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1화(291/302)
290화. 너를 데려가려고(3)
바로 은호를 저 존재로부터 보호하듯 앞에 선 파라곤은 꼬리를 바짝 올렸다.
“아니, 저 존재야!”
파라곤은 환수가 꺼낸 말을 부정했다.
몸을 낮추며 날을 세웠다.
“저 존재가, 우리를 공격했어!”
강하게 외친 그 말에 은호는 파라곤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자마자 파라곤은 도망치듯 옆으로 움직였다.
커진 눈으로 은호를 보고 있었다.
“친구야.”
은호는 잔잔히 파라곤을 불렀다.
“너라는 걸 알고 있었어.”
“…….”
“내가 말했잖아? 널 도와주겠다고.”
파라곤이 처음 부탁했을 때, 긴가민가했다.
―은호! 이상하면 우리 불러! 꼭이야! 꼭!
폭시가 평소보다 더 강조하는 그 말에 설마 했다.
―…그래서 널 찾아갔어. 너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어. 도와줘. …제발, 도와줘.
아주 간절히 파라곤이 말했을 때, 은호는 확신했다.
저 친구가 누군가한테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그 힘을 뚫고, 힘겹게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조종한 환수는 디올린일까.
제발, 아니길 빌었다.
“…그래? 진작 말해주지.”
파라곤의 표정이 싹 갈리듯 깊게 가라앉았다.
비웃음을 터트렸다.
은호와 거리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파라곤의 입꼬리가 올라갈 때쯤, 갑자기 주변이 반짝거렸다.
빛이 파라곤을 향해 다가왔다.
나무가 은호를 감쌌고, 파라곤은 아주 가볍게 땅을 박차 하늘을 날았다.
콰앙!
빛은 땅으로 스며들었다.
허공에 빙그르르 돈 파라곤은 나무를 걷어차며 윈디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 이런 연기는 안 했을 거잖아.”
촤르르륵.
몸에 붙어 있던 종이를 닮은 비늘이 다 떨어져 나갔다.
맨몸을 보이는가 싶더니, 금세 자라나서는 다시 몸을 채워나갔다.
팔랑거리며 움직일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비늘이 파라곤 주변을 맴돌며 둥글게 움직였다.
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선이 위로 향했다.
‘삐약이는?’
윈디드의 링 위에 빛이 모이는가 싶더니 강하게 쏘아졌다.
은호는 빛을 보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거센 빛에 뿌린 모든 비늘이 휩쓸다 못해 본인마저 휩싸일 것 같자 파라곤은 바로 날개를 펼쳐 방향을 바꿨다.
살포시 나무 위에 안착했다.
나뭇가지가 별로 휘지 않았다.
“저 힘에 붙잡히면 진득해져!”
위쪽에서 소리가 들리자 파라곤의 미소가 길어졌다.
“내가 빠트린 놈이 있었네?”
다 쥐어팼어야 했는데.
용케도 남은 새끼가 있던 모양이었다.
파라곤의 시선을 닿은 환수는 기겁했다.
오동통한 몸통에 꽤 큰 토끼 귀가 바짝 올라갔다.
멧밭쥐를 떠올릴 만큼 쥐와 닮아 있었다.
파라곤을 보며 몸을 덜덜 떨었다.
그 눈이었다.
소름 끼치는 눈.
“저 친구를 도와줘.”
은호는 식물들에게 부탁하며 토템을 꺼냈다.
식물들은 환수를 감쌌다.
“삐약아. 방금 저 친구의 말이 맞아! 무조건 닿으면 안 돼! 몸이 무거워질 테니까!”
은호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에 정보로 알지 않았는가.
저 비늘은 상대의 몸에 달라붙어 끈적하게 달라붙는다고.
동시에 달라붙은 비늘은 공기와 접촉해 아주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한 번 붙게 되면 무척 곤란했다.
은호의 말에 놀란 건 파라곤이었다.
아직 붙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힘을 알고 있었다.
“고마워,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대꾸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윈디드가 날개를 펼치자 파라곤 역시 날개를 펼쳤다.
그대로 동시에 날아올랐다.
은호는 그사이 미처 옮기지 못한 환수들을 공간 너머로 이동시켰다.
마지막으로 새끼 환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은호가 두 손을 벌리자 새끼 환수를 보호하고 있던 나무가 열렸다.
“친구가 마지막이야.”
울음을 꽉 참는 환수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이 옮겼던 환수 중 저 친구의 부모가 있을까.
환수는 은호를 향해 뛰었다.
날개가 등에서 나타났다.
그대로 뛰었다.
“잘 버텼어.”
품으로 들어오자 은호는 활짝 웃었다.
환수는 은호의 옷자락을 꽉 쥐며 몸을 떨었다.
사아아아.
그때, 싸한 느낌이 몰려왔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은호가 그쪽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리자 나무가 더 크게 자라났다.
아래쪽을 향해 서로의 나뭇가지를 뻗어 서로 뒤엉켰다.
마치 그물 같았다.
“은호!”
파라곤은 은호를 부르며 날아왔다.
“붙잡아줘.”
은호의 말과 함께 아래쪽에 두었던 나뭇가지가 위로 올라오며 파라곤을 붙잡았다.
날개와 다리가 나뭇가지에 엉켰다.
“넌, 내 거야. 내 거라고…!”
파라곤은 악을 쓰며 앞발을 내밀었다.
바짝 올라간 눈꼬리마저 살벌해졌다.
“그게, 네가 받은 명령이야?”
은호의 물음이 이어지던 차, 파라곤 위로 빛이 묵직하게 떨어졌다.
콰아앙!
파라곤은 그대로 바닥으로 납작 엎드렸지만, 시선은 위로 향했다.
팔랑팔랑.
허공을 날아다니는, 종이와도 같은 파라곤의 비늘이 사방으로 퍼져 움직였다.
은호는 토템을 꺼내 그대로 사용했다.
화르륵!
용의 숨결처럼 불이 길게 번져 비늘을 태워버렸다.
은호는 나무의 도움을 받아,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며 공간을 열고, 그 속으로 환수를 내려놓았다.
“다시 올게. 걱정하지 마. 그곳에 있는 인간들은 좋은 인간이니까.”
말을 꺼낸 뒤, 은호는 공간을 닫았다.
뒤를 돌아보자, 나무가 손을 뻗듯 내밀었다.
그 위로 비늘이 달라붙었다.
굵직한 나뭇가지가 바로 꺾여버렸다.
쿠웅.
저 비늘 하나가 얼마나 큰 무게로 작동하는지 알았다.
은호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가 수없이 들려왔다.
‘…폭시를 부를 수 없어.’
은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나무가 아니었다면 막지 못할 힘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끈적하고, 끈끈한 액체가 떨어졌다.
은호는 파라곤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침을 흘릴 만큼 흥분해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표적인 게 분명했다.
‘……아니길 바랐는데, 네가 맞구나, 디올린.’
은호는 시선을 움직였다.
허공에 떠 있는 파라곤의 비늘이 빛에 뭉개졌다.
그 빛의 끝에 윈디드가 존재했다.
링에서 새어 나오는 수많은 빛에 고민이 담겨 있는 듯 구슬프게 보였다.
‘…저 친구를 아프게 할 수 없어.’
윈디드 역시 같이 마음일지도 몰랐다.
파라곤은 잘못한 게 없었다.
저번에 티토처럼 원치 않게 조종되고 있을 뿐이니까.
이런 환수들이 얼마나 있는지 몰랐다.
조종당하는 환수들이 이제는 자신을 노리도록 바꾼 걸까.
사아아아아.
은호는 그 느낌을 또 느꼈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이미지에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구나.’
은호는 이미지 속, 날아다니는 다른 파라곤을 보았다.
‘하나가 아니었구나.’
그들이 움직이며 일어나는 바람을 느꼈다.
그 속에서 검은 힘을 발견하자 입꼬리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윈디드가 파라곤을 쳐다보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파라곤은 몸을 파르르 움직였다.
마비로 저항하기 어려울 테지.
윈디드는 은호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링에서 튀어나오는 빛이 너풀거렸다.
“말썽꾸러기, 다친 곳은 없지?”
윈디드는 바로 은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혹여나 다쳤을까, 은호를 중심에 두고 빙그르르 돌았다.
한 바퀴를 돈 뒤에야 윈디드는 안도하며 숨을 짧게 내쉬었다.
“삐약아.”
은호는 윈디드를 불렀다.
평소와 다른 묵직함이 섞여 있어 윈디드는 눈을 깜박거렸다.
“…왜 그래, 말썽꾸러기?”
윈디드의 고개마저 살짝 기울었다.
하지만 이내 깃털이 바짝 서며 목을 위로 길게 뺐다.
바람이 달라졌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윈디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은호를 품에 안았다.
“…눈치챘어?”
“맞아. 꽤 많이 오고 있더라.”“디올린이 조종하고 있는 거야?”
“그럴지도 몰라.”
은호는 잠깐 하늘을 바라보았다.
흑견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파라곤들이 먼저 오지 않을까 싶었다.
파라곤이 품은 힘은 예측하기 어려웠고, 위험했다.
조종당하는 상황을 알기에 다치게 할 수도 없었다.
참 불합리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음에도 은호는 차분했다.
피를 뿌렸다.
“말썽꾸러기. 어서 공간 너머로 가.”
윈디드는 은호를 재촉했다.
불안했다.
그날처럼 은호가 혼자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어서 가. 말썽꾸러기가 뭘 원하는지 알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잠깐 피했다가 다시 오면 되잖아?”
도망치라는 말을 하면 은호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윈디드는 말을 돌렸다.
“삐약아. 그거 알고 있어?”
은호는 간절함만 가득한 윈디드에게 말을 꺼냈다.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야. 저 공격이 너무도 불규칙해. 말썽꾸러기가 그 힘을 맞으면 큰일이 나는 건 확실해.”
이번에는 저 공격을 다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불안한 미래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면 다들, 나를 지켜주려고 하더라.”“말썽꾸러기는, 우리한테, 나한테 정말 큰 존재라는 걸 알고 있잖아?”
왕만 모셨던 자신이 처음으로 왕 이외에 곁에 있고 싶은 인간이었다.
바람을 따라가야 살 수 있는 자신이 처음으로 곁에 머물 수 있는 바람 같은 존재였다.
“나는 이게 참 기뻐.”
본인을 우선시해도 되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늘 자신을 감쌌다.
“하지만 삐약아. 나는, 약하지 않아.”
은호는 거꾸로 돌아 윈디드를 안았다.
쿵. 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윈디드가 긴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 친구를 돕기로 약속했고, 삐약이가 여기 있는데, 왜 도망쳐?”
쉬이이익.
거친 바람을 뚫고 무언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은호는 뒤로 물러서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윈디드 역시 은호를 보았다.
“삐약아.”
바라볼수록 따스한 은호의 눈동자에 빛이 어리는 듯했다.
윈디드는 그 빛을 보며 묘한 힘을 느꼈다.
“내게, 힘을 빌려줄래?”
그 제안에 윈디드는 왜인지 미소가 흘러나왔다.
사실, 종종 들은 적 있었다.
아니, 최근에는 정말 많이 들었다.
은호는 자신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은호를 돕고 싶었느니라.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돕고 싶었다. 그런데 한순간, 주변이 조용해지더니, 은호밖에 보이지 않았느니라. 그때 알았다. 나와 은호가 연결되었다는 걸.
라비의 말대로 정말로 주변의 풍경이 지워진 것처럼 은호밖에 보이지 않았다.
윈디드는 그 짧은 시간에 은호가 품은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더 거대한 따스함이 밀려들었다.
이게 연결된 걸까.
“얼마든지.”
윈디드가 환하게 웃었다.
불안했던 마음이 신기하게 달아났다.
쿵. 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소리가 아니었다.
은호였다.
촤르르륵.
사슬이 팔에 감기는 느낌과 함께 은호의 머리 위에 링이 나타났다.
링에 감긴 빛이 면사포처럼 아래로 떨어져 넘실거렸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 맹금류의 눈을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넓어진 시야각이 자신을 환영했다.
파라곤과 그 힘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래서 윈디드가 조바심을 느꼈다는 걸 알았다.
“식물 친구들.”
은호는 그 위치를 파악하며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쿠우우웅!
나무들이 자라났다.
“붙잡아줘.”
은호의 지시와 함께 가지를 힘껏 뻗은 모습을 본 그는 윈디드의 등에 탔다.
“가자, 삐약아.”
“좋지.”
윈디드는 힘껏 날아올랐다.
바람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자라나자!”
은호는 양손을 뻗어 천천히 위로 올렸다.
새롭게 자란 나무들이 찬란한 빛을 품고 있었다.
은호는 식물들이 건네주는 이미지, 넓어진 시야각을 통해 허공에 떠 있는 파라곤과 그들이 몸에 두른 비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은호의 링에서 빛이 어린 그때, 허공에 빛이 뻗어 나왔다.
동시에 자라난 빛의 나무들이 빛을 냈다.
“빛이여.”
은호의 말과 손짓을 따라 링과 빛의 나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실타래가 너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얇게 만든 실타래와 같았다.
허공에 자라난 가지처럼 파라곤과 그들이 뿌린 비늘을 향해 다가갔다.
제아무리 빠르게 난다고 해도 빛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허공에 떠 있는 모든 걸 휘어잡았다.
빛이 닿는 순간, 파라곤들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모든 비늘이 멈췄다.
윈디드의 힘인 마비가 발동되었다.
은호는 그들은 천천히 땅으로 내렸다.
비로소 은호는 두 개의 공간을 열었다.
“애들아. 나를 도와줄래?”
파라곤들의 머릿속에 처박아둔 디올린의 힘을 꺼내야만 했다.
* * *
“…형. 그 친구들은 어때요?”
파라곤에게 무자비하게 맞은 환수들은 랫버드라는 종이었다.
장난기가 많고, 개구쟁이라고 했다.
“지독하게 당해서, 조금… 걱정이긴 하네.”
태호는 말을 아꼈다.
“그럼, 파라곤들은요?”“……이쪽도 치료가 필요해.”
태호는 머리를 톡톡 쳤다.
정신적 문제라는 소리였다.
“물도 거부하고 있다고 들었어. 별로 좋은 건 아니거든. 며칠 더 보긴 해야겠어.”
“물도요?”
“둘 다 좀, 심각해. 음……. 서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종이거든? 파라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환수고, 무척 얌전해. 랫버드와 마주했다고 해도 싸울 이유가 없어. 상극인 것도 아니고. 접점도 없어.”“디올린 짓이에요.”
“…….”
“날 잡으라고 했나 봐요.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올 테고, 잡을 확률은 올라가겠죠?”
덤덤하게 꺼내는 은호의 말에 태호는 입가를 쓸었다.
“…은호 씨. 내가 진짜, 이러고 싶진 않지만, 그 환수 정말 지독하다.”“그러니까요. 기분이… 좋지 않아요.”
은호는 웃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끝내야죠.”
“슬슬 끝내야지.”
“내가, 디올린을 멈출 거예요.”“그래. 나는 너를 멈추고.”
태호는 자연스럽게 은호의 등을 두드리며 어딘가로 밀었다.
“환자는 병실로 돌아가시죠?”
“……형.”
은호의 표정이 풀렸다.
당황했다.
“아윤 씨한테 알리기 전에 어서 가야지. 또 온도계로 재줘?”“형. 지금, 분위기를 읽어야죠.”“그건 나중에 읽으면 되니까, 돌아가. 다른 곳 들리지 말고.”
은호는 태호의 당부에 머쓱한 듯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네.”
힘없이 대답하며 은호는 발을 움직였다.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은호의 표정이 사르르 풀어졌다.
‘가는 길이니까, 들려도 되겠지?’
태호는 경쾌해진 은호의 발걸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거, 저. 또 가겠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