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0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01화(301/302)
움찔.
은호는 놀라며 눈을 떴다.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렸다.
이내 몽롱함을 담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 긴장했나?’
은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꿈을 꿨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꿈.
왠지 비웃음을 당했던 것 같았다.
‘현실에서도 그러는 거 아니겠지?’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괜히 가슴이 다 뛰었다.
은호는 다시금 눈을 깜박거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었다.
“…애들아?”
은호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 자리에서 일어난다?”
은호는 링거를 슬쩍 본 뒤에 다시금 말을 꺼냈다.
“진짜 일어난다? 너희가 대답이 없는 거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은호는 머쓱했다.
그림자를 보았다.
흑견도 없었다.
‘이상하네.’
디올린을 쓰러트린 뒤, 벌써 3일 정도가 지났다.
이틀 정도는 깨어나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힘을 과하게 사용한 대가인지 몰라도 아직도 병원 신세였다.
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로 하루 정도 침대에 묶여 있었는데, 이렇게 풀려날 줄이야.
디올린은 죽지 않았다.
지혜의 힘으로 네 발이 으깨져 일단은 치료 중이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면 라이엔에게 넘겨져 다시 약속을 체결될 예정이었다.
디올린의 기억에 착란이 오기도 했는데, 좋게 말하면 기억이 사라진 셈이고, 나쁘게 말하면 또 본인의 잘못은 없다는 듯 숨어버렸다.
당분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 관리되어야 하나.
이걸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간 모양이었다.
은호는 생각을 접었다.
“멍멍이 형님도 없지?”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은 뒤, 은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
하루 정도 안 돌아다녔더니, 입안에 가시가 날 것만 같았다.
해방감마저 일어나자 은호는 방긋 웃었다.
‘아차. 지금 몇 시지?’
아까 잠깐 스치듯 봤는데, 밖이 좀 어둑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날이었다.
‘엄청 중요하지.’
은호는 휴대전화를 봤다.
태호가 디올린 사건 이외에도 바빴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오후 1시 24분.
‘안 돼!’
은호는 다급히 링거를 거치대에 끌고는 움직였다.
저번에 태호와 가을이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재해를 살폈고, 그 재해를 고위 관직자들에게 보여준 모양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이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예상과 달리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디올린을 생각했는지 몰라도 태호는 정부를 상대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환수가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러려면 환수가 동행해야 했다.
그 역할에 첫걸음을 맡은 환수는 헤인이었다.
디올린 일로 헤인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기에 은호는 더 마음이 쓰였다.
어제 눈을 떴을 때, 헤인이 자신을 찾아왔다.
―은호. 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좀 무섭긴 해.
큰 눈을 몇 번이고 깜박거리며 말했다.
태호의 부탁으로 대신해 헤인에게 말했지만, 자신도 저 부분이 걱정스러웠다.
헤인은 인간을 알고 싶어 하는 환수였다.
글도 배우고, 인간이 좋아하는 것과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찰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즐거워서 하는 일과 별개로 무거운 임무였다.
얼마나 무서울까.
그래서 헤인이에게 같이 가겠다고 했다.
―아니. 은호는 오지 않아도 돼. 내가 할 수 있어. 은호는 지금 아프잖아?
바로 내뱉는 헤인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헤인까지 그 말이 나오다니.
저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역시 헤인이를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지.’
헤인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자신뿐이었다.
‘나는 헤인이의 위치를 알고 있지.’
당당하게 태블릿으로 확인했다.
마침 방송은 환수 관리국에서 이뤄줬다.
헤인이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으니까.
똑똑.
“아윤 씨. 이거 잠깐만 빼줄래요?”
“…….”
“많이 바빠요?”
“…….”
아윤은 당당함이라고 해야 할지, 뻔뻔함이라고 해야 할지, 그 말도 안 되는 태도에 손에 쥐었던 볼펜을 툭 하고 떨어트렸다.
은호는 땅으로 떨어진 볼펜을 주워서는 올렸다.
“조심해요. 볼펜은 잘 굴러간단 말이에요.”
아윤은 당장 옆에 있는 온도계로 은호의 온도를 확인했다.
삑. 삑. 삐익!
아윤은 기가 찬 얼굴을 하며 온도계에 적힌 숫자를 보여줬다.
“이거 보여요? 읽을 수 있겠어요?”
38.2도.
“아윤 씨.”
은호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네?”
“헤인이가 혼자서 벌벌 떨고 있을 거예요.”“아…. 오늘, 알아요. 헤인이가 방송에 나오기로 했잖아요.”“아윤 씨, 생각해 봐요. 제가 언제 이렇게 부탁한 적 있나요?”
“없죠.”
“그렇죠?”
“매일 도망갔으니까요.”
아윤이 미간을 찌푸리자 은호는 숨을 잠깐 삼키며 손바닥을 내보였다.
“혀, 형하고 가을 씨가 있지만, 환수는 지금 헤인이 혼자예요. 심지어 대화도 통하지 않아요. 환수 관리국이라 위험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이 얼마나 크겠어요?”“상당히 크죠. …음,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도 있어요.”“그러니까 제가 가야 해요.”
은호는 팔을 뻗었다.
“이거… 음, 드라마처럼 빼내 보려고 했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웅얼거리듯 나오는 은호의 변명에 아윤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잠깐만 고민해볼게요.”
하지만 은호의 상태는 별개였다.
* * *
서율은 심드렁했다.
요새 진짜 너무할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쪽 갔다가, 저쪽 갔다가.
‘그때는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는데.’
3일 전, 갑자기 은호가 약속했던 그 공간이 열렸다.
지혜는 바로 그 공간 너머로 뛰어들었다.
자신도 얼떨결에 넘어왔는데,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환수들이 무척 많았다.
환수 보호 구역도 아님에도 이렇게 많은 환수는 처음이었다.
그곳에 눈을 의심할 만큼 신비스러운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가 왕이라니.’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였다.
그 뒤의 일은 무척 간단했다.
지혜는 왕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누가 봐도 악역처럼 보이는 환수를 향해 힘을 사용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우지끈.
이 또한 꿈에서 나왔다.
뭔가 자신들이 완전 악역처럼 보여 곤란했지만,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인간이여.
그건 분명 왕의 목소리였다.
귀를 녹일 만큼 황홀했다.
은호는 매일 이렇게 환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니꼬웠다.
물론, 지금 더 아니꼬운 건 현재 상황이었다.
―외부인이 있는지 확인해. 계속, 계속 확인하라고, 서율아.
‘…아니, 국장님. 여긴 환수 관리국이라고요. 설마 여기서 정신 나간 누군가가 침입해서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있겠어요?’
서율은 투명화를 한 채 환수 관리국을 돌아다니며 수상한 놈을 고르고 있었다.
‘수상한 놈이…….’
서율이 복도에서 코너를 돈 순간,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수상한 놈이 있었다.
아주 당당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이곳에 다니는 직원들의 얼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기에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마스크를 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봐.”
서율은 어깨를 쥐며 바로 몸을 돌렸다.
그대로 목을 조르려 손을 뻗다 다급히 두 팔을 위로 올렸다.
“……서은호 씨?”
“……와.”
둘 다 서로를 보며 깜짝 놀랐다.
주르륵.
은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링거의 힘이 위대하다는 걸 다시금 알았다.
열이 올라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 아니, 아니. 왜 여기 계세요?”
서율이 말을 더듬으며 묻다 말고 주변을 살폈다.
일단, 손을 뻗어 은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세요?”
이 장면을 지혜가 보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지혜와 태호가 아끼는 은호가 아닌가.
귀한 엉덩방아를 찧게 했으니, 식은땀이 다 흘러내렸다.
“…서율 씨, 진짜 무서운 사람이었네요?”“살려주십시오, 은호 씨!”
서율은 넙죽 고개를 박았다.
일어나다 말고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이번 일은 국장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서율 씨.”
“뭐든, 말씀하시죠!”“키키란, 지금 어디 있어요?”
“…키키란이요?”
“안내해주실래요? 그러면 아무 말도 안 할게요.”“은호 씨.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제가 은호 씨를 수도 없이 어딘가로 안내했다는 거 아십니까?”
“알죠.”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요?”
서율이 입꼬리를 올리며 우쭐거렸다.
은호는 그제야 지혜가 왜 서율을 부국장의 자리에 올리지 않는지를 알아버렸다.
‘…나사 몇 개가 빠져 있었네.’
* * *
“…괜찮아?”
가을이 헤인을 보며 물었지만, 헤인은 몸을 웅크린 채 꼬리를 말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헤인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다.
물도 손대지 않았고.
가을은 ‘괜찮아?’라는 글을 적은 뒤 헤인이에게 보여줬다.
글자를 보더니, 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신이 나 뭐라도 적었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박사님. 오늘 일, 미뤄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
태호는 긴 숨을 내쉬었다.
지금 머릿속에 딱 한 명이 아른거렸다.
사고뭉치.
“헤인이 상태가 이보다 나빠지면 철수하자. 이건 어쩔 수 없어. 헤인이에게 나쁜 기억을 심어줄 수 없잖아?”
태호는 헤인이를 위해 글을 적었다.
오늘 말고, 다음에 하자.
조금 어려운 말일까.
태호는 어떻게 더 쉽게 말을 전달 할 수 있을까 싶어 고민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가을과 태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몇 분 전에 지혜도 나가지 않았는가.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접니다, 서율이요.”
서율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침입자를 찾고 있다고 들었다.
태호가 일어나 문을 열어주자 서율이 보였다.
“들어오세요.”
태호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열린 문 사이로 익숙한 냄새가 나자 헤인이 고개를 올렸다.
그 반응을 보던 가을이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율 뒤로 누군가 따라왔다.
가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은호 씨.”
“은호…?”
태호가 멈춰 고개를 돌렸다.
은호가 모자를 벗어서는 씩 웃었다.
“…아니, 여기 왜 은호 씨가 와?”“헤인이가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은호가 꺼내는 말을 따라 헤인의 눈이 커졌다.
“헤인아. 괜찮아?”
은호가 다가가 헤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야, 헤인아. 물도 안 먹었어?”
피부가 말라 있었다.
평소 그 느낌이 아니었다.
은호는 옆에 있는 물을 따라 그릇에 따랐다.
“헤인아, 일단 마셔.”
“왜 왔어?”
헤인은 그릇을 향해 혀를 내밀려다 물었다.
“네가 걱정돼서.”
은호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은호는 아프잖아.”“아픔은 잠깐인데, 헤인이는 아니잖아. 나도 떨리는데, 너도 얼마나 떨리겠어? 게다가 여긴 익숙한 환경도 아니잖아?”
“…….”
헤인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헤인아. 나는 헤인이가 이만큼이나 용기 낸 걸로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 오늘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무수히 많아.”“…내가 하겠다고 했어.”“그래도 힘들면 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너를 위해서 있는 거야.”
은호가 건네는 위로에 헤인은 그제야 그릇에 혀를 날름거렸다.
물이 들어갔다.
시원하고, 달달했다.
아예 코를 막고 물을 죄다 마셨다.
“아니. 내가 할 거야.”
고개를 올린 헤인은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앞발을 뻗어 은호의 손가락을 쥐었다.
“내가 머무는 곳이 공격받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그게 속상했어?”
“…응. 단아하고, 고스덕하고, 모두가 다 도왔는데, 나는 아니었어.”“아니야, 헤인아. 모두가 할 수 있는 분야가 달라서 그래. 지금 봐. 이건 헤인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데?”“맞아……. 이건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인간과 우리를 이어주는 첫걸음이잖아?”
헤인이 비로소 웃었다.
“맞아.”
“은호를 돕고, 왕을 돕고, 태호와 가을도 도울래.”
이름이 불리자 태호와 가을은 놀랐다.
무슨 말을 했을까.
은호의 표정을 보며 두 사람은 잔잔히 웃었다.
“나, 할 수 있어! 이제 용기가 나.”
헤인은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고마워, 은호. 날 위해 여기까지 와줘서.”
헤인은 은호의 손바닥에 머리를 파고들었다.
늘 다정하고, 다정한 존재였다.
* * *
은호는 환수 연구소에 미리 설치된 거대한 영상실 장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태호의 배려였다.
꼬맹이들과 흑견, 그리고 윈디드는 자신이 연구소 들판에 있자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하게 버터 냄새가 났다.
뭘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면에 떠오른 생중계 장면에 시선을 쏠렸다.
“…인간. 그 존재의 냄새가 난다.”
헤인이.
흑견이 갑자기 말을 꺼내자 은호는 손가락을 올렸다.
“집중해, 멍멍이 형님. 지금 진짜 중요한 순간이라고.”
은호는 슬쩍 뒤를 보았다.
얼굴이 나올 정도만 공간을 열었다.
라이엔도 보고 있었다.
“맞아, 쉬잇.”
폭시가 흑견에게 말했고, 레이아탐은 앞발을 입에 올렸다.
“쉿이얌.”
“나도 쉿 하느니라.”
라비까지 이어지자 일렉트가 키득거렸다.
“작은 친구들이…….”“조용히 하거라, 병아리.”
윈디드까지 이어지려고 하자 흑견은 어둠으로 부리를 잡았다.
화면에 헤인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