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3화(293/302)
292화. 드디어 마주하다
“…준비됐습니까?”
가을이 은호를 보며 물었다.
준비라고 말했지만, 사실 준비할 건 없었다.
그저 은호만 왕이 있는 그곳으로 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너무 간단한 일이라 가을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돕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적었다.
참 분했다.
“준비됐죠.”
은호가 당당히 말하자 가을은 살짝 주저하며 괜히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에이, 가을 씨. 저 죽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그냥 더 좋아지려고 가는 거니까요.”“압니다. 그런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하고요.”“전쟁? 막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은호는 가을을 다독거렸다.
디올린을 잡으러 가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준비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았다.
자신의 발자취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게 한 일은 모두 디올린이 준비한 거였으니까.
“환수 연구소로 환수든 사람이든 쳐들어올지도 몰라요. 막을 준비는 됐어요?”
은호는 이곳이 가장 신경 쓰였다.
디올린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 싶었다.
여기를 공격받으면 타격이 가장 클 테니까.
이곳은 자신의 또 다른 집이었다.
“그건 신경 쓰지 마. 지금은 은호 씨를 신경 쓰라고.”
태호가 숨을 내쉰 채 물건을 내밀었다.
디올린이 사용한 힘의 파동을 분석해 최대한 정신의 힘에 저항할 수 있게 했다.
짧은 시간에 철야를 연속으로 하며 완성 시켰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성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미완성에 가까웠으니까.
“이건, 진짜 어디까지나 저항이야. 막을 수 없어. 알고 있지?”“형. 알겠으니까, 이제 눈 좀 붙여요. 진짜, 쓰러질 것 같아요.”
농담이 아니었다.
늘 밤을 지새웠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 10분 정도는 버틸 수 있겠네.”“혹시 몰라 다른 애들한테 지켜달라고 부탁했어요. 환수들이 막 움직여도 놀라지 말아요.”“놀랄 새도 없겠네.”
태호는 잠깐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눈을 뜨는 게 어려워 보였다.
“은호 씨.”
“네, 가을 씨.”
“방금 박사님이 은호 씨에게 건넨 건 몸에 차는 용도고, 땅에 박는 건 더 많이 있습니다.”
가을은 구석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땅에 박기만 하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합니다.”
“…저걸 다요?”
은호는 상자 밖으로 삐져나온 것들을 보았다.
생긴 게 긴 타원형이었는데, 생각보다 작았기에 안에는 얼마나 더 많은지 몰랐다.
“네. 제가 다 조절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기계는 성능을 올리는 대신, 출력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박사님의 한계가 아니라, 시간상 한계인 거죠. 그 출력을 제힘으로 조정할 겁니다.”“요컨대, 신경 쓰지 말라는 거죠?”
은호의 대답에 가을은 입꼬리를 옅게 올렸다.
“정확합니다.”
“가을 씨가 가진 힘이야 당연히 알고 있죠. 전 진짜 엄청 가을 씨를 믿는데요?”
은호가 활짝 웃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건 가을이 가진 힘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사람도 가을이었으니까.
“은호 씨.”
“네.”
은호는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주 먼 곳에서 왔다는 걸 미리 알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네?”
“돌아오면 여러 가지를 준비하겠습니다. 이곳에 상식이라든지, 간단한 법률 같은 거 말입니다.”“잠시만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차원 이동, 했잖습니까.”
“…….”
은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그 말이 나올 줄이야.
“…가을 씨, 지금 쓰러지기 전이야? 그런 거야?”
태호는 입을 벌린 채 물었다.
모르는 척해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떠밀리는 업무에 죽을 것 같지만, 죽진 않습니다.”
가을은 안경을 올리며 무덤덤한 시선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저, 어릴 적 일로 알게 됐을 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그때 해야 한다는 걸요.”
사라진 뒤에는 아무리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는데, 가을은 혹여나 남을 은호의 미련을 지워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돌아와서 원래 세계가 어땠는지, 말씀해주세요.”“…대체 언제, 알게 된 거예요?”
은호는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당황함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좀 됐지?”
태호가 눈가를 좁히며 입가를 만지작거리자 은호는 진짜 기겁했다.
“형이랑… 같이 알게 된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어요?”
은호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걸 느꼈다.
사실, 밝힐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믿을 수 있을지 몰라 말을 아꼈다.
얼마나 수상하고, 또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왜 이상합니까?”
오히려 가을이 되물었다.
“차원을… 이동했으니까요. 이곳 사람이 아니니 제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어요?”“은호 씨. 환수도 차원 이동했어. 뭐가 이상하다고.”
태호는 은호의 말에 대수롭지도 않게 대꾸했다.
환수도 차원을 이동해 왔는데, 사람이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연구소에 일하면서 그런 좁은 마음을 가지고는 오래 일 못 해.”“그건 맞습니다. 무엇보다 은호 씨가 왜 이곳 사람이 아닙니까?”
“네…?”
“정식 절차는 아니지만, 제가 이곳에 발을 디딜 수 있게 ‘서은호’라는 존재를 만들어드렸습니다. 기록 속에도, 실제로도 이곳을 밟고 있는데, 왜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겁니까?”
“어…….”
은호는 가을의 말에 당황함을 좀처럼 감출 수 없었다.
늘, 이곳이 멀어 보였는데, 갑자기 달라졌다.
진짜 자신이 이곳 사람이라도 된 느낌이 몰려왔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은호 씨. 여기는 환수 연구소입니다. 아주 멀리 온 환수들도 이곳에 사는 존재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데, 은호 씨도 그냥 좀 먼 곳에서 이민 온 거라고 받아들이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가을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심각할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민등록증, 없습니까?”
“있어요.”
“누가 만들어줬습니까?”
“가을 씨가요.”
“그거 누구도 못 뺏습니다. 은호 씨의 정보가 이 땅에 새겨진 그때부터 이곳 사람이 맞으니, 더는 헛발 내딛지 마세요.”
은호는 짧게 침묵했다.
그러다 겨우 말문을 열었다.
“……와.”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말 이외에 다른 건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은호는 말을 내뱉고, 다시 숨을 들이켰다.
“…감동했어요.”
아주 살짝 일그러트린 은호의 미간이 천천히 펴지며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아직은 아닙니다. 나중을 위해 흘리십시오.”
가을다운 말에 은호는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일렁거리는 눈동자는 멈추질 않았다.
“나는요. 늘, 외부인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다 알면서 방금 그 말을, 정말… 듣고 싶었어요.”
이곳에 발을 딛고 있어도 자신은 외부인이었다.
그 사실은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 불안함이 감쪽같이 지워졌다.
“은호 씨는 누가 뭐라고 해도 외부인이 아닙니다.”
가을은 확실하게 못을 박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나랑 형 동생 하자며? 은호 씨는 내 동생이잖아. 나는 진짜 농담 아니라, 내 진짜 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어.”
태호는 흐리멍덩한 시선을 붙잡으며 은호를 보았다.
“물론, 한 대 콱 때려주고 싶었지만.”
머리가 빙글빙글 도니 하지 말아야 할 말도 나왔다.
태호는 한 걸음 은호에게 다가갔다.
두 손을 뻗어 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흑견 등에 타도 좋으니까. 그냥 와. 그러면 정식 절차를 통해 양동생이 되는 것도 같이 생각해보자고.”“형. 죽으러 가는 거 아니라니까요?”“흑견 등에 타고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봤자 네가 늘 흑견 등에 타고 오니까. 거꾸로 말해보면 어떨까 싶었지.”
태호는 가볍게 웃었다.
자신이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될 정도로 머리가 멍했다.
그러나 이건 분명했다.
“은호 너는 지금 혼자가 아니야. 이건 꼭 기억해.”“당연하죠.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은호는 기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자신은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은호는 손을 뻗어 태호를 안았다.
태호는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는 뒤로 물러섰다.
은호가 가을에게 손을 뻗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그런 것 좀 약합니다. 두드러기가 일어나거든요.”
가을은 소매를 걷어 일어난 두드러기를 내보였다.
푸핫.
은호의 웃음이 터졌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은호가 걸어가 열어주었다.
지혜와 서율이 걸어들어왔다.
“다행입니다. 아직 안 가셨네요.”
지혜는 은호를 보며 기쁘게 반겼다.
“국장님이 엄청 서두르셨어요.”
서율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얼마나 다급히 왔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국장님 보고 가려고 했어요. 왠지 이쪽으로 올 것 같았거든요.”
환수 관리국이 지켜야 하는 곳은 분명했다.
이미 디올린의 지시로 이곳을 습격한 적도 있었다.
한 번 했으면 두 번은 못 할까.
“환수 연구소 주변에 환수 관리자들을 배치해놨습니다. 최대한 대비를 했지만, 적의 전력을 모르는 이상 이게 최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최선을 다하신 거예요. 전력은 저도 예측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환수들에게 부탁해 디올린의 힘을 지워달라고 했다.
디올린이 뿌린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천 이상이지 않을까 예상됐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준비했는지 몰랐다.
“서율을 붙이고 싶지만, 은호 씨가 허락하진 않겠죠?”
“……저요?”
서율은 처음 듣는 말에 당황했다.
사전에 없던 소리였다.
“서율 씨를 데려가고 싶긴 한데, 너무 위험하긴 해요.”
서율의 힘이라면 무조건 도움이 될 테지만, 자신이 가려는 곳은 환수들만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히 날이 서 있는 와중이라 섣부른 판단으로 그를 위험에 빠트리고 싶진 않았다.
“아니면 대기하고 계셔주시면 좋죠.”
“대기요…?”
“은호 씨. 얼마든지 서율을 쓰십시오. 정말 도움이 될 겁니다.”“감사해요, 국장님.”
은호가 웃자 지혜 역시 안도하며 호선을 그렸다.
당사자인 서율만 표정이 굳어졌다.
‘이거 원…….’
기분이 묘했다.
“국장님.”
은호가 미소를 지으며 지혜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상황을 봐서 공간을 열겠습니다.”“저 역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저도 그래요.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은호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참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저의 적이, 아니, 상대해야 하는 존재가 환수니까요.”
이곳에 환수들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환수들을 환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모여버렸으니 다들 기분이 얼마나 이상할까.
“은호 씨.”
지혜는 은호에게 다가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사람과 환수에게 해가 되는 존재로 남는다면.”
지혜의 굳은 다짐이 밀려오자 은호는 더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끝에 무슨 말이 남았는지 알기에 그저 먹먹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지혜는 은호에게 그 끝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을 은호에게 맡길 수조차 없었다.
“환수 관리국의 국장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지혜는 결정을 내렸고, 강렬하게 주장했다.
은호의 어깨가 살며시 내려갔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네요.”
그렇게 빌어보며 은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 * *
은호는 공간을 열었다.
그 너머로 라이엔이 보였다.
이미 올 걸 생각했을까.
“라이엔. 잠은 좀 잤어?”“은호는 괜찮습니까?”“나? 나는 괜찮아.”
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라이엔에게 다가가 쓰다듬어주었다.
“별일 없을 거야.”
“그래야만 합니다.”
“그럴 거라니까? 다들, 죽을상이더라.”“은호는 정말 괜찮습니까?”“그럼. 나는 정말 괜찮아. 오히려 힘이 더 나는데?”
정말일까.
라이엔은 은호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라이엔. 그럼, 갔다 올게.”
디올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는 아니었다.
“디올린은 이곳에 올 거야. 널 잡으러 말이야.”“…알고 있습니다.”
디올린은 자신도, 은호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은호가 위험해진다면…….”“얼마든지 날 구하러 와. 그래도 돼. 넌 이제 자유롭잖아?”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 은호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네요.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라이엔은 그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은호는 등을 돌렸다.
그 너머에 모두가 있었다.
“다 끝나고, 우리 신나게 파티하자고.”
은호는 손을 흔들며 그 너머로 움직였다.
공간이 닫히자 라이엔은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늘이 맑았다.
모든 곳에 빛이 내리고 있었다.
아주 최적인 날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은호.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은 없을 테니까요.’
* * *
탁.
발소리가 들리자 디올린은 그대로 멈췄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냄새.
이 분위기.
자연이 반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안녕, 친구야.”
은호가 웃으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