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1화(3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1화
31화. 심사는 신중히(2)
흑견은 그대로 무시하고 걸으려다 등에 붙어 있는 은호가 신경 쓰였다.
그가 깨어났으면 뭐라고 했겠는가.
‘친구야,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말을 들었겠지.’
은호는 절대 이 상황을 모르는 척하지 않을 테니까.
흑견은 앞발에 힘을 줬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 번은 참을 수 있었다.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거다.”
흑견은 경고하며 환수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형씨! 지금 우리한테 있어 이것보다 더 급한 건 없어!”
환수는 기뻐하며 다가왔지만, 흑견은 뒤로 물러섰다.
기뻐 보이는 얼굴과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야생에서 믿을 수 있는 놈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설령 진짜 위험하다고 말한들, 어차피 들여다보면 시시한 일이거나 자신의 힘을 이용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뿐이겠지.
살면서 거기에서 벗어난 존재는 딱 한 명만 봤다.
서은호.
이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의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형씨. 혹시, 우리 종족이 어떤 종족인지 알고 있어?”
“모른다. 관심도 없다.”
“우리는 여기 이 돌이 집이야. 우리의 전부지.”
환수는 어느새 흑견의 옆에 딱 붙어서 바보같이 웃었다.
하얀 생물체였다.
다리는 없었고, 두 팔로 땅을 기듯 움직이는데 희한하게도 자신의 보폭에 맞추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는지.
“그런데 최근에 우리가 모아둔 돌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단 말이지. 짐작 가는 존재는 있는데,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환수가 내뱉는 말에 흑견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을 이용할 줄 알았다.
어차피 기대도 없었다. 그저 지금은 이 귀찮은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그 범인을 찾아서 쫓아내 달란 말인가?”
“아니야, 아니니까 놀라지 마, 형씨. 가뜩이나 가는 걸 붙잡아서 그런 부탁까지 했는데, 뭘 또 요구하겠어? 그냥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돼.”
“뭘 말하는 건가?”
“우리가 이제부터 최고의 집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뽑을 거란 말이지. 겸사겸사 심사위원이 되어줬으면 더 좋은데, 이건 내 바람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환수가 아무리 웃어도 흑견은 그저 이 모든 게 우스웠다.
발에 힘을 주며 환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우스운가?”
오싹.
갑자기 밀려오는 힘에 환수는 바위로 들어가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 그게 아니야, 형씨. 정말이야. 이건 우리한테 중요한 문제라고. 우리 종족을 이끌 다음 세대를… 뽑는 일이니까!”
다음 세대라는 말에 흑견은 그대로 눈가를 좁혔다.
자신의 종족은 인간한테 멸종해 살아 있는 존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도와줘, 형씨!”
두려움을 뚫고 지껄이는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산책 가자. 산책. 멍멍이 형님도 가고 싶지? 그렇다고 말해봐.
그 하찮은 말에는 잘도 마음이 움직였는데.
새삼 은호가 신기했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이런 상황을 매번 아무렇지도 않게 나서는 것도.
흑견은 곤히 잠든 은호를 바라보았다.
“심사위원은 하지 않겠다.”
“그래도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냥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만 있어 줘.”
“우선 안전한 장소로 안내하거라.”
흑견은 등에 붙은 은호부터 어딘가에 눕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있잖아, 형씨. 혹시, 심사하는 장소도 나랑 같이 봐줄 수 있을까? 좀 무서워서 그래.”
환수가 우물쭈물하며 꺼내는 말에 흑견은 짜증이 일어났다.
확 짓누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자 갑자기 은호가 자신을 붙잡았다.
잠결이라는 걸 알아도 타이밍 참 좋다 싶었다.
‘……그나저나 인간은 매번 이런 감정을 억누르는 건가?’
흑견은 잠깐 은호를 빤히 보았다.
* * *
“…눈 뜬다.”
“진짜 눈 떠.”
“깨어났어, 깨어났어!”
뭔가 소란스러웠다.
깜박깜박.
은호는 눈을 깜박거리다 자신을 바라보는 찹쌀떡 같은 생물체에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처음 봤지만, 볼때기를 잡고 싶을 만큼 말랑해 보였다.
‘……그나저나 여긴 집이 아닌데?’
은호는 이어 눈에 들어오는 숲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저기, 친구들아?”
“와! 인간이 우리 말을 해!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환수가 눈을 반짝거리며 묻자 은호는 덩달아 웃음이 났다.
“신기해? 얼마나 신기해?”
“넌 진짜, 진짜 이상한 인간이야. 하긴,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맞아! 다른 인간들은 막 싫은데, 너는 아니야. 왜 그런 거지?”
다른 환수가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리며 냄새를 맡는 듯한 흉내를 냈지만, 아무리 봐도 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얀 찹쌀떡에 동그란 눈을 붙인 얼굴이었으니까.
“…숲의 냄새가 나.”
“그건 여기가 숲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은호가 상체를 일으키자, 그의 주변에 몰려 있던 환수들이 뒤로 우르르 물러섰다.
“아니, 친구들아. 갑자기 그렇게 우르르 나랑 멀어지면 내가 좀 슬퍼요.”
친근하게 굴 땐 언제고, 갑자기 남 대하듯 물러서니 농담 아니라 은호는 슬펐다.
“네가 우릴 때리면 어떡해?”
“맞아. 너는 인간이잖아. 좀, 아니, 많이 신기한 인간일 뿐이야. 우릴 잡아갈 수도 있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을 보자 은호는 잠깐이나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폭시와 얽힌 환수 납치와 감금 사건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겠지.
“그건 확실히 무서울 수도 있겠네.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미안해.”
환수들은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은호의 모습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똑같이 당황하고 있었다.
왜 저 인간은 자신들에게 사과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가 없었기에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와아아.”
그때, 은호가 내뱉은 환호성에 환수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순수하게 감탄하는 목소리와 한껏 상기된 표정에 환수들은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등에 메고 있는 거 너희 집 맞지? 진짜 최고다!”
은호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했다.
아직 어떤 환수인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소라게처럼 돌을 집 삼아 메고 있었다.
그 돌에 새겨진 건 장인이 왔다 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세밀한 문양이었다.
어떤 환수의 집은 융단에 들어가 있는 문양처럼 세밀했으며 또 다른 환수의 집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돌마다 크기도 다른데, 들어가 있는 무늬마저 달랐기에 누가 누구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왼쪽 끝에서부터 오른쪽 끝까지 바라보는 내내 은호의 눈동자에 깃든 반짝거림이 짙어졌다.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이건 감동이었다.
“…정말?”
환수가 물었다.
“정말이야.”
은호는 말뿐만 아니라 당장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태호가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럼, 누구 집이 더 최고인지 알려줄 수 있어?”
“맞아! 알려줘!”
“나 맞지? 내 집이 제일 최고지?”
“무슨 소리야? 내 집이 더 최고거든.”
환수들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하나씩 물어보자 은호는 일부러 한 손을 뻗었다.
손끝에 환수의 돌이 닿자 가방에서 태블릿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태블릿의 등장에 환수들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놀란 표정에 은호는 크게 웃었다.
《환수를 인식했습니다.》
《락트라.》
《.》
《.》
《평생을 돌과 함께합니다. 돌을 녹이는 특이한 액체를 분비하여 손쉽게 돌을 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 선택한 돌의 크기에 맞춰 몸이 성장하며 그 이후로는 자라지 않습니다. 내뿜는 액체는 살을 녹일 수 있기에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돌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얼굴과 발을 제외하고는 햇볕에 약해 금방 화상을 입습니다. 돌을 녹이는 특이한 액체뿐만 아니라 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액체 역시 분비하기에 락트라가 등에 짊어진 돌은 일반 돌보다 무척이나 튼튼합니다. 돌밖에 모르며 돌 이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방금까지 봤던 환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돌을 좋아하고, 아낀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은호는 잠깐 저들이 꺼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우르르 말이 나왔지만, 요약하자면 최고의 집을 뽑아달라는 말이었다.
은호는 방금 찍은 동영상을 태호와 가을에게 보낸 뒤,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럼 내가 심사위원 해도 될까?”
들려오는 말이 없으면 살짝 민망할 수도 있기에 은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정말? 정말 해주는 거야?”
하지만 반응이 바로 드러났다.
물러섰던 락트라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와르르 자신에게 다가왔다.
기대감을 가득 품은 눈동자를 보니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그럼. 누구보다 공평하게 해줄게. 좀 까다로울 수도 있는데, 괜찮지?”
“나는 좋아! 우리한테 필요한 건 객관적인 눈이니까.”
“나도 좋아!”
락트라는 하나둘씩 앞발을 위로 들며 신난 목소리를 드러냈다.
“아, 그런데 혹시 까맣고, 커다란 늑대 같은 생물체 못 봤어? 분명히 나랑 같이 있었을 텐데.”
흑견이 자신을 버리고 갈 리가 없었다.
“대장이랑 같이 무대를 보러 갔어.”
“오오. 그럼, 우리도 보러 갈까?”
은호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검은 바람이 몰려왔다.
“멍멍이 형님!”
은호가 뛰어오자 흑견은 짜증 났던 표정을 빠르게 풀며 바라보았다.
“깼나?”
“응.”
대답을 들으며 흑견은 은호를 이리저리 살폈다.
건강한 걸 확인한 뒤에야 귀찮음이 섞인 목소리를 드러냈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지. 지금 당장.”
“그건 곤란해, 멍멍이 형님.”
흑견의 눈이 가늘어지자 은호는 활짝 웃었다.
“내가 심사위원이 되어주기로 했거든.”
으쓱거리는 은호의 말에 흑견은 자신을 뒤쫓아온 락트라를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시, 시, 심사위원이 되어주겠다고?”
바위에 줄무늬가 있는 락트라는 숨을 한 번 돌린 뒤, 은호를 바라보았다.
인간이 자신들의 말을 하는 상황보다 심사위원을 구했다는 사실에 이토록 기쁠 수가 없었다.
* * *
“…인간.”
흑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지.”
은호는 흑견의 몸에 누워서는 다리를 흔들었다.
락트라의 대장이 흑견을 귀찮게 굴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자신이 깨어 있었으면 바로 수락할 정도의 일이었다.
“알았다고 해도 넌 했겠지.”
단호한 흑견의 말에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정확한데? 사실 엄청 궁금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잖아?”
“무엇이 영광인가?”
“내 손으로 락트라 중 최고의 집을 가진 환수를 뽑는 거니까. 즐겁잖아.”
은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실실거렸다.
슬쩍 아래를 보면 락트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작게나마 보였다.
이미 안경을 낀 상태였고, 조금 확대만 해도 귀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대회인 줄 알았는데, 꽤 본격적이었다.
락트라들이 손끝에 액체를 뿜어 커다란 돌을 길게 깎으며 후보자들이 움직일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형상이 패션쇼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럴 수 있지. 이게 같은 말을 들어도 그 당시의 감정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잖아? 그걸로 막 여러 가지 생각을 할 필욘 없어, 멍멍이 형님.”
“매번 이렇게 한다면 귀찮지 않은가?”
“나는 오히려 즐겁고, 재미있는데? 게다가 내가 선택한 일이야. 이제 다시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흑견의 고개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자 은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도망을 좀 쳤거든.”
하늘에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은호의 눈동자에 멈출 때쯤, 갑자기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이이잉.
설태호.
휴대전화에 떠오른 그 이름을 보며 은호는 웃었다.
<으, 은호 씨! 은호 씨!>
숨소리가 휴대전화를 타고 들려왔다.
“형, 숨 좀 돌릴래요?”
<아직 시작한 거 아니지? 그렇지?>
“사실 시작했어요.”
<저, 정말?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농담이죠.”
<……하. 그 중요한 장면을 놓치는 줄 알고 눈물 흘릴 뻔했네. 지금 밀린 일이 되게 많지만, 이걸 포기할 수 있나.>
“보통은 락트라의 대회부터 놓지 않을까요?”
<아니! 절대 아니야. 락트라가 최고의 집을 뽑는 대회는 좀처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요?”
<‘그래요’가 아니라 그래. 이건 영상을 학회에 내밀기만 해도 난리가 난다니까?>
이게 그 정도일까.
은호는 잠깐 생각하다 슬쩍 물었다.
“그것보다 형. 혹시 지금 환수 관리국 때문에 바쁜 거예요?”
<…눈치챘어?>
슬쩍 건네는 태호의 말에 은호는 웃었다.
“나중에 알려줘요. 지금은 일을 포기할 만큼 꼭 봐야 하는 게 있잖아요?”
<당연하지. 잠깐만 화상 통화로 바꾸고 녹화 좀 할게. 괜찮지?>
“아니라고 해도 할 거잖아요?”
<그렇지.>
두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슬슬 내려가도 되겠다 싶어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견을 토닥거린 뒤 즐겁게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임에도 이쪽으로 오면 된다고 작은 조약돌로 표시했기에 ‘헨젤과 그레텔’이 된 기분으로 따라갔다.
<…진짜였어.>
“뭐가 진짜예요?”
<산에 올라가다 보면 작은 조약돌로 누군가 길을 표시하는 흔적이 있었어. 하지만 이걸 누가 했느냐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갔지.>
“음……. 카메라를 두고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동물이라면 그래도 되는데, 환수는 더 예민해서 아예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있거든. 이런 상황이 꽤 자주 벌어지니까, 절대 못 하지.>
“그럼, 드론은요?”
<몇 대가 부서졌더라. 돈이… 억 단위로 날아가니까, 가을 씨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더라.>
‘…내가 축복받은 거구나.’
은호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드루이드라는 점이 누군가의 바람과 맞먹는 자리임을 느꼈다.
<어쨌든, 돌을 좋아하는 환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내가 맞췄다 이 말이지.>
태호가 으쓱하기에 은호는 손뼉을 마주치며 물었다.
“혹시 돌을 좋아하는 환수가 락트라 말고도 있어요?”
<물론이지. 락트라가 돌과 평생 같이 산다면, 평생 돌만 먹는 환수가 있거든?>
“돌을 먹는 환수요?”
나란히 걷던 흑견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 저 녀석들의 대장이 어떤 존재가 본인들의 돌을 먹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어…? 락트라의 돌을 누가 빼먹어?”
<락이터.>
“락이터요?”
딱 잘라 들려오는 대답에 은호 역시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보면 락트라의 천적에 가깝지. 락트라는 돌을 집으로 삼는데, 락이터를 돌을 주식으로 삼으니까. 일방적으로 락트라가 락이터를 피해 다니는데, 이게 어쩌다 보면 동선이 맞아버리는 때가 있단 말이지.>
“왔다.”
흑견이 낮게 울부짖는 말에 은호는 다급히 태호를 불렀다.
“형! 혹시, 둘이 만나면 싸워요?”
<뭐야? 락이터가 나타난 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만약 만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락트라부터 구해줘!>
무조건 싸운다는 말이자, 락트라가 약체라는 말이었다.
<…뭐? 아, 미안해, 은호 씨.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안 되겠다. 잠깐만.>
태호가 그대로 연락을 급히 끊었다.
은호는 휴대전화를 가방 속에 넣으며 당장 엎드린 흑견에게 올라탔다.
“…그래서 멍멍이 형님의 기분이 안 좋았구나. 결국, 락이터 때문에 멍멍이 형님을 불렀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은호는 달리는 흑견을 토닥거렸다.
누구든 본인을 이용하는 게 달가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이렇게 달리는 걸 보면 대단한 거야.”
“…저 존재들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은호는 웃으며 맹금류의 눈을 발동시켰다.
한 환수가 눈에 들어왔다.
상어와 닮았지만, 주둥이가 짧았고, 얼굴이 옆으로 넙데데했다.
몸통은 두껍고 넓었으며 발바닥은 무척 커 코끼리 몸뚱어리가 생각이 났다.
저게 태호가 말한 락이터가 아닐까.
쿵.
앞으로 걷던 락이터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를 사용하려는 거 아니지?’
적어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싸움은 말리고 싶었다.
그럴 힘 역시 손에 넣지 않았는가.
흑견을 잡은 은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꽉 잡아라.”
흑견은 그림자로 스며들어서는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바로 눈앞에 락이터가 보이자 은호는 크게 외쳤다.
“싸움은 안 돼!”
락이터도, 락트라도 모두 은호와 흑견을 바라보았다.
그때, 락이터가 입에 문 무언가가 보였다.
흑견이 땅으로 착지하자 그게 뭔지 제대로 보였다.
아무리 봐도 락이터의 새끼였다.
축 늘어진 게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다친 거야?”
물어보는 은호의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
“싸움……? 이건 싸움이 아니지.”
락이터는 두 손으로 새끼를 안고는 락트라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희가… 내 새끼를 공격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