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3화(33/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3화
33화. 일렉트가 좋아하는 건 전기다
“…있잖아, 있잖아, 인간.”
은호의 목에 휘감긴 일렉트가 주둥이로 은호의 볼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
“왜 그래, 친구야?”
은호가 웃자 단춧구멍 같은 눈을 깜박거리며 당연하게 두 앞발을 흔들었다.
고개마저 깜찍하게 기울였다.
“왜 오늘은 안 줘?”
은호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그 누구보다 빨리 달려온 게 일렉트였다.
당장 목에 감겨서는 배시시 웃길래 자신이 얼마나 반가우면 그럴까 했다.
‘…전기한테 졌어.’
은호는 밀려오는 좌절과 패배감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제법 얼굴을 봐서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니.’
은호는 잠깐 태블릿을 꺼내 환수 정보 어플로 들어갔다.
흑견이 뭘 하나 바라보았다.
일렉트의 설명이 적힌 그 밑에 따로 노트를 할 수 있었는데, 은호는 밀려오는 좌절감을 담아 써 내려갔다.
?전기를 향한 애정이 아주 큼. 정말 큼(★★★★★). *나보다 더 많이 좋아함.
“친구야.”
은호는 태블릿을 집어넣고는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두 앞발을 내민 일렉트의 눈동자가 밝아졌다.
“오늘은 안 가지고 왔는데?”
입이 삐죽 올라가더니 일렉트는 앞발을 내렸다.
“우리 집에 놓고 왔는데? 이불도 살포시 덮어줬지.”
계속 은호가 장난을 치자 일렉트는 그의 목을 휘감은 몸을 풀고는 땅으로 내려왔다.
“친구야, 삐졌어? 화났어?”
은호가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일렉트를 건드렸다.
씩씩거리는 소리와 실실거리는 소리가 번갈아 흘러나왔다.
일렉트는 몸통에서 저 멀리 있는 뒷다리를 흔들더니 단춧구멍 같은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감정을 품었는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뭔가 화가 난 건 분명했다.
은호의 얼굴에 장난기가 더 가득 퍼졌다.
“친구…….”
파직.
갑자기 몸에서 전기를 내뿜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은호의 눈이 커지고, 일렉트의 팔에 붙은 깃털이 흔들렸다.
“안 돼에에!”
일렉트가 소리치며 다른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파직.
번개를 튀기며 날아가기에 은호는 덩달아 뛰었다.
“잠깐만, 친구야!”
흑견이 어둠으로 은호를 잡았다.
“뭐 하는 건가, 인간?”
“아니, 일렉트가 갑자기 날아가서 나도 덩달아 뛰려고.”
흑견은 말 대신 은호를 달랑달랑 들어 등에다 태웠다.
“……아, 이게 더 빠르지?”
은호의 입에서 나오는 바보 같은 소리에 흑견은 잠깐 웃었다.
“꽉 잡거라.”
* * *
“…이거 안 돼!”
일렉트가 가로등에 돌돌 매달려 눈을 찌푸렸다.
“이거 내 전기야!”
몸에서 피어나는 일렉트의 전기에 근처를 지나가던 환수들이 기겁했다.
“…아니, 그냥 지나가려고 했어.”
“거짓말하지 마! 여기에 있는 전기는 다 내 거니까, 손대지 말라고.”
“야. 그거 있어봤자, 우리는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해.”
“그러면 왜 여기로 지나가? 저쪽으로 가도 되는 거잖아.”
난감한 환수와 일렉트의 대치를 보며 은호는 머리카락을 위로 올렸다.
‘…태호 형이 말하던 게 이거네, 이거.’
―락트라가 연 대회는 최고였어! 다른 연구소 사람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어제 최고의 집을 뽑은 락트라의 대회가 밤에 열린 후, 태호와 잠깐 한잔하며 여러 말을 나눴다.
―내일 연구소로 좀 와줄래? 환수 관리국 이야기도 이야기인데, 음, 일렉트… 때문에 은호 씨를 부르고 싶었거든. 긴가민가한 게 있어서 말이야. 대화가 필요해.
일렉트가 연구소의 전기를 장악한 사건 뒤로, 제대로 영역을 구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은호는 일렉트를 단호하게 불렀다.
“일렉트.”
그제야 환수도, 일렉트도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건 네 가로등이 아니야. 거기 안에 든 전기 역시 마찬가지고. 지금 네가 하는 건 일방적인 시비야.”
일렉트는 흔들리는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웃지 않았다.
일렉트는 삐죽 나올 것 같은 입술을 집어넣으며 가로등에서 스르르 내려왔다.
하지만 가로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은호는 흑견의 등에서 내려와 일렉트에게 다가가자 고개를 땅에 박으며 몸을 떨었다.
두 손으로 일렉트를 들며 은호는 조금 전보다 다정히 바라보았다.
“친구야.”
일렉트는 눈을 위로 살짝 올렸다. 단춧구멍 같은 눈동자에 여러 감정이 몰아쳤다.
가장 크게 보이는 건 억울함이었다.
“전기가 탐이 나도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하지만 내가 만든 전기도 있다고. ……진짜야.”
일렉트의 입이 아주 살짝 나왔다.
“내가 만든 전기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 거잖아.”
주장과는 달리 일렉트는 은호와 그의 뒤에 서 있는 흑견의 눈치를 살폈다.
“어……. 이건 완전 틀린 말은 아니긴 해.”
“…그렇지? 내 전기 맞지?”
언제 축 늘어졌냐는 듯 일렉트는 고개를 들어 은호를 바라보았다.
“아니. 보통 친구의 지분이 되려면 과반수는 넘겨야 해.”
“…과반수?”
알아듣지 못할 말에 일렉트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뭔가 불안했다.
“절반을 넘겨야 한다는 말이야. 이곳에서 사용하는 양이면 우리 친구는… 얼마나 전기를 만들어야 할까?”
은호는 당당하게 태블릿을 꺼냈다.
“알려줘요, 태블릿 씨.”
계산은 자신보다 태블릿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었다.
《일렉트는 일시적으로 고전압을 내뿜는 게 아니라 전력을 오랫동안 계속 유지할 힘이 존재합니다.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일렉트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행동은 상당히 비도덕적인 일이라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 말라는 태블릿의 제안에 은호는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저 태블릿은 드루이드인 자신을 돕기 위한 존재이기에 환수를 이용하는 부분에서 계산 결과가 나왔으면 실망할 뻔했다.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는 일렉트의 시선에 은호는 손가락으로 볼을 건드렸다.
“측정할 수 없다고 하네?”
“그게 무슨 말이야?”
일렉트의 몸이 덜덜 떨렸다.
“죽을 때까지 계속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거지. 우리 친구, 그렇게 할 수 있겠…….”
은호는 말을 멈췄다.
그저 가벼운 농담이다.
그렇게 뒤이어 말하려 준비 중이었다.
해일처럼 거대하게 몰려오는 일렉트의 두려움이 보였기에 은호는 당장 안아주었다.
“아니야, 친구야. 그런 말이 아니야. 전기를 생산하지 않아도 돼.”
품에서 일렉트의 떨림이 강하게 밀려왔다.
일렉트를 처음 봤을 때, 보인 그 떨림은 단순히 일렉트라는 종족의 특성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겁이 많나 싶었는데, 이 일 때문이었다.
뒷덜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은호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는 일렉트를 토닥였다.
누군가 일렉트에게 강제로 전기를 생산하게 시킨 모양이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가뜩이나 전기에 대한 애착이 큰 일렉트에게 전기를 빼앗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은호는 새어 나오는 한숨을 삼킨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사건이… 이렇게 전기를 집착하게 만든 거야. 태호 형이 긴가민가하다는 게 이거였고.’
아주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환수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사람을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환수 관리국.’
은호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치솟는 짜증을 눌렀다.
돌고 돌아 그들이 환수를 제대로 관찰, 감독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사람이기에 당연히 사람에 대한 보호가 앞서야 하는 건 맞았다.
하지만 적어도 관리국 앞에 ‘환수’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무능한 놈들.’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멍청한 나.’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은호는 그림자가 지자 눈을 뜨고 고개를 올렸다.
흑견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런 장면, 익숙하지 않은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실수했지.”
흑견에게 같은 동족 중 형, 동생 하는 관계가 있냐고 물었다.
―……너희가 죽였다.
들려오는 대답은 충격이었다.
흑견들이 사람 손에 죽을지는 몰랐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신경 쓰라고 꺼낸 거 아니었어?”
“네가 저지른 게 아니다. 저 녀석도 마찬가지다.”
“……맞아. 서은호는 아니야.”
은호의 어깨에 기댄 일렉트까지 꺼낸 말에 그는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죽인 게 아니야. 저 존재들도 아니었고. 나는, 그저 화풀이를 해버렸어.
불과 어제 일어난 락이터도 그렇게 말을 꺼냈다.
락이터만 했을까, 폭시 역시 그랬다.
“사람이 원망스러울 텐데, 왜 그렇게 구분 짓는 거야?”
“…인간한테 구해졌으니까.”
흑견은 ‘설태호’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요새 은호 주변에서 잘 볼 수 있는 덩치 큰 인간이 자신을 구해줬다는 걸 은호에게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구분 지어야지. 자신들은 짐승과 달랐으니까.
흑견의 말에 은호는 흑견에게 손을 뻗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 걸음을 보며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
어디에서 이렇게 기특한 생물체가 나타났을까.
* * *
“…일렉트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경우가 있어.”
태호의 말에 은호는 팔짱 낀 손에 힘을 주었다.
“대체 왜요?”
“우선 일렉트처럼 전기를 사용하는 환수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놈들은 거의 다 비소속 초능력자들입니다. 그들은 정부에 쫓기는 신세이기에 조직을 운영하려면 아무래도 제약이 크죠.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환수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발전기와 맞먹는 힘, 쓰고 버리면 되는 간편함이 있으니까요.”
가을이 아주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기는 현대 사회에 무조건 필요한 자원이었다.
환수만 있다면 이를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고민할까.
“……그렇게 환수를 이용한다고요? 물건도 아닌데요?”
은호는 팔짱을 꼈던 손을 내리며 허벅지를 꽉 쥐었다.
“그게 환수라는 생물체의 힘이니까요. 저희가 그 아이들을 구조해도 이미 너무 많은 전기를 내뿜어 내부 기관이 망가지거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치료했죠?”
은호의 물음에 가을은 아주 잠깐 태호를 바라보았다.
빠르게 굳어진 태호의 표정에 은호는 어떤 말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었다.
“……치료하지 못했어. 아니, 치료할 수가 없었어. 내부 기관이 망가진 채로, 아니, 괜찮다고 해도 전기를 향한 집착으로 망가졌어. …그렇게 지켜보는 게 전부였어.”
점점 태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긴가민가했는데, 일렉트가 그럴 줄이야.
그저 말썽이길 바랐다.
“…미안해, 은호 씨.”
조금 더 빨리 은호를 불러야 했다.
집착이 진행됐다면 이를 되돌리는 건 너무도 어려웠다.
깊은 절망이 그 짧은 말에 선명히 느껴졌지만, 은호는 태호를 보며 웃었다.
“사과하지 마요, 형. 이번에는 달라요.”
태호는 멍한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정말로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방법을 찾을 거니까요.”
은호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지금 자신이 가진 교감의 힘은 일시적인 힘이었다.
잠깐의 상황에서 빛을 볼 수 있지만, 이를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형. 환수 관리국 일부터 말해줄래요?”
은호는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를 언급했다.
폭시 사건 이후 과연 환수 관리국이 어떻게 나올지 내내 궁금했으니까.
태호는 불편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번 일은 환수 관리국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뉘앙스를 드러낼 셈인지, 부국장인 권석현을 중심으로 사건을 수습하기로 결정 났더라.”
“꽤 높아 보이는데, 맞나요?”
“맞아. 환수 관리국의 국장 바로 아래니까.”
“보여주기식은 아니겠죠? 그런 꼴이 참 많잖아요?”
은호는 목에 맨 헤드셋을 만지작거리며 살며시 날카로운 미소를 그렸다.
환수는 도시에 들어갈 수 없었다.
환수는 도시 이외에 사람이 살고 있는 터전 역시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의 삶에 환수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철저하게 배제하지 않았는가.
당연히 관심이 쏠리다 식기를 바라는 거겠지.
“아직 몰라. 우선 조만간 환수와 관련해 불법 납치, 감금, 강제 노역 등을 시킨 패거리들을 소탕하겠다는 내용의 발표가 있을 건가 봐.”
태호의 대답에 은호는 웃었다.
“요컨대, 이 사건이 어영부영 넘어가면 뒷배가 권석현이라는 사실에 가까워진다는 소리죠?”
조직 문화란 으레 그렇지 않은가.
사건을 덮으려면 결국, 그 사건에 개입한 사람이 나서줘야만 했다.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를 달리 말하자면 ‘얼마나 높은 곳까지 개입되어 있는가’로 볼 수도 있었다.
물론, 권석현이라는 사람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덮으려고 자진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디까지 꼬리 잘리기를 하는지 보면 대충 감이 오지 않겠는가.
“아, 그전에 환수 관리국에서 날 찾지 않았어요?”
은호가 본인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얼굴을 가렸어도 제법 요란했으니 알지 않을까 싶었다.
“이 썩을 놈 하면서, 아주 분한 얼굴로 찾을 것 같은데요?”
또 이어지는 물음에 태호는 슬쩍 가을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태호를 바라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설령 서은호 씨를 봤어도 상관없습니다.”
흘러내린 안경을 올린 채 가을은 코웃음을 터트렸다.
“초능력자도 아닌데, 찾으면 어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