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8화(38/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8화
38화. 지시에 따를게요(3)
갑자기 사람이 돌변했기에 서율은 당황스러웠지만, 억지로 웃었다.
지혜가 내민 일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게 아닌가.
‘일도 제대로 못 처리하면 죽는다고.’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설명하고, 설득한 뒤 돌아가는 거였다.
‘하나는 이미 해냈네.’
욱해서 다른 환수 관리인이 올 거라며 내질렀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꺼냈으니 자잘한 건 넘겨야지.
이제 남은 건 그쪽 환수 관리인의 말을 들으면 왜 안 되느냐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간단하지? 간단하니까, 하자고.’
서율은 숨을 들이켜며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누가 또 와요?”
은호는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아뇨.”
“뒤를 봐요.”
또 속는 걸까.
그런 미심쩍은 생각을 품으며 서율이 뒤를 돌았다.
조금 전 자신이 살짝 열어둔 그곳에 누군가와 눈을 마주했다.
반사적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탁!
서율은 문에 기대서서는 진땀을 흘렸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은호는 당장이라도 턱을 괴고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대체 뭘 하려고 여기에 왔는지.
“2인 1조라니. 준비가 참 가상한데요?”
그 말에 서율은 한 손으로 급히 X자를 만들었다.
“뭐가 아닌데요?”
은호는 서율과 노크 소리가 크게 들리는 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같은 편이 아닌 거야? 아닌 척하는 거야?’
사실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았다.
가을이 경고하자마자 이렇게 출현하는 게 어디 있는가.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커지며 문을 잡은 서율의 손아귀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조심해요.”
서율이 다급한 얼굴로 속닥였다.
“뭐라고요?”
서율이 뭐라고 말하는데 밖의 사람을 의식한 건지 들리지 않았다.
은호가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조심하라고요.”
“뭘요…?”
서율의 말을 이해할 수 없기에 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빠르게 눈이 커졌다.
서율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초능력이다.’
존재 자체를 지우는 초능력이라니.
이런 종류의 초능력은 처음이기에 은호는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자신은 서율이 초능력을 사용하는 걸 대놓고 보고 있음에도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만약에 서율이 자신을 목숨을 앗으러 온 자라면 바로 죽는 게 아닌가.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서율은 그 말을 강하게 남긴 뒤, 완전히 사라졌다.
문을 잡았던 손마저 풀었는지 갑작스럽게 열린 문과 함께 한 남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언짢음이 가득한 저 남자의 시선이 무겁게 쏟아졌다.
잠깐 두 사람 사이에 짙은 침묵이 오갔다.
남자는 갑자기 웃었다.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이자 동시에 익숙한 웃음이었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이 부장을 닮았으며 거래처 중 제일 상대하기 싫은 놈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좋은 의도로 접근한 건 아니네.’
은호는 조금 전 서율이 꺼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말 좀 들어봐요! 지금 서은호 씨한테 환수 관리국에서 나온 다른 사람이 찾아올 거란 말입니다! 그 사람과 접촉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다고요!
은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남자의 왼쪽 팔로 향했다.
사자 얼굴 모양의 문양이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정말 환수 관리국에서 나왔네. 서율이랑 다른 쪽인가? 다른 쪽인 척하는 걸까.’
“안녕하세요, 서은호 씨. …밖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서 너무 놀란 나머지 제 행동이 거칠어졌습니다.”
남자가 웃었지만, 부자연스러움이 은호 눈에 보였다.
‘…심서율이 했네.’
가을이 경호원을 붙였다면 일반인을 고용했을 리가 없었다.
즉, 서율이 초능력자 둘 정도는 가뿐히 처리할 만큼 강하다는 말이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한 은호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기,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요?”
“그럴 리가요.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당신을 왜 그 범위 안에 포함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은호는 남자를 적대했다.
애초에 첫인상부터 자신에게 불쾌함을 드러낸 건 저 남자였다.
“비명 지를까요? 아니면 비상 버튼이라도 눌러봐요? 누가 여기 와도 된다고 했죠?”
은호의 눈이 가늘어지며 입꼬리가 뒤틀렸다.
“아니, 서은호 씨.”
“이봐요, 여기 1인실이에요. 누군지 몰라도 나가라는 말 안 들려요?”
“서은호 씨.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환수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남자가 왼쪽 팔에 붙은 사자 얼굴 문양을 가리키자 은호는 비웃음을 터트렸다.
“환수 밀렵꾼도 그거 달고 있던데요?”
“자, 잠시만요.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크게 당황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든 말든 은호는 등을 돌려 침대로 걸어갔다.
“그거 아세요? 저번에 정화자 놈들이 절 습격했을 때도 당신들은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죠. 그런데 이제 와서 절 찾아왔다니. 이게 반가울까요?”
은호는 발밑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걸 보았다. 왠지 코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환수 관리국에서 자신을 왜 찾아왔겠는가.
환수 납치 및 감금 사건에서 등장한 A. 이 A와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
바로 흑견을.
은호는 일부러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 하나 더 있네요.”
이런 상황에서 환수 관리국이 해당 사건을 가장 편하고 빠르게 덮을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은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칼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나오지 말라며 발로 그림자를 툭툭 건드렸다.
“사실 여기에 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은호가 길게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적이 아니면 보여줘야지. 아니, 적이 아닌 척이라고 해야 하지.
남자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크흑.”
이내 뭔가에 맞은 듯 갑자기 손을 감싸더니, 칼을 떨어트렸다.
챙그랑.
그 소리도 잠깐,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듯 컥컥거리며 괴로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걸 보며 은호는 칼을 발로 걷어찼다.
가을이 단 CCTV가 있는 줄도 모르고 둘 다 설쳐대는 꼴이 우스웠다.
“제가 초능력자인지, 아닌지 그렇게 궁금했어요?”
현재 환수 관리국의 골칫거리인 환수 납치 및 감금 사건에서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는 패가 존재하긴 했다.
저들이 추적하는 A가 사실 자신이며 비소속 초능력자라고 밝혀진다면 모든 건 자작극으로 몰아갈 수 있을 테니까.
저놈이 괜히 칼을 들고 설친 게 아니었다.
목숨을 위협당하는 순간, 환수가 나타나든, 초능력을 사용하든 그렇게 됐다면 저들의 예측은 확신으로 바뀔뿐더러 그대로 자신이 근래에 생긴 일을 주도했다고 신나게 몰아갈지도 몰랐다.
‘이미 내가 초능력자인지, 아닌지 확인해봤겠지.’
흑견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자신이 초능력을 숨겼다고 가정하고 접근했다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다.
‘어차피 아니더라도 사과로 대충 끝내거나, 꼬리를 자르거나 그렇겠지.’
이렇게 일을 대충 처리해도 놀랍게도 문제는 없었다.
원래 기업이든 어디든 ‘이렇게 해도 회사가 돌아간다고?’라는 의문이 들 만큼 허술했으니까.
자신이 머물던 그 회사, 실제로 자신 혼자 일했음에도 잘도 돌아가는 걸 보며 확신했다.
“글쎄요. 뭔지 맞춰봐요.”
은호는 씩 웃으며 남자의 뒤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쓰러지자 서율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도 궁금했어요?”
자신이 초능력자인지 확인하려면 위급한 상황을 만드는 게 최고였고, 서율은 이를 알면서도 아주 잠깐 지켜보지 않았는가.
“아뇨.”
“정말요?”
“…사실, 궁금은 했습니다. 하지만 확인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은호는 저 대답에 그저 웃었다.
“여러 가지를 경고하러 왔는데……. 늦었네요.”
서율은 남자의 머리를 짓밟으며 차갑게 바라보았다.
은호 역시 남자를 발로 건드렸다.
“늦어도 한참 늦었네요. 마음이 팍 식는 게 영 신뢰가 안 가서요.”
“전 서은호 씨 편입니다.”
당당한 서율의 말에 은호는 이를 무시하며 물었다.
“꼬리 잘리겠죠?”
“무조건 잘립니다. 이 사람은 애초에 환수 관리국 소속이 아닐 수 있고, 설령 맞더라도 앞으로는 아니겠죠? 이런 짓을 할 만큼 제법 짭짤한 보상이 있나 봅니다.”
“…하. 저번에는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또 뭐죠?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너무하죠.”
“…그게 끝이에요? 그 반응이요?”
은호가 서율을 바라보며 기가 찬 듯이 반응했다.
서율은 눈을 깜박거리다 입꼬리를 올렸다.
“서은호 씨는 제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한데요, 마음이 다르죠. 아니면 더 큰 거 가져다주게요?”
“당연하죠. 방금 장면 찍고 있었거든요. 보내드리겠습니다.”
“재주가 참 좋네요.”
은호는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주려고 했던 자신을 보며 웃었다.
“명함이나 넘기고 나가요.”
“…저도요?”
실망이 서율의 얼굴에 가득 퍼졌다.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요? 다 똑같은 놈처럼 보이죠.”
“상처는 왜 그런지만 듣고 나가겠습니다.”
“그런 건 알아서 생각해요. 딱 보면 알잖아요.”
전기 나무를 만들다 이랬으니, 딱 보면 알아야지.
“딱 보면…….”
서율은 은호의 상처를 빤히 보며 곧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어디 한 곳이라도 부러진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라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익숙함이 밀려왔다.
본인도 어떤 것에 당했는지 모를 만큼 부상을 입히는 힘은 초능력뿐이고, 그럴 짓을 할 이들을 좁혀보자면 떠오르는 놈은 하나였다.
‘……정화자 놈들이다.’
“정신 사나우니까, 나가요.”
은호는 머리카락을 쓸어 이마 너머로 올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안 가면 제가 나갈 거예요.”
“성질이 왜 이렇게 급합니까?”
“안 나가요?”
“이것만 말하겠습니다.”
서율이 급히 부탁하자 은호는 얌전히 기다렸다.
“아마 또 올 겁니다. 아까 말했던 눈물의 사과 쇼를 하려고요.”
“그래서요?”
“잘 처신하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화가 많이 나시겠지만, 사건은 제가 담당합니다.”
“덤비지 말라는 거죠?”
“음……. 혼자 파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큰일 납니다.”
서율은 명함을 꺼내 은호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디 쪽인데요?”
명함을 받으며 은호는 물었다.
“글쎄요. 또 만날 때 알려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죠.”
“글쎄요. 다시는 안 만나고 싶은데요?”
은호가 비슷한 말을 꺼내자 서율은 웃음을 터트렸다.
쓰러진 환수 관리국 사람을 둘러메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발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서율도, 그게 둘러멘 남자도 모습을 지웠다.
복도를 걷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며 조용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장님. 갑자기 그쪽에서 사람이 와서 미리 알려주는 건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한 놈 잡고 갑니다.”
<……뭐? 너 지금 실패했다는 말을 당당하게 꺼내는 거야?>
“워워, 화내지 말고 들어봐요. 알아낸 게 하나 더 있으니까요.”
<뭔데?>
“서은호 씨, 초능력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알아낸 거라고? 그게?>
언짢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율은 가볍게 웃었다.
“아뇨. 서은호 씨, 저번 흑견 사건으로 정화자 놈들한테 보복당한 듯합니다. 상처가 엄청나네요.”
<재습격 가능 여부는?>
“충분하죠. 보호가 필요합니다.”
* * *
“……하.”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쉰 채 다시 침대에 기댔다.
뭔가 지친 기분이었다.
그림자에서 스르르 올라온 흑견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왜 그렇게 바라볼까, 우리 멍멍이 형님이?”
“그걸 정말 모르는가?”
“아까 일 때문에 그래?”
“당연한 게 아닌가. 너를…….”
은호는 흑견을 토닥거렸다.
“너무 화내지 마, 멍멍이 형님. 나도 지금 되게 열받으니까.”
은호의 웃음에 날이 선 것 같았기에 흑견은 몸에 힘을 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발로 살짝 걷어차는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쳤어야 했는데! 아직도 회사 생활로 길들어진 게 안 빠졌나 봐! 가을 씨가 보면 이거 반드시 웃겠지?”
은호는 슬픔을 드러냈다.
그를 바라보며 흑견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혀를 날름거렸다.
“…계속 생각했지만, 인간은 참 복잡하다.”
“아니야, 생각보다 단순해. 그냥 더럽게 못된 놈하고, 덜 못된 놈하고 이상한 놈만 있을 뿐이야.”
은호는 잠깐 천장을 바라보다 이내 떠오르는 생각이 웃었다.
“인간.”
저 표정을 보자 흑견은 바로 느낌이 왔다.
뭘 하려는 셈이었다.
“응?”
“내가 보고 와서 말해주겠다. 그러니 얌전히 있거라.”
“에이, 이런 건 직접 봐야 한다고.”
“진짜 가려고 하는가? 그 몸으로?”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움직이는 보람이 없지.”
은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CCTV가 있다고 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혹시 이거 찾는가?”
흑견은 어둠으로 무언가를 꺼내왔다. 은호가 손을 뻗자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거 맞아!”
은호는 기계를 보더니 혀를 살짝 내밀어 입가를 쓸었다.
‘꺼두면 들킬 테니까.’
창문 쪽을 향해 창가에 올렸다.
잠깐 슬쩍 갔다 올 거지만, 이동 능력까진 들키고 싶진 않았다.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링거를 바라보았다.
‘……으음.’
링거 거치대에 건 뒤, 은호는 비로소 손을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지이익.
공간의 지퍼가 열리며 연구소가 드러났다.
“가자, 멍멍이 형님.”
은호가 웃자 흑견은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살짝 눌렀다.
“아야야.”
아픈 소리를 냈음에도 흑견은 힘을 풀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거 안다.”
“아니야, 나 지금 되게 아파. 온몸이 욱신거린다니까?”
“아픈데 움직이는 멍청이는 없다. 인간은 정말 멍청한가?”
뭔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은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흑견에게 말려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럼, 안 아픈 걸로 하지 뭐.”
“그럼, 인간은 방금 거짓말을 한 거다. 인간은 거짓말쟁이…….”
은호는 두 손으로 흑견의 입을 가렸다.
“그냥 멍청이 할게. 똑똑한 멍청이로, 됐지?”
“두 개는 성립할 수 없다.”
흑견이 ‘멍청이’ 하며 바라보는 것 같았다.
‘와……. 나 초등학생한테 말려든 거야?’
은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난 갈 거야. 멍멍이 형님은 여기 남으려면 남아.”
“…혹시 화났는가, 인간?”
흑견의 눈이 야비하게 휘었다.
“아니!”
은호는 링거 거치대를 들고 공간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흑견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만에 이렇게 크게 웃는지 몰랐다.
* * *
‘…여기쯤인 것 같은데.’
은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전기 때문이라도 멀리서 눈에 띌법한데,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눈에 띄지 않았다.
은호는 왼쪽으로 링거 거치대를 끌고 가다가 뭔가 반짝거리는 모습에 환히 웃었다.
살짝 보였지만, 이건 누가 봐도 전기 나무였다.
저쪽에 일렉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은호는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앞으로 두어 걸음 걸었을까, 갑자기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이이잉.
설태호 형.
휴대전화에 이름이 떴기에 은호는 그대로 멈춰 주변부터 바라보았다.
‘뭐야, 들킨 거야?’
CCTV로 실시간 감시하고 있는 걸까.
은호는 괜히 손바닥에 차오르는 땀을 닦으며 전화를 받았다.
<은호 씨!>
다급한 태호의 목소리에 은호 역시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차를 보낼 거거든? 정말 미안한데 연구소로 올 수 있어?>
“저 지금 연구소에요. 어디로 갈까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