아닌가.
“널 이용하려고 할 테니까.”
“…이용이라고?”
윈디드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삐약아.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네가 왕의 마지막 남은 절망일지도 몰라.”“그게 무슨 말이야…?”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은호는 이런 일로 장난도 하지 않았다.
“디올린은 말이야. 아무래도 라이엔이 예뻐하는 널 제일 마지막에 복종시킬 생각이었던 모양이야. 라이엔이 절망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디올린을 어릴 적부터 봤다고 했다.
윈디드가 멋진 존재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잘해준 게 분명했다.
윈디드는 왕의 수호자였다.
혼자만 왕의 수호자인 건 아니었지만, 라이엔이 말하지 않았는가.
―……장악했습니다.
장악했다고.
그러니 윈디드 혼자 남겨둔 게 분명했다.
혹시 몰라 윈디드의 정신도 살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왜… 나인 거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디올린이 그러고 싶어하니까, 너만 남긴 거야.”
“대체 왜…?”
“원래 말이야. 희망이 가득 차 있을 때, 꺾인다면 이보다 더 큰 절망은 없더라고.”
윈디드는 현재 라이엔의 유일한 수호자였다.
유일하다는 말은 곧 가장 큰 불행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는 말과 같았다.
“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왕 주변부터 치울 거야. 나는 디올린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은호는 윈디드를 토닥거렸다.
환수가 살려면 왕의 숨통을 트는 게 가장 급했다.
계약.
‘아산을 찾아가 봐야겠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아닐까.
어쩌면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 * *
은호는 윈디드가 잠이 든 걸 확인한 뒤, 공간을 열었다.
흑견은 산책을 간 건지, 가다가 시비가 걸렸는지 몰라도 태블릿으로 계속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안도하며 아산이 있는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산. 나 왔어.”
은호가 기뻐하며 플라빗이 남긴 꽃을 바라보았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꽃이었다.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올까.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어둠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잘못 봤나 싶어 은호는 눈을 비볐다.
하지만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하자 그대로 몸을 멈췄다.
흑견이 있었다.
‘…어?’
은호의 몸에 힘이 빠졌다.
멍멍이 형님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