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4화(294/302)
293화. 드디어 마주하다(2)
디올린은 은호를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졌다.
진짜 자연의 대리자였다.
디올린의 눈동자가 조용히 움직였다.
윈디드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윈디드 역시 디올린에게 인사했다.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디올린은 잠깐 머리를 굴렸다.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왕께 가던 중이었습니까?”
그냥 우연일까.
물어보면서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대답은 은호가 했다.
윈디드의 등에 내려 디올린에게 다가갔다.
덩달아 윈디드 역시 따라 움직였다.
“널 보러 왔어.”
디올린의 귀가 아주 잠깐 꿈틀거렸다.
‘날 보러 와?’
저 짧은 말에 너무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은호를 잡아라.
그렇게 다른 존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무척 잠잠했다.
당장 여기서 ‘서은호’라는 이름을 들먹이면 누구인지 아는데, 왜 데려오지 못하는 건지 몰랐다.
아마도 옆에 있는 흑견 때문이라는 생각에 짜증이 치솟던 참이었다.
귀찮은 왕의 그림자들을 분명히 다 죽였거늘, 살아남은 존재가 있다니.
계속 거슬렸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설쳐대는지.
하지만 이 모든 건 은호가 꺼낸 그 말로 사라졌다.
디올린의 입가가 빠르게 올라갔다.
“절, 보러 왔습니까?”“맞아. 널 보러 왔어.”“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디올린은 감정을 깊게 담았다.
그렇게 잡으려고 했던 은호가 자신의 발로 걸어왔다.
저 멍청한 새대가리와 함께.
디올린은 윈디드를 보며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꾹 참았다.
왕이 아끼는 존재였다.
가장 마지막에 절망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줄이야.
“친구야.”
“말씀하시지요.”
“나는 말이야. 정말 많이 생각했어.”“그 생각이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습니다.”“저번에 친구가 날 찾아와서 꺼냈던 말. 그리고 네가 결정한 선택을.”
첫 번째 말에 디올린의 눈가가 휘다 두 번째로 들려오는 말에 꼬리가 아래로 향했다.
“결정…이라뇨?”
저 말을 꺼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저번에 그럴만한 대화를 나눴나.
‘아니.’
디올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곧 디올린의 입가에 새로운 미소가 천천히 올라왔다.
아.
아쉬워라.
“네가 내린 결정. 그게 최선이었어?”“전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디올린은 여유를 드러내며 말했다.
조금씩 은호에게 다가갔다.
매끄럽게 얼굴 뒤로 내려온 뿔이 유독 더 날카로운 것만 같았다.
“제 결정은, 자연의 대리자께서 어떻게 하시느냐에 따라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넌, 뭘 하고 싶은 거야?”“그것도 자연의 대리자께서 꺼낼 대답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위아래로 흘겨보는 시선에 은호는 디올린이 숨긴 얼굴과 마주했다.
붉은 눈동자 속에 드러나는 감정은 업신여김이었다.
가소롭고, 하찮게 바라보았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그 감정이 가장 강렬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당신과 마주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디올린은 걸음을 멈췄다.
예의를 차리듯 한쪽 앞발을 구부렸다.
“조금 더 친밀감을 쌓고, 마음도 나누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나를 데려오라고 시키면서?”“어차피 친해질 거라면 조금 더 빠른 게 좋지 않겠습니까?”“지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강제성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저와 어차피 친해질 텐데요. 이런 걸 보면 빠르게 눈치채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진 않네요.”
디올린이 꺼낸 말에 은호는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너와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야.”
선을 긋는 태도에 디올린은 아쉬움을 표정에 담아 은호를 바라보았다.
“자연의 대리자여.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너무도 많습니다.”“내가 뭘 모를까? 내가 모르는 게 뭔지 말해줄래?”
은호가 질문하자 디올린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자연의 대리자여.”“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너야. 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없이 생각하는 너 말이야.”“무얼 보았든, 더 넓게 보셔야 합니다.”“내가, 무얼 봐야 하는데?”“앞으로 펼쳐질 미래. 그걸 봐야 합니다.”
디올린이 입을 살며시 벌리자 육식 동물과 다를 것 없는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윈디드가 덩달아 부리를 살짝 벌린 채 날개를 올렸다.
언제든지 공격할 것처럼 보였다.
“친구야. 네 말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멈추는 선택을 해. 그게 최선이야.”“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네가 우리를 파멸로 몰고 있어.”“우리를 파멸로 몰고 있는 건 왕입니다.”
디올린은 목에 힘을 주며 은호를 향해 머리를 더 길게 내밀었다.
“다정한 목소리로 모두의 귀를 속이며 우리를 죽음으로 밀고 있단 말입니다. 자연의 대리자여. 왕의 목소리에 속지 마십시오.”
치솟는 감정을 꾸욱 누른 채 디올린은 은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면, 속아 넘어갈 것처럼 완벽했다.
“인간은 애초에 우리를 죽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과를 번복하지 않을 겁니다.”
디올린은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어차피 자신이 무얼 했는지,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은호는 물었다.
디올린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은 도무지 거짓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왕과 우리가 가진 힘이 이 세계에 내려온 재앙을 뒤로 미뤘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
환수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조화의 힘이었다.
그 힘으로 재앙을 미루고, 왕이 이를 이용해 재앙을 억누르고 있었으니까.
“인간은 우리를 방패처럼 내세워, 뒤에서 저 재앙을 막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입니다.”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러고 있을 테니까.
“자연의 대리자께서는 정말로 인간이… 우리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외형도,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를 말입니다.”
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믿지 못했으니까.
“인간은 우리를 통해 힘을 얻었습니다. 그 힘은 점점 거대해지고, 힘을 가진 인간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초능력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인간이 재앙을 극복하고, 지금보다 더 큰 힘을 얻은 그때,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디올린은 은호에게 물었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담은 채.
디올린은 생각과 달리 무척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 괜찮을 거야.
그 막연한 사실에 기대지 않았다.
재앙을 사람이 극복한 그 후의 이야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너한테 왕은 원수가 되겠구나.”
은호는 그제야 알았다.
왕은 사람을 믿었으니까.
얼마든지 환수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 미래를 꿈꾸며 인간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러니 디올린에게 왕은 적이었다.
가장 증오스럽고 역겨운 존재.
“저는 인간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를 죽이고 있는 인간이, 미래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디올린은 눈가를 안쪽으로 모았다.
“너는, 무얼 선택한 거야?”
은호가 되물었다.
“어차피 인간들이 우리를 죽일 거라면, 인간이 약한 지금 죽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다, 죽일 거야?”
“아뇨. 그럴 수 있나요. 우리에게 해가 되는 싹만 지워버릴 겁니다. 저를 그렇게 잔인하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디올린은 선을 그었고, 은호는 가볍게 웃었다.
정말로 아주 큰 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너도 인간이랑 똑같구나.”“…말조심하십시오, 자연의 대리자여.”
디올린은 그대로 일어나 은호를 내려다보았다.
자연의 대리자가 아니었으면 죽이고도 남을 소리였다.
“네가 그렇게도 증오하는 인간이 지금 그러고 있잖아.”
디올린이 하는 말을 거꾸로 뒤집어버리면 똑같았다.
아니, 지금 실제로 그러고 있었다.
환수들을 꾸준히 관리하고, 틀에 맞추고, 그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네가 그렇게도 역겨워하는 인간이 너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너랑 대체 뭐가 다른 건데?”
은호는 웃음만 나왔다.
증오하면 닮아가는 걸까.
닮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건지.
“그저 주 세력이 인간에서 너희로 바뀌는 것뿐이잖아.”“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디올린이 꺼내는 물음에 은호는 잠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왕이 왜 인간들에게 머리를 숙였는지 알아?”“겁을 먹었으니까요.”“아니. 바로 너 같은 생각을 인간이 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야. 서로를 의심해봤자, 달라는 건 없으니까. 주 세력이 인간이었다가 너희였다가 다시 인간으로 바뀌는 것밖에 없는 그 굴레를 예상했기 때문이지.”
라이엔이 먼저 인간에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그 굴레를 끊어버렸다.
물론, 모조리 끊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의심이라는 건 영원히 지워지질 않을 숙제였으니까.
“인간이 처음부터 너희를 죽이려고 결정을 내렸다고? 그거 대체 누구한테서 들은 말인데? 설마, 허태인은 아니겠지?”
은호는 질문하며 설마 했다.
아무리 디올린이라고 해도 고위 관직자를 건들 수는 없었을 테지.
옆에 호위하는 인간이 몇인가.
건드린 뒤 그 폭풍은 어떻게 감당할까.
디올린이 가진 힘에도 이렇게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던 건, 태호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환수를 감지하는 기계를 태호가 만들어 고위 관직자들이 이를 대비했을 테니까.
“…….”
디올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은호는 정말로 기가 찼다.
“나는 정말로 네가 다른 모종의 이유로 이런 상황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설령 그렇다고 한들, 이해는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디올린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넌, 그냥, 인간이 싫은 거야. 여러 이유를 붙이지만, 인간이 하고 있는 노력조차 보지 않을 만큼 그냥 싫은 것뿐이야.”
사람이 정말 환수를 죽이려고 했다면 애초에 지금과 같은 노력은 필요 없었다.
환수 관리국과 환수 연구소를 만들 이유가 없으며 지원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가장 많은 지원을 쏟아부으며 환수를 알려고 왜 노력하겠는가.
공존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방향이 그저 서툴고, 느릴 뿐이었다.
“너희를 여기까지 몰고 간 건 바로 너야.”
은호는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인간이 했던 노력마저 엉망으로 만들게 한 존재는 디올린이었다.
저들에게 마지막 보류나 다름없는 환수 관리국도 장악해 환수에게 등을 돌리게 해버리지 않았는가.
권석현이 그 증거였다.
“자연의 대리자여. 말, 조심하십시오.”
디올린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네가, 너희의 목을 졸라버렸어.”“자연의 대리자여, 입을 다무십시오.”“그러면 안 되지만, 그래도 차라리 네 힘을 이용해서, 너희를 미워하는 인간의 마음을 바꿔버리지. 지난 십여 년간, 네가 그 인간들의 마음을 바꿨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은호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왜 저 힘을 가지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는지 몰랐다.
“너는 오히려 인간을 부추겨 너희를 더 억압시키고, 너희를 불행으로 빠트린 길을 선택했어.”“입 다물라고 했습니다.”“네가 왕을 원망할 자격은 없어. 넌, 인간을 미워할 수조차 없다고.”
은호는 디올린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이 모든 건 그저 디올린의 아집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디올린.”
은호가 이름을 부르자 디올린의 표정이 흘러내리듯 서늘했던 부분이 싹 빠져버렸다.
순간, 행동이 굼뜬 것만 같았다.
“확실하게 말할게.”
“……왕이, 제 이름을 알려줬습니까?”“네 선택은 잘못됐어.”
은호는 대꾸하지 않고 주장했다.
단호함이 가득한 그 말에 디올린은 웃었다.
“당신이 저를 판단하는 겁니까?”“나는 너를 막으러 왔으니까.”“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연의 대리자여.”“디올린. 여기서 멈춰.”
이름을 부르자 디올린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리가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디올린.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어. 여기서 멈출 수 있어. 더는 다른 친구들을 아프게 하지 말자.”“저는 정말로, 당신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진심이었다.
정말 은호를 믿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허상일 뿐이었다.
“당신은 결국, 인간이었네요.”
디올린은 씁쓸함이 묻어난 말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디올린은 윈디드를 향해 눈동자를 움직였다.
“우리, 제법 친했는데, 이렇게 되어서 무척 안타까워.”
디올린의 머리가 살짝 기우는 그때, 불안한 소리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그러니까요. 참 안타깝네요.”
윈디드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빛을 모았다.
수풀이 흔들리고, 환수가 튀어나왔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모두 디올린처럼 붉은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그렇지?”
디올린이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