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0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00화(300/302)
299화. 드루이드가 (이세계에서) 환수와 (함께) 살아가는 법(6)
“나는 계속 도망만 쳤어!”
디올린의 피가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자신을 지배하려는 건지 지끈한 통증이 밀려들었음에도 은호는 피를 쥔 손을 풀지 않았다.
치이이익.
“그 거지 같은 회사, 내가 직접 들어갔어! 날 괴롭게 하고 싶었거든! 내가 너무 미웠어! 날, 증오했어!”
저 피의 영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은호는 흘러들어오는 자신의 기억을 보았다.
회색으로 물들어간 세상.
언제나 물속에 잠긴 채 맛도, 추위도 느끼지 못한 상태로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렇게 걷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신은 늘 떨었다.
“진짜 멍청한 선택이었지!”
은호는 그 기억에 저항하며 토템을 사용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자신 앞에 흑견이 있는데.
“정말 멍멍이 형님이 꺼냈던 말대로 나는 멍청했어!”
토템의 눈이 번뜩 뜨이듯 빛이 맴돌며 피를 흡수했다.
디올린의 피가 사라지자 은호의 두 손이 힘없이 아래로 향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은호는 숨을 삼킨 채 다시 아래로 향했다.
“…과거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아무도 없어. 나도 알아. 그런데 멍멍이 형님. 형이 죽은 건.”
은호는 잠깐 멈췄다.
이 말을, 할 줄이야.
―아니. 나와 인간은 같다. 그러니 나한테 하는 말은 모두 인간한테 하는 말과 같다. 앞으로 잘 생각하고 말하거라.
그때, 흑견이 치사하게 굴었는데 이렇게 되돌아올 줄이야.
“…네 탓이 아니야.”
괜히 헛웃음이 맴돌았다.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건, 충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흑견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왜 도망간 거야?”“나도, 멍청했다. 내뱉어야 하는 피를 내뱉지 못했다.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멍멍이 형님은 날 다치게 하지 않았어.”“당연하다. 내가 제정신 아니더라도 인간을 다치게 할 리가 있겠는가. 차라리 혀를 깨물어 죽고 말지.”“그러면 왜 도망친 거야?”“……진짜 내 모습은 흉측하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디올린의 힘 때문에 형의 몸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없으면 자신은 어둠에 녹아내린 흉측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쫓아오니, 도망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눈치 좀 챙기거라, 인간.”“내가 멍멍이 형님을 그렇게 볼 리가 없잖아. 나는 정말로, 못난 모습을 그렇게나 많이 보여줬는데.”
흑견 앞에서는 참 많이도 울었다.
나약한 모습을 수없이 보여줬다.
“인간이 내게 보여준 것 중에 못난 모습은 없다.”
흑견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꺼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다.
“…있잖아, 멍멍이 형님.”
“말하거라.”
“나 계속 생각했어.”“무얼 생각했는가?”
“어쩌면 멍멍이 형님은 이름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흑견의 부모는 이도현 손에 죽었겠지.
형도 이름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흑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맞다. 나는… 이름이 없다. 그래서 알려주지 못했다.”“그러면 내가 지어줘도 될까?”“내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가?”“지어주고 싶어. 멍멍이 형님은, 내 가족이니까. 나한테 특별한 존재니까.”“인간이 내게 이름을 줘도 나는 인간에게 복종하는 게 아니다.”
푸흡.
은호는 또 웃음이 터졌다.
“당연히 알지. 내가 그걸 바랄 것 같아?”
“아니다.”
은호는 대답을 들으며 두 팔을 뻗었다.
하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은호는 앞을 바라보았고, 시선을 느꼈다.
이곳에 흑견이 있었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멍멍이 형님은 앞으로 흑성이야.”“……그게, 무슨 뜻인가?”
“검은 별이야.”
환수에게 이름은 무척 중요했다.
모두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름은 식물한테도 중요했다.
새롭게 이 세계에서 뿌리를 박을 수 있게 도와줬으니까.
이건, 흑견에게도 마찬가지일 테지.
“흑성, 나의 단 하나밖에 없는 검은 별.”
샛노란 눈동자를 상상하며 은호는 흑견을 끌어안았다.
손끝으로 보드라운 털이 느껴졌다.
은호는 그 감각을 잊지 않았다.
세티아가 자신만이 흑견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흑성, 언제 어디서도 반짝이는 나의 별.”
은호는 더 깊게 안으며 이름을 불렀다.
빛을 따라 어둠이 모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모든 존재에게 당당하길.
이제는 길을 헤매지 않고, 밤에 평온하게 잠들길.
더는, 아프지 말길.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까맣고, 까만 그 세계에서 샛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시선을 마주쳤다.
“…은호.”
“응.”
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체가 나타났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습보다 조금 더 크지만, 형체가 드러났다.
“그거 알고 있는가?”“어떤 걸 말하는 거야?”“나의 세계는 회색빛이었다.”“너의 기억을 통해 봤어.”“언제나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하지만 은호가 내게 샛노란 꽃을 내밀며 같이 가자고 말했을 때.”―나랑 같이 가자.
해맑은 은호의 웃음이 생각이 났다.
어처구니없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존재는 형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끼 때부터 세상을 헤맸을 때도 아무도 말해준 적 없는 소리였다.
인간이.
고작 작디작은 인간이 환하게 건네는 그 말이, 그토록 기쁠 줄은 누가 알았을까.
흑견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꽃을 은호에게 내보였다.
“…그때, 내 세계는 수많은 색으로 가득 찼다.”
앞발을 뻗어 은호를 안았다.
너무도 소중히 움켜쥐었다.
은호는 흑견을 안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느낌이 밀려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꾹 참고, 은호는 대답했다.
“……나도 그래.”
은호는 어깨에 닿는 물방울을 느꼈다.
“나도, 너를 만나 세상이 아름답게 변해갔으니까.”
흑견을 안은 은호의 손이 스르륵 내려갔다.
더는 의식을 잡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 * *
“…은호야.”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은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꿈일까.
꿈에서 찾아와준 걸까.
자신은 드넓게 펼쳐진 하늘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참 아름답다 싶었다.
이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앞으로 뭘 하고 싶어?”
부드럽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은호는 날아오르는 새를 마주했다.
“은호야?”
고개를 돌렸다.
앙상하고, 메말라버린 그 손이 가장 먼저 보였다.
다가갔다.
마지막에 제대로 움켜쥐지 못한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이런 표정이었던가.
새삼스러우면서도 참 반가웠다.
“나, 환수의 임시 보호소로 살아가려고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환수를 도와줄래요. 그리고 집 마당에서.”
목구멍까지 오르는 감정을 꾹 삼켰다.
눈물이 차오르면 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병마로 지쳐버린 저 표정마저 참 그리워했다는 걸 알았다.
“애들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모닥불도 피우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요.”
“은호야.”
“응.”
“…미안하다.”
“고생… 많았어요, 아버지. 많이, 아팠죠?”“네 형이 그렇게 된 것도, 네 엄마가 그렇게 된 것도 다. 전부 네 탓이 아니야.”“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그러지 않으면 혼이 날 거예요.”“그래, 그래. 꼭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기도 구워 먹고, 모닥불도 피우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아.”
아버지는 손 하나를 더 뻗어 자신의 손등 위에 올렸다.
“고생 많았다, 은호야. 내가 못나서, 그 어린 게 병원비 마련한다고, 제 몸이 무너질 때까지 일하게 했으니까.”
“아버지.”
“그래, 은호야.”
“내가 아무리 해도, 아버지 수술비를 마련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랑 수술 순서 바꿨어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소리였다.
은호는 아주 깊게 두었던 죄책감을 꺼냈다.
온몸이 떨려왔다.
“…내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거예요. 내가, 온 가족을 망쳤어요.”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그 단어는 자신이 감히 넘봐서도 안 될 게 되어버렸다.
자신이 망쳤으니까.
“은호야, 내가 허락했어.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너 고생하는 거 싫어서. 그렇게 보드라웠던 네 손에 흉만 생기니까. 네가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했어, 은호야. 기억나지 않니?”“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은호는 앙상한 그 손만 보았다.
툭.
눈물이 떨어졌다.
“…아버지 죽고, 나 그 사람 찾아갔잖아요. 그날, 비가 왔어요. 너무도 세찬 비가 내렸어요.”
그래서 비가 싫었다.
너무도 많은 걸 떠올리게 했다.
“죽이려고 했어요. 내가 원망스럽고, 그 사람이 원망스러워서 그 사람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요. 그런데 병실에 찾아가니 그 사람은 없고, 부인 상태가 이상하더라고요.”
삐삐삐.
다급한 기계음이 퍼졌다.
“…죽을까 봐. 아버지처럼 죽을까 봐, 긴급 버튼을 눌렀어요. ……내가 살렸대요. 아버지는 죽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살렸대요.”
꿈인 것 같았다.
농담을 하는 걸까.
그런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 사람, 내 앞에서 울면서 고맙다고 했어요. 못 죽였어요. 추하게 그 앞에서 울었어요. 그 사람이 아버지 장례도 치러줬어요. 참… 웃기죠? 정말 웃기죠? 수술 순서를 바꾸지 않았으면, 아버지는 무사…….”
“은호야.”
손이 은호의 얼굴이 만졌다.
은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버지와 마주했다.
“다 듣고 있었어.”
―…양보하라고. 돈 준다고. 수술비 부족하다며? 돈 준다니까? 한 번 양보한 걸로 무슨 큰일이 있다고, 이 지랄인데? 너, 돈 있어?
“그 말. 내가 다 듣고, 허락했어. 너도 들었잖아?”
“뭘요…?”
“은호 네가 아니라 내가 허락했다는 말. 기억해, 은호야.”“아버지. 나는 그런 말을…….”“기억해야 해, 은호야.”
아버지는 은호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후회했고, 또 후회해서 아버님께 찾아가 사과했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제게 부탁했습니다. 수술 순서 바꿔도 되니까. 그 돈, 은호 씨한테 달라고요.
흐릿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왜.”
“떠올랐지? 봐, 은호야. 아빠가 그랬다니까?”
“…….”
“이제 다, 내려놔. 이제 다, 내려놔도 돼.”
아버지는 웃었다.
“…왜, 그랬어요?”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어.”
“…….”
“우리 아들. 내 아들, 서은호.”
아버지는 은호를 당겨 안았다.
조심스럽게 토닥거렸다.
“잘 버텼어. 잘 견뎠어.”
은호는 그 말에 조심히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나쁜 감정은 죄다 아빠가 가져갈게.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켰으니까.”
“……나.”
은호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등에 손을 올렸다.
“…나, 아버지를 참 많이도 미워했어요.”
“그래.”
“너무도 빨리 날, 차가운 세상으로 밀어 넣어서, 그래서 미워했어요.”
“그래, 은호야.”
“그래도 나, 정말로 많이, 많이… 아버지를 사랑했어요.”“알아. 네 눈빛만 봐도 알아. 너는 참 다정한 아들이었어.”
토닥토닥.
손길이 하나 더 늘어났다.
“우리 은호…. 많이 자랐네? 미안해. 먼저 가서, 미안해.”
이 목소리는 어머니였다.
머리에 닿는 손길이 이어졌다.
“은호야. 형은, 널 구한 걸 후회하지 않아.”
“…….”
은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냥, 이대로 있고 싶었다.
이대로, 계속 있고 싶었다.
“아니, 어서 가, 은호야.”
누군가 은호를 밀었다.
몸이 뒤로 쓰러지는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서은호.”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까만 눈동자와 마주했다.
이어 까만 세상을 바라보았다.
모든 게 사라졌다.
“여긴, 네가 올 때가 아니야.”
익숙한 눈동자와 목소리에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양쪽으로 벌어진 뿔 사이에 금빛으로 된 그믐달이 보였다.
“…니르바나.”
죽음에서 태어난 환수였다.
“꽃을 심으러 온 줄 알았더니, 이런 모습으로 올 줄이야.”
니르바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니르바나 뒤에 자신이 심었던 꽃이 흔들리며 꽃잎을 뿌리고 있었다.
“…나, 죽은 거야?”
은호가 묻자 니르바나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아니니 떠나라, 인간.”“그런데 어떻게 나 여기에 있어?”“여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아무래도 또 휩쓸린 모양이다.”
은호는 그 말에 눈물을 닦았다.
빛이 쏟아졌다.
너무도 환한 빛이었다.
새하얗고, 새하얀 존재가 달려왔다.
“은호!”
라이엔은 다급한 소리로 은호를 불렀다.
“왕께서 오셨다.”
“은호는 여기에… 있습니까?”
라이엔이 묻자 니르바나는 라이엔을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습니다. 괜찮으니 진정하십시오.”
“은호.”
라이엔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빛을 내뿜었다.
그제야 은호를 향해 다가가 안았다.
푹신함이 느껴졌다.
“…정말 놀랐습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혹시, 나 지금 영혼이야?”“아뇨. 당신은 어둠 속에서 잠깐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길을… 잃었다고?”
“그 아이도 의식을 놓아버린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어둠 속에 떠돌았으니까요. 무척 피곤하겠죠.”“멍멍이 형님은, 무사해?”
“괜찮습니다.”
“…아, 나, 가야 할 곳이 있어.”
환수 연구소.
그곳이 떠올랐다.
“환수 연구소에도 디올린이 환수들을 보냈을 거야. 거기도 어떤지 봐야 해. 형이, 가을 씨가, 국장님과 서율 씨가 거기 있어.”
“은호.”
라이엔은 은호를 안았다.
“다, 끝났습니다.”
“……끝났어?”
은호가 멍한 눈을 하자 라이엔은 빛으로 조심스럽게 은호를 잡아 등에 태웠다.
앞으로 걸어가며 어둠 저 너머에 펼쳐진 광경을 보여줬다.
환수 연구소였다.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식물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디올린의 힘이 닿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모르는 얼굴을 한 환수를 향해 환수 연구소에 있던 환수들이 뛰어가 껴안아 주었으니까.
모두 웃고 있었다.
“당신이 손길이 닿은 저 아이들이, 해낸 겁니다.”
라이엔은 빛으로 상처가 난 은호의 손목을 감쌌다.
“은호가 해낸 겁니다.”
은호는 그 말을 들으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이 선택했던 회사였지만, 그래도 쭉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은호가 이룬 겁니다.”
“…….”
“기쁩니까?”
“……많이 자랑해줘.”“당연히 그래야지요.”“…나중에 봐, 니르바나.”
니르바나는 라이엔과 은호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들의 말에 니르바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제 미련을 버리고, 가야 할 곳으로 떠나라.”
니르바나는 몸을 돌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 * *
라이엔과 함께 은호가 등장하자 환수 연구소에 있던 모두의 행동이 멈췄다.
“은호!”
짧은 침묵을 깨고 라비가 힘껏 소리쳤다.
“…놀랐느니라! 정말 놀랐느니라!”
어헝헝.
눈물을 흘리며 달려왔다.
“은홈!”
레비아탐도 달렸다.
“눈앞에서 사라졌엄! 그래도 나, 난 안 울었엄!”
하지만 레비아탐은 달리며 울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윈디드였다.
날아와 앞발을 뻗으며 은호를 잡고 안았다.
바로 옆에 착지했다.
왕에게 무례를 범했지만, 그런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이 말썽꾸러기!”
은호는 정겨운 그 말에 실실 웃음이 났다.
“이제, 그 앞발로 날 쥐었네?”
자신이 다칠까, 매번 주저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봐. 삐약이가 나를 다치게 할 리가 없다니까?”“나는… 레이샤야. 내 이름을 불러줘, 은호.”
“레이샤.”
“…은호.”
윈디드는 은호를 더 끌어안았다.
“……은호!”
바람을 따라 일렉트가 은호의 앞으로 날아왔다.
두 앞발을 뻗어 은호의 볼을 쥐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목으로 얼굴을 파묻어 눈물을 흘렸다.
“울면 안 되는데. 울면 삐죽이 눈이 작아져.”
은호의 말에 일렉트의 꼬리가 바짝 섰다.
달콤한 냄새가 났다.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은호.”
은호가 손을 벌렸다.
폭시가 뛰었다.
품을 파고들며 울었다.
“샛노란 나비가, 마치 꽃 같더라.”
“……응. 응.”
“왜 다들 우는 거야? 이렇게 좋은 날에.”
은호는 더 시선을 내려 라비와 레비아탐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자 둘 다 은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나, 진짜 이번에는 멀쩡하게 왔다고.”
발소리가 들렸다.
환수가 아닌, 다른 발소리였다.
“그렇죠, 형? 가을 씨?”“…흑견의 등을 타고 오랬더니, 왕의 등을 타고 와?”
태호는 기가 찼다.
저 청개구리를 어쩌면 좋을까.
“국장님은요…?”
“통제하고 있습니다. 왕이 이곳에 온 사실을 들키면 안 되니까요.”
가을은 은호를 보며 웃었다.
“나 있잖아요. 진짜 기쁜 거 알아요?”
은호는 달려오는 환수들을 바라보았다.
“날 걱정해주는 존재들이 너무 많아요.”
다들 울고 있기에 은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매번 아파도, 혼자였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은호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어둠이 은호에게 손을 뻗었다.
그를 감싸고 품에 안은 그 자리에 흑견이 있었다.
형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가늘어진 표정이 더 잘 보였다.
이제야 제 나이를 찾은 것처럼 앳된 모습이 살며시 드러났다.
“죽고 싶은가, 병아리?”
은호는 흑견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모습이 좀 달라졌다?”
윈디드의 말에 흑견은 코웃음을 치며 얼굴을 돌렸다.
은호는 눈동자에 행복을 담았다.
계속 이들과 함께 살아가겠지.
쭉 환수들과 함께 수많은 시간을 보내겠지.
이세계에서 드루이드로서 환수와 함께 살아가는 생활은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행복할까.
은호는 품에 안긴 꼬맹이들의 눈물, 흑견과 윈디드가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참 푸르렀다.
새가 날아왔다.
‘아니, 환수들이네.’
은호는 활짝 웃으며 바닥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노란 꽃이 피어났다.
위그드라실이 은호를 향해 두 팔을 흔들었다.
은호는 흩날리는 노란 꽃잎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잃어버릴 줄 알았고, 잃어버렸던 그 단어가 비로소 손에 쥐어졌다.
가족.
저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었다.
300 후기
안녕하세요. 황시우입니다.
이렇게 또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이 끝이 났습니다.
가장 먼저 여기까지 응원해주시고, 글을 봐주신 모든 독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늘 캄캄한 어둠 속을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빛줄기가 되어준 건 독자님들입니다.
…아, 올 거라 생각은 했고, 올 거라 예상도 했지만, 역시 마지막은 늘 아쉽고, 뭉클거립니다.
전작 <이세계 마법 공무원이 되었다>를 이어 힘차게 현대 판타지에 도전을 해봤는데, 어려운 건 여전하네요.(하하하하)은호와 수많은 환수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늘 은호와 수많은 환수가 행복하고, 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래봅니다.
한 질, 두 질, 점점 작품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글이 어렵게 다가오네요.
머리 위에 늘 새싹을 달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늘 겸손하게 언제나 행복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완결까지 오는 동안 늘 포근했습니다.
여기까지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 즐겁고, 더 따뜻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
이 밑은 주절거림입니다.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은 귀여운 걸 쓰고 싶다! 귀여운 친구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 라는 바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첫 작품부터 시작된 여우 사랑을 독자님께서도 눈치채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럴 수가.
이게 들키다니!
저는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내비치지를 않은 것 같았는데, 이걸 어떻게 알았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여우 친구가 있나요? 또 여우가 나와요?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수많은 귀여운 친구가 등장하면 사알짝 희석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어쨌든, 여러 생각으로 작품을 출발했습니다.
놀라실 분도 계시겠지만,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은 힐링물입니다!!!
힐링물에 왜 피가 나오나요?
힐링물에 왜 싸움이 나오나요?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제 방식) 힐링물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가가 시큰거리면 힐링이 아닐까요?
독자님들. 힐링… 하셨죠? 그렇죠?
저는 힐링하셨을 독자님들을 생각하며 매일 뿌듯했습니다.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은 제목 그대로 드루이드인 은호가 환수와 이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환생을 담당한다는 트럭에 치여볼까 하다가 이건 좀 유행이 지나 직송으로 납치를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이 소설을 처음 쓸 때는 정말 귀여운 걸 많이 쓰자! 라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 곧 알아버렸습니다.
난이도가 상당했습니다.
환수를 제가…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머리에 지진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여러 작품을 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어려웠다는 작품이라고 기억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쓰면서도 저도 힐링되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죠…?
은호는 처음 놀랍게도 ‘시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닥이 힐링으로 바뀌면서 ‘시크’했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은호의 개인사를 보면 무척 불행할 수 있으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슬픔이라는 건 누구나 겪는 감정이고, 그 슬픔의 크기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테니까요.
은호는 사회에 속하고, 사회에서 살아가려고 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잠깐 사회에서 나왔을 뿐이죠.
우연한 계기로 드루이드가 되면서 은호는 점점 다시 사회에 속하게 됩니다.
은호가 여러분께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바보 같아도 다정한 사람이라고 기억이 됐으면 합니다.
아팠던 만큼 많은 존재를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멍멍이 형님은 개인적으로 제 가장 큰 변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공과 나란히 서는 건 늘 여우 친구들이었으니까요.
레오, 라타, 아라, 도도.
이렇게 작품 순서대로 메인을 장식했습니다.
폭시도 나오지만, 이번 메인은 단연 멍멍이 형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프다는 걸 아프다고 직접 말하지 못하는 친구라 가장 마음이 쓰인 친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멍멍이 형님의 친구인 윈디드가 함께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폭시, 삐죽이, 라비, 레비아탐 등등 수많은 환수는 은호와 함께 주인공이었습니다.
동물의 형태를 했지만, 그들은 별개의 개체였습니다.
각자 여러 가지 고민이 있고, 그 생각이 어쩌면 사소해 보이나, 당사자에게는 아주 깊은 고민처럼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환수라는 특수한 개체의 몸을 빌렸지만, 그 친구들이 고민하던 생각 중 우리가 했던 고민도 뒤섞이길 바랐던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야기 자체가 ‘환수를 만나고 -> 고민 해결’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진 걸 화려하고 예쁘게 바꿔준 건 수많은 환수라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수많은 환수를 만난 것처럼 저 역시 수없는 여러분을 만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끝은 늘 아쉽고, 슬프지만, 함께 했던 여정은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다정한 이야기가 되길 바랐고, 포근한 이야기이자 눈시울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 책을 덮고, ‘아, 좋은 이야기였다’라는 기분 좋음이 이어지길 늘 바라고, 또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긴 여정 동안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