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6화(3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6화
36화. 지시에 따를게요
해냈다.
자신과 일렉트가 해냈다.
그 사실이 자꾸만 미소를 짓게 했다.
반짝거리는 은호의 눈빛은 수많은 별을 헤는 아이처럼 빛났다.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태블릿에 떠오르는 글씨에 은호는 그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전기 나무로 할까요?”
《새로운 종, ‘전기 나무’가 입력되었습니다.》
《전기를 흡수, 방출합니다.》
은호는 태블릿에 입력되어버린 이름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앞을 보았다.
이름처럼 전기를 품은 나무였다.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며, 가까이 갈 수도 없지만, 여기서 딱 한 마리는 달랐다.
은호는 반쯤 감긴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긴장을 풀면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릴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렉트가 나무에 가는 모습까지만 보고…….’
은호의 생각이 멈추고, 눈이 커졌다.
“……은호!”
목을 휘감은 감촉이 익숙해 고개를 돌리자 일렉트가 보였다.
왜 여기에 있냐는 물음이 은호의 얼굴에 번져갔다.
일렉트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전기로 인해 핏줄이 터지며 얼굴까지 올라온 흉터가 선명히 보였다.
손에도, 목에도 퍼진 자국은 전기가 지나간 자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은호는 손가락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저기가 네 보금자리야.”
속이 울렁거렸다.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은호는 말을 이으며 아주 환하게 웃었다.
“아무도 뺏을 수 없는 너의 집 말이야.”
오로지 일렉트를 위해 탄생된 새로운 나무였다.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일렉트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집?’
고개를 돌렸다.
전기가 잎사귀나 다름없는 나무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번쯤.
그저 몸을 웅크리면 벽에 닿는 그 좁은 곳에서 지나가는 생각으로 한 번쯤 상상해보았던 그런 곳이었다.
드넓은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보금자리, 그리고 그 보금자리를 감싸는 다정한 전기.
일렉트는 나무로 나아가 조심스레 앞발을 뻗었다.
발가락 끝부터 밀려오는 이 감각은 전기였다.
향긋한 냄새에 이끌리듯 나머지 앞발을 내밀었다.
“……내, 집이야?”
일렉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주르륵.
코피가 다시금 흘러내리자 은호는 다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끝부터 뜨거운 감각이 전해졌다.
“……아무도 안 뺏어가?”
전기 나무를 바라보는 일렉트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거기 닿으면, 다 구워질 거라 못할걸? 또 구워지긴 싫고.”
은호는 전기로 타버린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달달 떨리는 모양새나, 짓물러버린 모습에 이건 회복이 될까 싶었다.
그런데 누가 닿으려 할까.
어쩌면 용기라는 이름의 멍청함을 단 존재라면 건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몰려오긴 했다.
“기뻐, 친구야?”
은호는 눈을 감으며 묻다 다시 천천히 떴다.
일렉트가 웃고 있었다.
가장 환하게, 가장 눈부신 웃음으로 모든 걸 답해주었다.
그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은호는 덩달아 웃어주다 무겁게 눈을 짓누르는 감각을 막지 못했다.
* * *
‘…대체 너는 누구지?’
환수 관리국의 부국장인 권석현은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모든 걸 계획했는지, 얼굴에는 복면과 모자를 눌러 쓰고, 눈마저 선글라스로 철저히 가리고 있는 이 남자.
화질을 선명하게 바꿔도 알아낸 거라고는 성별이 남자이며 검은 머리카락은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이놈을 잡아야 하는데.’
석현은 안대를 꾹꾹 누르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환수 납치 및 감금 사건이 한두 번 일어난 건 아니지만, 지금 사건이 너무 커졌다.
당장 인터넷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떠오르는 기사에 석현의 딱딱한 눈매가 가늘어졌다.
「보호종인 환수 대신 환수 밀렵꾼을 보호한 환수 관리국. 이대로 괜찮은가?」
「환수 관리국, 환수 납치 사건을 알면서도 눈 감았다?」
「환수는 왜 사람들한테 쫓겨야 했나. 환수 관리국의 이면.」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 몰라도 신이 나서 떠드는 꼴에 석현은 이를 악물었다.
‘언제부터 환수에 관심이 많았다고.’
바로 옆에 둔 호출기를 눌렀다.
“제3부대 부장 불러.”
석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꼭 과거 10년 전, 흑견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터무니없이 불쾌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부하를 보며 석현은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다 막으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막고 있습니다. 기사들을 다 내리라고 조치했고, 언론사에 공문 역시 뿌렸습니다. 조만간 전부 내려갈 겁니다.”
부하는 굳은 얼굴로 대답하며 석현의 눈치를 살폈다.
“어디에서 새어 나갔는지 확인해.”
“알겠습니다.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보고할 건?”
석현은 물러가려는 부하를 닦달했다.
“지금… 조사 중입니다.”
“이 사건을 주도한 그 자식은?”
“이상민 말입니까?”
“그래.”
“현재 경찰로 넘겨져 조사 중입니다.”
“내가 그걸 몰라 묻는 것 같나? 지금 경찰이 초능력 관리국과 협력해 사건을 더 키워나가겠다고 발표한 내용까지 보고할 건가? 내가 물은 건 이상민의 현재 상태를 말하는 거다.”
“……그게 말입니다.”
부하는 곤란함을 드러냈다.
뜸을 들이는 그 말에 석현은 사납게 부하를 노려보았다.
“아직도 파악 중인가? 아직도?”
벌써 며칠이 지났던가.
“그건 내가 알아, 권석현 부국장. 지금 초능력 관리국에서 신경이 바짝 섰거든.”
똑똑.
여성이 뒤늦게 노크하고는 웃었다.
“국장님!”
부하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됐어, 가봐. 물론, 부국장이 시킨 건 해내고.”
“알겠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곳의 국장인 이지혜를 은은히 불쾌하게 바라보았다.
“어쩐 일이겠어? 좀처럼 알기 어려운 정보를 부국장이랑 공유하려고 내가 직접 왔지.”
“다음부터는 부르십시오.”
“왜? 내가 와서 불쾌해?”
지혜는 싱긋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국장.”
지혜는 걸어가 석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예.”
“나는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참 의문이 많이 생기더라고.”
“무엇이 말입니까?”
“일단, 부국장이 나를 아니꼽게 생각한다는 거 알아.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멩이 같은 존재 같겠지.”
지혜의 미소가 길어졌다.
“원래 내 자리는 부국장의 자리일 테니까.”
지혜는 본인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초능력 관리국의 부국장에서 이례적으로 환수 관리국으로 배정을 받은 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난 이번 사건 보면서 여기가 초능력 관리국이었나 생각이 들더라고.”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
지혜는 웃음을 지웠다.
초능력 관리국에서 그냥 놀고먹고 있던 게 아니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비소속 초능력자들을 관리하기 시작했지?”
석현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석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건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들인데 말이야. 얼마나 같이 처먹고 다녔으면 초능력 관리국의 영역이라는 것도 까먹었던 모양이지?”
“…지금, 우리 환수 관리국 내에 누군가 환수 밀렵꾼들과 손을 잡았단 말입니까?”
“몰랐나?”
“그래서… 이번 일이 터진 겁니까?”
석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깐 그를 바라보던 지혜는 눈빛을 거뒀다.
“그래. 정화자들은 환수를 처참히 죽이는 새끼들이고, 환수 밀렵꾼들은 환수로 돈을 벌려는 새끼들이지. 그런데 우리가.”
지혜가 흘린 분노와 함께 바닥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런 새끼들과 손을 잡았다는 말이 나오면 될까?”
증오가 지혜의 눈동자에 어리자 석현은 오싹함을 금치 못했다.
“나는 쥐새끼들이 싫어. 그러니 부국장. 부디, 이번 사건 확실하고 제대로 조사해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석현의 대답에 지혜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싱긋 웃었다.
꺼졌던 바닥도 금세 돌아오자 석현은 침을 삼켰다.
“아, 이번 사건과 얽힌 초능력자 한 명 있지?”
“있습니다. 현재 정보를 파악 중이지만, 어렵습니다.”
“초능력 관리국에서 협조 요청이 왔어. 하여튼 그런 냄새는 잘 맡는다니까.”
“어떤 요청입니까?”
“정보를 알아내면 넘기라는 거지. 그런데 알아도 넘기지 마.”
“네……?”
석현은 지혜의 지시에 의문을 가졌다.
“내가 몇 번이나 생각해봤는데, 그 사람 우리 환수 관리국에 필요한 인재잖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자는 이번에 잡힌 이상민과 연관 있는 자입니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종류의 초능력이라는 거지?”
“그게 문제입니다. 등록되지 않는 자입니다. 비소속 초능력자란 말입니다.”
“그게 문제인 건 맞지만, 흑견이랑 있었다는 소식 들었어?”
무려 흑견이 그자 옆에 있었다.
이미 보고됐던 흑견과 다른 흑견인지 그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다른 환수들 역시 그 사람을 따랐다는 보고도 들었겠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초능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금, 함부로…….”
“지금까지 존재하던 초능력이 아니야. 이 사람이 있다면 우린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환수를 보호할 수 있을지도 몰라.”
역사상 환수가 사람을 따랐다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혜는 더욱 신중히 말했다.
“찾으면 보고해. 우선, 저번에 흑견과 얽힌 사람 있지?”
“서은호.”
석현은 그 이름을 신중히 부르며 말에 무게를 뒀다.
“…말입니까?”
“그래.”
“그자부터 찾아가겠습니다. 다만, 연구소와 얽혀 있는 바람에 조금 복잡합니다.”
“저번에도 그랬지?”
지혜는 턱을 쓰다듬었다.
모든 조사를 차단하듯 연구소의 창이라 할 수 있는 오가을이 직접 나섰다.
―서은호 씨의 뒷조사를 하고 다닐 생각은 아니겠죠? 서은호 씨는 당신들이 놓친 정화자에게 피해를 보았다는 거 잊지 마십시오. 꼬우면 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연구소야 우리한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게 한두 번은 아닌데, 좀 더 예민했다고 해야 하나. …연구소에서 눈치채지 않게 한번 밟아봐.”
“그렇게 하죠.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을 여쭈러 가려던 길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 단서가 서은호밖에 없으니까요.”
“그래, 고생해.”
지혜는 석현에게 손을 흔들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초능력 관리국이 이렇게 빨리 끼어들게 된 건 이상민 때문이야.”
“이상민 때문이라뇨?”
“누군가 자기를 죽이러 올 거라고 도와달라 빌었거든.”
지혜는 그대로 석현을 바라본 뒤, 문을 닫았다.
몇 걸음 걷던 그녀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정화자든 환수 밀렵꾼이든 환수 관리국에 내부자가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밝혀졌다.
기자가 냄새를 맡고 달려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썩을 새끼들…….’
“왜 그렇게 화가 났습니까, 국장님?”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놀랄 법하지만, 지혜는 익숙하게 목소리를 냈다.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돌아가는 꼴 좀 봐.”
“이제야 꼬리를 드러냈으니 기뻐해야죠. 몇 년이나 걸렸는데요.”
“네가 먼저 서은호 씨하고 접선해.”
“직접 서은호 씨하고 만나라는 말입니까?”
“그래. 권석현보다 더 빨리.”
“싫은데요.”
“싫어?”
지혜는 바로 고개를 돌려 손을 뻗었다.
“……농담, 농담이에요. 가야죠. 갈게요.”
그 자리에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 * *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서은호 씨?”
가을이 차갑게 바라보자 은호는 눈동자를 돌려 낮은 병원 천장 때문에 고개가 돌아간 흑견과 마주했다.
흑견의 눈빛도 더없이 차가웠다.
“아니, 저 방금 깨어났는데 그렇게 바라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
“마음보다 몸이 더 아프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은 은호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장 많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음에는 그런 걸 만…….”
“전기 나무에요. 이름은 내가 붙였죠.”
은호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하.”
가을은 새어 나올 것 같은 화를 참았다.
‘이 인간은 진짜…….’
연구소에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환수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이런 일은 처음이기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따라오라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에 조심스레 갔더니, 전기에 휘감긴, 아니, 전기 그 자체가 나뭇잎이 된 나무가 보였다.
그때, 밀려오는 당혹감과 이걸 어떻게 숨겨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해명해야 하는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는 그 느낌을 저 인간은 알까.
그 모습도 어지러운데 흑견이 꼬리를 치우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은호를 본 자신의 심경은 또 어떻겠는가.
“제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습니까? 박사님은 생각보다 자리를 잘 비우시는 분입니다. 그만큼 바쁘니까요.”
가을이 언성을 높였다.
“…화났어요?”
“그럼, 화가 안 나게 생겼습니까? 다음부터는 전기 나무를 만들든 뭘 하든 제발 통보 후에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가을 씨.”
은호는 동공이 작아진 가을을 보며 상체를 일으켜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의 뒤처리는 항상 그녀의 몫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화가 날까.
사고 안 친다고 했는데, 사고를 쳤으니 미안했다.
‘솔직히 이번 사건은 나라도 화가 나지.’
가을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장난칠 줄 알았는데, 바로 고개를 숙이니 마음이 약해졌다.
“……일렉트를 위해서였습니까?”
“일렉트는 잘 지내나요? 나무, 엄청 좋아해요?”
은호는 그새 고개를 올려 물었다. 기대가 가득 담겨 있기에 가을은 익숙한 시선을 마주했다.
‘박사님이랑 똑같네.’
아니, 어쩌면 더할지도 몰랐다.
대체 뭘 하던 사람이길래 이럴까.
“그건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죠.”
“그래도 돼요?”
은호의 물음에 가을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퇴원을 안 했지만, 병원을 몰래 나가서 일렉트가 잘 지내는지 봐도 되나요.
그렇게 들려왔으니까.
“……그러시죠.”
가을은 떨떠름하게 대답하다 은호를 찾아온 이유를 언급했다.
“조만간 누군가 서은호 씨를 찾아올 겁니다.”
“환수 관리국에서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줄까요? 미안한 일을 했으니, 가을 씨 지시에 따를게요.”
은호는 장난기를 담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