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8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86화(286/302)
285화. 불러오다(2)
“여기서 뭐 하는 것인가?”
흑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은호에게 말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잖아.”
흑견은 은호의 말을 흘려듣겠다는 듯 귀를 닫은 채 디올린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곱지 않았다.
“너는 왜 여기에 왔는가?”“…내가, 데려왔어.”
윈디드가 슬쩍 대답했다.
“하!”
흑견이 기가 찬 듯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알고 있었지만, 상대가 윈디드였기에 아주 자연스러웠다.
“인간은 왜 여기에 있는가?”“애들하고 놀려고 왔지.”“그럼 너는? 저 병아리가 오란다고 바로 왔는가?”
마지막으로 흑견의 질문은 디올린에게 향했다.
디올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흑견을 본 순간, 현실이 와닿았다.
차갑게 얼어버린 그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저렇게 돌아가고 싶다는 애틋한 그리움.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자신은 이미 너무 멀리 돌아왔다.
디올린은 은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다 이내 웃었다.
“자연의 대리자에게 사과하러 왔습니다. 온 김에 여러 가지를 물어봤고요.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이제 볼일은 끝났나?”
“끝났습니다.”
“그럼, 돌아가거라.”
흑견이 불만을 담아 말하자 디올린은 눈동자를 굴렀다.
뭔가 생각을 한 듯 눈웃음을 쳤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벌써?”
은호가 한 걸음 다가오자 디올린은 뒤로 물러섰다.
묘한 거리 차이에도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흑견이 디올린의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했으니까.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응.”
“다음번에 뵙겠습니다.”
디올린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든 뒤에 은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끈적했다.
곧 디올린은 윈디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데려다줘서 고맙다.”“아니에요. 다음에도 말씀하세요.”
“그래.”
살갑게 웃으며 디올린은 왔던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
굉장히 빨랐다.
마치 바람을 타는 듯 경쾌하고, 가벼웠다.
‘…뭔가를, 눈치챈 건가?’
디올린이 주목한 건 흑견이었다.
자신이 지워버린 그 흑견이, 돌아왔다는 것부터가 불쾌하고 찝찝했다.
왜 하필 자연의 대리자 옆에 있는지 몰랐다.
방금 그 눈빛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경고하는 듯했으니까.
‘눈치챌 리가 없을 텐데.’
디올린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대체 어디에서 눈치를 챘을 수 있을까.
애초에 인간들이, 자신이 조종하던 허태인을 잡았다고 해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아직 허태인에게 심긴 힘이 풀리지 않았다.
환수가 인간을 조종했다는 말을 누가 믿을까.
‘자연의 대리자를 제외하면 말이야.’
찝찝한 건 딱 하나였다.
불꽃을 쓰는 그 존재.
지금 왕의 곁에 있는 바로 그 존재.
누구한테, 뭘, 어디까지 말했을까.
‘왕한테 말했으려나.’
디올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유를 떠나 딱 하나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게 완벽하다는 걸 알았다.
‘자연의 대리자를 손에 넣어야 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아버렸다.
이 힘은 상당했다.
손에 쥐고 있는 것 자체로 굉장한 힘이었다.
애써 자신의 피를 다른 존재에게 처박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들을 주무를 힘이기도 했다.
자신이 손에 넣고 싶던 모든 것이었다.
디올린의 붉은 눈동자에 희열이 어렸다.
‘이걸, 왕은 본인이 손에 넣으려고 한 거야?’
괘씸했다.
자신들을 버린 주제에.
인간과 손을 잡은 주제에.
이런 힘을 손에 넣은 채, 자신들을 얼마나 억압하려고 한 걸까.
아예 인간들에게 팔아버리려고 한 걸지도 몰랐다.
그럴 수 없지.
절대 그럴 수 없지.
디올린은 걸음을 멈추며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은 이내 커졌다.
‘……서은호.’
그 인간을 잡는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 * *
사아아.
디올린이 완전히 갔는지 아닌지 보고 있던 은호는 갑자기 소름을 느꼈다.
몸을 떨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환수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은호?”
“맞아. 갑자기 왜 떨어?”“추워, 은호? 내가 더 달라붙을까?”“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소름이 돋았네.”
은호는 디올린이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환수들에게 고개를 내렸다.
“고마워, 애들아.”
은호가 양팔로 환수들을 다 같이 안자 꺄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린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맞아. 과자만 먹었어. 맛있어, 과자.”“…그런데 좀 무섭긴 했어.”“나도 무서웠어! 눈동자 봤는데, 뭔가 달랐어.”
“그랬어?”
은호가 슬쩍 묻자 환수들은 단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더 잘해줬는데? 너희가 날 지켜줘서 접근을 못 한 거잖아!”
은호의 칭찬에 환수들은 그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그대로 힘에 이기지 못하고, 뒤로 쓰러져 크게 웃었다.
“지금 웃음이 나는가?”
흑견이 핀잔을 날리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애들이 말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거기 들어가거라.”
“어디?”
“할아버지가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친구?”
윈디드의 물음에 흑견은 사납게 째려보았다.
“아니, 친구. 우리 다 서로 알고, 합의하고 그랬잖아? 왜 그렇게 보는 거야?”“멍청하게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었나?”“그 상황에서 내가 나서는 게 더 이상했어, 친구. 디올린이랑 나랑 아는 사이잖아.”
“그건 그래.”
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흑견은 어둠으로 그의 얼굴을 눌렀다.
“당장, 들어가 확인받거라. 영감탱이가 알려줄 테니까, 들어가거라.”“알아. 아는데, 일단, 이거부터 하고.”“또 뭘 하려고, 말썽꾸러기.”
훅 치고 들어오는 윈디드의 말에 은호는 살짝 놀랐다.
당연히 흑견이 먼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태호도 흑견도 반대했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인간. 설마, 그거 아니겠지?”
흑견이 눈을 좁혔다.
“그게 뭐야, 친구?”
윈디드가 묻자 환수들 역시 관심을 가지며 바라보았다.
쏠리는 시선에 은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으음, 그거 맞을걸?”
사라진 식물을 불러봐야 했다.
이름이 지워졌다.
그럼,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인간.”
흑견이 분노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해봐야지. 지금은 뭐든 해봐야 할 때야. 그렇지 않아?”
은호가 웃자 흑견은 어둠으로 은호의 볼을 잡아당겼다.
“자, 잠깐만! 아프다고!”“제발 좀 하지 말거라!”“그래, 말썽꾸러기.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위험한 거 맞지?”
윈디드가 가세하자 흑견은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위험한 거다. 그때, 기억하는가? 인간의 배가 뚫린 날, 인간이 사용하던 힘.”“……잠깐마아안!”
환수들이 깜짝 놀라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하나둘 모여, 인상을 천천히 썼다.
“은호! 이러면 혼낼 거야!”
“나도 혼낼래!”
“배에 구멍 나면 큰일 나!”
분명 다들 무서운 표정을 짓는 것 같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이렇게 혼내는 건 반가웠기에 은호는 오히려 실실 웃었다.
“아직 인간은 정신 못 차렸다.”
“애들아.”
은호는 여전히 웃으며 모두를 불렀다.
“아까 그 존재가 어디까지 힘을 퍼트렸는지, 알 방법이 없어. 설령, 내가 찾는다고 해도 그 힘을 푸는 건 별개야.”
자신에게는 정신 계열의 힘이 없었다.
아예 다른 계열의 힘이었다.
“너희가 날 도와줘야 해.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
은호가 부탁하자 환수들은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드러내며 반겼다.
“우리가 은호를 또 돕는 거야?”
“진짜아?”
“나는 좋아! 또 도울래! 또 돕고 싶어!”
이 말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몰라도 꼬리가 붕붕 흔들릴 정도로 기뻐했다.
은호는 멈칫거렸다.
이게 뭐라고.
오히려 방금 디올린을 본 뒤라 위험하다는 걸 알 텐데, 주저하지 않았다.
“…고마워, 애들아.”
은호는 웃음기를 살짝 지운 채 정말로 고마움을 드러냈다.
은호의 표정을 본 환수들은 서로를 보며 실실 웃었다.
“은호가 부끄러워한다? 그렇지?”“맞아. 부끄러워해!”“우린 은호를 더 많이 도와줄 건데? 은호는 우리 집을 다시 찾게 해줬어.”“나한테는 무서운 존재도 쫓아내 줬는데?”“나는 은호가 온종일 고민을 들어줬어!”
하나씩 말이 늘어났다.
고마움이 몽글몽글하게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고마워. 정말이야.”
은호가 따뜻하게 바라보자 환수들은 밀려는 느낌에 온몸이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왜 갑자기 쑥스러운지 몰랐다.
“으, 은호. 빨리 해.”“응. 뭘 하려는지 몰라도 도와줄게.”
환수들이 은호를 재촉하자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태블릿 씨.”
은호는 태블릿을 불렀다.
태블릿이 날아왔다.
“환수들이 원래 살던 세계 식물들을 불러올 수 있잖아요?”《그렇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태블릿 씨. 그건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н´*).》
“화내지 말고요.”
《물어보십시오.》
“사라진 식물에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돼요?”
《…….》
“대답해줘요. 알고 있잖아요?”《이름은 몹시 중요합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는 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이 땅에 영구적으로 두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거죠?”
은호는 감을 잡았고, 곧 입꼬리를 올렸다.
이름을 바꾼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닐 테지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렇습니다.》
“고마워요, 태블릿 씨.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태블릿은 은호의 물음이 더해지자 불안한 표정을 띄웠다.
“정신 계열에 반응하는, 사라진 식물이 있나요? 있다면 알려줄래요?”
환수들이 있던 세계는 이곳과 달랐다.
라비의 아버지가 심장이 멈추려고 할 때 이를 늦출 수도 있었고, 땅에 박힌 디올린의 힘을 빼낼 수도 있었다.
그런 식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단아 때와 달랐다.
단아도 정신 계열이지만, 꿈의 열매라는 걸 가져왔기에 나무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정신은 달랐다.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오고 싶다고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해당 식물을 검색합니다.》《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
은호는 쏠리는 시선을 받으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건 정말 누가 말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을 찾았습니다.》《불러오겠습니까?》
“…이게 바로 되는 거였어요?”
은호는 깜짝 놀랐다.
굉장히 긴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가.
《이 땅과 계약을 체결해 생긴 기능입니다.》
왕은 오랜 친구이자 원래 있던 세계의 나무였던 식물을 통해 약속을 유지하고 있었다.
왕도, 그 나무도 너무 많은 약속을 유지하게 힘들던 차였다.
약속이 사라지면 환수들은 더는 야성을 누르지 못하게 되기에 왕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왕을 돕기 위해서 이 땅과 계약을 체결했다.
나무와 왕이 감당하던 힘을 이곳 식물 모두가 감당하게 되면서 왕은 그 계약으로 자유를 얻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니.
《사라진 식물을 부르는 힘은 이름이 없는 그 나무가 품은 힘을 통해 온 겁니다. 쉽게 말해 이미지를 서은호 님에게 쏘아 보낸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서은호 님은 그 이미지를 가지고 드루이드의 힘을 통해 생명을 틔운 겁니다.》
‘……어쩐지.’
사라진 식물을 부를 때마다 왕의 오랜 친구인 그 나무가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그랬던 거라니.
《아주 작은 조각을 가지고 생명을 틔운 셈이라 서은호 님에게 큰 충격이 가는 겁니다.》
충격이라는 말에 은호는 바로 눈가를 좁혔다.
슬쩍 주변을 바라보았다.
“…저 불안한 눈을 보거라. 또 이상한 걸 꾸미는 거다.”
흑견이 말하자 윈디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준비해야 하는 거 맞지, 친구?”
무슨 준비를 말하는지 알기에 은호는 머쓱했다.
병원으로 갈 준비일지도 몰랐다.
《계약으로 그 나무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서은호 님의 힘으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더 많은 힘을 서은호 님에게 보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게 이 기능입니다.》《다만, 부담이 덜었을 뿐, 부담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시겠습니까?》
“…해야죠.”
은호는 조금 전보다 자신감 없게 말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봐야지.
“해요. 갑시다.”
은호는 숨을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