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7화(37/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7화
37화. 지시에 따를게요(2)
“제 지시에 따른다고요?”
가을은 앞 머리카락을 입으로 불며 물었다.
“물론이죠.”
“그럼, 만나주지 마세요.”
“……진짜요? 진짜 만나지 않는 게 끝이에요?”
뭔가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기에 가을은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다시금 말을 꺼냈다.
“뭘 기대하신 겁니까?”
“왜 만나지 말라는지 이유는 물어봐도 되는 거죠?”
“지금 서은호 씨가 내뱉는 모든 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
이해했다는 반응과 달리 은호는 슬쩍 웃고 있었다.
장난기가 가득 묻어 있었기에 가을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저한테 분명히 사고 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고 안 쳐요. 그런데 만약에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들이닥치면 어떡하죠?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잖아요.”
“맞으세요.”
“…네?”
“따로 CCTV 두고 가니까, 그냥 눈 질끈 감고 한 대 맞으십시오.”
“그러죠. 맞을게요.”
사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맞은 사람에게 유리한 판이 만들어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은호가 흔쾌히 대답하자 가을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진심입니까?”
“사실, 진짜 맞는 편이 좋잖아요. 저 지금 환자니까, 되게 유리하죠.”
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는데, 뭐든 못할까.
“아뇨. 조금 전에는 농담이었습니다. 만약에 환수 관리국에서 온다면 연락해주십시오. 바로요.”
진짜로 물불 가리지 않고, 맞을 것만 같았기에 가을은 딱 잘라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환수 관리국이 움직이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일 거야.’
가을은 생각했다.
이번 환수 납치와 감금 사건에서 정체 모를 A가 나타났다는 게 환수 관리국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일 테지.
그 A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은호였다.
저들이 은호를 포섭하려고 하는지, 반대로 없애버리려고 하는지 몰라도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A의 정체를 찾던 중 흑견을 발견했겠지. 최근에 흑견과 얽힌 건 서은호 씨뿐이니까.’
A와 서은호를 엮는 고리는 흑견이었다.
가을은 흑견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건지 두 눈이 마주했다.
멸종된 줄 알았던 흑견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가을이 손을 슬쩍 뻗자 흑견은 옆으로 물러났다.
민망해진 손을 집어넣으려던 차 은호가 당당히 말했다.
“아니, 멍멍이 형님. 그러면 가을 씨가 민망하잖아.”
가을의 눈이 금세 커졌다.
대체 언제 본 건지 몰랐다. 금방이라도 얼굴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저 인간이 나를 만지려고 했다.”
흑견이 콧방귀를 끼자 은호는 우쭐거리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그렇지. 손을 피하면…….”
자신의 손 역시 피하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인간. 손을 다친 걸 잊었나?”
흑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 걱정해서 그런 거지? 일부러 내 손을 피한 거… 아니지?”
간절한 말에도 흑견은 크게 하품할 뿐이었다.
“머, 머, 멍멍이 형님!”
충격받은 은호의 표정을 보며 가을은 잠깐 입꼬리를 올렸다.
“서은호 씨.”
“……네.”
은호는 힘없이 대답했다.
흑견이 손을 피하다니. 은호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칭칭 감긴 붕대가 아파 보이긴 했다.
물론, 실제로도 몹시 아팠다.
“왜 그렇게 환수들을 아끼십니까?”
둘이 있기에 물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사실 늘 알고 싶었다.
은호가 기억을 잃었으니, 환수를 만난 건 실제로 몇 달 되지 않았다.
그런데 환수에게 하는 행동은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만난 것처럼 하고 있으니 당연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은호는 대답하기 전부터 활짝 웃었다.
끼고 있던 헤드셋을 잠깐 벗은 뒤 말을 꺼냈다.
“환수가 저를 먼저 구해줬으니까요.”
“…흑견이 말입니까?”
“네. 제 목숨을 붙잡아줬어요. 이런데 왜 좋아하지 않겠어요.”
가을은 이상하게 은호의 미소가 무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여러 환수를 만나면서 사실 제일 행복한 건 저예요.”
붕대가 감긴 얼굴로 웃어도 아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건 진심으로 느껴졌기에 가을은 살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변 감사합니다. 떠봤다면 떠본 건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이걸로 왜 사과해요? 살면서 사과하고 싶지 않아도 사과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 궁금하면 물을 수도 있는 거죠.”
“사실 쭉 궁금했습니다.”
피떡이 된 은호와 전기 나무를 봤을 때, 잠들어 있던 이 의문이 거세게 흔들리지 않았나 싶었다.
누가 환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꼭 본인의 생명 따위는 상관없이 그저 불태우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에 기억을 잃은 이유가 나쁜 일 때문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가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을의 미간이 살짝 좁혀왔다.
기억은 잃어도 몸은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었다.
“서은호 씨.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저나 박사님한테 연락하십시오. 바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서은호 씨의 연락은 꼭 받겠습니다.”
은호는 가을의 표정을 살폈다.
단호함이 섞인 저 표정이 어떻게 거짓말일까.
처음 그런 말을 들은 것처럼 은호는 놀랐다. 이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같이 어색하게 올라간 미소를 내보였다.
“……고맙습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가을은 눈을 깜박거리다 눈썹을 살짝 올렸다.
“이만 갈게요. 아픈 사람을 너무 붙잡아뒀네요.”
“아니에요. 이렇게 와줘서 너무 고마운데요? 또 와도 돼요.”
“그건 고민해보죠.”
가을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에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뒤에 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괜히 이불을 당겨왔다.
‘태호 형도 그렇고 가을 씨도 왜 이렇게 친절하지?’
신경 써주는 게 고맙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불안했다.
‘…아, 내 힘 때문이네.’
이유를 알고 나자 은호는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숨을 길게 내쉰 뒤 고개를 돌리자 가늘어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흑견과 마주했다.
은호는 슬쩍 손을 뻗었지만, 흑견은 이를 다시 피했다.
헤드셋을 끼며 은호는 몰려오는 억울함에 윗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아파도 감당하면 그뿐인데.
“무슨 말을 나눴는가.”
“멍멍이 형님이 들으면 부끄러울 말?”
“나는 그런 건 없다.”
“그래도 안 가르쳐 줘. 사실 내가 제일 부끄러울지도 모르니까.”
“인간.”
“응?”
“…아니다.”
“아니, 멍멍이 형님. 그렇게 말하다가 끊어버리면 나 오늘 잠도 못 잔다고.”
“인간 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허.
은호의 눈썹이 까닥 움직였다.
요컨대 복수란 소리와 뭐가 다를까.
‘이 초등학생이…….’
은호가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흑견의 귀가 움직였다.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다 그림자로 들어갔다.
그 행동만으로 은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챘다.
누가 온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굉장히 낯선 사람이.
‘…일렉트가 어떤지 보러 가려고 했는데, 도움을 안 주네.’
은호는 얌전히 기다렸다.
가을이 나갈 때, 그녀가 문을 닫지 않았음에도 스르르 닫히는 걸 보았다.
밖에 경비든 뭐든 사람을 세워뒀다는 말이 아닌가.
‘어떻게 나오려나.’
은호는 가방에서 토템을 꺼냈다.
즉석에서 만든 토템은 시간제한이 존재했다.
일렉트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도중에 어쩌다 강화한 토템이 있었지만, 시간제한은 여전한지 만지자마자 사라졌다.
‘그럴 줄 알고 영구 토템도 가지고 있지.’
집에 불이 났을 때 대비해 만든 토템이 하나 더 있었다.
물의 힘을 담은 토템이었다.
‘…잠깐만.’
은호는 토템을 보니 왠지 군침이 흘렀다.
‘이것도 강화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다, 영구 토템이니까, 더 오래 걸리려나?’
영구 토템을 만드는 기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10분 안에 뚝딱 만들어지는 즉석 토템과 달리 영구 토템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에 못해도 5일 이상이 걸렸으니까.
‘효과는… 확인 안 해 봤는데.’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함에 은호는 어색하니 웃었다.
애초에 영구 토템과 즉흥 토템이 나눠진 이유가 뭘까.
드르르륵.
문이 열리자 은호는 토템을 손바닥에 숨겼다.
“안녕하세요.”
귀에 단 피어싱이 상당히 치렁치렁했기에 그것부터 눈에 들어왔다.
사납다면 사납고, 능글맞다면 능글맞게 생긴 사람이었다.
어울리기 힘든 두 인상이 공존했기에 은호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은호는 뒤늦게 물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남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왔다.
“거기서 멈추시죠?”
자연스럽게 들어오려고 하자 은호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자기소개도 없이 멋대로 병실에 들어오는 사람을 수상한 사람이라고 지칭하지 않아요?”
“아, 실례했네요. 저는…….”
남자가 어깨에 매달린 사자 얼굴 모양의 무늬를 건들자 은호는 차갑게 목소리를 냈다.
“가짜가 많더라고요. 아주 많이요.”
“…잠시만요.”
남자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경찰증 같이 생긴 수첩을 내밀었다.
이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경찰증에 있는 코드를 찍어 보여주었다.
“이게 어플이거든요? 공식 어플이요. 진짜 공무원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거 있잖아요. 보입니까?”
“보이네요.”
“어쨌든, 환수 관리국 소속 심서율이라고 합니다.”
서율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공무원분이 왜 오셨나 모르겠네요.”
은호는 웃다가 바로 손바닥을 뻗었다.
“은근슬쩍 다가오지 말고, 뒤로 물러서시죠.”
“이만큼이요?”
서율은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아뇨. 기왕 물러선 김에 문 쪽에 등을 기대시고요. 아, 문은 닫지 말아요. 모르는 사람이랑 있으면 무섭잖아요.”
문을 붙잡던 서율은 잠깐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그대로 등을 돌려서 앞으로 가세요. 문을 닫는 거 잊지 말고요.”
이어진 말에 서율은 어깨에 힘을 빼며 허탈하게 웃었다.
즉, 나가라는 말이 아닌가.
“이것 참, 너무한 거 아닙니까?”
“눈치가 없으시네요. 그러게 처음부터 잘 알아들으셨어야죠.”
은호는 날카롭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명확한데 왜 어울러줘야 할까.
“아니, 말 좀 합시다.”
“말하기 싫으니까, 나가주실래요?”
“저 공무원입니다.”
“언제부터 공무원이 이렇게 강압적으로 하는 게 밑바탕에 깔렸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소리쳐요? 아니면 뭐, 비상 버튼이라도 눌러볼까요? 여기 병원이에요, 공무원 아저씨.”
길어지는 은호의 미소가 이상할 만큼 얄미웠다.
서율은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 인사 말고는 뭘 말한 적이 없었다.
수상한 건 맞지만, 그래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렇게 쫓겨나는 건 무척 기분 나빴다.
“말 좀 들어봐요! 지금 서은호 씨한테 환수 관리국에서 나온 다른 사람이 찾아올 거란 말입니다! 그 사람과 접촉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다고요!”
은호는 서율이 내지르는 말에 눈을 깜박거렸다.
서율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누굴 설득하는 것도 자신 없고, 누굴 속이는 것도 자신 없었다.
애초에 말주변이 없으니 환수나 상대하려 환수 관리국에 들어갔다.
대체 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서율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돌아가면 깨지겠네.’
지혜가 내린 명령은 서은호와 접촉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건 물론, 어떤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 미리 경고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에이, 진작 말씀하시죠.”
“……네?”
은호는 서율이 어떤 표정을 짓든 말든 상체를 일으켰다.
손이 아프니 어쩌겠는가. 발로 밑에 넣어둔 의자를 뺐다.
“자자, 앉아요. 제가 몸이 이래서 높이 조절까지는 못 하겠네요.”
은호는 조금 전과 다른 표정으로 서율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방금 꺼낸 말에서 가장 흥미 있는 건 하나였다.
지금 환수 관리국 내부에 명확하게 갈린 두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미안해요, 가을 씨. 이건 좀 견디기 어려운 유혹인데요?’
저 사람은 거짓말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는 회사 생활하다 보면 대충 눈치채지 않은가.
‘호구, 아니, 저런 사람이야말로 살살 긁는 맛이 있지.’
은호는 서율을 향해 상냥하게 웃었고, 서율은 이유 모를 소름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