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0화(290/302)
289화. 너를 데려가려고(2)
은호는 환수를 잠깐 바라보았다.
외형은 서양용인 드래곤을 닮아 매우 낯이 익었다.
다만, 색이 하얗기 때문인지 몰라도 몸을 이룬 비늘이 종이처럼 보여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하늘로 쭉 뻗은 뿔 주변에 뚝 잘린 종이가 가지처럼 붙어 있는 것 같았고, 등에 달린 날개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비가 오면 녹아내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휩쓸었지만, 은호는 환수의 몸에 있는 피를 보고는 모든 생각을 접었다.
“다쳤어…?”
은호가 손을 뻗자 환수는 뒤로 물러섰다.
경계심이 어린 눈으로 은호를 보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간절함이 엿보였다.
상당히 복잡한 감정이었다.
“…이건, 내 피가 아니야.”
환수는 몸에 묻은 피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피가 묻었다는 말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친구야. 내가 도와줄 일이 뭘까?”
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한 건 알지만, 일단 이유를 알아야 했다.
드르륵.
창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윈디드가 환수 뒤로 나타났다.
저 환수는 윈디드보다 작았고, 윈디드의 모습 자체를 위협이라고 느꼈는지 몰라도 갑자기 날을 세웠다.
“말썽꾸러기. 일단, 가면서 이야기를 들을까?”
윈디드는 환수의 모습을 보며 제안했다.
“그게 좋겠네. 가면서 말해줄 수 있어?”
은호의 물음에 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 수 있지, 작은 친구?”
윈디드가 묻자 환수는 날개를 움직여 보았다.
종이처럼 촤르륵 펼쳐지며 파닥거렸다.
“날 수 있어.”
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는 맹금류의 눈을 사용해 환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뒤로 냉큼 다가온 태블릿을 느끼며 손에 쥐었다.
가방하고 함께 왔다.
“고마워요, 태블릿 씨.”
은호는 가방을 착용하고는 윈디드의 등에 탔다.
“친구야, 잠깐만.”
은호는 태블릿으로 꼬맹이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놀고 온다고 했지만, 이 근방에 있을 게 분명했다.
‘말하고 가야지.’
위치를 보자 은호는 어딘지 알았다.
요새 꼬맹이들이 아크의 아지트에 자주 모였다.
아크는 싫다고 했지만, 레비아탐의 부탁으로 허락하고 말았다.
그쪽으로 공간을 열었다.
“…그래서 은호한테…….”
조잘거리던 폭시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은호는 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드, 들었더냐?”
라비 역시 기겁하며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을 나누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렇게 놀라니 무척 수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물어볼 시간은 없어 보였다.
“애들아, 나 잠깐 갔다 올게.”
“어디 가?”
일렉트가 물었다.
“잠깐 다른 친구 좀 돕게.”
“…알겠다!”
따라가고 싶다는 표정을 짓던 라비가 눈동자를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오는 거지?”
폭시는 공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다 환수와 눈을 마주했다.
순간, 눈이 가늘어졌다.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와.”
“응. 그러면 갔다왐. 우리도 금방 집에 갈겜.”
레비아탐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앞발을 흔들자,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했던 아크는 이내 숨만 길게 내쉬었다.
그저 눈빛으로 빨리 데리고 가라며 강조하고 있었으니까.
은호는 간지러운 입을 참은 채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봐.”
공간이 천천히 닫혔다.
그 좁은 틈에 폭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 이상하면 우리 불러! 꼭이야! 꼭!”
“알았어!”
은호 역시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공간이 닫힌 뒤, 은호는 환수를 바라보았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친구야. 그럼, 안내해줄래?”
“알았어.”
환수는 종이 같은 날개를 넓게 펼쳐 날았다.
정말로 피만 묻었는지, 비틀거리거나 움직임이 이상하진 않았다.
은호는 환수의 뒷모습을 보며 윈디드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 친구하고 거리를 유지해줄래?”
윈디드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줄 게 분명했다.
* * *
《환수를 인식했습니다.》
《파라곤》
《.》
《몸에 비늘이 특이한 재질로 되어 종이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종이는 아니며 만져보면 굉장히 부드러운 비늘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색을 변형시킬 수 있어, 특정 색에 치중되어 있지 않습니다. 종이만큼은 아니지만, 덩치에 비해 가볍습니다.》《특이한 재질로 된 비늘은 도마뱀의 꼬리처럼 빠르게 자라납니다. 이 비늘은 상대의 몸에 달라붙으며 쉽게 떼어지질 않습니다. 상대의 몸에 붙은 비늘은 공기와 접촉해 점점 무거워집니다.》
‘…아. 이런 친구구나.’
은호는 진짜 종이이면 어쩌나 싶은 생각을 덮었다.
설명을 본 뒤라고 해도 깃털이 팔랑팔랑하는 모습은 여전히 종이 같았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파라곤의 고개가 살짝 뒤로 향했다.
커다란 눈동자에 여전히 혼란이 깃들었다.
“친구야. 이제 말해줄 수 있어?”
은호는 목소리를 높였다.
바람 소리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는 것만 같았다.
윈디드가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더니 날개의 모양을 바꿨다.
소음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이제 말해줄 수 있어, 작은 친구?”
윈디드가 말을 꺼내자 앞으로 힘껏 날던 파라곤은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입이 열렸다가 닫히면서 말을 꺼냈다.
“…한 존재가 폭주했어.”
“폭주……?”
은호가 의문을 느꼈고, 윈디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약속을 깬 존재인가?’
윈디드는 그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서는 폭주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건 약속을 깬 존재였으니까.
“폭주로 친구들이 휘말렸어. 이 피도 그때 묻은 거야. …나는, 다급히 도망쳤어.”
굉장히 구슬플 법한 상황이지만, 파라곤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뒤섞이지 않은 것만 같았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바람 소리에 묻힌 걸까.
“친구야. 그럼, 폭주했다는 그 친구가 무슨 힘을 사용했길래 그렇게 된 거야?”
은호는 차분히 물었다.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두는 게 좋았다.
“…압도적인 힘이었어.”
“압도적인 힘?”
은호는 뭔가 뭉그러트려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추상적이었다.
동시에 의문이 남았다.
압도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와중에 왜 저 친구는 멀쩡했던 걸까.
그 사실 하나가 이해되지 않았다.
“맞아. 언제였는지 몰라도 네 이름을 들었어. 네가 우리를 도와준다고 했어. 우리를 도와주는 인간이라고… 그렇게 말했어.”
파라곤은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꺼내는 말과 함께 점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위로 선명한 감정이 표정에 드리웠다.
도와줘.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널 찾아갔어. 너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어. 도와줘. …제발, 도와줘.”
이제야 감정이 닿았다.
괴로움을 뒤섞고 있었으니까.
은호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물론이야, 친구야.”
은호는 안심하라는 듯 활짝 웃었다.
파라곤을 보는 그의 눈동자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
“널, 도와줄게.”
자신을 찾아왔다.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도와줘야지.
“……고마워.”
파라곤은 안도하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 * *
“…여기부터는 걸어가는 게 좋아. 바람이 사납거든.”
파라곤의 제안에 윈디드는 아래로 내려갔다.
파라곤을 쳐다보던 윈디드의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깃털이 요란스럽게 굴었다.
정말, 바람이 매섭기는 했다.
그렇다고 날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걱정스러운 건 딱 하나였다.
“말썽꾸러기.”
“응?”
“정말, 피 냄새가 나.”
윈디드는 부리를 꽉 닫았다.
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건 피 냄새였다.
꽤 짙었다.
윈디드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은 전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윈디드는 등에 있는 은호에게 모든 신경이 쏠렸다.
은호는 손을 뻗어 윈디드의 등을 문질렀다.
“괜찮아, 삐약아.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으니까.”
지금 더 신경 쓰이는 건 다른 게 아닌, 파라곤이 말한 부상을 당한 환수들이었다.
얼마나 다친 건지 몰라도 은호는 우선 기계로 손등을 찔렀다.
이곳에 피를 뿌린 뒤, 휴대전화를 꺼냈다.
[형. 다친 환수들을 데려갈 테니까, 대기해줄래요?]빠른 치료를 위해 문자를 보냈다.
“…있잖아.”
파라곤이 목소리를 냈다.
꽤 불안한 목소리였다.
“왜 그래, 친구야?”
은호는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 파라곤에게 시선을 움직였다.
“정말… 괜찮겠어?”
파라곤은 걸음마저 멈춰 망설였다.
“널 도와주기로 했잖아? 다른 친구들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고.”
은호가 꺼낸 말에 파라곤은 귀를 내리며 앞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앞에, 무서운 존재가 있어. 널 해칠지도 몰라. 널,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고.”“괜찮아, 친구야. 나는 도와달라는 그 말을 외면하지 않을 테니까.”
은호는 파라곤을 다독거렸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 파라곤은 숨을 몇 번이나 크게 내쉬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걸음걸이를 따라 표정이 일그러지며 하얗던 파라곤의 색이 발끝에서부터 점점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 존재는 말이야.”
파라곤은 말을 꺼냈다.
커다란 나무를 따라 그림자가 지자 색이 더 짙어졌다.
“갑자기 나타났어.”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파라곤의 말을 따라 피 냄새가 은호의 코까지 찌를 정도로 느껴졌다.
은호의 미소가 지워졌다.
나뭇가지가 부러진 나무가 하나씩 보이더니, 그 너머로 쪼개진 나무가 시선에 담겼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공격했어.”
떨리는 파라곤의 목소리를 따라 은호는 숨을 멈췄다.
나무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아래로 이어져 있자 은호는 피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탁.
은호는 바로 아래로 내려가 나무 밑에 나뒹군 환수에게 달려갔다.
숨부터 확인했다.
숨은 쉬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맞았어.’
어딘가 베인 게 아니었다.
얼굴이 함몰될 정도로 얻어터졌다는 걸 알았다.
은호는 다 터진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자신이 손을 댈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공간을 열다 말고, 은호는 잠깐 고개를 올렸다.
부러진 나무를 따라 환수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동그랗게 생긴 찹쌀떡 같은 뒷모습이 같은 동족이라는 걸 알려줬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한 무리였다.
무리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았다.
대체 왜.
은호는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말썽꾸러기. 이유는… 나중에 살피는 게 좋겠어. 그렇지?”
윈디드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그게 맞았다.
이유는 나중에.
지금은 환수들부터 옮기는 게 우선이었다.
“…식물 친구들아. 저쪽으로 옮겨줄래?”
목소리가 맘대로 떨리고 있었다.
열린 공간 너머를 향해 은호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부러졌던 나무에 새로운 줄기가 돋아나며 다시 자라났다.
나뭇가지는 길게 자라나 환수를 감싸고는 공간 너머로 옮겨주었다.
은호는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조심스럽게 옮기고자 자신이 직접 환수 옆으로 가 공간을 새롭게 열었다.
윈디드는 은호가 옮길 때마다 옆으로 걸어갔다.
사실, 파라곤이 도와달라는 말에도 가볍게 왔다.
간절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저 존재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연기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벌어진 상황은 가볍지 않아 보였다.
단순히 충격에 감정조차 내비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다른 걸까.
윈디드는 파라곤을 보다 말고 작은 소리를 들었다.
위쪽이었다.
고개를 올리자 나무 잎사귀 사이로 무언가 있었다.
눈가를 좁히며 천천히 걸어갔다.
“은호.”
파라곤이 은호를 불렀다.
파라곤 앞에도 다른 존재가 있었다.
“여기도 도와줘.”
은호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의식이 없는 다른 존재와 달리 의식이 있는지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은호는 그 존재에게 다가갔다.
“친구야. 다른 애들이 남아 있는지 봐줄래?”
은호의 말에 파라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있잖아, 은호.”
파라곤은 걸어가며 은호를 불렀다.
“그 존재가 왜… 그랬을까?”
파라곤의 꼬리 끝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왜 여기를 공격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은호는 대답보다는 저 환수를 옮기는 데 집중했다.
갑자기 환수가 손을 뻗어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은호는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우리…를.”
환수가 숨소리가 섞인 말을 꺼냈다.
은호는 환수를 바라보았다.
희미해진 눈동자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때, 파라곤 역시 걸음을 멈췄다.
“다치게… 한 건.”
환수의 말을 따라 은호의 고개가 움직였고, 파라곤과 시선을 마주했다.
점점 검은색으로 몸으로 뒤덮었다.
환수가 힘없이 든 앞발이 파라곤을 향하던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쟤야!”
위쪽이었다.
그 순간 파라곤은 은호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