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2화(32/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2화
32화. 심사는 신중히(3)
피부를 찌르는 살기에 은호는 당장 땅으로 내려왔다.
이건 좋지 않았다.
“친구야. 일단,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잖아? 네 아이부터 챙겨야지.”
락트라가 락이터의 새끼를 공격했다니.
오늘 그들은 자신과 함께 있었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인간 말이 맞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우선 네 새끼부터 챙겨.”
락트라의 대장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너희가 저질러놓고,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이야?”
하.
락이터는 헛웃음을 터트리다 고개를 들어 락트라를 바라보았다.
두 눈동자에는 오로지 짙은 증오만이 가득했다.
아이가 먹던 돌에 뭘 발랐는지 몰라도 그런 수작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저놈들밖에 없었다.
“이봐, 우린 아무것도 안 했어.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락트라의 대장이 억울함을 담아 꺼낸 그 말은 오히려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 되었다.
“……그래. 이제야 다 알겠네. 너희가 인간이랑 손을 잡고, 내 새끼를 공격한 거였어.”
락이터는 새끼를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으며 조용히 분노했다.
그 맹렬한 기세에 락트라의 대장은 주눅이 들었지만, 내뱉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반드시 락트라들을 지켜야만 했기에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우리를 공격하려고 온 건 그 누구도 아닌, 너야! 아무 이유도 없이 트집 잡아서 이참에 우리가 가진 돌을 빼앗으려고?”
“역시 돌이었네. 돌 때문에 내 아이를 아프게 한 거야! 너희와 우린 그런 관계니까!”
절대로 좁힐 수 없는 관계.
아무리 좋게 봐도 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한쪽은 집이자 전부였으며 다른 쪽은 그저 먹이였으니.
“그래서 저 존재도 데려온 거잖아!”
락이터는 흑견을 보며 기가 찬 웃음을 터트렸다.
이 모든 건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이었다.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로 자신을 맞이하고 있지 않았는가.
“…아니,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건 너야. 이런 식으로 우리의 집을 빼앗으러 온 거지? 이미 빼앗아 놓고, 또 빼앗는다고? 또……?”
락트라의 대장 역시 그간 억눌러왔던 화가 터져 나왔다.
집이 될 돌을 먹은 건 저들이었다.
집을 빼앗고, 자신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 역시 빼앗는다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손아귀에 힘을 꽉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들은 저 커다란 존재를 이길 수 없었다.
“모두 도망쳐! 여긴 내가 맡는다!”
그러니 락트라의 대장은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동족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도망? 내 아이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도망이라고?”
락이터는 이를 악물었다.
빠드득.
차라리 자신을 공격하지. 저 가여운 아이에게 손을 대놓고 도망이라니.
“잠깐만! 얘들아 잠깐만!”
은호가 소리쳤다.
지금 너무 가열된 상태였다. 이렇게 빨리 타오르는 건 좋지 않았다.
“닥쳐!”
락이터는 치솟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며 은호에게 소리쳤다.
이내 락트라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희를 배려했다! 너희와 잘 지내보려고 했던 내 모든 노력을 이렇게 뒤통수를 친 건 너희야!”
다른 동족들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은 저들과 공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락트라가 잘 지낼 수 있게 배려했다.
그 결과 이거였다.
저놈들이 자신들의 주식인 돌에 무언가를 넣고, 자식을 다치게 했다.
아이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내 분노는 정당해!”
고작 한 발을 내디뎠다.
쿠우우웅.
락이터의 발끝에서 일어난 떨림은 이내 땅을 통해 번져갔고, 지진이 일어난 듯 크게 흔들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땅의 떨림에 락트라와 은호가 덩달아 휘청거리자 흑견이 은호를 어둠으로 붙잡았다.
오직 그 자리에 흑견만 흔들리지 않고, 선 채로 조용히 락이터를 바라보았다.
두 존재가 뭘 하든 말든 관심 없었다. 하지만 피해가 은호에게까지 오자 흑견의 표정이 빠르게 식어갔다.
“안 돼, 멍멍이 형님.”
은호는 바로 흑견을 말렸다.
“너를 공격했다.”
“알아. 갑자기 공격당하면 화가 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무턱대고 들이박을 상황이 아니잖아? 우선, 가장 급한 걸 떠올려보자고. 그 후에 뭘 해도 늦지 않아.”
은호는 흑견을 달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락트라와 락이터가 각자의 이유로 싸움이 진행됐지만, 그래도 가장 급한 건 락이터의 새끼였다.
“형! 바쁜데 연락해서 미안해요.”
몇 번의 통화음이 이어진 끝에 태호가 연락을 받았다.
이곳에서 환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태호이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니야, 그 뒤에 무슨 일이 터진 거야?>
“락이터의 새끼가 이상해요.”
<이, 일단 침착해, 은호 씨.>
“침착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형, 지금 올 수 있는 상황이에요?”
<…아니. 지금은 안 돼. 이쪽도 지금 비상사태거든. 구출한 환수가 날뛰고 있어. 거기, 거기! 잠시만! 아, 은호 씨. 영상통화로 바꾸고 있어 줘. 금방 갔다 올게.>
뭔가 우다다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어떡하지? 내가 락이터의 새끼를 안고 연구소로 가야 하는 건가? 아니, 락이터가 순순히 새끼를 넘기지 않을 텐데.’
은호는 생각하다 말고 락이터와 락트라를 바라보았다.
락트라의 손끝의 색이 바뀌자 사태가 이보다 더 심각해지리란 판단이 섰다.
“그만해, 얘들아! 그런다고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은호?>
그때, 휴대전화에 수줍은 목소리가 들렸다.
락이터의 시선을 받았지만, 은호는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에 전화를 받으며 다가갔다.
“혹시, 폭시야?”
폭시는 정신을 건드리는 힘을 가지지 않았는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힘이었다.
<응. 은호! 나야!>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에 은호는 기쁨과 동시에 불안함마저 잠재울 수 있었다.
“폭시야. 미안한데, 날 도와줄 수 있어?”
<있어! 당연히 그래야지. 뭘 하면 될까? 뒹구는 것도 잘하는데.>
“내가 길을 열 거야. 그 끝에 내가 있을 테니까, 와주면 돼.”
<정말 은호가 있는 거야?>
“맞아.”
<그럼, 힘껏 뛰어가야지.>
“고마워!”
은호는 휴대전화를 잠깐 주머니에 넣은 채 태블릿을 꺼냈다.
폭시를 추적한 뒤에 이를 이동 위치로 선택하려고 했지만, 아직 그건 불가능했다.
‘지원되지 않는 기능이라니.’
은호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 앞으로 걸어갔다.
“폭시야. 내 냄새를 쫓을 수 있어?”
이미 자신을 향한 락이터의 시선에 오면 죽이겠다는 경고마저 뒤섞여갔다.
<은호 냄새는 특별해서 알지.>
“그럼, 그쪽으로 와줘.”
<응응. 힘차게 뛰어갈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은호는 휴대전화를 끊은 뒤, 작정하고 달렸다.
“다가오면 죽이겠다, 인간!”
락이터의 눈가에 핏발이 섰음에도 은호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갈 건데, 친구야?”
그 시선 끝에 락이터의 새끼가 있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생명을 붙잡으며 애를 쓰고 있었다.
은호는 정확히 락트라와 락이터가 대치하는 그 중간지점에 섰다.
“비켜, 인간. 지금, 끼어들 때가 아니잖아.”
락트라의 대장이 은호를 말렸다.
은호는 락트라의 대장을 향해 웃어준 뒤, 락이터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친구야, 아이는 아직 죽지 않았어. 우선, 가장 급한 일부터 해결하자. 그 후에 얽힌 사건을 하나씩 같이 풀어보는 거야.”
락이터는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본인의 새끼를 보았다.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자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아니.”
피가 흘러내리는 입술로 외쳤다.
“나는 인간을 믿지 않아……!”
고개를 돌려 은호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오직 짙은 분노만 존재할 뿐이었다.
락이터가 두 발을 크게 들며 바닥으로 내리찍자 바닥이 쪼개어지며 그 속에 파묻혔던 돌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때, 어둠이 벽처럼 일어나 모든 돌을 삼켜버렸다.
이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흑견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바닥을 파고들듯 발톱이 더 날카롭고, 두껍게 변해가며 샛노란 눈동자는 어느새 날카롭게 날이 섰다.
입가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지독하리만큼 서늘해 공기마저 뒤바꾸고 말았다.
“…감히.”
목소리 하나에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퍼졌다. 그 위엄은 모든 소리를 하나씩 잡아 먹어갔다.
이 땅에 오로지 두려움만 내려올 때쯤, 흑견은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눈을 감았다.
긴 숨을 내쉰 채 분노를 억눌렀다.
“…인간. 이래도 계속할 텐가?”
이미 저 존재는 선을 넘었다.
대화로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미안해, 멍멍이 형님. 하지만 해야지.”
은호는 미안함을 담아 흑견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호해줬는데, 이를 말려야 하니 미안함이 너무도 컸다.
“사실 뭐든 무력으로 해결하면 무척 쉬워. 쉽지만, 변하는 건 없잖아?”
사람이 환수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한 건 무력이었다.
초능력자들을 이용해 보호 구역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소에 환수들을 처박아뒀다.
그 수단으로 이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할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그저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말을 그럴듯하게 했는데.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어. 내가 뭐 엄청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자식이 다쳐 눈이 돌아간 부모와 동족을 보호하려는 대장이 부딪치는 이 상황이 잘못됐다는 걸 알뿐이야. 고집부려서 미안해.”
“됐다.”
흑견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사실 무엇이 정답이라는 건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릴 뿐이었다.
“고집부리는 김에 한 번 더 부릴게.”
은호는 웃으며 흑견을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해라. 그 뒤는 나도 마음대로 할 테니까.”
“그래.”
은호는 들려오는 대답에 웃으며 락이터에게 다가갔다.
휴대전화는 태호가 볼 수 있기에 식물에게 맡겼다.
“물러나라, 인간!”
“싫어.”
은호는 더 앞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물러나라고 했어!”
락이터가 경고하듯 움직이다 실수로 튀긴 돌 하나가 은호의 머리를 때렸다.
작은 돌이었지만, 피를 내기엔 충분할 만큼 날카로웠다.
“친구야.”
은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뚝.
피가 흘러내렸다.
그 피를 따라 풀들이 자라났다.
“지금은 분노를 토할 때가 아니잖아? 너한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가 먼저가 되어야 하잖아.”
은호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덩달아 분위기가 천천히 뒤바뀌고 있었다.
“친구야,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 …그 끝은 너무 슬프거든.”
은호가 쥐었던 손을 펼치자 온화한 초록색 빛이 민들레 씨앗처럼 락이터 주변으로 흩날렸다.
교감의 힘이라면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었지만, 오히려 크고 높게 세워진 마음의 벽만 선명히 보일 뿐이었다.
은호는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아직 안 되는구나.’
아쉬움을 느끼며 은호는 거대하게 자라난 풀을 움직였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본인을 옥죄려는 풀이든 뭐든 락이터는 모든 걸 저항했다.
“네가 뭘 아냐고!”
그저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가시를 세울 뿐이었다.
“모르지. 모르지만, 너한테 가장 소중한 게 뭔지는 알아.”
은호는 락이터를 바라보며 그대로 공간의 지퍼를 열었다.
지이이익.
달콤한 냄새와 함께 나비가 공간 속에서 흘러나왔다.
한 마리.
네 마리.
점점 불어나는 그 속에 폭시가 튀어나와 부드럽게 위로 날아올랐다.
락이터를 바라보는 눈이 가늘어졌다.
가볍게 락이터의 머리 위로 떨어져서는 앞발로 툭 건드렸다.
“너는 일단 진정하자. 너무 흥분했어.”
폭시의 앞발로부터 새롭게 나비가 피어오르며 락이터의 눈동자가 살짝 풀렸다.
폭시는 고개를 돌려 은호를 향해 활짝 웃었다.
“괜찮아, 은호. 얘가 너무 많이 흥분해서 차분하게 만들었을 뿐이니까.”
그대로 나비처럼 날아 은호의 옆으로 떨어졌다.
눈동자를 굴리더니 락트라의 대장을 바라보았다.
“너도 진정할래?”
락트라의 대장은 왠지 모를 오싹함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충분히 진정됐어.”
“잘됐다. 힘들면 말해줘.”
폭시는 주저 없이 락트라의 대장에게 뛰어가 꼬리로 바위를 건드렸다.
폭시의 존재 하나로 날카롭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인간.”
흑견이 은호를 불렀다.
“저기서 소리가 들린다.”
흑견은 발가락으로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그제야 은호는 다급히 뛰어갔다.
<은호 씨! 은호 씨! 거기 락트라들이 있는 거 맞지?>
“있어요!”
태호의 목소리가 커지자 은호 역시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락트라가 돌을 녹이는 액체를 내뿜거든?>
“알고 있어요.”
<그 액체가 락이터의 소화액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 하지만 다른 것들도 녹일 만큼 강하단 말이야? 은호 씨가 두 손으로 액체를 받는 건 절대 안 돼.>
“그러니까, 락트라가 직접 새끼의 입속으로 그 액체를 넣어야 한다는 말이죠?”
<맞아! 바로 그거야! 그렇게만 해주면 돼. 되도록 빨리.>
“그런데 아이는요? 이거 괜찮은 거예요?”
<환수는 우리랑 달라. 물론, 새끼라서 조금 다칠 수 있는데, 경상 정도로 끝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혹시… 체한 거예요?”
은호는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단순히 체했다고 볼 수 없어. 원래 새끼 때는 돌을 소화하는 액이 좀 부족하거든? 그래서 부모가 돌을 좀 녹여서 준단 말이지. 지금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그 소화액이 훨씬 부족한 상태로 보여. 검진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내가 말한 대로 응급조치만 해줘, 은호 씨. 그러면…….>
“그쪽으로 갈게요. 그러면 어느 정도의 양이 필요한 거죠?”
“그건 내가 알아!”
갑자기 락트라의 대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절반만 알아들었지만, 락이터의 새끼가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
자신들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우린 손만 짚어도 돌을 어느 정도로 부숴야 하는지 알아.”
“맞아! 우린 다 알고 있어.”
이어 쏟아진 락트라의 말을 들으며 은호는 놀란 눈을 했다.
“…왜, 도와주는 거야?”
“그래야 하니까. 아이는 아이잖아.”
은호는 락트라들의 대답에 저절로 나오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아이는 아이란 말이 꽤 묵직하게 다가왔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그으… 배! 그래, 배를 쓰다듬어줘, 은호 씨! 그러면 본능적으로 입을 벌릴 거야.>
은호는 정신없이 어딘가 움직이고 있는 태호의 지시를 따라 배를 어루만졌다.
“걱정하지 마, 아가야.”
―조금 전, 저 녀석들의 대장이 어떤 존재가 본인들의 돌을 먹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아까 흑견이 말하길, 락트라들이 모은 돌을 누군가 몰래 먹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범인은 지금 이 아이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은호의 손길을 따라 락이터의 새끼가 입을 벌렸다.
락트라의 대장이 입가를 핥으며 락이터의 새끼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하얗던 손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회색으로 물들어갔다.
“요 녀석, 많이 먹었네.”
락트라의 대장은 웃으며 락이터의 입속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똑. 똑.
한 방울, 두 방울. 액체가 락이터의 새끼 목구멍 너머로 흘러가자 은호는 잠깐 숨을 멈췄다.
여러 방울 떨어트린 뒤 락트라의 대장은 손을 거뒀다.
시선이 새끼에게 하나하나 모여들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의 표정에서 간절함이 보였다.
건강해지렴.
어서 나으렴.
그 말이 얼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선명히 보이자 락이터마저 더 간절히 기도했다.
얼마나 침묵했을까, 태호가 내뱉은 안도의 한숨을 시작으로 은호가 웃었다.
누가 봐도 걱정을 뚝 자를 정도로 밝은 웃음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알았다.
작은 환호가 락트라 사이에 퍼졌다.
<…하, 오늘 심장 아플 일이 너무 많네. 이제 괜찮으니까 오면 연락줘.>
“알겠어요. 나중에 봐요.”
태호가 휴대전화를 끊자 은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잘 버텨준 새끼를 안아준 뒤에 조심스레 땅으로 눕혔다.
지쳤는지,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든 모습에 은호는 실실 웃음이 났다.
고개를 든 은호는 락트라들을 바라보았다. 락이터가 갑자기 공격했음에도 이렇게 선뜻 도와주다니.
그 어떤 영웅보다 빛나 보였다.
“다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희가 아니었으면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없을 거야.”
“이건 별개니까.”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게 말하는 락트라들의 태도에도 그들을 쓰다듬었다.
그 사이에 폭시가 자연스럽게 껴 있었기에 양 뺨을 만져주었다.
“너도 잘했어, 폭시야. 그리고…….”
고개를 돌리다 멀찍이 서 있는 흑견을 보였다.
‘…멍멍이 형님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은호가 이리 오라며 손을 흔들었지만, 흑견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고독한 10살이라니.’
그건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은호가 다가갔다.
“멍멍이 형님도 잘했어.”
“나는 아무것도…….”
은호가 흑견의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이럴 땐, 그냥 잘했다고 얹어가는 거야.”
“그건 애초에 잘한 게 아니지 않은가.”
“자잘한 건 넘어가야지. 안 그래?”
흑견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은호는 입꼬리를 더 올려준 뒤, 락이터에게 다가갔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을 품으며 흑견이 그 뒤를 따르자 폭시 역시 따라왔다.
“이제 좀 진정했어?”
“…….”
“분노는 많은 걸 삼키더라고. 너도 그랬을 거야.”
락이터는 여전히 피가 흐르는 은호의 머리를 바라보며 떨리는 입술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감정이 맴돌았지만, 가장 큰 건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인간이… 내 아이를 죽였어.”
자신의 아이를 죽인 인간이, 자신이 공격했던 저 존재들이 이번에는 아이를 살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락이터가 뒷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은호는 락이터에게 손을 뻗었다.
“……그랬구나.”
묶었던 식물을 거두며 두 손으로 락이터를 꽉 안았다.
“내가 네 슬픔을 자극해버렸네. 미안해.”
“…네가 죽인 게 아니야. 저 존재들도 아니었고. 나는, 그저 화풀이를 해버렸어.”
락이터는 밀려오는 눈물을 참았다.
잘못은 어떤 형태든 잘못이었으니까.
자신이 무슨 짓을 해버린 걸까.
아이를 또 잃을까 두려워 분노에 몸을 맡겨버렸다.
“여기서 이런 말을 꺼내면 안 되지만, 네 아이가 가진 소화력이 약할 수도 있대. 이를 계속 두면 오늘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지도 몰라. 내게… 기회를 줄래?”
은호는 간절히 부탁했다.
한 번 인간에게 아이를 잃은 부모가 어떻게 인간한테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하지만 반드시 새끼를 치료해야 했다.
“…….”
“나는, 너희를 구하고 싶어.”
간절한 그 말을 들으며 락이터는 새근새근 잠이 든 새끼에게 다가갔다.
락트라들이 자리를 비키자 락이터는 웅크려 앉아 새끼를 안았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따뜻했다.
저들이 아니라면 또 식었을 새끼를 끌어안았겠지.
락이터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딱 한 번, 믿어볼게.”
잔잔하게 퍼진 락이터의 미소에 은호는 잠깐 가슴이 떨려왔다.
말을 하면 여러 감정이 터질 것만 같기에 은호 역시 웃었다.
* * *
별이 하늘에 가득 매달려 있었다.
달빛 말고 숲에 세워진 조명이 땅에 드리운 어둠을 몰아낸 그곳에는 바쁜 소리만 가득했다.
상당히 지체되었지만, 태호의 도움으로 조명을 써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오늘을 위해서 락트라들이 집을 열심히 가꾼 게 아니겠는가.
늦어도 오늘 끝을 내야만 했다.
“이제 진짜 시작해볼까? 다들 준비됐어?”
은호는 락트라들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집을 광내고 있던 락트라들은 은호를 향해 소리쳤다.
“준비는 진작 완료됐어! 지금 시작해도 좋아!”
“당장 하자고! 엄청 기다렸잖아?”
‘밍밍밍’하고 들리는 울음소리에 무슨 말인지 몰라도 얼떨결에 은호 옆에 앉은 태호는 설레는 표정을 막지 못했다.
이 상황을 직관할 줄이야.
“그럼, 심사는 나랑 멍멍이 형님, 폭시, 그리고 특별 손님인 태호 형이 객관적으로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하는가?”
흑견은 귀찮은 얼굴을 드러냈다.
“당연하지. 멍멍이 형님이 빠지면 되겠어?”
당연함을 담은 은호의 눈빛에 흑견은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알겠다.”
“다들 번호 받았지? 한 명씩, 올라오는 거야.”
은호는 락트라들에게 말하며 시작을 향한 폭죽을 태호에게 넘겼다.
급히 빵집에서 사 온 거였지만,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
“오늘의 주역인 형이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거예요.”
“내, 내, 내가? 내가? 정말?”
“뭐해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은호의 재촉에 태호는 앞을 바라보았다.
락트라들마저 자신을 바라보자 태호는 놀란 표정으로 줄을 당겼다.
빵!
폭죽 소리와 함께 여러 종이가 하늘에 흩날렸다.
“……와아.”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탄성에 은호는 흩날리는 종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