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29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299화(299/302)
298화. 드루이드가 (이세계에서) 환수와 (함께) 살아가는 법(5)(컨셉 아트)
“나의 아이들이여.”
라이엔이 입을 열자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환수가 고개를 조아렸다.
허공에 있던 환수들조차 땅으로 내려와 머리를 숙였다.
라이엔의 머리 뒤에 있는 빛이 퍼져나가자 붉은 눈동자를 한 이들 모두 붉은 눈물을 흘렸다.
비에 씻긴 것처럼 다시 원래 눈동자로 돌아왔다.
“…그동안 얼마나 슬퍼했습니까?”
라이엔은 엉망이 된 이곳과 서로 적이 되어 싸웠던 상황에 슬픔을 드러냈다.
“너무 늦게 그대들에게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라이엔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몇 번이고 이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은호가 자신을 말렸다.
―…디올린은, 너를 잘 알고 있어. 네가 무슨 행동을 알지 예측도 할 거고. 너도 모르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부를 때까지 안 돼. 원래 왕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잖아?
은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열기가 느껴졌다.
피 냄새가 났다.
몸이 부들거리는 게 보였다.
쓰러질 듯한 몸을 잡고 서 있는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은호는 디올린을 가리켰다.
“…지금은 내가 아니라, 디올린을 바라볼 때야.”
모든 건 디올린을 붙잡은 뒤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아니었다.
라이엔은 은호를 지나쳐 디올린 앞에 섰다.
“디올린.”
라이엔의 부름에 디올린은 눈을 떴다.
눈이 너무도 부셨다.
태양과 직접 마주한 것만 같았다.
“…으으윽.”
디올린은 신음을 내뱉었다.
온몸이 아팠다.
발가락 하나 꼼짝할 수조차 없었다.
저 빛이 온몸을 짓눌렀다.
“……하하.”
디올린은 라이엔을 보며 웃었다.
정말이었다.
저 인간이 말한 대로 정말 풀려났다.
끝났을까.
정말로?
“나는… 그대를 아꼈습니다.”
“죽이십시오.”
디올린은 입꼬리를 올렸다.
수없이 들어온 저 가식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아. 당신은 저를 죽일 수조차 없는 겁쟁이였다는 걸 잊었네요.”“그대는 지금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약속이 깨졌으니까요.”
이성보다 야성이 더 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생각을 할까.
“다, 멍청해. 하나같이 멍청하다고.”
디올린은 하늘을 보았다.
여기도 빛이 내리쬈다.
참 역겨웠다.
어디서나, 언제나 빛이 내려왔으니까.
“인간이… 우릴, 죽였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습니까.”
천천히 디올린의 눈가에 파도가 쳤다.
축 늘어진 동족을 안았던 그 싸늘함이 아직도 선명했다.
“왕인데, 당신이 우리를 지켜야 하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당신이…….”“너도 우리를 죽였다.”
흑견이 디올린의 말을 잘라버렸다.
지금 누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지 몰랐다.
“그러니 그 입 닥치거라. 네가 입에 올릴 말도 아니고, 지껄일 말도 아니다.”“너희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왕과 인간이지.”
디올린은 웃음을 터트렸다.
시선을 옮겨 뒤에 모여 있는 환수들을 향했다.
“너희는 무사할 것 같지? 너희는 왕의 편이 서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겠지? …아니! 이 평화는 깨지고, 너희는 내가 옳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왕이 꾸민 그 역겨운 짓거리가 얼마나 큰지 너희도 알게 될 거라고!”“디올린.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간 건 그대입니다. 인간과 서로 담을 쌓게 만든 건 그대란 말입니다.”
라이엔은 감정을 꾹 눌렀다.
그동안 얼마나 디올린을 봐왔던가.
“그대가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를 억압시켰습니다. 그대가, 인간을 조종해 인간과 벽을 쌓도록 조장했습니다. 어디까지, 대체 어디까지 다른 존재의 탓으로 돌릴 겁니까?”“당신이 고개를 숙이지 말았어야지! 왕으로서 우리를 저버리지 말았어야지!”“이곳은 인간의 땅입니다. 우리는 침략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라이엔은 눈이 멀어버린 디올린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전제 조건이 잘못됐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이곳에 살고 있던 존재들은 바로 인간이었다.
“수없이 빼앗긴 건 인간입니다. 우리의 존재로 이곳에 살고 있던 동물의 생태계가 엉망이 됐습니다. 우리의 등장으로 그들은 원치도 않은 힘을 얻게 됐습니다. 느끼지 않아야 할 미지의 공포를 느끼게 됐습니다.”
언급하지 않아도, 인간이 잃은 건 많았다.
돈도, 시간도, 갈등도 수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인간이, 우리를 받아줬습니다. 살 곳을 내어줬단 말입니다.”“우리를… 가두는 게 내어줬다고 말할 수 있어? 우리를 동물처럼 조사하고, 감시하는 게 받아준 거야? 우리를…. 우리를, 학살한 게 공존이냐고!”“맞습니다. 인간은 우리를 가뒀습니다. 나의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왜… 우리를 가두게 됐는지 모릅니까?”
라이엔의 질문에 디올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대신했을 뿐이야.”“인간의 방식을 거부한 건 그대입니다. 그대가, 인간을 공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를 이해했습니다. 그대의 분노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나는 인간에게 더 고개를 숙였습니다.”
“……뭐?”
은호는 놀라며 라이엔을 바라보았다.
디올린의 뒤치다꺼리를 했다는 게 아닌가.
“나의 아이를 죽인 인간들이 어떻게 됐는지 정말 모릅니까?”“…인간들이 인간을 죽였다는 그 말을, 너는 진짜 믿었어?”“믿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이곳을 살아가야 하니까요.”“…아니, 살아 있어. 멀쩡히 살아 있었어! 그 아이들은… 죽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데, 밥을 처먹고 있더라.”
디올린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나려다 이내 고꾸라졌다.
하지만 계속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게 인간의 방식입니다. 사회적으로 죽여버린 것이지요. 왜 그랬겠습니까?”“…그래야 탈이 없으니까. 그래야 환수들에게 시선이 가지 않으니까.”
은호의 대답에 라이엔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를 위한 보호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인간을 죽여버리면, 인간은 우리에게 더 큰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공존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게…?”
하지만 디올린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대를 믿었습니다. 그대가 절망에 휩싸였어도, 정말, 깊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디올린. 그대는 내 뒤에서 이 모든 걸 꾸미고 있었습니다. 나의 노력은, 그대의 일그러짐으로 수없이 무너졌습니다.”
“……아.”
디올린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렸다.
몸에 난 상처에서 피를 꺼냈다.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작았다.
“그럼, 내가 죽으면 다 끝난다는 말이지? 넌, 아니, 너희 모두 그걸 바라고?”
디올린의 말이 끝나자 은호는 이유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사아아아아.
경고가 울렸다.
은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저장된 피도 다 흡수했고, 디올린이 조종하던 환수들도 라이엔의 힘으로 풀린 상태였다.
뭐가 남았을까.
‘…아무것도 없는데?’
“그거 괜찮겠다.”
디올린은 라이엔을 보았다.
“너한테 영원히 기억되는 일 말이야. 이건 진짜 괜찮겠는데?”“허튼수작하지 마십시오. 내 앞에서 누구도 죽을 수 없습니다.”
“그래?”
디올린은 본인의 목에 피를 가져댔다.
“시도해봐도 되는 거잖아?”
“…멈춰, 디올린!”
은호는 디올린에게 손을 뻗으며 크게 불렀다.
샛노란 나비가 날아갔다.
디올린은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디올린의 눈동자가 은호를 향했다.
“이거 어쩌나, 고귀한 왕이 안 된다고 하네?”
은호는 자연이 경고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흑견이 달려왔다.
불안정한 그 움직임을 보며 윈디드가 날아왔다.
링에 빛이 감겨 있었다.
“그러면 네가 죽어, 자연의 대리자!”
디올린이 꺼낸 말 너머로 붉게 변한 흑견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흑견은 그대로 은호를 안고는 그림자로 들어갔다.
윈디드의 빛이 흑견의 꼬리를 스쳐 지나갔다.
“…은호!”
윈디드는 소리를 치며 그림자를 거세게 때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
갑자기 이렇게 되다니.
윈디드는 고개를 올렸다.
그 너머로 공간이 열렸다.
지혜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 * *
‘언제…?’
은호는 어둠 속에서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며 의문을 느꼈다.
언제 디올린의 피가 흑견의 몸에 스며들었을까.
‘……아.’
그때였다.
흑견이 디올린을 내던지기 전에 피를 빨아들였다.
원래는 아무 반응이 없어야 하는 게 맞지만, 흑견은 아니었다.
이게 진짜 몸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껍데기이자 형의 몸이라고 했다.
디올린의 피를 이곳으로 흡수했다.
디올린은 흑견이 뒤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어둠으로 들어온 순간, 환수들과 이어졌던 연결이 사라졌다.
딱 하나, 흑견과 이어진 연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은호는 두 손을 뻗어 흑견을 안았다.
“…괜찮아, 멍멍이 형님. 이건 멍멍이 형님 잘못이 아니야. 정말이야.”
교감의 힘을 퍼트렸다.
어둠에서 빛이 퍼지자 은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많은 게 보였다.
잔잔하게 웃던 은호는 이내 이 드넓은 어둠 속에 무언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저거였다.
저게 디올린의 피였다.
“멍멍이 형님. 나는 한 번 디올린의 힘을 없애봤어. 그때 봤지?”
저항할 수 있었다.
녹여버렸다.
“그러니까 날 믿어줘, 멍멍이 형님.”
흑견은 계속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몸에 두른 이 힘, 이게 흑견의 힘이었으니까.
어둠 속에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 먹히지 않게 막아주고 있었다.
은호는 흑견의 힘으로 흑견을 밀쳐냈다.
흑견의 껍데기는 힘없이 밀려났다.
은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바닷속처럼 헤엄쳐 피를 향해 다가갔다.
피는 아래로 움직였고, 자신과 연결된 사슬은 그때도 지금도 아래를 향했다.
‘저 아래에 멍멍이 형님이 있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점점 서늘해졌다.
얼마나 추운 곳에 있는 걸까.
【…동생아. 넌 내가, 지켜!】
갑자기 머릿속으로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호는 흠칫거렸다.
자신이 내뿜는 빛 너머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새끼였다.
샛노란 눈을 한, 까만 새끼가 무언가를 끌어안듯 바라보았다.
흑견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거, 멍멍이 형님의 기억이야?’
화사하게 핀 꽃 하나를 뜯어 흑견에게 건넸다.
【이건 꽃이야. 예쁘지?】
흑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무다? 형, 완전 많이 알지?】
【우아. 아아.】
말을 하지 못하지만, 해맑은 소리가 뻗어 나왔다.
세상은 맑았다.
다채로운 색깔이 가득했다.
【저건 하늘이야.】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아! 바다도 있다? 우리, 나중에 바다도 가보자. 하늘이 물처럼 있대!】
히히힛.
신난 웃음이 들려왔다.
【아아.】
【맞아. 바다.】
어둠이 내려왔다.
형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아이들을 지켜줄 어른이 없었다.
잠을 청하러 쓰러진 나무 밑에 웅크리거나, 커다란 나뭇잎 밑에 웅크렸다.
하지만 둘은 해맑았다.
밤도, 어둠도 정말로 무섭지 않을 것만 같았다.
손이 아릴 만큼 밀려드는 냉기에도 은호는 계속 내려가며 흑견의 기억과 마주했다.
이곳과 다른, 아주 밝고 화려한 세상이었다.
부스럭.
하지만 그날 밤은 무언가 달랐다.
어쩐지 평소보다 어두웠다.
【괜찮아! 형, 완전 쎄! 알지?】
본인도 떨면서 형은 흑견을 위해 배시시 웃었다.
바스락.
평소보다 주변의 소리가 아주 컸다.
형의 몸 주변으로 어둠이 일어났지만, 터무니없을 만큼 작았다.
저걸로 누군가를 지키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 아아.】
흑견은 답답함을 드러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그 너머로 다른 존재가 보였다.
빛이 터져 나왔다.
아주 환한 빛이었다.
무어라 말을 하는데, 흑견은 알아듣질 못했다.
화면이 일그러졌고, 빛도, 다른 존재도 사라졌다.
소리마저 잠겨갔다.
어쩐지 흑견의 시야가 낮아져 기분이 이상했다.
스르륵.
무언가 기어 왔다.
【…미안해. 미…안해.】
형이 울면서 다가왔다.
몸에서 무언가 짙고, 뜨거운 게 떨어졌다.
【형이… 약해서, 네가 사라졌…어.】
형이 앞발을 뻗는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
은호의 눈동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였어? 멍멍이 형님이 뒤틀렸던 순간이?’
【네가, 녹아내렸어. 어떡해…….】
본인이 더 아프면서, 헐떡거리면서 흑견을 걱정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 보였지만, 그 숲에는 저들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형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애써 웃었다.
【내 몸을… 써. 내 어둠을… 흡수해.】
이게 되는 걸까.
정말로 되는 걸까.
바라보는 은호가 다 조마조마했다.
【…형이, 계속 지켜줄게.】
목소리가 점점 흐릿해졌다.
머리가 땅에 붙었다.
앞발을 뻗어 어둠을 꺼냈다.
【……형이, 지켜줄게. 내 동생.】
활짝 웃는 얼굴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릿해지는 눈동자를 따라 서늘함이 밀어닥쳤다.
은호는 가슴팍을 붙잡았다.
목구멍까지 감정이 거세게 요동쳤다.
형이 죽고 난, 세계는 자신처럼 회색으로 물들어갔으니까.
일렁거렸다.
마음이.
시야가.
수없이 일렁거렸다.
은호는 눈을 꽉 감았고, 다시 떴다.
교감의 힘을 따라 흑견의 기억이 자꾸만 보였다.
아침이 되어도 어두웠다.
무얼 바라보아도 지독한 회색빛만 남았다.
흑견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떠나고.
움직이고.
앞발이 점점 자람에도, 수없이 장소가 바뀌는 와중에도 흑견은 그 무엇에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은호는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멍멍이 형님도 정말 나랑, 똑같았네.’
아래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흑견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도망치는 걸까.
이 어둠에서 계속, 어딘가로 달아나고 있는 걸까.
은호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저 너머에 디올린의 피가 있었다.
흑견을 노리고 있었다.
완전히 지배하려고 했다.
‘그럴 수 없지.’
은호는 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치이이익.
교감의 힘을 따라 피가 녹아내렸다.
흑견을 향하던 디올린의 피가 은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들어오려는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어림도 없었다.
“…코코, 피가 적힌 토템을 꺼내줘요!”
은호는 가방의 요정인 코코에게 부탁했다.
은호는 그 힘에 저항하며 힘껏 외쳤다.
“더는, 도망치지 마, 멍멍이 형님!”
말을 알아들었을까, 자신과 흑견을 이어주는 사슬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가방 너머로 토템이 튀어나왔다.
은호는 흑견의 어둠을 사용해 토템을 잡았다.
<흑견 (아기.ver) 컨셉 아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