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8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85화(285/302)
284화. 불러오다
예상대로 디올린이 왔다.
왜 자신에게 왔겠는가.
자신이 디올린에게 건넨, ‘왕을 선택하는 건 자연의 대리자’라는 그 말에 휩쓸렸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디올린이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만나 감정을 쌓아가는 길이었다.
디올린은 급할 게 없었다.
이미 라이엔의 주변을 모조리 차지했는데, 뭐가 무서울까.
‘그래.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는구나.’
은호는 안도하며 모르는 척 눈을 크게 떴다.
“……어!”
곧 큰 소리를 내뱉었다.
잠깐 머리를 쥐었다.
누구더라.
딱 그런 시선을 하다 입을 열었다.
“아! 그때 봤던 그 친구네?”“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디올린의 눈이 살포시 감겼다.
조각이라고 할 만큼 다져진 근육이 숙어지는 고개를 따라 움직였다.
머리 뒤로 미끄럽게 내려온 아름다운 뿔은 다시 봐도 계속 눈길이 갔다.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정말로 나 만나러 온 거야?”
은호는 활짝 웃었다.
디올린의 시선은 은호가 퍼트리고 있는 힘으로 향했다.
저 푸르른 빛.
예사롭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무례를 범해 직접 사과를 드리고 싶었습니다.”“에이, 사과라니. 그런 거 안 해도 돼. 무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솔직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어.”
디올린은 그저 은호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럴 수 있다는 걸까.
“너희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인간이니까 아마 그 점이 엄청 당황스러웠을 거야.”
진심이 섞인 은호의 말에 디올린의 눈가가 아주 살짝 꿈틀거렸다.
말을 섞을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본능이, 저 인간과의 거리를 멋대로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이게 자연의 대리자인가.
불합리한 힘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친구야. 혹시, 그 거리가 편해?”
“…그렇습니다.”
“아, 그냥 물어본 거니까,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아도 돼. 혹시 과자 좋아해? 이거 되게 맛있어. 그렇지, 삐약아?”“맞아요. 이거 맛있어요. 정말 안 드실래요?”
윈디드는 은호가 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며 부리로 꼭꼭 씹었다.
은호가 내뿜는 저 빛은 모든 걸 포근하게 감싸주는 힘이었다.
과연 저 힘이 디올린에게도 영향이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과자가 맛있는 것도 사실이라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막기가 어려웠다.
“아뇨. 괜찮습니다.”
디올린은 이 이상 다가가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그래? 아쉽네. 혹시 마음이 바뀌면 말해줘.”
말을 꺼낸 뒤, 은호는 뒤쪽에 있는 환수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디올린의 등장에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다시 먹고 있어도 돼. 과자 지금 안 먹으면 눅눅해지는데 괜찮겠어?”
“아, 아니!”
단아가 은호의 말에 다급히 대답하자 긴장하고 있던 환수들의 웃음이 터졌다.
디올린은 이 이상한 상황을 바라보며 섣불리 웃지 못했다.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인간이 자연의 대리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데, 이렇게 어울리고 있는 모습은 더 기가 찼다.
‘……!’
디올린은 눈가를 살짝 꿈틀거렸다.
방금 무슨 느낌이 맴돈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야. 거기 뭐가 있어?”
“…아닙니다.”
기분 탓일까.
자연의 대리자 때문일까.
‘내 힘이 풀린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왕의 주변에 있는 이들의 힘을 어떻게 다 풀까.
“혹시 괜찮다면 잠깐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디올린은 은호의 곁에 붙은 환수들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저 존재들이 인간 곁에 우르르 모여 있을 줄은 몰랐다.
단아는 반사적으로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저 존재의 눈동자가 너무 무서웠다.
새빨간 눈동자를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유난히 살벌했다.
수많은 존재의 꿈을 봐왔기에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안해.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해줄래?”
은호는 단아를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친구야. 네 마음이 급한 건 알겠어. 하지만 당장 떨고 있는 친구를 두고 갈 순 없어.”
상대가 디올린이 아니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을 떠나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디올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할 테니까.
디올린의 숨소리가 길어지자 은호 뒤에 숨어 있던 환수들의 떨림이 느껴졌다.
자신과 다르게 들리는 걸까.
“인간이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걸 아십니까?”
디올린이 꺼낸 말에 은호는 잠깐 당황했다.
예로부터 타인과 친해지려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저 말을 꺼낼 줄이야.
‘날 떠보는 건가?’
은호는 슬쩍 윈디드를 보았다.
과자 봉지에 얼굴을 파고들다시피 하고 있기에 새로운 과자를 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먹어야지.’
은호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윈디드는 식탐이 많았다.
저번에 식탐으로 예민해진 뒤, 숨기는 일이 덜해져서 다행이었다.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러웠으니까.
은호가 윈디드를 쓰다듬자 그제야 윈디드가 놀라 고개를 올렸다.
부리에 붙은 과자 가루를 혀로 핥았다.
놀란 눈으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인간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꼭꼭 눌러뒀지만, 은호는 디올린이 숨긴 원망을 느꼈다.
이건 진심일까.
윈디드는 부리를 열었다가 닫으며 지금 상황을 살폈다.
갑자기 심각해졌으니까.
“……음.”
은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친구야.”
“예.”
“조금 조급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무엇이 조급합니까?”“내게 궁금한 게 있을 수도 있지만, 넌 내게 무례를 사과하러 왔다고 했어. 그런데 이런 질문을 꺼내는 건 조급하다는 생각 말고는 들지 않아서.”
은호는 좋게 좋게 말을 꺼냈다.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급하게 느꼈다면 죄송합니다.”
디올린은 사과했다.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은호는 진심을 느끼지 않았다.
떠보려고 한 걸까.
자신이 발끈하길 원했던 걸까.
정황상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가. 그게 궁금해 보였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대답해줘야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그건 너무 넓은 질문 같아.”
“넓다뇨?”
“인간을 원망하던 환수는 정말 많았어. 나도 많이 봤어.”
환수들이 인간 때문에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고, 깊은지 왜 모를까.
그 눈물을 닦아줬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야.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야. 조금만 더 멀리 봤으면 좋겠어.”“무얼 한다는 겁니까? 저는 인간이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너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뭘 보고 도움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정말, 우리를 돕고 있는 게 맞습니까?”“너희가 보기에 그 힘이 미미할 수 있어. 그런데 친구야.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이미,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너희가 느끼는 시간하고, 인간들이 느끼는 시간은 다를 거야. 너희는 급하고, 인간들은 급하지 않을 테니까.”
은호는 씁쓸함을 드러냈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저울대였다.
이곳이 인간의 땅이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고.
“…많이 슬펐겠다. 너는, 더 많은 걸 볼 테니까, 정말로 슬펐겠다.”
이건 동정이 아니었다.
디올린에게 건네는 건 위로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했다.
이 말이 어떤 식으로 디올린에게 닿아도, 은호는 괜찮았다.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너무도 명확했으니까.
디올린을 잡는 일.
“…….”
은호가 건네는 말에 디올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을 다물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처음으로,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다.
마치 위로처럼 들렸다.
“…당신은, 누구의 편입니까?”
디올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기대가 드러났다.
“나는 너희 옆에 설 거야. 너희를 위할 거야. 하지만 편으로 가르는 행동은 하지 않아. 이 땅은 하나고, 너희와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곳이니까.”
디올린은 그 대답에 잠깐 침묵했다.
한 걸음, 은호에게 다가갔다.
인간이 내뿜는 빛이, 양처럼 생긴 저 존재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 주변에서 꿈틀거렸다.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저 힘에 말려들지도 몰랐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디올린은 고민이 들었다.
‘조금만 정신을 건드리면, 되겠는데.’
저 인간은 그렇게 인간 쪽에 서지 않았다.
이건 기회였다.
한 번만 건드릴 수 있다면, 자신이 자연의 대리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래. 딱 한 번만 건드리면 돼.’
사실 이곳에 다른 존재가 있는 게 무슨 상관일까.
자연의 대리자만 손에 넣는다면 모든 걸 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디올린은 은호 주변에 모여 있는 환수들을 보았다.
은호 뒤에 옹기종기 모여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누구일까.
호기심이 어린 눈빛이 하나씩 늘어났다.
은호가 웃으며 한 마리씩 쓰다듬자 웃음이 흘러나왔다.
디올린은 그 평화로운 모습에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 감정은 사치였으니까.
다시 환수들을 보았다.
작은 크기를 지닌 환수였다.
자신이 발을 짓밟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텐데.
‘희생을…….’
생각을 멈췄다.
흔들렸다.
그냥 모든 게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망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저곳에 인간만 없다면 자신이 그리워했던 그 모습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시선이 쏟아졌다.
윈디드였다.
뭔가 들켰을까.
묘하게 시선이 날카로웠다.
“……자연의 대리자여.”
디올린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은호는 디올린을 보았다.
“왜 그래?”
활짝 웃었다.
‘너만 나를 따라오면 된다. 너만 나를 따라오면 되는 거다.’
그러면 그 누구의 희생이 생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제는… 잠깐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디올린이 절실하게 부탁하며 말을 꺼냈다.
저 인간이 자신을 따라오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저 존재들을 죽이지 않게 해주거라.’
은호는 뒤에 있는 환수들을 바라보았다.
다시금 쓰다듬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맞춰줄 때였다.
‘교감의 힘이 저 힘을 막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해.’
모르는 것과 아는 건 달랐다.
독은 막지 못했지만, 단아의 힘을 막아주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정신 계열의 힘을 다른 환수들이 있었다.
여차하면 막아줄 걸 알았다.
은호는 걸어갔고, 그의 행동에 디올린은 안도했다.
불필요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환수들과 단아는 불안한 눈을 하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애들아.”
은호는 웃으며 다른 애들을 달래고 난 뒤에 앞으로 걸어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자신이 펼친 힘의 범위가 다른 애들에게 미치는 정도에서 멈췄다.
대충 스무 발걸음 정도였다.
“네가 커서 애들이 무서워하는 거야. 다른 건 없을 거야. 나도 그런 모습을 자주 봐서 알거든.”
다른 환수들이 흑견에게 그랬다.
하지만 디올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힘은 왜 멈추지 않는 겁니까?”“아, 이거? 애들 중에 이 힘이 필요한 친구가 있어서 그래. 괜찮지?”
“…괜찮습니다.”
디올린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말해도 돼.”“꼭, 알려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왕에 대한 일입니다.”
“왕이 왜…?”
은호는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어 디올린을 바라보았다.
디올린은 앞발을 올렸다.
“이게 더 빠를 겁니다. 잠깐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뭘 하려는 거야?”
“제가 본 걸 자연의 대리자께 직접 전달하려는 겁니다.”“아아. 알겠어. 어서 해줘.”
은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딜 봐도 의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멍청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디올린은 은호에게 다가갔다.
힘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 그가 점점 다르게 느껴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불길했다.
아니, 따스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꽈악.
디올린은 안쪽 볼을 씹으며 정신을 잡으려 애를 썼다.
앞발을 뻗어 은호의 어깨에 올렸다.
은호가 손을 뻗어 디올린의 앞발을 잡았다.
“……!”
디올린이 크게 요동치며 물러났다.
“왜 그래? 괜찮아? 내가 아프게 잡았어?”
“…아닙니다.”
쿵쾅. 쿵쾅.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따뜻한 힘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괜찮아?”
은호는 디올린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디올린은 밀려드는 촉감에 모든 게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 어떤 일을 해도 차갑게 멈춰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디올린은 알 수 없는 저 힘에 저항하며 피를 불렀다.
그 피로 은호의 목에 작은 상처를 냈다.
어떤 느낌도 느끼지 못할 테지.
“…괜찮습니다.”
말을 하는 사이, 디올린은 은호의 상처를 향해 피를 넣었다.
파직.
이상한 소리와 함께 디올린의 피가 녹아내렸다.
디올린의 표정이 빠르게 식어버렸다.
방금 무슨 힘이 발동됐다. 상당히 인위적인 힘 같았다.
치이이익.
은호는 놀라 바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무언가 느리지만,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항했다.’
디올린은 허망한 시선으로 은호를 보았고,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디올린을 쳐다보았다.
‘저항할 수 있는 거지?’
확인됐다.
태호가 준 기계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었다.
은호는 손가락에 힘을 줬다.
“친구야. 너 지금…….”
갑자기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존재를 보자 은호는 말을 멈췄다.
“인간.”
은호는 그 부름에 입을 벌렸다.
흑견을 말렸다.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했는데 기어코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