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3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39화(39/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39화
39화. 애착이 갈수록 버릴 수가 없다
태호의 당황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은호는 그에게 물었다.
“급하다면서요. 원래 가던 거기로 가면 되나요?”
비록 자신이 손님으로서 연구소에서 최대 대우를 받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었다.
섣불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그럼,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사람 보낼 테니까.>
은호는 태호한테 무슨 일이냐며 묻지 않았다.
원래라면 태호가 다 설명했겠지만, 얼마나 급하면 자신을 부르겠는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은호는 우선 빠르게 뛰었다.
탁.
링거 거치대가 돌멩이에 걸려 잠깐 붕 뜨다 땅에 붙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도 참 너무도 거슬렸다.
‘이걸 들 수도 없고.’
한 번 들어봤지만, 두 손이 너무 아팠다.
그렇다고 링거만 들고 다니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나올 것만 같았다.
‘…뭘 고민해?’
은호는 다시금 손을 올렸다.
자신이 늘 가던, 태호의 사무실을 떠올리며 그대로 지퍼를 여는 듯한 흉내를 냈다.
“가자, 멍멍이 형님.”
링거 거치대가 잠깐 가벼워지자 은호는 걸음을 멈췄다.
“인간. 설마 계속 화가 난 상태인가? 이 정도는 나한테 부탁하면 되는 일일 텐데.”
“응?”
흑견은 링거 거치대 그림자에서 어둠을 꺼내 살며시 들어주고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아!”
은호가 그제야 깨닫자 흑견은 숨을 길게 내쉬다 그림자로 뛰어들었다.
“이제 가도 된다. 눈에 띄진 않을 거다.”
“고마워, 멍멍이 형님!”
* * *
복도에 발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깜짝 놀란 소리와 함께 누군가 뒤로 물러섰다.
단발 머리카락을 한 여성을 보자 은호는 누구인가 잠깐 생각하다 이내 활짝 웃었다.
이 연구소의 환수 담당 의사인 환의사 정아윤이었다.
“안녕하…….”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아윤은 은호의 인사를 잘라먹으며 두 손을 덜덜 떨었다.
표정만 보면 공포 영화를 본 사람처럼 뭔가에 겁이 질려 있었다.
‘뭐지?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은호는 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대체 환자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아윤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어. 태호 형이 불러서요?”
“당장 병원으로 돌아가세요!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한단 말이에요!”
“하지만 급한 일이 벌어졌잖아요.”
“……도움을 줄 사람이 은호 씨였어요?”
아윤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제발 아니길.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죠. 바로 저예요.”
은호가 웃자 아윤은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처럼 보였다.
“……하.”
이내 화가 올라왔지만, 아윤은 이를 꾹 참고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쿠당탕!
소리가 아래에서 크게 들려왔다.
일반적인 소란이 아닌지, 아윤의 입에서 탄식부터 튀어나왔다.
“혹시…….”
말을 꺼내던 은호는 뒤늦게 아윤이 입은 옷에 묻은 피를 발견했다.
“혹시, 환수가 크게 다쳤나요?”
“서은호 씨는 돌아가세요. 그 몸으로는 무리에요.”
“환수가 다쳤는데, 치료를 거부하는 상태처럼 보이는데 제 말이 맞나요?”
“…….”
아윤은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왜 태호가 다급히 자신을 불렀는지 알게 되자 은호는 기뻤다.
“그럼, 제가 가야죠.”
환수들의 임시 보호소다운 일이 이렇게 굴러왔는데, 이걸 어떻게 참을까. 아니 안 참지.
은호는 기가 찬 표정을 한 아윤을 재촉했다.
“안내해주세요.”
“지금…….”
“저는 이미 치료된 상태고, 환수는 아니잖아요? 어디가 급한지 알잖아요.”
정곡을 찌르자 아윤은 나올 말이 없었다.
저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지금 부상을 당한 환수가 치료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이전에도 환수들이 은호를 이상할 만큼 잘 따르는 걸 봤기에 주저하게 됐다.
“가요, 정아윤 씨.”
은호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시원한 바람 같은 웃음이 그의 얼굴에 번졌다.
* * *
“…더 꽉 붙잡아!”
태호는 목에 핏대가 설 만큼 환수를 묶은 줄을 꽈악 쥐고 있었다.
하필 지금 상대의 움직임을 봉인하는 초능력을 가진 연구소 직원이 외근을 나간 상태였다. 빈자리를 대체하고자 채 1M가 되지 않은 환수를 상대로 연구소 직원이 몇 명이나 달려들었는지 몰랐다.
올빼미와 부엉이가 교묘하게 섞인 환수의 뾰족하고 매서운 발톱과 부리는 다른 연구원이 초능력으로 막는 게 고작이었다.
성분이 잘못된 게 아닐 텐데, 이상하게 진정제가 들지 않았다.
“크루루루루루!”
두 눈에 핏줄이 바짝 설만큼 환수가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좋지 않았다.
지금 저 환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망토 같은 날개가 찢어진 것도 모자라 뜯겨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기며 방 여기저기를 붉게 만들었고, 내지르는 울음소리를 의사 중 한 명이 초능력으로 가라앉혔음에도 귀가 다 먹먹했다.
“제발, 가만히 있어 줘.”
태호는 환수에게 절박함을 담아 설득했다.
다른 연구원을 불러 폭시도 찾아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늘 이랬다.
환수는 다가가면 멀어지고, 또 멀어졌다.
치료하면 살 수 있는데, 살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 걸까.
“제발, 얌전히 있어 줘. 제발…….”
태호는 숨이 막힌 듯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렇게 또 생명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탁!
갑자기 문이 다급히 열렸지만, 그곳에 있는 모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들어가자마자 환수가 날뛰며 튄 피가 은호의 옷에 튀겼다.
주저할 법하나, 은호는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갔다.
“…날 놔달라고! 놔줘!”
저렇게 뭔가를 애원하는데, 다른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있을까.
“진정해, 친구야.”
은호는 환수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키웠다.
환수는 귀에 스며드는 목소리에 순간,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은호는 바로 환수의 두 눈을 가렸다.
다른 건 몰라도 새는 눈을 가리면 안심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괜찮아.”
은호는 다시금 환수를 다독였다.
《환수를 인식했습니다.》
태블릿이 가방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부울.》
《가족 단위로 무리를 짓습니다. 성체는 최대 1M로 성장합니다. 주로 높은 나무 끝 쪽에 생활하며 남들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야행성에 가까워 낮에는 굉장히 느리게 활동합니다.》
《부끄러움쟁이입니다. 커다란 날개는 전신을 감쌀 수 있으며 빛을 왜곡해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만듭니다. 날개를 덮지 않아도 몇 분 동안 투명해질 수 있습니다. 조용한 걸 좋아하며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선호합니다.》
‘……아, 그때 봤네.’
처음 연구소에 왔을 때, 날개로 본인을 덮자 투명 망토처럼 사라지던 그 환수와 같은 종이었다.
자신이 보았던 환수와 같은 존재일까.
은호는 부디 아니길 빌며 숨을 헐떡거리는 부울을 바라보았다.
“지금 친구가 얼마나 무서울지 알아. 갑자기 장소가 바뀌었으니 얼마나 두렵겠어?”
“…넌, 누구야? 인간… 이야?”
부울은 조금 전 보았던 은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인간이었는데, 냄새부터 달랐다.
숲이 생각났다.
부드러운 바람이 금방이라도 불어올 것만 같았다.
“맞아. 서은호. 내 이름은 서은호야.”
“……도와줘. 제발, 날 도와줘. 내 말이 들리는 거 맞지?”
은호의 손가락 사이로 부울의 간절한 눈동자가 보였다.
“…친구야. 혹시 인간한테 당한 거야?”
은호는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어 하는 그 모습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확정 짓고 싶지 않지만, 환수를 이렇게 만들 존재는 인간이 제일 유력했으니까.
“인간이… 인간이 날 죽일 거야. 날, 죽일 거라고.”
부울의 떨림이 손끝에 전해졌다.
은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어깨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여러 말이 맴돌았지만, 정작 나오는 말은 하나였다.
사과.
꾸역꾸역 나오는 부울의 피와 상처를 보고 무슨 말이 나올까.
“하지만 친구야. 이 사람들은 널 치료하려고 모인 거야.”
“거짓말하지 마!”
부울은 거칠게 소리쳤다.
날개 끝이 파닥거릴 정도로 은호의 말에 크게 반응했다.
은호는 부울의 눈을 가렸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빛부터 눈을 찌르고, 은호의 눈동자가 이어 들어왔다.
부울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저 인간은 낯선 눈빛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않아. 하지만 믿을 수 없겠지. 너를 공격한 사람들을 믿으라니. 너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알고 있어.”
은호는 조바심을 억눌렀다.
지금 부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람한테 공격당한 뒤였다.
몇 번을 말해도 사람이 본인을 도와주려고 한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어렵다는 걸 알기에 조금 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야. 우리가 널 죽이려 했다면 내가 왜 널 설득하고 있겠어?”
“인간은… 거짓말쟁이니까.”
부울은 상처받은 눈을 했다.
그 눈빛을 보자 은호는 멈칫거렸다. 인간하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체 어디까지 꼬여 있는지 몰랐다.
은호는 잠깐 시선을 올렸다.
태호가 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태가 급하다는 소리였다.
긴박함 속에 은호가 차곡차곡 쌓았던 생각은 날아갔다.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돼. 나중에 깨어나서 욕해도 좋아. 다 해도 되니까, 일단 살아야 하잖아? 그게 먼저 아니야?”
설득이 안 된다면 교감의 힘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원망받더라도 그게 먼저였다.
“내게 다음이… 있어?”
“있어. 무조건 있어, 친구야. 네가 지금 치료를 받아야 다음이 생겨. 그러니까 제발, 치료받자!”
부울은 긴박한 은호의 감정을 느꼈다.
숨을 쉴 때마다 밀려오는 냄새가 저 인간의 피 냄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인간을 어떻게 믿을까.
“…내 둥지에 물건이 있어. 그거 가져다줘. 내가 깨어났을 때, 그게 없다면 널…… 죽여버릴 거야.”
살벌한 협박에 은호의 발밑에 있는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은호는 웃었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치료를 받겠다는 말이 아닌가.
“좋아, 약속해.”
“인간……!”
흑견의 말과 함께 침묵이 밀려왔다.
지하에 번개라니.
모두가 놀란 눈을 하며 전자기계를 살폈다. 아무 이상이 없자 깊게 안도했다.
“네가 바라는 그 물건 찾아줄게. 나중에 봐.”
은호는 흔들리지 않은 채 부울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부울은 혼란스러운 눈을 하다 이내 감아버렸다.
천천히 몸에 힘이 빠지는지, 발버둥을 멈추고 잠잠해지자 태호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뒤로 물러섰다.
“기절했다고 말해야 하겠죠? 의학 쪽은 잘 몰라서요.”
“고마워! 고마워, 은호 씨!”
태호는 은호에게 고마움을 표하다 밀려드는 시선을 느꼈다.
“내가 책임지고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아요. 형이 잘 해결해 주겠죠.”
은호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모자까지 눌러 썼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놀란 기색만큼은 또렷이 보였다.
‘그럴 만하겠지. 마치 환수와 대화가 통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저들 중에 입이 가벼운 사람이 없을까.
분명히 있겠지만, 태호가 가진 힘을 더 믿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환수를 살리고 싶다는 저들의 마음에 기대며 고개를 숙였다.
태호를 한 번 쳐다본 뒤, 은호는 외부인답게 밖으로 나갔다.
* * *
“…아깐 대체 왜 그렇게 말했나? 병원에서도 그렇고, 인간은 대체 왜 그렇게 즉흥적인가.”
흑견은 바로 은호를 사납게 바라보았다.
이런 일로 목숨을 걸어버리다니.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
은호가 손을 뻗자 흑견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운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저 친구. 나를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본심이 아니었어.”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그냥 딱 보면 알지. 지금 멍멍이 형님이 나를 얼마나 걱정하는지도 보이는데?”
하루 이틀 남들 눈치를 살핀 것도 아니고, 대충 흐르는 분위기를 보면 딱 하고 느낌이 왔다.
“그 물건이 되게 소중한가 봐.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 찾아달라는 걸 보니까.”
부울의 설명을 볼 때 특정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환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척 소중한 게 아니었을까.
“그게 뭘까? 어떻게 생각해, 멍멍이 형님?”
은호는 흑견에게 몸을 기대며 물었다.
“음식……?”
“멍멍이 형님도 모르겠지? 나도 그래. 그냥 음…….”
은호는 손을 배에 올려 꼼지락거렸다.
“그냥… 미안하더라.”
“너희가 우리를 싫어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럴 뿐이다. 신경 쓰지 마라.”
“그래도, 마음이 좋진 않네.”
은호는 수술 중이라고 불이 들어오는 걸 보며 눈동자를 돌렸다.
부울이 원하는 걸 찾으려면 태호의 설명이 필요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긴급 수술이었으니까.
‘못해도 몇 시간 정도 걸리겠지?’
일렉트를 보러온 김에 레비아탐도 보고, 폭시도 보러오려고 했는데.
그들한테 괜찮다고 알려줘야 안도하지 않을까 싶었다.
“멍멍이 형님. 혹시…….”
흑견이 갑자기 은호의 그림자로 들어가자 그는 제자리에 서서는 앞을 바라보았다.
다급히 문이 열리며 태호가 나왔다. 그의 굳어진 표정을 보자 은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왜 벌써…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