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0화(3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0화
30화. 심사는 신중히
“…에취!”
은호는 대문을 열다 말고 다시 닫았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앞에 보이는 뭔가로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잠이 덜 깼나? ……그럴 리가.’
잠에서 깨어난 지 벌써 3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은호가 다시금 문을 열자 문 앞에 피가 주르륵 흐르는 멧돼지가 누워 있었다.
“에취이!”
다시 봐도, 어딜 봐도 멧돼지였다.
문을 다급히 닫았다. 동물 털 알레르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심장이 날뛰는 게 느껴졌다.
‘…저거, 피 맞아? 빨간 물감 아니지?’
은호는 코를 훌쩍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아니, 아니. 왜 우리 집 앞에 멧돼지가 있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냥꾼이 멧돼지를 사냥했다가 자신의 집 앞에 내던지고 갔을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 지금 뭐 하는가?”
흑견은 문 앞에서 웅크려 앉아 있는 은호를 내려다보았다.
산책하러 가자고 그렇게 자신을 조르며 열심히 준비하더니 왜 나가지 않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에 흑견은 지그시 바라보았다.
은호는 느긋하게 다가오는 흑견을 향해 다급히 뛰어갔다.
“멍멍이 형님! 문밖에 지금 멧, 멧돼지가 있어!”
은호는 흑견을 안고서는 말했다.
“멧돼지?”
“맞아! 멧돼지!”
흑견은 간절한 은호의 목소리에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 밖으로 나갔다.
대문 앞을 바라보던 흑견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
은호의 냄새가 워낙 강해 집에 있으면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냄새를 알기 어려웠다.
문 앞에 다양한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참 거슬렸다.
‘그 닭대가리가 그랬네.’
멧돼지를 인간이 먹을 수도 있지만, 은호는 멧돼지를 먹지 않았다.
멧돼지 몸에 있는 흉터가 경고의 의미로 보기도 어려웠고.
대문 앞에 멧돼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미 과일하고, 나무 열매 등 소소한 게 놓여 있었다.
다른 환수가 놓고 간 걸 봤음에도 멧돼지를 던지고 갔다는 건 하나로 해석할 수 있었다.
지켜보고 있다. 나를 잊지 마라.
‘건방지게.’
흑견의 시선이 움직였다.
서늘함이 묻어난 샛노란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가는 순간, 흑견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림자로 녹아 들어가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대로 밖으로 나왔을 때, 코카트레스가 보였다.
앞발로 당장 코카트레스를 찍어눌렀다.
콰앙!
코카트레스는 산을 오르다 말고 비명을 내질렀다.
“…커헉!”
“이봐. 내가 우습나?”
흑견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 이 미친 개가! 이거 놔!”
개라는 말에 흑견의 앞발에 힘이 더 들어갔다.
쿵!
땅이 좀 더 깊게 파이며 코카트레스의 깃털이 바짝 올라갔다.
“나는 개가 아니다, 이 닭대가리야.”
흑견은 경고를 담았다.
애초에 손을 내미는 건 개를 닮았다는 모욕인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다니.
“…나도, 닭대가리가 아니다.”
코카트레스는 부들거리며 깃털로 흑견의 앞발을 잡았다.
“나는 아크다!”
흑견은 숨을 짧게 내쉰 채 앞발을 떼며 물었다.
“뭐 하는 짓이지?”
“이 미친…….”
다급히 몸을 일으킨 아크가 뒷말을 지껄이기 전에 흑견이 몸을 부풀렸다.
일렁거리는 어둠이 남달랐다.
누가 봐도 씹어 삼키겠다는 뜻이 아닌가.
“……미친 새끼.”
아크는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뭐 하는 짓이지? 세 번은 묻지 않겠다.”
“날 잊지 말라고 인간한테 경고하고 왔지.”
“왜 자꾸 인간 주변에 맴돌지?”
“그건 내가 할 소리인데? 너 정도 되는 존재가 왜 그 인간한테 매달리는 거지? 마치 개처럼.”
아크는 흑견을 비웃듯 눈이 휘었다.
흑견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앞발을 휘둘렀다.
파악!
아크는 그대로 얼굴을 맞아서는 옆으로 날아갔다.
콰아앙!
몇 번의 나무를 뚫었는지 몰랐다.
흑견이 발을 굴리자 발끝에서 피어난 어둠이 날아간 아크를 붙잡고는 바로 앞으로 데려왔다.
그저 따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마음이다. 대답이 됐나? 너는?”
“……나도 내 마음이야!”
“그럼, 인간 앞에 얼씬거리지 마라.”
그저 작은 경고였음에도 아크의 표정이 달라졌다.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하.”
흑견은 비웃음을 드러내며 아크를 놓아줬다.
간단한 본인의 감정도 모르다니.
역시 닭대가리가 맞았다.
“멧돼지는 네가 직접 치워라. 내 발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으니.”
“…뭐?”
“그 인간은 멧돼지를 먹지 않는다.”
흑견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인간을 만나고 싶다면 오면 된다. 그것까진 막지 않을 테니까.”
“무, 무슨 소리야?”
아크의 멍한 눈빛을 보니 흑견은 우스웠다.
“알아서 생각해라, 이 닭대가리야.”
흑견의 금빛이 섞인 꼬리가 가볍게 흔들리며 그림자로 녹아 들어갔다.
우스웠다.
왜 은호 옆에 있냐니.
간단한 질문이지 않은가.
싫으면 옆에 있을까.
그림자를 통해 집으로 가는 도중 흑견은 자리에 멈춰서 바람에 실려 온 냄새를 맡았다.
집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은호의 냄새가 났다.
‘……왜?’
흑견이 놀라며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자 무언가 빠르게 날아가는 게 보였다.
‘……저 인간이!’
흑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빠르게 지나갔지만, 분명 환수의 다리에 매달린 건 은호였다.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었다.
흑견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날아가는 환수를 빠르게 쫓았다.
* * *
“……으아악! 멈춰줘, 친구야!”
은호가 환수의 다리를 꼭 안은 채 소리쳤다.
왜 이렇게 됐는지 떠올려보면 무척 간단했다.
밖을 확인한다는 흑견이 좀처럼 안으로 들어오지 않자 걱정됐다.
당당히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착용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웬 환수와 마주쳤다.
새 형태로, 뭔가 그리폰과 닮아 있었다.
호랑이 얼굴에 부리가 달렸으며 앞발은 새의 발이 호랑이처럼 변해 있는 모습이었고, 뒷발은 전형적인 호랑이의 다리였다.
커다란 날개는 물론, 머리 위에 천사 링처럼 떠오른 고리가 너무도 인상 깊었다.
크기는 흑견과 견줄 만큼 커다랬고, 꼬리는 일렉트처럼 길었다.
―에취!
감탄도 잠깐, 멧돼지 때문에 일어난 동물 털 알레르기로 놀란 환수가 멧돼지를 낚아채다 말고 자신을 낚아챘다.
너무 놀라 처음에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발이 허공에 떠있자 죽을 듯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보아도 대답이 없자 은호는 몸을 흔들어보았다.
잠깐 환수의 몸이 아래로 내려가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곧 기겁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뭐야! 뭐야! 왜 매달려 있어?”
“계속 매달려 있었어! 소리쳤다고, 친구야!”
“왜 이렇게 가벼운데? 몰랐잖아! 진작 부르지. 잠깐만, 버텨!”
환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숲으로 들어왔기에 착지할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움직이자 원래 보던 것보다 사물이 더 확대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숲 중간에 꽤 넓적한 장소를 발견했다.
저기가 좋겠다 싶었다.
“곧 착지할 테니까, 거기까지 버텨.”
환수는 날개를 크게 펼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 전보다 더 거친 바람이 몰려오자 은호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두 손이 묶인 상황이 처음이다 보니 밀려오는 두려움이 꽤 컸다.
‘이런 상황이 오면…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지금 만난 환수가 자신에게 호의적이라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드루이드로서 자주 쓰는 힘은 식물의 힘이었다.
허공에는 식물이 존재할 수 없기에 지지기반을 잃어버린 셈이 아닌가.
은호는 이 사태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무조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시 보호소를 하겠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면 되겠는가.
‘안일해서는 안 되겠네.’
은호는 잠깐 웃다가 환수가 내지르는 비명에 슬쩍 눈을 떴다.
거무튀튀한 뭔가가 보였다.
“……저, 저거 뭐야?”
환수는 갑자기 자신을 쫓는 검은 힘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호는 환수와 달리 웃었다.
‘멍멍이 형님!’
흑견이었다.
공중에서 본 흑견의 힘은 꼭 사신이 쫓아온 것처럼 거대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환수가 깃털을 가득 올리며 웃음기를 쫙 빼냈다.
“꽉 잡아. 경우야 어쨌든, 내가 지켜줄 테니까.”
“잠깐만, 친구야!”
은호가 환수를 말렸지만, 이미 환수는 흑견을 적으로 간주했다.
도망이 아니라 맞서기 위해 커다란 날개를 몸으로 가득 모아서는 부르르 떨었다.
날개 끝에서 맺혀가는 빛줄기에 은호는 눈을 크게 떴다.
‘도망… 가지 않는다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흑견과 겨룰만한 힘을 가진 환수일까.
그렇다면 저 힘은 위험했다.
‘멍멍이 형님은 물러서지 않을 거야. 나를 납치한 환수로 보일 테니까.’
그럼, 저 환수는 흑견이 곱게 보일까.
갑자기 공격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처럼 보이겠지.
휘이이이잉.
거친 바람에 소리를 질러봤자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게 뻔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두 환수가 부딪치는 건 어떻게든 말려야 했다.
쿵.
쿵.
최악의 형태가 눈앞에 그려지던 차, 은호는 귀를 간질거리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평소… 처럼?’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드루이드의 힘을 아직 다 익히지도 못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뭐가 평소대로야?’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다. 그러니 믿을 건 직감뿐이었다.
은호는 아래로 손을 뻗었다.
환수의 날카로운 발톱을 꽉 쥐었다.
금세 살을 파고들자 통증과 함께 피가 흘렀다.
은호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피를 대가로 초록색 빛이 흘러나왔다.
‘…다른 건 바라지 않아. 나 때문에 두 환수가 싸우길 바라지 않는다고.’
이 모든 게 오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둥.
처음 드루이드 능력을 개화했을 때처럼 북소리가 들려왔다.
둥. 둥.
그 소리가 빨라졌다.
뭔가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은호의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텅 비어버린 눈앞에 그릇이 보였다.
씨앗은 싹을 튼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 머릿속에 박힌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그릇에서 싹이 텄다.
‘싹……?’
저게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녹아내리더니 그대로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뜨거웠다.
두 존재의 생명이 요동치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그만둬, 친구야. 적이 아니니까.”
환수는 은호의 목소리에 이유 모를 강한 힘을 느끼며 당장 행동을 멈췄다.
놀란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거대한 형상이 그려지는 듯했다.
환수는 숨을 멈추며 은호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은호는 다른 손을 내밀어 바람을 향해 뻗었다.
“멍멍이 형님을 말려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그 방향이 흑견을 향하자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와. 이게 진짜…….’
갑자기 밀려드는 현기증에 손아귀 힘이 빠졌다.
그대로 허공에 내던져졌다.
환수는 자신을 아래로 붙잡는 듯한 바람에 놀랐다.
무조건 잡아.
꼭 무언가 명령이라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주저 없이 아래로 움직였다.
환수가 손을 뻗던 차, 거무튀튀한 어둠이 들이닥쳤다.
그 틈으로 흑견이 튀어나오며 은호를 물었다.
“꺼져라.”
샛노란 눈동자에는 오로지 짙은 살기뿐이었다.
덩달아 환수 역시 살기를 드높였다.
“그 인간, 어서 내놓는 게 좋을 거야.”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몰라도 은호를 뺏길 수는 없었다.
자연이 움직였으니.
그때, 은호의 손이 움직이며 흑견의 얼굴을 살짝 건드렸다.
“……떽.”
“……?”
흑견의 눈이 커졌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평소에 은호가 꺼내는 말과 달리 뭔가 강한 힘이 느껴졌다.
흑견은 은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실수야, 내 실수. 저 친구는 나를 내려다 주려고 했어. 그러니까, 화내면 안 돼, 멍멍이 형님.”
은호는 이유 모를 식은땀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와……. 왜 이렇게 어지럽지? 토할 것 같아.’
하지만 은호는 저절로 지어지는 안도의 웃음을 막지 못했다.
그림자가 지자 은호는 위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환수가 흑견과 바짝 붙어 날카로운 시선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묘한 대치 속에 태블릿이 나와 은호의 손아귀 쪽으로 움직였다.
《윈디드.》
《부모에게 빠르게 독립한 뒤로, 짝짓기를 제외하면 죽을 때까지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닙니다. 구속을 싫어하는 환수 중 하나이며 누구든 친절합니다. 왕성한 식욕을 채우기 위해 시야가 월등히 발달했습니다. 스스로 시야의 확대와 축소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날아다니다 음식을 발견하면 바로 다가갈 정도로 식욕이 왕성합니다. 왕성한 식욕을 버티지 못해 배가 고프면 성격이 달라질 정도로 무척 예민해집니다. 배가 고플 때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빛처럼 보이는 공격에는 마비 기능이 담겨 있습니다.》
설명을 읽으니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었다.
‘…날아가다가 죽은 멧돼지를 본 거야.’
저 덩치라면 흑견의 힘을 무시할 수 있지 않을까.
땅으로 착지한 흑견이 은호를 내리자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땅이 흔들릴 정도로 어지러워 그만뒀다.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온몸에 힘이 다 빠진 것 같아.’
태블릿에게 이 힘이 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은호는 그 마음을 참고 윈디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깐이지만, 고마웠어.”
“…괜찮은 거 맞지?”
윈디드 역시 땅으로 내려오며 흑견을 대놓고 경계했다.
“무서우면 말해. 내가 쓰러트려 줄 테니까.”
“괜찮아. 우리 멍멍이 형님이 질투쟁이라 그래.”
“뭐라고 하는 건가, 인간!”
흑견의 귀가 쫑긋 섰다.
“우리 집에 또 놀러 오면 맛있는 거 해줄게.”
“그러면 아까 그 멧돼지, 내가 먹어도 되는 거겠지?”
다시 떠올려도 통통하니 군침이 돌았다.
“물론이지. 또 놀러 와.”
자유로움이 전부인 윈디드를 붙잡을 수 있을까.
윈디드는 은호의 손에 부리를 비볐다.
밀려오는 따스함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떨어지는 게 아쉽다 싶을 만큼 묘한 감촉이었다.
“다음에 찾아갈게.”
윈디드는 진심으로 또다시 들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 가.”
“조심히 가, 말썽꾸러기야. 아무 존재의 몸에 타지 말고. 다들 나처럼 친절하진 않으니까.”
윈디드는 날개를 크게 흔들더니 그대로 허공에 날아갔다.
“저 존재가 인간을 뭐라고 했는지 들었는가?”
흑견은 은호를 내리며 그를 빤히 보았다.
말썽꾸러기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게… 음, 실수야, 실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실수를 해야 이렇게 될 수 있는지.”
“그러니까 말이야. 조금만 쉬고 갈까?”
“타라.”
흑견은 익숙하게 몸을 낮췄다.
하지만 은호가 움직이지 않자 흑견은 한쪽 눈을 위로 올렸다.
“뭐 하는가?”
“바람이 갑자기 멍멍이 형님한테 몰려갔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와, 진짜로 됐네?”
“인간, …정말로 네가 그랬는가?”
흑견은 뭔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오해야, 멍멍이 형님! 공격한 게 아니라 말려달라고 그랬는데. 어디, 어디 다쳤어?”
은호가 어지러움을 참아내며 흑견에게 다가갔다.
정말로 놀란 얼굴로 여기저기 살피는 은호를 빤히 보던 흑견은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만하고, 누워라.”
흑견은 어둠으로 은호를 조심스럽게 들고는 자신의 등에 태웠다.
“인간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내가 놀란 건, 바람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명령으로 움직이게 했다는 사실이다.”
“나도 신기하더라고.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태블릿 씨.”
은호는 흑견의 등에 누운 채로 태블릿을 불렀다.
태블릿에 글씨가 떠올랐다.
《여러 가지를 살펴본 결과 드루이드가 가진 교감의 힘을 스스로 개화하셨다고 판단했습니다.》
“교감의 힘이요?”
《지금까지 수없이 스쳐왔던 환수와 식물 등 모든 자연이 당신을 존중하게 되고 아끼게 되어 만들어진 힘입니다. 당신은 이 힘으로 그들의 존중과 명령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이 모여든 교감의 힘은 서은호 님이 바라는 방향대로 새로운 힘을 개화시킬 수 있습니다.》
은호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 같았다.
《축하합니다.》
* * *
“…거기, 형씨! 자, 잠깐만! 잠깐만!”
흑견은 천천히 걷다 말고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은호가 자고 있었다.
힘을 사용해 지친 게 분명했다. 기껏 일부러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입 다물어라.”
흑견이 시선을 내리자 그곳에 줄무늬가 들어간 바위를 짊어진 채 몸을 덜덜 떠는 환수가 있었다.
“도와줘. 정말, 형씨밖에 없어서 그래.”
환수는 간절히 흑견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