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5화(295/302)
294화. 드루이드가 (이세계에서) 환수와 (함께) 살아가는 법
일제히 디올린에게 몰려오는 환수들은 똑딱거리는 인형들 같았다.
몇 마리일까.
시선으로 가득 들어오는 숫자 은호는 씁쓸함을 느꼈다.
‘…아직 만나지 못한 환수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다른 애들이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디올린의 힘을 다 지우지 못했다.
어떻게든 디올린의 힘을 대부분 지우고 접근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무척 고민했다.
하지만 파라곤을 보고 모든 힘을 지우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오히려 더 많은 환수가 피해를 당할 뿐이었다.
자신을 붙잡기 전까지 디올린은 절대로 멈추지 않을 테니까.
은호는 환수들에게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애들아.”
상황이 상황인 이상, 다치지 않게 멈춰 세울 수 없었다.
파라곤 때와 달랐다.
은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지시를 내렸다.
“…붙잡아.”
강한 울림과 함께 잠들어 있는 식물들이 움직였다.
동시에 윈디드가 날아올랐다.
“우리를 공격할 셈입니까?”
두두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디올린은 즐거운 얼굴을 했다.
“봐. 넌, 네가 증오하는 인간이랑 똑같다니까? 다른 애들을 방패 삼아 뒤에서 일을 꾸미잖아.”
―인간은 우리를 방패처럼 내세워, 뒤에서 저 재앙을 막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입니다.
디올린 본인이 말한 대로 행하고 있었다.
“…우리 자연의 대리자께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시네.”
디올린은 이를 갈았다.
한 번이라면 몰라도 두 번은 참을 수 없었다.
“디올린.”
윈디드가 하늘로 올라 그 이름을 불렀다.
디올린의 이가 악물어졌다.
아주 짧지만, 붉은 눈동자를 한 환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름에 따른 제약인 듯했다.
그 잠깐의 시간을 두고 식물들이 환수들의 몸을 타고 자라났다.
뒷발을 묶고, 앞발을 묶으며 절대로 놓칠 생각이 없다는 듯 힘을 주었다.
하늘이 잠깐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윈디드의 링에서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은 쪼개져 서 있는 환수 모두를 향해 강타했다.
콰악!
숨통을 잡듯 빛을 맞은 모두가 굳어졌다.
“받아, 친구!”
윈디드가 말하자 땅이 검게 물들었다.
디올린의 미소가 뚝 끊어졌다.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림자!’
디올린은 그림자를 피해 달렸다.
땅에서 어둠으로 된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그대로 그 일대에 있는 환수들을 삼켰다.
오직 땅만 남은 그 자리에 디올린이 급히 걸음을 멈췄다.
“…하.”
디올린은 허탈한 소리를 내뱉었다.
저 힘은 언제 봐도 짜증이 날 정도였다.
디올린의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휘감겨 올라왔다.
고개를 젖혀 피하는 동시에 디올린은 그림자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콰앙!
큰 소리가 들렸지만, 그림자는 잠잠했다.
옆 그림자에서 흑견이 튀어나오며 어둠과 함께 앞발을 휘둘렀다.
쉬이이익.
공간마저 베어낼 것 같은 그 공격에 디올린은 똑같이 앞발을 휘둘렀다.
흑견의 발톱이 디올린의 살을 파고들었다.
상처가 생기자 디올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튀어나오는 피가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수리검처럼 그대로 흑견의 눈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어둠이 위로 일어났다.
피를 막으며 흑견은 뒤로 물러섰다.
“왕의 그림자여. 내게 고개를 조아리거라.”
디올린은 흑견을 긁었다.
“지랄하지 말거라.”
흑견은 당장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막지 못했다.
“더러운 네놈의 발아래에 고개를 숙이느니, 죽기 전까지 네놈의 목을 물어 뜯어버릴 테니까.”“혼자 남은 네가 누구의 그림자로 들어와야 하는지 몰라?”
디올린은 흑견을 보며 긴 꼬리를 흔들었다.
날개의 한쪽을 달아놓은 것처럼 화려한 꼬리가 촤악 펼쳐졌다.
“내가 들어갈 그림자는 하나뿐이다.”
흑견은 당당히 말했다.
은호.
오직 그 그림자밖에 없었다.
“디올린. 벌써, 네놈의 세상이라도 찾아온 것 같은가?”“아직 아니지. 아직은.”“너는, 우리를 죽였다.”
흑견은 몸을 낮춘 채 조용히 발을 움직였다.
디올린의 몸 주변에 둥글게 떠오른 피를 보며 경계했다.
저 피가 몸에 들어가는 순간, 놈에게 사로잡힌다는 걸 알지 않은가.
“때론 잘못된 쪽에 서는 것도 잘못이겠지?”
디올린은 흑견의 멍청함을 비웃었다.
흑견은 그 모습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형이 죽었다.
저 존재의 말도 안 되는 사상 하나로 모든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네가, 저지른 일로 새끼들이 수없이 죽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그 일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겠어?”
디올린은 더는 웃지 않았다.
흑견은 그 모습조차 너무도 역겨웠다.
정말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럼, 지껄여라.”
“어떤 마음으로 너희를 죽였는지, 말해봤자 모르잖아. 끊임없이 의심하며 날 몰아갈 게 분명한데.”
디올린은 흑견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여러 말을 삼키는 것 같았다.
“정말?”
은호의 물음이 들렸다.
디올린의 고개가 움직이기 전, 주변에 있던 피가 뭉쳐 무언가를 움켜잡았다.
나뭇가지였다.
“아……. 이러면 안 됩니다, 자연의 대리자여.”
디올린은 피를 움직이며 나뭇가지를 콱 쥐었다.
부러져 땅으로 조각난 채 떨어졌다.
“당신마저 죽이고 싶어지잖습니까.”
살벌한 미소가 드리웠다.
절대로 자연의 대리자를 죽일 수 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놔야 했다.
반드시 필요하니까.
콰악!
땅에서 갑자기 자라난 나무가 디올린의 턱 아래를 거칠게 쳤다.
그대로 고개가 뒤로 젖혀져 뒷걸음을 치다 비틀거렸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너는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했겠지.”“참, 안타깝습니다. 그날 그림자들이 저를 보지 않았다면 무사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죽인 건 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책임을 자연스럽게 전가한 디올린의 행동에 은호는 너무도 기가 차 웃음이 날 정도였다.
흑견이 느낀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디올린에게 흑견이란 지우고 싶은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징징거릴 생각하지 마. 인간에게 가서 지껄이든지 말든지 하라고.”
디올린은 흑견을 쳐다보았다.
대수롭지도 않게 던진 말에 흑견이 발끈하기 전, 윈디드가 날아왔다.
맹렬하게 쏘아진 빛이 디올린의 몸을 강타했다.
힘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닿고 있었다.
아주 더러운 빛이었다.
꼭 왕을 떠올리게 해 더 기분이 역겨웠다.
빛에 섞인 마비에 디올린이 주춤거릴 사이에 속도를 줄이지 않은 윈디드가 앞발로 디올린의 등을 움켜쥐었다.
허공에서 날개를 이용해 빙그르르 돌며 그대로 디올린을 던져버렸다.
“이 이상 내 친구에게 입 놀리지 마.”
윈디드는 제자리에서 멈추며 사납게 경고했다.
촤악.
땅에 뒹굴었던 디올린은 제자리에 섰다.
“재미있는 조합이네.”
마비 때문에 행동이 굼떴지만, 여전히 우아함을 드러냈다.
디올린은 눈웃음을 지었다.
“자연의 대리자여. 고작, 이걸로 절 붙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겨우 셋이었다.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제가 고작, 그 정도만 만들었겠습니까?”
솔직히 조금 전에 자신의 부하를 삼켜버린 일은 놀랐다.
흑견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에 묻혀 잊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저 일부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싸움이 일어날 걸 알았고, 싸움을 위해서는 숫자가 몹시 중요했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생각을 한다는 건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이었으니까.
“자연의 대리자만 제외하고, 다 죽이렴.”
디올린은 상냥하게 명령했다.
이 숲에, 아니, 이 너머에도 자신이 조종할 환수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부르고, 부르면 그뿐이었다.
디올린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왕 주변에 있는 이들을 제외한 모두를 이곳으로 불렀다.
자신이 노리는 건 오직 자연의 대리자뿐이었다.
‘이미 내 손아귀에 왕이 있는데, 하나만 더 잡으면 끝난다.’
상황은 아주 간단했고, 기회가 굴러온 상황이었다.
두 번은 없었다.
“디올린.”
은호의 부름에 디올린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밀려드는 제약에 짜증이 밀려왔다.
“제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십시오. 기분이 더럽습니다.”
디올린은 얼굴을 구겼고, 은호는 머릿속으로 박히는 수많은 환수의 이미지를 마주했다.
‘붙잡아줘, 친구들아.’
저들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 숲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의 발목을 붙잡았다.
자연의 힘에는 기척이 없다는 걸 배가 뚫렸을 때, 알아버렸다.
아주 조용한 힘이었다.
이건 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늪처럼 발을 붙잡고 땅으로 파고들게 했다.
그 사이로 은호는 나무를 뭉쳐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받은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대체 네가 지키고 싶은 건 대체 뭐였던 거야?”
은호의 물음에도 디올린이 주목한 건 숲의 흔들림이었다.
곧 즐겁게 은호를 바라보았다.
“우리입니다.”
당당한 저 대답에 은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네. 우리입니다.”
“네가 아니라?”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루고 싶은 결과는 하나니까요.”“네가 다음 왕이 되는 일 말이야?”
은호는 디올린과 이야기하며 머릿속으로 닿는 이미지를 보았다.
나무가 거대하게 자란 숲이 아래에 존재한 모든 어둠이 꿈틀거렸다.
그림자는 조용히 환수들의 다리를 붙잡았다.
재빠르게 그들의 몸 위로 오르며 모든 걸 움켜쥐었다.
발버둥조차 치지 못한 채 아래로 그림자 속으로 끌려갔다.
그 순간, 여유로움이 가득하던 디올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
신호가 끊어졌다.
저 멀리, 빛이 번쩍거렸다.
윈디드와 닮은 이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수호자들이었다.
“똑같이 돌려줄게, 디올린. 내가 고작 이 정도만 데려왔겠어?”
은호가 자신만만함을 드러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
은호는 땅을 가리켰다.
쿠구구구궁.
땅이 흔들렸다.
디올린을 두고 거대하게 자란 식물들이 일제히 손을 뻗어왔다.
디올린이 아주 작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자연의 대리자야말로 아직 제가 누구인지 모르나 봅니다.”
디올린의 눈동자에 빛이 어린 순간, 주변에 있던 피가 뻗어나갔다.
식물들을 향해 박혔다.
아주 굵은 말뚝이 보였다.
식물들의 연결이 끊어지며 서늘함이 은호에게 스며들었다.
빼앗겼다.
금방이라도 저번하고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은호는 오만함에 휩싸인 디올린을 마주했다.
자신이 이걸 생각하지 않았을까.
은호는 가방에서 씨앗을 꺼냈다.
땅으로 떨어트리기 전, 갑자기 심장이 뛰는 느낌을 받았다.
쿵.
쿵.
이 소리는 자신이 아니었다.
주머니에 있던 위그드라실이었다.
은호가 위그드라실을 꺼내자 주변에 빛이 더 맴돌았다.
위그드라실은 손을 뻗었다.
【은호에게 무릎을 꿇어라.】
단호한 그 말과 함께 은호에게 날을 세운 식물들의 허리가 꺾여 쓰러졌다.
마치 머리를 조아린 것만 같았다.
은호는 놀란 눈으로 위그드라실을 보았다.
“……?”
디올린은 뒤늦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식물들이 제멋대로 꺾여버렸다.
자연의 대리자가 대체 뭘 한 걸까.
이게 무슨 일인지 몰랐다.
무언가 단숨에 일어났으니까.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그 누구도, 은호에게 손을 뻗지 못하리라.】
마법 같은 말이 위드그라실을 통해 흘러나왔다.
숲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랐다.
저번처럼 자신들이 은호를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위그드라실은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
또 들렸다.
저번에 처음 들은 이후로 전혀 들리지 않았던 위그드라실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너야. 너는 우리야. 그러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위그드라실이 웃는 것만 같았다.
은호는 잔잔히 미소를 흘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 소리가 귀에 담겼다.
정말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은호는 씨앗을 뿌렸다.
“자라나자.”
저번에 초능력 관리국에서 자신이 불러왔던 그 식물이었다.
이름을 붙였다.
아주 아름답게 핀 한 송이의 꽃을 기억해 왕의 꽃이라고 불렀다.
왕의 꽃이 수없이 자라났다.
거대하고, 비단결 같은 새하얀 꽃 한 송이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며 디올린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야?’
처음 보는 꽃이었다.
디올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지 몰라도 좋지 않았다.
“뭔지 궁금하면 봐.”
은호는 손가락으로 왕의 꽃을 가리켰다.
왕의 꽃은 잎사귀로 일제히 바닥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커다란 진동이 일어나며 땅에 파묻혔던 디올린의 피가 떠올랐다.
피로 된 수많은 말뚝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디올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를 빼앗겨버렸다.
“똑같은 수작질은 하면 안 되는 거 몰라?”
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의 꽃은 말뚝을 빛을 내뿜었다.
거대한 빛줄기가 경쾌하게 퍼져나가며 디올린의 힘을 박살 냈다.
사방으로 흩어진 피가 다시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왕의 꽃이 다시 흡수했다.
꽃의 색이 빠르게 바뀌었다.
“그렇지, 디올린?”
은호가 팔을 살며시 벌리자 그 뒤로 커다란 붉은 꽃잎이 천천히 떨어졌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