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7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77화(277/302)
276화. 흑견(2)
은호는 그저 앞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흑견이 동족의 힘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확실하지 않다고 말을 꺼내긴 했지만, 진짜 흑견이 있을 줄이야.
‘…멍멍이 형님.’
은호는 다급히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이렇게 부르는 걸 싫어하나 지금은 뭘 따질 때가 아니었다.
동족이었다.
살아남은 흑견이었다.
은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두 손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멍멍이 형님을 부르려던 차, 갑자기 흑견이 달려왔다.
그대로 앞발을 뻗어 은호를 밀치고, 어깨를 짓눌렀다.
꽈악!
통증이 밀려왔지만, 은호는 신음을 내뱉지 않았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인간을 부르려고 했나?”
날카로운 소리가 찔러왔다.
천둥이 치는 소리였다.
흑견이 맞았다.
은호는 그 목소리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에 흑견이 움찔거리던 차, 흑견을 향해 풀들이 자라나 날카롭게 뻗었다.
눈을 노리기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아산이 나뭇가지를 뻗어 은호를 안았다.
덤비면 죽이겠다.
이곳에 있는 식물들의 경고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흑견의 귀가 뒤로 천천히 휘었다.
“괜찮아. 정말이야. …고마워.”
은호는 식물들을 다독였다.
이렇게 보호해주다니.
“친구야. 동족을 찾고 있어?”
은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흑견은 뒤로 물러섰다.
멍멍이 형님과 닮았지만, 귀 한쪽이 살짝 잘려있었기에 구분이 쉬웠다.
눈에 콩깍지라도 꼈는지 몰라도 똑같은 흑견이라고 해도 멍멍이 형님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너, 뭐야?”
흑견의 반응에 은호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색달랐다.
멍멍이 형님도 처음에야 자신이 말하는 걸 듣고 놀라긴 했지만, 그 뒤는 대수롭지도 않게 반응했다.
10살 치고 다 산 것처럼 굴길래 오히려 이게 뭔가 싶던 건 자신이었다.
저 흑견은 멍멍이 형님과 달랐다.
경악하고, 경계하고,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서은호야.”
은호가 웃자 흑견은 머뭇거리며 앞발을 떼어냈다.
이상하고, 수상하지만, 위협이 될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너 왜 이름을 알려주는데?”
흑견은 당황한 표정을 했다.
“알려주면, 뭐였더라.”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하도 전에 들어서 잠깐 잊었다.
처음에 멍멍이 형님도 다른 환수에게 이름을 알려주는 일에 기겁했지만, 요새는 아니었으니까.
“복종을 의미하는데, 너한테는 소용없겠지. 넌 내 동족이 아니니까.”“그럼, 나한테 이름을 알려줄 수 있어?”“아니. 너한테 내 이름을 알려줄 순 없지. …그런데 어디 부러진 건 아니지?”
새침하게 굴던 흑견이 조용히 묻자 은호는 솟아오르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자꾸만 멍멍이 형님의 모습이 겹쳤다.
종족으로 타고난 성격일까.
“아니. 전혀 안 아팠어.”“…피 냄새가 나는데?”
“진짜?”
은호는 뒷머리를 만졌다.
손가락에 피가 묻어났다.
“진짜네?”
은호가 눈을 깜박거리자 흑견의 표정이 굳어졌다.
겨우 이 정도로 피가 나다니.
“…너, 힘이 없는 인간이었어?”
흑견의 물음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
흑견은 더 뒤로 물러섰다.
이상했다.
분명히 너무도 좋은 냄새가 났다.
멀리서부터 풍겨오기에 호기심이 들어 다가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힘이 없는 인간이라니.
믿을 수 없었지만, 피가 나는 걸 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힘이 있는 인간은 이걸로 흠집도 나지 않았으니까.
“친구야.”
은호는 흑견에게 다가갔다.
피 찔끔 나는 게 뭐라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반갑고, 기쁜 일에 자꾸만 미소가 흘러나왔다.
“동족을 만나고 싶지 않아? 이제 갓 성체가 됐는데, 아주아주 착하고, 아름답고, 멋진 존재가 있어!”
멍멍이 형님이 얼마나 기뻐할까.
정말 좋아하면 좋겠는데.
갑자기 흑견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족이라는 말에 기뻐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생각이 틀린 걸까.
“…네가, 길들인 거야?”
조용히 으르렁거리는 말에 은호는 머리를 맞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내가… 멍멍이 형님을 어떻게 길들일 수 있어?”
다가가면 멍멍이 형님은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면 멍멍이 형님은 다가왔다.
밀고 당기기도 아니고.
대체 멍멍이 형님을 어떻게 길들일 수 있다는 건지.
멍멍이 형님이 피하든 말든 그냥 자신은 그저 묵묵히 다가갈 뿐이었다.
그래야 나란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맞춰 갈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인간의 말을 믿을 것 같아?”“우리…? 동족이 또 있어?”
은호의 가슴이 떨렸다.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멍멍이 형님도, 라이엔도 얼마나 좋아할까.
“넌 인간이야. 우리한테 물을 자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너희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흑견은 차갑게 반응했다.
금빛을 품은 꼬리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샛노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나는 물을 자격이 있어.”
은호는 그 모습에도 겁 하나 먹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더 자신감 있게 보이도록 팔짱까지 꼈다.
“뭐…?”
“물을 자격이 있다니까? 나는 말이야, 너희의 왕에게 인정받은 인간이니까.”
이건 사실이었다.
라이엔이 자신을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이걸로 증명된 셈이 아닐까.
“왕은 너희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지금까지 몸을 숨긴 거였어? 왜?”
디올린 때문에?
은호는 뒷말을 삼켰다.
디올린이 흑견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몰라 어떤 말이든 조심스러웠다.
“…….”
흑견은 은호가 꺼낸 말에 무척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왕을 만났다니.
인간이?
인간이 어떻게 왕을 만날 수 있을까.
“괜찮아. 멍멍이 형님이 오면 해결될 거야.”
은호는 방긋 웃으며 태블릿을 주웠다.
흙을 털어주었다.
《·°(৹˃ᗝ˂৹)°·》
태블릿의 화면에 뜬 이모티콘을 보자 은호는 잠깐 웃었다.
“미안해요, 태블릿 씨.”
떨어지는 순간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은호는 태블릿의 흙먼지를 마저 다 털어준 뒤 멍멍이 형님을 불렀다.
“멍멍이 형님은 나한테 정말, 정말 소중한 가족이야.”
소환을 누르며 흑견을 보았다.
“그래서 동족을 찾아주고 싶었어.”
하지만 태블릿의 추적에도 잡히지 않았다.
멍멍이 형님이 어둠으로 들어가 버리면 놓치곤 했는데, 계속 어둠에서 살아왔던 걸까.
왕에게마저 모든 걸 숨길 만큼.
“왕은 무사해. 다만…….”
은호가 말꼬리를 늘이자 흑견은 의심하면서도 그 말을 듣고 싶어 했다.
“왕께서 왜……?”
“너희에게 미안해하고 있어.”
흑견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당장이라도 왕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너희를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너희를 위협에서 보호하지 못했다고 말이야.”
은호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흑견은 숨을 들이켰다.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아 보였다.
하지만 무엇하나 꺼내지 못했다.
그저 죄책감이 찬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았다.
“친구야.”
은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왜… 숨어 있었던 거야?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야?”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이 무서웠을까.
아니면 디올린 때문이었을까.
흑견은 은호를 경계했다.
하지만 경계심을 세우고, 또 세워도 저 몸에서 나는 그 냄새가 모든 걸 덧없이 만들었다.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저 인간, 대체 뭐야?’
농담 아니라 저 손길에 닿기만 해도 모든 걸 불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만큼 맹목적인 믿음이 느껴졌다.
이것도 거슬리지만, 오늘 밤은 다른 날과 달리 유독 서늘했다.
사방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뭐가 날 쳐다보는 거야?’
눈가가 좁혀지던 차, 흑견은 눈을 크게 떴다.
몸을 감싸는 털 같은 어둠이 뒤늦게 반응했다.
앞발 하나가 다가와 얼굴을 후렸다.
격렬한 통증에 흑견은 그대로 데구루루 굴렀다.
머리끝까지 날이 설만큼 아팠다.
“…이런 미친.”
이만한 통증을 얼마 만에 느끼는 줄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올리자 그대로 멈춰 섰다.
눈이 커졌다.
인간 앞에 있는 존재는 어딜 봐도 동족이었으니까.
―동족을 만나고 싶지 않아? 이제 갓 성체가 됐는데, 아주아주 착하고, 아름답고, 멋진 존재가 있어!
조금 전 은호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대체 어딜 봐서 착한가.
“미친…….”
흑견은 중얼거렸다.
오늘은 정말 미친 날인 게 분명했다.
평온하고 따뜻한 냄새에 이끌려 갔더니 그곳에 말하는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은 동족을 언급했다.
언제 봤다고 왕에 관해 지껄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정말 동족이 나타났다.
동족은 미친 날답게 인간을 보호하고 있었고.
“……네가, 인간을 건드렸는가?”
멍멍이 형님이 낮게 울부짖었다.
갑자기 은호가 자신을 불렀다.
저 느낌을 싫어해 은호는 웬만한 일에는 부르지 않았다.
가끔 장난을 치긴 하지만, 바로 옆에서 그러는 거라 상관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는 도중에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몰랐다.
은호의 피 냄새마저 났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너.”
흑견이 입을 열자 멍멍이 형님은 날을 세웠다.
동족이고 뭐고, 그런 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은호를 공격했다.
그 사실 하나만 중요해 당장 죽여버릴 기세였다.
“진정해, 멍멍이 형님!”“네가 다쳤다. 저 존재가 너를 공격했단 말이다!”
멍멍이 형님은 언성을 높였다.
등에 흙과 풀이 묻어 있었다.
저 덩치로 은호를 넘어트린 게 분명했다.
저 덩치로 말이다.
어디 부러지지 않았을까.
“동족이잖아, 멍멍이 형님. 겨우 만난 동족
말이야.”
은호가 손을 뻗어 멍멍이 형님을 쓰다듬었다.
멍멍이 형님은 코웃음을 쳤다.
“동족을 만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산책을 하다가 동족의 힘을 발견했다.
동족이 있다는 확신마저 느끼고 싶어 몇 번이고 그곳에 머물렀는지 몰랐다.
설렜던 거겠지.
“…하지만 기대는 언제나 현실 앞에 무너지는 법이다.”
멍멍이 형님은 눈앞의 동족을 보았다.
같은 동족임을 알리듯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은호를 보는 그 시선은 여타 똑같았다.
아니, 더 곱지 않았다.
왜 동족을 만나면 은호를 자연스럽게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멍청한 생각이었다.
‘나도… 날이 다 무뎌졌다.’
은호와 모두가 있는 그 집에서.
은호를 반기는 연구소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어떤 게 현실인지 잊어버린 채.
“물러나라, 인간.”
“멍멍이 형님. 진정해.”“인간은 왜 이렇게 겁이 없는가? 우리를 직접 죽인 건 인간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건 사실이다. 그 분노가 어디로 튀겠는가? 알면서 왜 몸을 사리지 않는가!”
멍멍이 형님은 불만을 털어내며 몸을 살짝 낮췄다.
언제든지 돌격할 준비를 했다.
“나는 인간을 지키겠다.”
“……너, 미쳤어?”
흑견은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시선은 은호에게 향했다.
“…거짓말쟁이.”
이게 길들인 게 아니면 대체 뭘까.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굉장히 위험했다.
그 어떤 인간도 성공하지 못한 걸 해버렸으니까.
“그 입 다물거라.”
멍멍이 형님은 흑견을 사납게 바라보았다.
은호를 다치게 한 것도 모자라 주제도 모르도 입을 놀리고 있었다.
상당히 짜증이 났다.
“넌 내 동족이야. 저 인간이 아니라.”“그건 내가 정한다.”“너, 인간한테 지배된 거야?”
말을 하면서도 우스웠다.
방금 힘이 없는 인간이라는 걸 확인한 뒤였으니까.
알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희가 내게 무얼 해주었는가?”
흑견은 입을 열었다.
왕도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다.
하지만 동족과 달리 사과했다.
자신을 볼 때마다 사과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뿐, 그 한마디에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뭐…?”
“살아 있었다면 찾았어야지. 갓 태어난 새끼들이 세상 밖으로 내몰렸을 때, 어떻게든 찾았어야지.”
흑견은 이어진 멍멍이 형님의 말에 귀를 내렸다.
“너희는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살아, 있었어?”
흑견은 머뭇거렸다.
충격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멍멍이 형님은 기가 막혔다.
몰랐다니.
살아 있었냐니.
“…고작 나보다 1년 더 빨리 태어난 형이 나를 보호해주었다.”
은호는 멍멍이 형님의 말에 눈동자를 움직였다.
“날 보호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살아 있었냐고? …살아 있었다. 살아 있어서 기가 찬가?”
점점 멍멍이 형님의 눈에 적대감이 꿈틀거렸다.
“…그런 말이 아니었어. 정말이야.”
흑견은 어디에다가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로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와, 자신도 모르고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찾았다고! 너희를 찾아다녔어! …수없이, 찾아다녔어!”
인간들이 새끼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대로 학살이 벌어졌다.
살아남은 이들끼리 어떻게든 새끼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봄이 오고.
또 다음 봄이 오고.
그렇게 흘러갔지만,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희망이 얼마나 잔인하게 절망으로 뒤바뀌었던가.
“…정말이야. 우린 너희를 찾아다녔어. 너무도 오래, 찾아다녔어.”
흑견은 아픈 곳을 건드린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그때, 새끼가 살아 있었다니.
가슴에 깊이 박혔던 절망이 희망으로 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인간을 비난하는가?”
멍멍이 형님은 눈가를 좁혔다.
어딜 봐도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왜 비난하냐니. 너희를 이렇게 만든 건 인간이야.”“아니, 새끼였던 우리를 구한 건 인간이다.”
멍멍이 형님은 태호를 떠올리며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너희들은 대체 무얼 쫓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