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2화(292/302)
291화. 그 끝에는
“…친구들아.”
은호는 파라곤들이 있는 병실 문을 열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내 병실로 가는 길이니까. 이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
합리화하며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려다 그만뒀다.
파라곤들이 덜덜 떨고 있었다.
은호는 밀려드는 씁쓸함을 삼킨 채 방긋 웃었다.
뭉쳐 있던 파라곤들 중 한 친구를 보았다.
“혹시, 나 기억해?”
은호가 묻자 눈치 한 번 살피며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구나.’
티토도 그랬다.
다 기억하고 있었다.
티토뿐만 아니라 하이프도 그랬다.
참 잔인한 힘이었다.
“괜찮으면 여기 들어가도 될까?”
“…….”
말이 없자 은호는 그냥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시선이 낮아졌다.
그제야 잔뜩 웅크린 파라곤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죄책감에 잠겨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옮겨왔던 그때부터 물조차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죽으려는 걸까.
“친구들아.”
은호는 부드럽게 그들을 불렀다.
지금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은 하나였다.
“너희 잘못이 아니야.”
몇 번이라도 말해줄 수 있었다.
그건 정말이었으니까.
“너희가 약속을 깬 것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도 전부 너희 탓이 아니야.”
이렇게 아니라고 말해도 파라곤들에게 영원히 낫지 못할 상처로 남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본인들이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행동했다.
이미 랫버드를 공격한 그 감각이, 그때 랫버드들이 짓는 표정과 눈빛이 영원히 따라올 게 뻔했다.
그럼에도 은호는 잘못이 아니라고 또 말을 꺼냈다.
누군가는 꺼내야 할 말이었다.
“많이… 아프지?”
은호가 건넨 말에 종이 같던 파라곤들의 날개가 꿈틀거렸다.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 행동을 한 건 너희라서 숨통이 막힐지도 몰라.”
죄책감이라는 게 얼마나 목을 움켜쥐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희 탓이 아니야. 그 친구들은 치료가 좀 필요하지만, 다들 살아 있어.”
이 말이 도움이 될까.
은호는 몇 번이고 생각한 뒤에 다시 말을 꺼냈다.
“너희도 숨을 좀 쉬는 게 어떨까? 일단, 물부터 마시고…….”
“…내가, 그랬어.”
파라곤은 앞으로 한 걸음 나와 목소리를 냈다.
자신에게 왔던 그 파라곤이었다.
은호는 파라곤의 말을 부정했다.
“너희가 그런 게 아니야.”“우리가… 그랬어.”
“아니야. 너희가 아니야.”“내가. 내가…. 내가, 그랬어…….”
파라곤은 앞발을 마주했다.
“우리의 비늘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그 존재에게 다가갔어.”
커다란 눈동자에 초점이 지워지며 천천히 파도가 차올랐다.
자신의 앞발을 휘둘렀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휘둘렀다.
“……피가, 튀었어.”
나무에, 풀에, 땅과 그리고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했어.”
파라곤은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가 천천히 떨리며 올라갔다.
“나는, 멈추질 않았어. …아주, 즐거웠거든.”
머릿속으로 뜨겁게 차오르는 건 분명 희열이었다.
피가 튈 때마다.
그 존재가 살려달라고 빌 때마다.
너무도 행복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내가! 즐기고 있었어!”
그 사실을 자각하자, 머릿속에서 온갖 소리가 멈추는 것 같았다.
도망쳤다.
자신이 저지른 일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네가 아니었어. 넌, 나에게 찾아왔어. 그렇지?”
차분히 건네는 은호의 말에 파라곤은 고개를 떨구었다.
“…네 이름이 생각이 났어. 우리를 도와준다는, 네 이름만 생각이 났어.”“맞아. 그래서 넌 나를 찾아왔고, 도와달라고 말했어.”
“그랬는데.”
파라곤은 말을 잠깐 멈췄다.
밀려오는 떨림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널 보자 목소리가 속삭였어.”
문을 열고, 나온 은호를 보자마자 모든 생각이 그 목소리에 잡아먹혔다.
그 끔찍했던 상황조차 전부 다.
“그 목소리가 뭐라고 말했어?”“널, 데려오라고. 널, 붙잡으라고. …숨통만 쥔 채 데려오라고.”
파라곤의 얼굴 밑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친구가 얼마나 그 힘에 저항했는지 알아.”
참혹한 현장으로 가기 전에 멈춘 건 파라곤이었다.
저 너머로 가면 본인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자신을 말린 게 분명했다.
“너마저도, 위험에 빠트렸어. 내 욕심이 너를 이번 일에 끌어들이고 말았어…!”
그곳으로 데려가면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데려갔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밀려와 멋대로 지껄이는 말을 삼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 힘에 사로잡힌 상태였어.”“그래도 나는 널! 진심으로 네 숨통을 쥐려고 했다고!”
파라곤은 소리쳤다.
서러움이 깊게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네 잘못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어.”
은호는 다시 또 파라곤들을 위로했다.
상황은 복잡했다.
본인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랫버드들은 피해를 보았다.
사과해야 할 일이라는 건 분명하나, 원망을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들이 원망해야 하는 대상은 너희가 아니야. 마찬가지로, 친구들이 원망해야 하는 대상은 너희 자신도 아니야.”
저들이 원망을 퍼부어야 하는 대상은 분명했다.
랫버드도, 파라곤도 서로 피해자였다.
이 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건 한 존재였다.
“너희에게 접근한 존재가 있을 거야.”
“…….”
“…있어.”
대답은 다른 파라곤이 꺼냈다.
“뿔을 가진, 아주 아름다운 존재였어.”
이어 꺼낸 그 대답에 은호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역시 맞았다.
디올린이었다.
그 환수가 자신을 차지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존재의 이름은 디올린이야. 너희를 조종한 존재.”
은호는 이름을 알렸다.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주길 원했다.
“지금 너희가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사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원망할 대상은 너희가 아니야. 너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몇 번이고 들려오는 말에 파라곤은 비로소 반응했다.
“왜 그렇게 말해주는 거야? 죄책감을 덜라고…?”“아니. 그게 사실이니까. 이렇게 알려주지 않으면 정말로 너희가 잘못했다고 믿고 살아갈 테니까.”“그게 사실이잖아. 우리가… 그 무리를 공격한 건 사실이야.”
파라곤은 울먹거렸다.
눈을 감아도, 하루가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겠지.
“그러니 나는 몇 번이라도 너희에게 말해줄 거야. 너희는 디올린의 선택으로 휘말렸을 뿐이라고. 너희의 죄가 아니라고.”
은호는 변하지 않는 그 시선으로 다시금 웃었다.
그제야 파라곤들이 은호를 보았다.
우두커니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밀어내고, 또 밀어내도 저 목소리와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왜.
대체 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토닥거리는 소리라 계속 듣고 싶었다.
“랫버드들도 깨어나면 너희를 대신해 내가 열심히 말해볼게. …물론,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은호는 입가를 핥으며 머쓱함을 드러냈다.
솔직히 랫버드 쪽이 더 어렵긴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고.
“…이러지 않아도 되잖아. 넌, 이미 우리를 도와줬잖아.”
머릿속에 박힌 그 힘을 지워줬다.
더는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게 막아줬다.
이미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뭘 더 바라지 않아. 네가 해준 그 모든 것들도 이미 너무 많아. …벅차.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파라곤은 난감했다.
소문은 들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이미 건네준 말도 버거울 만큼 무척이나 컸다.
하지만 건네고, 또 건넸다.
도대체 언제까지 줄 참인지 몰랐다.
“친구야. 나는 너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도울 거야.”“…그럴 이유가 없잖아. 너는, 인간이니까.”“인간이라고 해도 너희를 돕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나는 너희의 임시 보호소야. 물론, 나 혼자 다짐한 거긴 한데, 그래도 이 결심은 변하지 않아.”
파라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로 은호를 보았다.
특이했다.
“친구야. 장담하는데, 괜찮다고 놔두면 마음이 곯아. 계속, 계속 네 목을 움켜쥘 거야. 그러니 나는 다 나을 때까지 한 이쯤?”
은호는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켰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 거리가 맞는지 생각하다, 어느새 파라곤들이 눈물을 멈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호는 더 크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너무 가까이 가면 무서울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 거리에서 도와줄게.”
파라곤은 그저 큰 눈을 깜박거렸다.
이게 훨씬 보기 좋았다.
“친구야. 지금, 눈물이 쏙 들어간 거 알아?”
은호가 알려주자 파라곤은 그제야 깜짝 놀랐다.
정말이었다.
뭔가, 답답함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몰랐지?”
“…몰랐어.”
“나도 몰랐거든.”
“……?”
파라곤의 눈이 커진 채 어리둥절 하자 은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이런 게 좋았다.
경계심을 푼 환수들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 나는 서은호야.”
“그건 알고 있어.”
“모르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음, 적어도 그 숲에는 없을지도 몰라.”“정말? 정말 다 날 알아?”
은호가 신기한 표정을 하며 되묻던 와중에 그림자가 졌다.
“…….”
은호는 물러서는 파라곤들을 보며 말을 잃었다.
“이게 잠깐인가?”
“그렇지. 잠깐이지. 아, 멍멍이 형님도 앉아봐.”
은호가 바닥을 두드렸다.
“일단, 서로 오해부터 풀자고.”
흑견의 힘으로 바닥에 나뒹군 파라곤들이 몇 있었다.
서로 오해가 쌓일 수 있었다.
오해는 풀어야 할 테니까.
“멍멍이 형님은 절대로 너희를 다치게 하려고 한 건 아니야. 나를 보호하려고 했을 뿐이니니까, 오해는…….”
파라곤은 조잘거리는 은호를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가가고 싶었다.
다가가도 되는 걸까.
피가 묻어버린 이 앞발을 뻗어도 될까.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파라곤을 향해 은호는 두 손을 뻗었다.
다가와 안아주었다.
“다가와도 돼. 너의 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까.”그 말이 뭐라고 멋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괜찮아.”
다정히 건네는 그 위로 하나에 파라곤은 그제야 크나큰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절대로 누군가를 해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 * *
“…이제 다 돌아다녔는가?”
흑견이 불만을 섞자 은호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원래 늘 하는 거고, 지금은 가만히 있잖아. 그렇지, 삐쭉아?”
은호는 위를 바라보았다.
전기 나무에 매달려 일렉트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건 맞아. 은호가 병원에 오는 것도 원래 하는 거고.”
순진한 눈망울로 눈을 깜박거렸기에 은호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그, 그래도 나는 너희를 불렀어.”
“그건 맞암.”
레비아탐이 배시시 웃었다.
불러줘서 아주 행복했다.
“아! 그거 뭐였어, 은호?”
폭시가 무언가를 떠올리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그거?”
은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폭시는 은호에게 다가가 앞발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빛이 나왔어. 아주 예뻤어.”
폭시의 시선이 윈디드에게 쏠렸다.
윈디드의 걸음에 맞춰 등에 탄 랫버드의 새끼가 꺄르르 웃었다.
아무래도 혼자 남은 새끼가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진짜 예뻤느니라.”
라비마저 헐레벌떡 달려오자 은호는 눈동자를 움직여 레이바탐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초롱초롱했다.
“나도 궁금햄.”
“당연히 삐약이의 힘이지. 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잖아?”
“…병아리가?”
윈디드를 보는 흑견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예상하지 않았어?”
오히려 놀란 건 은호였다.
빛을 사용하는 환수는 솔직히 많이 없었다.
윈디드와 라이엔.
그 이외에는 잘 보지 못했다.
“한순간 봐서 몰랐어.”
폭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린 공간 너머로 새어 나온 빛줄기를 봤을 뿐이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꼬맹이들이 공간 너머로 나왔을 때, 그 힘이 사라졌으니까.
“솔직히 놀랐다.”
흑견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놀랐다니?”
은호의 물음에 흑견은 잠깐 윈디드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인간에게 진심일 줄은 몰랐다.”“삐약이는 늘 내게 진심이었어.”
처음 봤던 그때부터.
은호가 웃자 흑견은 괜히 그의 얼굴을 앞발로 눌렀다.
은호는 키득거린 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도… 이제 디올린과 진심으로 마주할 순간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파라곤과 랫버드 같은 환수들이 쉴 새 없이 나올 테지.
원치 않게 벌어진 일로 일어난 죄책감이 얼마나 끔찍한지 디올린은 알고 있을까.
‘나는 아는데…….’
자신은 형의 사고 뒤로 그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헤엄칠 수조차 없을 만큼 더 큰 파도가 자신을 휩쓸 뿐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 허공에 떠 있는 어머니를 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사람이 그렇게 차가울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 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사실에 멋대로 기억을 지워버렸다고 했다.
아버지도 자신을 온전히 사랑으로 감싸주기에 너무도 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잘못으로 지워졌다고 했다.
―…은호야.
아버지가 병원에서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도.
―앞으로 뭘 하고 싶어?
미래를 언급했을 때도, 자신은 화를 냈다.
지워진 버린 미래를 왜 묻는지 몰랐다.
‘나도 그때는 참 어렸네.’
은호는 시야 안으로 하나씩 고개를 내민 꼬맹이들을 보며 다시금 웃었다.
그 말이, 아버지가 건넨 화해의 손길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냥, 파라곤을 보니 새삼스럽게 많은 게 떠올랐다.
“뭘 보고 있엄?”
레비아탐이 물었다.
“하늘. 너희도 누워서 볼래? 참 좋아.”
은호의 제안에 레비아탐이 먼저 누웠다.
옆으로 꼬물거리며 은호의 품에 붙었다.
“나도!”
폭시도 누워 은호의 배에 앞발과 뒷발을 슬쩍 올려서는 하늘을 보았다.
“나는 은호나 볼래.”
일렉트는 여전히 은호를 보았고, 라비는 은호의 배에 올라와 등을 붙이고 누웠다.
“넓느니라!”
라비가 힘껏 외쳤다.
“애들아.”
은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조만간 나는 디올린을 찾아갈 거야. 끝을 봐야 할 테니까.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난 뭐가 있는지 알겠는데?”
폭시가 말하자 라비는 물었다.
“뭐가 있더냐?”
“뒹굴뒹굴!”
그 대답에 레비아탐이 웃었다.
“그게 뭐야.”
일렉트가 핀잔을 날렸지만, 폭시는 꿋꿋이 대답했다.
“그 뒤에도 이렇게 뒹굴뒹굴하지 않을까?”“좋은 미래인데? 내가 바라는 거거든.”
은호는 입꼬리를 높이 올렸다.
백수는 됐으니까, 뒹굴뒹굴만 남은 셈이었다.
“다 끝나면 고기나 굽거라.”
흑견이 건네는 말에 모두가 웃었다.
“파티 좋지.”
“아! 우리도 은호를 위해…….”
레비아탐이 급히 라비의 입을 막았다.
“쉿! 쉿이얌!”
“…쉿이니라.”
은호는 고개를 슬쩍 내렸다.
라비가 입을 막은 채 당황하고 있었다.
뭘 하려는지 몰라도 은호는 갑자기 차오르는 기대를 막을 수 없었다.
“고기? 고기 먹는다고?”
윈디드가 놀래서 달려오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다 끝나고. 그때까지 아껴두자고.”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아주 조금 남았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