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4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40화(4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40화
40화. 애착이 갈수록 버릴 수가 없다(2)
“잠깐만, 놀라지 마. 저긴 나랑 다른 의료 영역이잖아. 내가 환수 응급 구조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개입하면 안 되는 영역이 맞잖아?”
태호는 두 손을 위로 올렸다.
그제야 은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놀랐어요. 큰일 난 줄 알았거든요.”
“큰일이 날뻔했지. 은호 씨가 아니었으면.”
태호는 조금 전 안에서 벌어졌던 일을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렸다.
은호가 수술실로 들어왔을 때, 왔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날뛰던 환수가 한 번에 잠잠해지자 그제야 은호를 보았다.
평소에도 흑견이나 다른 환수들하고 대화하는 걸 보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지하임에도 햇살이 내리쬐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따스했다.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네.’
“…형?”
은호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문 태호를 불렀다.
“아, 미안, 미안. 시간이 좀 지나서 이런 일이 익숙할 법한데, 생각보다 적응이 어렵네.”
“생명이 달린 일에 적응이 어디 있겠어요?”
은호가 태호를 위로했지만, 어딘가 표정이 무거워 보였다.
태호는 말을 꺼내려다 잠깐 숨을 삼켰다. 뒤늦게 긴장이 풀리자 은호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태호는 본인의 이마를 세게 때렸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픈 사람을 이렇게 불러오다니.
대체 얼마나 생각 없이 행동한 건지 몰랐다.
새파랗게 질려버린 태호의 표정에 당황한 건 은호였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럴까.
“형? 괜찮아요? 다른 의사분 있어요?”
“…은호 씨.”
“네, 말해봐요.”
“차 대기시킬 테니까, 이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네?”
“내가 은호 씨한테 몹쓸 짓을 했어. 다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버렸어. 내가 쓰레기 같은 짓을 했다고.”
태호가 깊은 죄책감을 드러내자 은호는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힘을 이용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입 밖으로 서로 꺼내지 않았지만, 당연히 암묵적으로 동의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꽤 당황스러웠다. 난감함마저 입가에 맴돌았다.
왜 그러냐고 묻는 것조차 이상한 느낌이라 은호는 그냥 말을 삼켰다.
“형. 조금 전에 들었겠지만, 부울이랑 약속 하나를 했어요. 무슨 물건인지는 몰라도 둥지에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형이 좀 도와줘야 해요.”
“은호 씨. 그건 내가 할게. 아니, 내가 해야 해. 지금 사람을 풀어서…….”
“내가 부울하고 한 약속이에요, 형. 거짓말쟁이는 되고 싶지 않아요.”
부드럽지만,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는 것 같이 어딘가 날이 선 말이었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조금 더 센 말이 은호의 입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네가 나온 거 알아?”
“아뇨.”
은호가 당당히 말하자 태호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말려야 한다는 걸 알지만, 죄책감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봐.”
“얼마나 걸려요?”
“금방. 병원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우선, 옷이랑 링거 좀 해결하자.”
누가 봐도 병원에서 탈출한 모습이라 저대로는 돌아다니기가 곤란했다.
* * *
“…은호 씨. 잔소리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잔소리가 맞으니까 잘 들어.”
“듣고 있죠.”
은호는 링거를 빼는 모습을 보다 태호로 시선을 돌렸다.
“위험하면 당장 빠져. 그 몸으로 안 돼.”
“거기가 그렇게 위험해요?”
“숲 한복판이야. 은호 씨가 머무는 집 쪽이랑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환수 개체 수가 잡혔어.”
“와…….”
은호가 설렌다는 표정을 하자 태호는 한 대 콱 때려주고 싶다는 얼굴을 했다.
“아프면 돌아와. 알지? 은호 씨가 지금 이렇게 돌아다닌 건 진통제 때문이라는 거.”
태호는 링거를 가리켰다.
“타고난 튼튼함도 있죠.”
은호는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드루이드였다. 회복력부터 남달랐다.
당장 내일만 되어도 오늘과 몸 상태가 다를 테지.
“…서은호 씨. 타고난 튼튼함은 건강할 때 자랑해주실래요?”
아윤은 고개를 올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의사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박사님.”
아윤은 태호를 째려보았다.
애초에 이를 허락한 건 그가 아니겠는가. 어떻게 환자한테 저렇게 몰아붙일 수 있는지.
“아, 알아. 무슨 말을 할지 아는데. 나는 너무 말리고 싶어. 정말이야.”
“말리면 되는 거잖아요.”
“그게 안 돼.”
태호는 은호를 슬쩍 바라보았다.
미안함도 미안함인데, 은호는 연구소의 귀한 손님이었다.
소속이 되어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행동을 강제화할까.
무엇보다 지금 은호가 연구소를 위해 도와준 게 얼마나 큰지 몰랐다.
환수를 보호하고 치료해주겠다는 연구소의 가장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았는가.
오늘도 그랬다.
아픈 몸인데도, 부탁 하나로 이렇게 달려왔다.
“제가 고집부린 거예요. 아윤 씨도 부울이 건강해지길 바라고 있잖아요.”
“그건 맞지만, 그렇다고 환자의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아요.”
“급하면 뭐든 빌리고 싶은 게 사람인데, 제가 좀 움직인다고 뭐 닳겠어요? 할 일을 한 뒤, 다시 병원으로 얌전히 돌아갈 거예요.”
은호는 웃었다.
뭔가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말에 아윤은 숨을 내쉬었다.
결국, 병원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걸 하겠다니 달리 꺼낼 말은 없었다.
“도로롱은… 잘 치료되고 있어요.”
“정말요?”
혹시나 궁금할까 봐 던진 말이었는데, 반응이 너무도 컸기에 아윤은 살짝 당황했다.
“…네, 네. 지금까지 봐왔던 환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얌전했어요.”
“진짜 순하죠? 하지만 굉장히 조심스러워서 눈치를 좀 많이 볼 수 있어요.”
아마 눈을 가장 많이 움직이는 환수가 누구냐고 한다면 레비아탐을 말할지도 몰랐다.
“그 도로롱, 서은호 씨가 데려왔다고 했죠?”
“네. 제가 데려왔어요. 레비아탐이 쓰다듬는 걸 허락할지 모르겠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레비아탐이요…?”
“…그러니까, 도로롱이요.”
은호는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
자신이 환수와 말이 통한다고 동네방네 자랑할 것도 아니고, 너무 생각 없이 말했다 싶었다.
“이름이 뭔가… 웅장한데요?”
“그렇죠?”
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럴 때야말로 화제를 바꿀 순간이었다.
“락이터의 새끼는 어때요?”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곧 퇴원해도 될 정도예요.”
아윤이 웃자 은호가 슬쩍 말을 꺼냈다.
“제가 나중에 락이터한테 데려다줄게요.”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죠.”
아윤의 눈이 커진 지금, 은호는 태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형. 어디에서 부울을 구출했죠?”
* * *
태호가 알려준 장소는 처음 보는 산이었다. 이동은 한 번 갔던 장소만 가능해 흑견의 힘을 빌려야 했다.
은호는 그림자 속 까만 세상을 보며 잠깐 생각했다.
‘…얘들이 이름을 잘 알려주지 않네?’
처음 소개할 때 이름을 말하는 사람과 달리 환수는 대체로 숨기는 편이었다.
흑견 같은 경우는 이름을 알려주는 게 복종의 의미라 그 뒤로 묻지 않았다.
일렉트랑 폭시는 왜 알려주지 않는 걸까. 의식하게 되니 괜히 섭섭했다.
‘한번 물어봐야겠네.’
은호는 밖으로 나오며 쏟아지는 햇살에 기분 좋게 웃었다.
아무리 1인실이지만, 역시 병원은 답답했다.
“이 근처였다.”
흑견이 꺼낸 말에 은호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나무였다.
나무가 가득했다.
태호가 가져다준 사진에도 나무가 빼곡했기에 흑견이 안다고 티를 내지 않았다면 진짜 막막할 뻔했다.
“멍멍이 형님은 대체 사진만 보고 여길 어떻게 파악한 거야?”
“인간이 생각한 것보다 많이 돌아다녔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정을 붙이고 있을 때가 없다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
은호는 내리기 전에 앞으로 누워 흑견을 안아주었다.
오늘따라 천천히 몸을 숙여서는 더 깊이 바닥에 배를 붙였다.
은호는 괜스레 웃음이 났다.
이런 작은 배려가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지 흑견은 알까.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네 그림자에 있겠다.”
“그렇게 걱정돼?”
“당연하다. 인간한테 환수 관리인들이 찾아온 건 나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흑견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환수 관리국에서 사람이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크고, 눈에 띄기 쉽다. 내가 어리석게 행동한 탓이 크다.”
“그렇지 않아. 그냥 밖에 나와도 돼. 이런 식으로 멍멍이 형님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지 않아. 내가 내 얼굴을 가릴게.”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은가. 이번에도 환수 관리국 인간이 얽혀 있을 가능성 역시 몹시 크다.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옷을 바꾼 이유가 없다. 설마, 얼굴을 가리지 않으려고 했는가?”
“……어.”
맞는 소리를 하는데, 은호는 뭔가 이상했다.
“왜 그러는가?”
“…아니, 멍멍이 형님이 너무 똑똑해 보여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하!”
흑견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 자신을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은호의 나른한 눈을 보니 금방 식었다.
멍청한 건 인간이었다.
“인간. 나는 원래 똑똑하다. 기억하거라.”
한 번 봐준다.
흑견은 그렇게 다짐하며 발가락으로 은호의 어깨를 살짝 찔렀다.
옆으로 살짝 밀려 나간 은호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막지 못한 채 손을 위로 올렸다.
지이이익.
공간을 열자 그 너머로 두 앞발을 얌전히 모으고 있던 레비아탐과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 폭시가 보였다.
“얘들아!”
은호가 활짝 웃자 폭시 역시 눈웃음을 지었다.
성큼 다가왔다.
“엄청 기다리고 있었어.”
“나돔! 나도 그램!”
레비아탐마저 공간을 넘는가 싶더니 갑자기 뒤를 바라보았다.
덩달아 폭시 역시 고개를 돌렸다.
“너도 올 거얌?”
레비아탐이 폭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자 은호의 시선 역시 덩달아 왼쪽을 향했다.
풀이 크게 흔들렸다.
뭐가 있는지 몰랐는데, 풀 속에서 빼꼼히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
일렉트가 시선을 내린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두려움이 눈동자에 어려있자 폭시가 일렉트에게 다가갔다.
“왜 이렇게 은호를 무서워해?”
“……내가 언제?”
“맞암. 은호인뎀? 은호얌.”
레비아탐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알아. 나도 눈 있어.”
일렉트는 괜히 날을 세우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
나름 앙증맞은 세 마리의 모습에 흐뭇해하던 차 은호는 일렉트의 반응에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일렉트.”
“……응.”
일렉트는 은호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내가 오늘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 혹시 듣고 있었어?”
“…그냥 널 봤어.”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오늘 특별한 이유로 멍멍이 형님이 나를 도와주지 못할지도 몰라.”
환수 관리인이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에 흑견을 본다면 자신을 무조건 A라고 생각할 텐데, 연구소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당당하게 알릴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 이유로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사라지는 셈이라 흑견이 먼저 제안했다.
―나머지도 데려가라.
“그럼, 친구도 나를 도와줄래?”
은호는 일렉트에게 제안하자 작은 눈이 금세 커졌다.
“정말……?”
“정말이지. 물론,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이건 강요가 아니라 부탁이야. 다시 말하지만, 강요가 아니야. 친구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폭시는 한 번에 달려왔다.
은호의 다리를 붙잡으며 눈을 어여쁘게 떴다.
“나는 은호 돕기로 했는데, 너는 어떡할래? 은호한테 올 거야? 아니면 계속 거기 있을 거야?”
폭시는 일렉트를 보며 물었다. 그 말에 뻣뻣해진 몸으로 일렉트는 몸을 덜덜 떨었다.
“이리 왐. 같이 가잠.”
레비아탐이 앞발을 휘적거리며 크게 뜬 눈을 깜박거렸다.
주저하던 일렉트는 몸을 낮춘 채 기어서 공간을 넘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보기가 어려웠다.
“일렉트.”
낮아진 은호의 목소리에 일렉트는 흠칫 놀랐다.
“지금 너는 아파. 나는 널 치료하고 싶었고. 그러니까 죄책감을 품지 않아도 돼.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따스한 눈빛과 미소에 일렉트는 아랫입술을 살짝 올리며 바라보았다.
화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일렉트는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왜 화를 안 내?”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일렉트는 상체를 들어 올려 은호를 보았다.
전기 나무를 만들 때도 느꼈지만, 이상한 인간이었다.
“은호가… 해야 하는 일이 뭔데?”
“지금 환수 친구가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을 가져와야 해. 그러려면 이 드넓은 숲에서 환수의 둥지를 알아내야 하고.”
“그럼, 둥지를 알아내기만 한다는 거네?”
일렉트의 물음에 은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냥 찾을 수 없으니, 이걸 이용해서 찾아야 해. 우리가 말이야.”
은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짠.
아주 긴 깃털 하나가 은호의 손에 들렸다.
“무려, 부울의 깃털이지!”
당당한 그 말과 달리 깃털을 바라보던 세 마리 환수는 눈을 깜박거리다 거의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머릿속에 각자 물음표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