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8화(298/302)
297화. 드루이드가 (이세계에서) 환수와 (함께) 살아가는 법(4)
디올린이 피를 저장했다면 그 피를 뽑아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겨우, 그따위 존재로 뭘 하려는 겁니까?”
디올린은 라비를 보며 비웃음을 터트렸다.
뭐 대단한 존재가 나오나 싶었더니, 성체도 되지 못한 존재였다.
아주 보잘것없었다.
“나는 그따위가 아니니라!”
라비가 은호의 다리에 매달려 말했다.
쿠구구구궁.
땅이 움직이며 디올린을 향해 식물들이 손을 뻗었다.
디올린은 그 손에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등에 달린 피로 된 날개가 휘둘러졌다.
모든 반경을 아우르는 그 날개로 나뭇가지와 풀들이 땅으로 너풀거리며 떨어졌다.
날개는 피의 춤을 쳤다.
팔다리가 아니기에 지치지도 않았다.
뻗고, 또 뻗은 식물들의 손아귀를 모조리 도륙하며 털끝 하나도 건들지 못했다.
디올린은 은호를 쳐다보았다.
어때?
그렇게 물었지만, 은호는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디올린을 향해 비가 내렸다.
우앙들이 내려주는 비였다.
은호의 머리카락이 위로 살짝 떠오르는 그때, 벼락이 내리쳤다.
콰아앙!
하나가 아니었다.
일렉트와 크라카들이 공격을 내뱉었다.
물을 따라 전기가 퍼져나갔다.
디올린은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얼마든지 발악해보십시오.”
디올린은 깨지고, 부서졌지만, 다시 피 웅덩이에서 걸어 나왔다.
오히려 저들을 보며 더 깊게 웃었다.
“무너지는 쪽은 누구인지 보란 말입니다!”
디올린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거, 이상해!”
일렉트가 꼬리를 바짝 올렸다.
벼락을 맞아도, 멀쩡했다.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삐죽아.”
은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위해 모인 환수들이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폭시의 힘으로 그들의 두려움이 눈에 선명히 보였다.
이해했다.
분명 다 이긴 것 같던 상황이 뒤바뀌었으니까.
하지만 은호는 활짝 웃었다.
“괜찮아, 애들아.”
은호는 교감의 힘을 퍼트렸다.
잔잔하게 퍼진 그 힘은 바람처럼, 흩날리는 꽃잎처럼 아름다웠으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하지만… 쓰러지지 않아.”“…맞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아.”“애들아.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 그걸 지금 내가 보여줄게.”
은호는 다시 앞을 보았다.
디올린에게는 뒤가 없었다.
너무도 멀리 왔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을 테지.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섰는지, 디올린은 모르겠지.
“말썽꾸러기 말이 맞아.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
윈디드가 날개를 펼치며 벼락이 내리치는 하늘로 겁 없이 날아갔다.
하늘이 밝아졌다.
“주저하지 마라, 인간.”
흑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피식 웃었다.
그림자가 디올린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디올린의 움직임이 멈췄다.
“…저, 썩을 그림자가.”
반응이 달랐다.
초능력자의 초능력마저 앗아갔다.
디올린이라고 뭐가 다를까.
모든 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받아라, 병아리!”
흑견은 디올린을 어둠으로 감싸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알겠어, 친구!”
높은 곳에서 쏟아진 빛줄기는 거친 바람을 품고 날아와 디올린의 몸을 강타했다.
쿠웅!
묵직한 소리가 퍼지며 그대로 디올린은 허공을 날았다.
디올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촤르르륵.
풀렸던 사슬 하나가 다시 감겼다.
몸이 무거워졌지만, 은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파직.
은호의 머리카락에 전기가 휘감겼다.
윈디드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처럼 디올린의 위치를 파악했다.
손을 뻗었다.
“레요!”
“가자, 은호!”
천벌이 내리는 것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천둥이 디올린을 내리찍었다.
콰르르르릉!
힘없이 땅에 처박혔지만, 디올린의 몸은 조금 전처럼 쪼개질 뿐이었다.
“아리스!”
“응!”
샛노란 나비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날아갔다.
붉은 나비가 함께 했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디올린!”“움직이지 마, 디올린!”
은호를 따라 폭시가 강하게 명령했다.
그때, 그의 눈동자에 옅은 빛이 휘감겼다.
별이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멍멍이 형님!”
“가져가라, 인간!”
촤르르륵.
은호의 등 뒤로 검은 망토가 휘날렸다.
어둠이 움직였다.
디올린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그대로 살을 파고들어 땅으로 당겼다.
콰악!
“……!”
디올린의 웃음이 멈췄다.
이내 섬뜩함이 밀려들었다.
은호는 위를 가리켰다.
눈이 번뜩였다.
“떨어져라!”
“떨어지거라아!”
은호와 라비가 동시에 외쳤다.
뜨거운 열기를 가득 품은 힘이 하늘에서 번쩍였다.
콰아아아아앙!
얼굴을 내미나 싶던 차, 땅을, 디올린을 휩쓸어버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폭죽이 터지듯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똥별은 화려하게 터졌다.
바람이 불었지만, 은호에게 닿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환수가 바람을 지워버렸다.
은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레비아탐. 너의 힘을 보여줘.”“나는 아주 무섭다곰!”
자욱한 연기만 깔린 그 위로 비눗방울이 나타났다.
빛을 품은 비눗방울이 뒤따라 나타났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지도 않았다.
짝.
은호와 레비아탐의 박수를 따라 소리 없는 힘이 번졌다.
“…아, 아아아악!”
디올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들아! 디올린의 발을 묶어줘!”
은호가 목에 핏대를 세울 만큼 소리쳤다.
“힘과 함께 이름을 불러줘!”
이름에 담긴 제약.
자신만 부르는 게 아니라면.
모두가 부르는 거라면.
발목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디올린이 다시금 일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했다.
“디올린!”
폭시가 가장 먼저 이름을 언급했다.
“디올린!”
레비아탐이 따라 목소리를 높였다.
“디올린!”
일렉트와 라비가 동시에 외치자 말은 점점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은호는 집중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은호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식은땀이 목 뒤로 흘러내렸다.
은호는 태블릿을 보며 물었다.
“태블릿 씨, 피를 흡수하는 식물을 불러줄래요?”
《…….》
《해당 식물을 검색합니다.》《■■■■을 찾았습니다.》《불러…오겠습니까?》
태블릿은 주저했다.
알고 있었다.
“불러올게요.”
하지만 은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라진 ■■■■을 불러옵니다.》《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조심해야 합니다.》
은호는 태블릿의 마음을 알고는 싱긋 웃었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휩쓸었다.
은호의 고개가 아래로 쏠렸다.
울컥하고, 무언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목구멍마저 뜨거웠다.
손끝에서부터 빛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은호는 밀려오는 고통에도 몸을 구부리지 않았다.
구부리면 모두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말라가는 입술이 다 터지기 전에 목구멍 너머로 무언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주륵.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은호는 입가를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에 올라탄 위그드라실을 보았다.
눈이 살짝 풀려 나른함이 드러났다.
“…위그드라실. 날, 도와줄래?”【은호. 생명의 탄생은 고통을 동반해.】“……맞아. 고통 없는 탄생은.”
은호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눈을 꽈악 감았다가 떴다.
지독하리만큼 아팠다.
“…없어.”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은호는… 그러지 않았으면 해. 내가, 대신할래. 내가 대신 떠안을래. 나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될 테니까, 아프지 않아.】“…아니. 그러지 마, 위그드라실.”
은호는 다정히 위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얼굴까지 밀려오는 빛은 무늬가 되었다.
“너는, 날 대신할 필요 없어. 네가 언젠가 나무가 될 걸 알아.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그렇지?”
위그드라실은 아주 아름다운 나무가 될 테지.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을 아우를 만큼 든든하고, 멋진 나무가.
하지만 억지로 자라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건 때가 있었다.
【은호. 나는 널 위해 탄생했는데?】
“위그드라실.”
【응.】
“…나는 나무야. 나는 풀포기야. 그리고 나는 꽃이며 이곳에 뿌리박은 모든 것이야.”
그게 드루이드였다.
그게 자연의 대리자였다.
“특별하게 태어났지만, 너도 그중 하나야. 내가 사랑하며 감싸야 하는 존재… 말이야.”【하지만 은호. 나는 말이야…….】“…날 위해 희생하지 마.”
위그드라실은 은호를 빤히 보았다.
“자라나는 건 위그드라실이 택하는 거야.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성장에는 고민이 필요해.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 깊게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야.”
고민 없이 자랄 수 없었다.
성장 역시 또 다른 고통이었다.
“지금은, 날 도와줄래?”
은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위그드라실을 쓰다듬었다.
【…응.】
위그드라실은 울먹거렸다.
흘러내릴 수도 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위그드라실이 두 손을 뻗어 은호를 안았다.
보드라운 풀잎 향이 은호의 전신을 감싸며 그는 양손을 아래로 뻗었다.
전신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빛이 손바닥을 향했다.
빛은 물이 되었고, 위그드라실은 팔을 따라 내려와 물로 뛰어들었다.
퐁당.
【이리 와. 빨리.】
위그드라실의 재촉과 함께 은호가 땅으로 뿌린 물이 스며들었다.
무언가 자라날 걸 알 듯 식물들이 뒤로 움직였다.
피가 빨려가는 느낌과 함께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땅에서 무언가 자라났다.
새하얀 줄기가 뻗어 나왔다.
“…푸핫!”
디올린이 웃음을 토했다.
뭘 하나 싶더니, 이거라니.
아주 작고, 작은 줄기 하나.
디올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피의 날개를 펼쳤다.
수없이 이름이 들리고, 어둠이 자신을 잡아당겼지만, 행동을 멈출 뿐이었다.
나아갈 수 있었다.
그저 거슬리고, 거슬릴 뿐이란 소리였다.
“이걸 하려고, 그렇게 용을 쓰셨습니까?”
띄엄띄엄 디올린의 목소리가 멈췄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자라! 얼른, 자라나!】
위그드라실이 조급함을 담아 말을 꺼냈다.
느렸다.
디올린은 움직이고 있는데, 느렸다.
은호는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피가 모자란 거야.’
이 정도는 어림없을 만큼 강한 식물일지도 몰랐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
은호는 그대로 손목을 베어냈다.
욱신.
피가 쏟아졌다.
은호는 불러온, 이름 없는 식물을 보았다.
더 많은 피를 머금고 자라났다.
야광처럼 빛을 내며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자 디올린의 웃음이 반사적으로 멈췄다.
이유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그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 베어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은호는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은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한 건데?’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은호는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몸이 무거웠다.
달리려고 해도 다리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만, 은호!”
폭시가 은호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겼다.
“그쪽으로 가는 건 위험햄!”
레비아탐도 은호의 바짓자락을 잡으며 외쳤다.
디올린이 오고 있었다.
“맞아. 이건 아니야, 은호.”
일렉트가 은호의 윗옷을 잡아당기며 꼬리를 파르르 흔들었다.
“맞느니라!”
라비는 은호의 주변을 빙그르르 돌며 어쩔 줄 몰라했다.
“…괜찮아.”
나무를 향해 다가가다 은호가 잠깐 휘청거렸다.
흑견이 조용히 다가와 넘어지지 않게 몸을 댔다.
“기다리거라, 인간.”
“…응.”
“인간이 무슨 힘을 가졌는지 알지 않은가.”
“……응.”
은호는 흑견의 몸에 기대어 어깨를 크게 떨었다.
조바심이 밀려왔다.
동시에 몸이 무거웠다.
너무 무거웠다.
쏟아지는 피를 따라 무너질 것만 같았다.
‘버틸 수 있잖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때와 달리 혼자가 아니었다.
같이 있었다.
“말썽꾸러기. 귀를 열어봐.”
윈디드가 꺼내는 말에 은호는 숨소리에 묻힌 다른 소리를 들었다.
“쑥쑥!”
익숙한 목소리였다.
은호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제대로 섰다.
고개를 돌렸다.
“자라아아!”
플라빗이었다.
은호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흰 꽃과 검은 꽃을 입은 듯한 플라빗 형제 뒤로 더 많은 플라빗들이 숨을 거칠게 몰며 소리쳤다.
언제 온 걸까.
어떻게 온 걸까.
“쑤욱쑥!”
“자라아아!”
【쑥쑥, 자라라!】
위그드라실까지 함께 목소리를 내었다.
“…자라나자, 친구야.”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은호 역시 말을 꺼냈다.
저 식물은 분명 말썽꾸러기일 테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늦게 꽃이 자라날 리가 없을 테니까.
검은 꽃이 피어났다.
일순간, 은호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검은 꽃.
플라빗 형제에게 무척 중요한 색이었다.
“너의 이름은… 흑진주야.”《사라진 ■■■■의 이름을 흑진주로 뒤바꿉니다.》
흑진주의 꽃이 흔들렸다.
옆에 꽃가루처럼 검은 포자가 나타났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디올린을 향해 쏟아졌다.
화르르륵.
그때, 멀리서 푸른 불꽃이 나타났다.
하이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들어라.”
디올린을 향한 최면이 시작됨과 동시에 보랏빛 등불이 켜졌다.
“환상에 빠지렴.”
네블라의 목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조용히 상대를 잠에 빠지게 해, 피를 빨아들입니다.》
태블릿에 흑진주를 향한 설명이 떠오르고, 디올린은 밀려드는 힘에 불안함을 느꼈다.
이건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 수없이 경고가 울렸다.
이를 악물며 흑진주를 향해 다가갔다.
‘…안 돼, 안 돼!’
“잠들어라, 디올린!”
은호의 목에 핏대가 세워졌다.
자장. 자장.
조용한 소리가 귓가에 디올린의 귀에 울렸다.
그 순간, 디올린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디올린의 등에 있던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흑진주의 꽃이 천천히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꽃이 피를 머금었다.
흑진주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가 내려와 디올린을 감쌌다.
마치 아이를 안은 것만 같았다.
나뭇가지 끝이 발판처럼 바뀌며 디올린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피를 빨아들였다.
점점 흑진주의 꽃이 검붉게 변해갔다.
“죽이면 안 돼.”
은호는 흑진주를 향해 말을 걸자 나뭇가지가 뻗어와 은호의 팔을 붙잡았다.
조심스럽게 손목을 쓰다듬었다.
“…나는, 괜찮아.”
은호가 눈웃음을 지었다.
아프지 않았다.
왜 아프지 않은 건지 몰라도 은호는 디올린을 보았다.
저장된 피가 얼마나 있는지 몰라도 은호는 디올린이 가진 무기마저 부서트렸다.
다시는 그 누구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넌 끝났어, 디올린.’
퉷.
피를 거의 다 흡수했는지, 침을 뱉듯 흑진주는 그대로 디올린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제야 식물들이 날을 세우며 디올린을 향해 손을 겨눴다.
디올린은 더는 부서지지도 않았다.
피 웅덩이가 생겨 새로운 몸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의식을 놓아버린 채, 한 환수로서 누워 있었다.
“…기분이 더럽다.”
흑견이 디올린을 보며 눈가를 꿈틀거렸다.
이렇게 보면 그냥 수많은 존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런 존재에게 이 모든 게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나도.”
은호는 대답하며 공간을 열었다.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 …너의 몫이 남았어, 라이엔.”
은호는 라이엔을 보았다.
라이엔의 등장으로 이곳은 아침이 되었다.
조용히 걸어왔다.
그 걸음걸이에서, 라이엔이 풍기는 기세에서 고결함을 느꼈다.
라이엔을 처음 본 환수들도 모두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왕이었다.
자신들의 왕이 이곳에 등장했다.
왕을 보는 환수들의 눈동자가 천천히 젖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