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8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89화(289/302)
288화. 너를 데려가려고
“…미안해요, 국장님. 형.”
은호는 사과했다.
자신이 두 사람을 집에 불렀다.
꽤 중요한 자리라 편안하게 올 수 있게 공간도 열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무릎에 라비하고 레비아탐이 있었다.
절대로 나가고 싶지도 않고, 나갈 생각도 없는 아주 당당한 표정 그 자체였다.
목 쪽에는 일렉트가 매달린 채 앞발로 자신의 볼을 붙잡고 있었다.
튀어나온 일렉트의 입이 심기 불편함을 드러냈다.
“지금, 라비하고 레비아탐, 그리고 삐죽이가 토라졌거든요.”“무슨 소리야?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거지.”
꼬맹이들이 있어야 비로소 은호의 집에 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꼬맹이들이 왜 토라진 건데? 토라질 이유가… 있나?”
태호의 물음에 은호는 잠깐 멈칫거렸다.
아직 디올린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 태호가 디올린의 힘을 저항할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 신경 쓰일까 봐, 일부러 하지 않았으니까.
“은호 씨인데, 토라지는 일도 있습니까?”
지혜 역시 묻자 은호는 살짝 난감했다.
지혜도 허태인 일로 바빠 말하지 않았다.
“…안 데려가고, 놔두고 갔다고요.”
은호는 머쓱한 듯 대답했다.
라비는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 레비아탐까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렉트까지 삐질 줄이야.
이미 몇 번이나 사과했다.
“그냥 토라진 게 아니얌.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돔. 그래도 나는 같이 가고 싶었엄!”
레비아탐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꼬리로 은호의 무릎을 아주 살짝 쳤다.
여전히 화가 났다는 걸 알리는 듯했다.
“일렉트랑 같이 은호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엄!”“그럼! 아주 오래 기다렸어. 오래, 오래 말이야.”
일렉트는 입꼬리를 뒤틀며 앞발로 은호의 볼을 찔렀다.
“이 몸도 기다렸느니라!”
라비의 입꼬리마저 아래로 내려갔다.
시선은 은호 뒤에 있는 흑견을 향했다.
빼꼼히 바라보다 흑견과 눈이 마주쳤다.
왜 쳐다보는가.
딱 그 시선이라 라비는 괜히 주눅이 들어 그대로 은호에게 기댔다.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은호는 라비부터 일렉트, 레비아탐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단속했다.
미안해도 귀여워서 나는 웃음은 별개였다.
‘섭섭함을 느낄 만해.’
자신도 얼마 전에 푸른 소라를 입에 문 채 디올린의 힘을 확인하러 떠난 환수들을 보며 알았다.
그 씁쓸함이 얼마나 큰지.
이번에는 꼬맹이들의 섭섭함이 더 많이 컸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오늘 엄청 중요한 자리인데, 나가라고 말한 적도 없지?”
“그렇다.”
라비의 입꼬리가 여전히 내려갔지만, 꼬리는 힘차게 움직였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 일단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은호는 지혜와 태호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디올린하고 만났어요.”
“…….”
두 사람은 잠깐 할 말을 일었다.
디올린이 누구인지 은호를 통해 들었다.
사실상 이 모든 사건의 진짜 범인이었다.
무슨, 옆집 친구를 만나듯 이야기를 꺼내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환수들이 디올린의 힘을 최대한 지우고자 움직이고 있어요. 아마 국장님께서 환수의 비정상적인 이동을 확인하고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이미 환수들의 행동을 감지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라 소장님한테도 말씀을 드렸는데, 그런 이유였다니.”
지혜가 꺼내는 말에 은호는 자신의 대답이 늦었음을 알았다.
푸른 소라의 이름을 바꾸고, 디올린을 만난 뒤,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온종일 자버렸다.
“…미안해요, 국장님. 전달하는 게 늦어졌어요.”
은호의 사과에 지혜는 두 손을 흔들었다.
“아뇨.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도 아직 뭐가 진행되기 전에 벌어진 거라 괜찮습니다.”“그래. 우리 쪽도 아직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어.”
태호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지금 정부도, 자신들도 다 정신이 없었다.
허태인이 불러온 일로 정부가 날을 세웠고, 상당한 인력이 그곳에 쏠린 상태였다.
은호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 괜히 머쓱해 입가를 핥았다.
“그리고 왕은 이제 자유로워요.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정부하고 한 계약이 좀, 신경 쓰이긴 해요.”“그건 내가 협상을 해볼게.”
바로 나오는 태호의 대답에 은호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협상이… 되나요?”
“당연하지. 다만, 이번 일을 어디까지 축소해서 이야기해야 하는지가 조금 문제인데, 일단 이건 내가 줄을 잘 타볼게.”
태호는 말을 끝낸 뒤, 자연스럽게 지혜를 보았다.
이렇게 모인 이유는 지혜가 허태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말 때문이었으니까.
“네블라의 환상을 통해 허태인을 심문했습니다.”
지혜는 네블라의 힘을 사용했다.
환상을 위한 디올린의 외형은 은호가 제공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는 게 몹시 중요했으니까.
“확인한 결과 정화자도, 환수 밀렵꾼도 전부 허태인의 손아귀에 계획된 일이었습니다.”“그게 무슨 말입니까?”
태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계획된 거라니.
“그 모든 게 허태인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곳이란 소리죠. 물론, 그 뒤로 정화자와 환수 밀렵꾼을 실제로 하려고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요.”
은호는 지혜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허태인의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디올린은 이 일에 가만히 있었을까.
“가만히 놔둬도 생겨났을 게 분명한 이 과정을 누군가 주도했다는 건, 애초에 환수들이 인간을 미워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다는 말과 같지 않겠습니까?”
지혜는 굳어진 표정을 하며 은호를 보았다.
왜 그렇게 허태인이 설계했냐고 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건 마나석이었다.
“역시, 마나석 때문입니까?”
지혜의 물음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아마 짐작한 대로 마나석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 뒤로 디올린이 접근했고, 반갑게 여겼겠죠. 디올린에게 지배당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한 거예요.”
허태인에게 디올린은 그저 짐승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었다.
“그 생각, 맞습니다. 짐승 새끼라고 말을 하더군요. 얕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지혜는 은호의 주장에 강하게 동의했다.
환영이기에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을 숨길 수 없을 테지.
은호는 고개를 끄덕거린 채 다음 말을 꺼냈다.
“디올린은 허태인이 깐 판에 발을 올려두려고 한 게 아닐까 싶어요.”“그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거지?”“맞아요, 형. 약속이 깨진 환수는 타고난 야성을 억누르는 힘이 사라져 난폭해져요. 왕을 원망하고, 인간을 더 증오하는 상황이 된다고 보면 돼요. 디올린은 지금까지도 환수들의 약속을 깨고 있으니까요.”
은호는 왼손과 오른손을 들었다.
두 손 모두 주먹을 쥔 채 꽈악 힘을 주었다.
“이렇게 서로 팽팽하게 만든 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은호의 질문에 지혜도 태호도 표정이 굳어졌다.
“크나큰 싸움이 벌어집니다.”
“……전쟁이지.”
“그게 디올린이 바라던 일이었어요.”
“왜? …대체 왜?”
태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디올린이 약속이 깨진 환수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이렇게 되어야 환수들이 왕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테니까요. …모두가 약속을 깬 존재가 되는 거예요.”
묵직하게 꺼내는 은호의 말에 라비와 레비아탐이 기겁했다.
“…진짬?”
레비아탐은 앞발을 꼬옥 쥐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막지 못했다.
“왜, 왜 그러는 것이더냐?”
라비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은호는 굳어버린 일렉트부터 쓰다듬었다.
손길을 닿아서야 일렉트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나는… 약속을 깰 마음이 없어. 나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어. 더는 어딘가에 갇히는 것도 싫고, 뺏기는 것도 싫은데?”
화마저 나는지 일렉트의 단춧구멍 같은 눈동자가 이내 가늘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막고 싶은 건 바로 이거야. 이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것 자체가 몹시 불쾌하니까.”
은호는 미안한 표정으로 꼬맹이들을 보았다.
폭시는 어쩔 수 없이 듣게 됐지만, 나머지 꼬맹이들은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은호가 싸우는 상대였엄?”
너무도 거대한 걸 보듯 레비아탐이 입을 벌렸다.
“맞아. 내가 싸우는 상대야.”
은호의 대답에 레비아탐은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주먹을 꽉 쥐어서는 허공에 몇 번 휘둘렀다.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웜! 진짜얌! 오히려 더 힘이 남!”
“정말……?”
은호는 살짝 놀랐다.
바로 고개를 돌려 라비를 보았다.
뭔가 거대한 걸 본 듯 귀가 머리 뒤에 붙어 있었다.
겁에 질려 있었다.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누굴 싫어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아서 좋은데? 나는 내가 세운 울타리를 건드는 존재들은 다 싫어!”
화를 내고 있었다.
반응이 각각 달랐지만, 은호는 안도했다.
생각보다 꼬맹이들은 훨씬 더 강했다.
라비를 쓰다듬으려던 차, 갑자기 라비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나는 갑자기 무섭지 않다! 나한테는 아주 큰 힘이 있다는 걸 떠올렸느니라!”
갑자기 유성우가 내리던 밤하늘이 생각이 났다.
자신의 힘은 무척 거대했다.
“나도 다, 다 날려버리겠다!”
라비는 크게 웃었다.
‘맞네. 다들 다 강했지?’
은호는 마음도, 힘도 강한 꼬맹이들을 자랑스럽게 보았다.
“이렇게 들어서 너무 좋암. 은호가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싫엄.”“걱정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은호가 무슨 마음인지 알암. 그런데 은홈. 나는 말이얌. 은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더 강햄!”
레비아탐은 주눅 들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눈이었다.
흑견이 마음에 들어 하는 눈.
“은호 일이라면 그게 뭐든, 관여하고 싶어. 알고 싶어. 힘이 되고 싶어.”
일렉트는 입을 내밀지 않았다.
은호는 전기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니 이 마음은 당연한 거였다.
“나는… 좀 무섭느니라. 뭔가 복잡해서 머리도 아프다. 그래도, 나도 은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라비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모든 걱정을 날리는 웃음이었다.
“그렇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우리 꼬맹이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고 있는데 말이야.”
은호가 활짝 웃자 꼬맹이들도 덩달아 웃었다.
‘그래도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면 좋겠는데.’
은호는 셋 다 안아주며 얼굴을 살포시 묻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와중에 디올린의 일은 몇 번이나 생각해도 참 서글펐다.
“…은호 씨. 부러운 행동은 그만하고, 이야기 계속할까?”
질투를 섞은 태호의 말에 은호는 크게 웃고 말았다.
“형도 안을래요?”
태호는 고민도 없이 두 손을 뻗었다.
“꼬맹이님들이 와주신다면야 공손히 안을게.”
하지만 꼬맹이들은 미동도 없었다.
* * *
호록.
은호는 차를 마시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냉기가 닥치는 듯 김이 어려 있었다.
은호 주변에 웅크려 날개를 솎아내던 윈디드는 고개를 올렸다.
“고민이 많아져, 말썽꾸러기?”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아지지. 삐약이도 많지 않아?”“많아. 뭐라고 해야 하나. 일상을 빼앗긴 것만 같으니까.”“이미 빼앗겼다고 생각해. 그래서 아주 분하면서도, 되게 혼란스러워.”“말썽꾸러기는 어떤 게 혼란스러울까?”“디올린이 환수라서.”
은호는 컵을 살짝 물었다.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을 텐데.
“이것저것 생각이 들어. 내가, 디올린을 좀 더 빨리 만났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하나 싶고.”
은호의 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또 한 편으로는, 참 밉네. 행복한 일상을 방해받는 그 더러운 기분을 또 느끼고 말았으니까.”
겨우 찾았는데.
또 흔들리고 있었다.
은호는 턱을 살짝 괜 상태로 윈디드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그런 고민이 들어.”“…상당히 복잡하네.”
“삐약이는?”
“음, 주변을 더 열심히 봐야겠다는 생각하고, 왕께서 더 행복해진 게 보여서 기쁘다는 생각하고, 디올린을 얼른 잡아서 바비큐… 먹고 싶다는 생각도 해.”
마지막에는 살짝 흐렸다.
은호는 머쓱해하는 윈디드를 보며 이빨을 내보이며 웃었다.
“진짜 좋은 생각이다, 삐약아! 다 끝내면 야채도, 나무껍질도, 고구마도, 꿀도, 그리고 고기도 왕창 사서 다 같이 먹어야지.”
얼마나 행복할까.
은호는 차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들려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움찔거렸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인간은 아니야.”
윈디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을 바라보았다.
이 근방에 살지 않는 환수일까.
은호는 문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열었다.
“…네가, 은호야?”
“맞아. 내가 은호야.”“날, 도와줘, 은호.”
환수가 애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