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화(29/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29화
29화. 나비에 한눈팔면 안 돼요(6)
장난기가 섞인 미소에 태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흘러가는 분위기상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니?”
지금 환수들에게 펼쳐진 일은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상황이었다.
태호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은호가 말하는 걸리는 부분이 무엇인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형은 이런 상황이 익숙할 거예요. 맞죠?”
“맞아.”
“그러니까 내 눈에는 잘 보이는 게 아닐까요?”
자신은 이곳이 아직도 낯설었으니까.
은호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선글라스를 살짝 올렸다.
* * *
마음에 걸리는 건 바로 환수 관리국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징계를 받아야 하는 집단임에도 환수의 납치와 감금, 불법 매매 등등 여러 사건을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이상했다.
마치 이번 일을 진작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업을 위해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회사끼리 알게 모르게 내부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를 목격하곤 했다.
그때야 영업의 목적을 위해 그냥 눈을 감았지만, 이번에는 왜 그렇게 할까.
“뭐가 수상한지,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 알고 싶다.”
주변을 살피던 흑견이 걸어가며 물었다.
은호가 다른 인간과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반쯤 잘린 내용이라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궁금했다. 다름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가장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하는 집단이 제일 조용하잖아? 나는 이게 너무 수상하단 말이지.”
다른 사람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환수 관리국의 무능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애초에 기대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보통 이러면 뻔하더라고.”
“뻔하다?”
“환수 관리국이 저놈의 뒤를 봐주는 결과가 나올 거니까.”
은호는 차 문을 열었다.
덩달아 남자의 시선이 은호에게 쏠렸다.
놈은 손목에 수갑 대신 두꺼운 손목 밴드 같은 장치를 단 채 그가 앉은 의자에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겁대가리 없이 설칠 수 있다는 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건데.”
은호는 그 옆으로 앉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이토록 오만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누구예요? 일단, 환수 관리국 사람은 맞으니까 이름만 부르면 됩니다. 간단하죠?”
은호는 미소를 흘린 채 턱을 살짝 괬다.
“……이 새끼.”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아저씨. 그러다가 이빨 상하는데?”
“이 미친 새끼! 나를 이곳에 처박아둔 놈이 찾아와서 이제 다 불어보라고 하면 내가 지껄일 것 같아?”
욱하며 내지르는 대답에 은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어쩐지 인상이 서늘하게 바뀌었다.
“진짜 누가 있나 보네요?”
“……?”
“괜찮아요. 이걸 확인하러 온 거니까요. 아저씨가 그 사람 이름을 알 리가 없고, 솔직히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예상이 맞아서 너무 다행인데요?”
“…하.”
남자의 입꼬리가 길어졌다.
아주 재밌었다.
보통 놈이 아닌 건 분명했다.
“아저씨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보는 건 솔직히 간단해요.”
“지껄여 봐. 지금 몹시 흥분되니까.”
“아저씨를 데려가는 놈이 범인이죠. 입막음을 당하게 될 테니까요. 애초부터 아저씨는 그 자식한테 있어 지갑이었겠죠. 언제 버려도 상관없는 지갑이요.”
애초에 범인과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없었다.
저들은 범죄자였고, 환수 관리국에 있는 협력자는 그저 돈을 뽑아 먹어볼 요량으로 뒤를 봐줬을 테니까.
“다음에 어디서 볼까요? …음, 다음에 볼 수 있으려나?”
은호는 턱을 괸 손을 풀었다.
알고 싶은 건 알아냈다. 이 이상은 욕심이었다.
저놈의 이름.
저놈의 행적.
이 모든 건 차근차근 하나씩 밟아가면 그뿐이었다.
“어디 한번 잘해봐요.”
“…잠깐만.”
“왜요? 흥분된다면서요? 계속해요. 어디까지 흥분되는지 기대되네요.”
보일 리가 없겠지만, 은호는 웃었다.
천천히 비웃음으로 뒤바뀌며 주저 없이 차 문을 박차고 열었다.
“웃기고 있네. 넌 내가 필요하잖아?”
뒤에서 들리는 말에 은호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아,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네요.”
은호는 배가 당겨 겨우 웃음을 참았다.
“아저씨. 말은 똑바로 해야죠. 내가 필요한 건 아저씨잖아요. 슬슬, 쫄리죠?”
출장이나 파견을 위해 타 회사로 떠돌다 보면 이래저래 소문을 듣기 마련인데, 회사 비리를 혼자 덤터기를 쓰고 쫓겨나는 등 꽤 극단적인 일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국가에서도 쫓고 있는 범죄자인 환수 밀렵꾼이 보호종으로 지정된 환수까지 건드렸다.
단순히 이 죄만 가지고 갈까.
없는 죄까지 더해져 다시는 세상에 발을 내디딜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왜 아저씨를 살려줘야 해요? 살만한 짓을 해야 살려주죠.”
아마 환수들도 저놈처럼 말했을 테지.
살려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말했을까.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요. 곧 옆에 친구도 붙여줄게요.”
은호는 손을 흔들어주며 차에서 내렸다.
“잠깐만…….”
쾅.
차 문을 거칠게 닫으며 밖으로 나오자 흑견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냥 대화만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안다.”
그제야 흑견이 몸을 웅크리자 은호는 웃었다.
‘역시 우리 멍멍이 형님이야.’
은호는 고개를 돌려 흑견 옆에 앞발로 땅을 파는 듯한 흉내를 내는 폭시를 바라보았다.
“너도 기다려준 거야?”
“……있잖아.”
“뭐든 말해도 돼.”
은호의 시선에 폭시는 발톱으로 땅을 긁었다.
이내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들을 물렸기에 주변에는 자신들뿐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폭시는 꼭 하고 싶었다.
“…나, 저 인간 때려도 돼?”
“물론이지.”
은호가 주저 없이 차 문을 열자 폭시가 당황했다.
“……진짜로?”
“지금이 기회인데, 이거 놓치면 땅치고 울걸?”
은호가 실실거리자 당황한 건 자동차에 묶여 있는 남자였다.
밖에 흑견과 폭시가 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남자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자신들이 그토록 잡으려고 했던 두 환수가 이렇게 나란히 있다니.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흑견과 폭시에게 꺼냈던 목소리와 다른 음성이 잔잔하게 깔렸다.
“친구야. 지금이야.”
은호는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고, 폭시는 달렸다.
“너는 아주, 아주 나쁜 인간이야!”
자동차 의자를 마지막 발디딤대로 이용해서는 몸을 틀었다.
그대로 뒷발로 남자의 얼굴을 찍었다.
폭시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 * *
“…은, 은호 씨?”
태호가 차에서 내리려던 은호를 불렀다.
“네? 무슨 일이에요?”
은호의 눈빛이 너무도 맑았다.
방금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쏟아낸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환수 관리국, 여기 털 방법 있어요?
“방금 환수 관리국을 털… 방법을 묻지 않았어? 내가 잘못 들었나?”
“잘 들었는데요? 그래서 가을 씨가 찾아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은호는 먼저 내린 가을을 시선으로 쫓았다.
“아니, 아니. 이유를 말해줘야지, 은호 씨. 이 아저씨, 아니, 형이 보기보다 심장이 약해. 이미… 이미, 심장이 터질 것만 같고.”
태호의 무릎에 폭시가 웅크려 있었다.
단지 귀를 쫑긋거리기만 했는데 태호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그대로 두 손을 올려서는 바짝 힘을 주었다.
살짝 가늘어진 은호와 시선을 마주한 태호는 애써 진정하며 꽤 진지하게 주장했다.
“아무리 환수 관리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막 그렇게 뒤지면 큰일이 나. 목에 졸린 넥타이만큼이나 답답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단 말이지.”
“충분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환수 밀렵꾼이 환수들을 잡아가든 말든 막지도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라면 이참에 고치든 없애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은호가 상큼하게 웃자 태호의 눈이 커졌다.
꽤 날카로운 말이 아닌가.
“이렇게 무능한데 대체 왜 안 사라질까요? 형은 이게 이상하지 않아요?”
넌지시 던진 은호의 말에 천천히 태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지금, 환수 관리국과 환수 밀렵꾼이 서로 유착관계라는 거야?”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은호는 손을 뻗었다.
“환수 연구소의 설태호 소장님이 나서서요. 나는 일반인이라 좀 어렵네요. 너무 바쁘면 이름만 빌려줘도 돼요. 물론, 뒤는 책임 못 지고요.”
“……은호 씨.”
“좀 멋졌나요?”
“정체가… 뭔지 물어봐도 돼?”
“그러니까요. 정체가 뭘까요?”
은호는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냥 이래저래 구르면 되더라고요.’
블랙 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웬만한 정신과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는 그렇게 자신을 한계로 밀어 넣어야만 했고.
그런 은호의 뒷모습을 보며 태호는 본인의 입을 때렸다.
지금 은호는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렸지 않은가.
하지만 꽤 냉철한 주장에 저절로 입이 움직여버렸다.
‘대체… 뭐하던 사람이었을까?’
품에서 따뜻한 온기가 갑자기 사라지자 태호는 고개를 내렸다.
폭시가 어느새 차에서 내려 은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자 태호는 머리를 붙잡으며 간절히 외쳤다.
“……폭시야아.”
* * *
“…있잖아, 다음번에는 은호 무릎에 누워도 돼? 나, 꾹 참았단 말이야.”
폭시는 은호의 뒤에서 웅얼거리듯 말을 꺼냈다.
“태호 형이 좋아서 간 거 아니었어?”
“아닌데? 혹시, 혹시 질투했어?”
폭시가 은호 주변으로 껑충껑충 뛰며 장난스레 웃었다.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물론이지. 널 위해 내 무릎을 비워뒀는데, 주인이 오지 않았잖아?”
순간, 그림자가 요동치는 게 보였다.
은호는 밀려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질투쟁이네.’
“…….”
폭시는 걸음을 멈춰 은호를 바라보았다.
덩달아 은호 역시 걸음을 멈춰 폭시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방금 되게 기뻤는데, 진심이면 좋겠어. 더는 거짓말은 싫어.”
“난 늘 진심이야.”
은호는 쪼그려 앉아 폭시를 바라보았다.
손바닥으로 폭시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턱을 괬다.
“나는 여기에 살지 않고, 여기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거든? 친구들을 찾을 때까지 나하고 같이 살아도 되는데?”
“……정말? 정말이야?”
“…아차차. 잠시만.”
은호는 그림자를 손등으로 두드렸다.
“거기, 질투심 많은 멍멍이 형님. 혹시 괜찮아?”
“…어차피 인간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는가.”
“멍멍이 형님이 싫다면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야. 나는 언제나 멍멍이 형님을 존중하니까.”
은호의 진지한 눈을 보던 흑견은 그림자에서 나와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마음대로 해라.”
금빛에 휘감긴 꼬리가 덩달아 흔들렸다.
은호가 키득거리자 폭시가 다가와 살며시 속삭였다.
“질투쟁이인데?”
“정확히 봤는데? 그래서 귀엽잖아.”
“……?”
폭시는 살짝 놀랐다.
귀엽다기에 흑견은 너무도 컸고, 무서운 존재였다.
“물론, 너도 그렇고.”
은호가 부드럽게 웃자 폭시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 빨개졌다?”
* * *
“…친구들아!”
은호는 손을 흔들며 환수들에게 다가갔다.
분명 내린 지 1시간은 넘었을 텐데, 아직도 뭉쳐서는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아직 많이 무서워? 그럼, 나랑 손잡고 원하는 곳에 같이 갈래?”
은호의 물음이 이어지자 환수들은 그제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단지 눈에 보였을 뿐인데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지 몰랐다.
“…여기도 무서운 곳인지 알았어.”
햄피아가 달려와 말을 꺼냈다.
“여기, 너희를 위해 태호 형이 만든 곳이야. 넓고, 너희가 머물기에 딱 좋을 환경을 고민해서 만들었어.”
은호는 뒤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태호와 가을이 보였다.
“계속 여기에 머물러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야. 언제든지 원하는 곳에 가도 괜찮아. 하지만 날 믿고, 여기 있을 때만큼은 편안히 머물다 갔으면 좋겠어.”
은호가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지금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알고 있었다.
“여기에 사실 이미 머물고 있는…….”
깜박.
갑자기 가로등에서 빛이 퍼졌다.
‘……어?’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 아닌가.
은호가 감았던 눈을 뜨자 무언가 사사삭 달려와서는 그의 목에 휘감겼다.
“서은호!”
일렉트가 단춧구멍 같은 눈을 감으며 웃었다.
“전기 냄새가 나. 맛있는 냄새!”
“……와. 어떻게 알았어? 선물 가져왔지.”
은호가 씩 웃으며 가방에서 토템을 꺼내던 차, 익숙한 목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서은홈!”
“레비아탐!”
은호 역시 활짝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레비아탐이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은호의 품에 안겼다.
“어서왐! 엄청 기다렸엄!”
“치료 잘 받고 있었어?”
“응! 나 이제 입을 다물고 있으면 거품이…….”
뽀글.
거품이 당당하던 레비아탐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은호와 레비아탐의 눈이 커졌다.
“거품이…….”
“진정해라.”
흑견이 앞발로 거품을 누르자 ‘푸쉬쉬’하며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은호가 주저앉자 어디선가 웃음이 들려왔다.
“…푸핫.”
햄피아가 웃었다.
그 웃음은 다른 환수들에게도 번져갔다.
저 모습을 보고 대체 뭘 더 긴장할까.
이미 이곳에 있는 환수들이 저 인간을 인정했는데.
“여기 물 냄새가 나는데, 혹시 작은 호수라도 있어?”
햄피아가 묻자 은호는 다급히 태블릿을 꺼냈다.
《주로 물가 근처에서 살며 물속보다는 물 밖에서 생활합니다.》
“형! 계곡이나 호수 있어?”
“있어!”
태호의 말에 은호는 햄피아에게 손을 뻗었다.
“가자, 손잡아줄까?”
“됐어.”
햄피아는 비틀거리며 공중에 날아서는 작은 앞발로 은호의 뺨을 도장 찍듯 가져댔다.
“…고마워, 인간.”
“…….”
은호는 다시 땅으로 내려온 햄피아를 바라보며 입술을 아주 잠깐 다물었다.
론과 달랐지만, 드디어 같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공허함만이 가득하던 눈빛에 빛이 어렸고, 살며시 웃는 그 미소는 무엇보다 값졌으니까.
그날, 론이 주었던 그 꽃의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