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4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44화(44/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44화
44화. 그들도 우리가 궁금하다
“…은호야.”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은호는 흠칫거렸다.
익숙한 목소리가 아닌가.
‘……꿈인 거지?’
깨어나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가방의 요정인 코코가 이동 기술을 자주 쓰면 꿈을 꾸게 될 거라 말했는데, 그게 정말일 줄이야.
‘그래도 그렇지, 자각몽이라는 말은 안 해줬잖아.’
꿈이 왜 꿈인가.
인지를 못 하고, 기억을 못 하고, 눈을 뜨면 사라지니 꿈이 아니겠는가.
자각해버리면 정신을 차린 뒤 다 기억할 텐데.
‘역시… 뭐든 그냥은 안 준다는 건가.’
치사하다 생각하며 은호는 드넓게 펼쳐진 하늘을 눈에 담았다.
“앞으로 뭘 하고 싶어?”
그 사람이 물었다.
이 광경이, 그때의 숨결이 다 선명하게 기억났다.
‘…이때가 언제였더라.’
날짜만큼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아득히 느껴질 만큼 먼 과거였다.
돌이켜보면 원래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을지도 모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호는 하나씩 떠올렸다.
코로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때, 자신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가 날아가고.’
은호의 시선 안으로 정말로 새가 날아왔다.
‘이제 다시 날 부르겠지.’
“은호야?”
그때, 자신은 원망이 튀어 나갈까, 화를 꾹 참고 있었다.
“…하.”
정말로 깊은숨이 튀어나왔다.
이때, 자신은 뭘 생각했을까.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릴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다.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있으려나.
복잡해진 생각과 달리 고개가 뒤로 돌아가던 그때, 푹신한 감각이 밀려왔다.
은호는 다급히 눈을 뜨며 좌우를 살피다 시야기를 가린 무언가를 손으로 만졌다.
익숙한 촉감이 밀려왔다.
“…인간.”
흑견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 안으로 얼굴이 밀려왔다.
“혹시 또 열이 나는가?”
은호는 흑견을 빤히 보았다.
샛노란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반짝거렸다.
“괴로워 보였다. 땀도 많이 흘렸고.”
은호는 그제야 자신의 얼굴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눈동자를 돌려 창문을 보자 밤이 내려와 있었다.
‘……진짜 꿈이네.’
병원이었다.
은호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악몽을 꿨나 봐.”
“악몽?”
“그나저나 나 걱정해준 거야, 멍멍이 형님?”
은호가 실실 웃으며 손을 뻗자 흑견은 앞 발가락으로 은호의 이마를 눌렀다.
“아직 밤은 길다, 자라.”
“나 또 악몽 꾸면 깨워줘야 해.”
“알았으니까, 자라.”
은호는 흑견의 말에 실실 웃다 눈을 감았다.
흑견은 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떤 악몽을 꿨는지 몰라도 그렇게 괴로워 보이던 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뭔가 낯설며 이상했다. 자신은 왜 이런 생각을 품는 건지.
‘…대체 뭘 하던 인간이지?’
알면 알수록 희한했다.
인간은 지금까지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은호는 달랐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냥 은호와 산책이나 가고 싶었다.
흑견은 시선을 올려 달을 바라보았다.
‘왠지 저 인간 같네.’
흑견이 앞발을 들려던 그때, 은호가 눈을 떴다.
흑견은 다급히 앞발을 내리며 흔들리는 귀를 주체하지 못했다.
“왜, 왜 안 자는가?”
덩달아 흑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내가 성장기도 아니고 꼭 자야 하나 싶더라고.”
꽤 오래, 푹, 편안히 잠들어본 적이 없었다.
요새 잘 자긴 했지만, 괜스레 오늘따라 어색하게 느껴졌다.
“얘들이 보고 싶네.”
은호는 실실 웃었다.
“같이 갈래?”
은호가 손을 뻗었다.
흑견은 앞 발가락으로 은호의 얼굴을 살짝 눌렀다.
“…아앗. 왜 그래, 멍멍이 형님?”
자꾸 인간 주변으로 뭐가 막 늘어났다.
흑견은 그게 참 아니꼬웠다.
* * *
부울 사건 이후 얌전히 병원으로 돌아갔다.
물론, 의사와 간호사한테 엄청 혼나고 말았다.
상처가 더 늘어났고, 하필 그 부위가 팔인 것도 모자라 칼로 벤 게 딱 티가 났으니까.
정신 검사를 받아야 하지 않냐고 진지하게 말하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환수를 지워버리려고.”
태호가 꽤 진지한 말을 던지자 은호는 멍한 눈을 했다.
“네……?”
환수를 지운다니.
은호는 입에 밥을 한껏 넣은 뒤, 우물거리며 열심히 생각했다.
“아!”
이내 태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환수 관리국의 개입을 막으면서 동시에 미끼를 던진다는 거죠?”
딱!
태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정확해, 은호 씨.”
“하긴 그게 제일 깔끔하죠. 그래서 저도 부울의 친구인 그 아저씨한테 환수 관리국이 아니라 경찰서로 전화 걸어달라고 했죠.”
환수 관리국의 개입을 최대한 막으려면 이번 사건에 환수는 끼어들지 않아야 했다.
“그건 정말 잘했어. 아주 적절한 조치였어. 덕분에 협상이 좀 편해졌거든.”
태호는 당장이라도 손뼉을 치고 싶은 얼굴로 은호를 보았다.
“그렇죠. ‘환수와 친한 일반 시민이 환수를 보호하려다 정화자에게 공격받았다’라는 사실과 ‘일반 시민이 이유 없이 정화자에게 공격받았다’라는 사실은 결과가 다르잖아요?”
“전자는 환수 관리국이 낄 자리가 있지만, 후자는 초능력 관리국으로 한정될 테니까.”
“이렇게 된다면 이제 또 다른 상황을 볼 수 있겠죠?”
은호는 즐겁게 웃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이렇게 손발이 잘 맞는 사람은 오랜만이라 자꾸 웃음이 흘러나왔다.
“환수 관리국과 초능력 관리국이 손을 잡았는지, 환수 관리국 내부에 있는 그 새끼가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했는지, 또 얼마나 초조해하는지 알 기회인 거죠. 누가 걸릴지 몰라도 상황이 참 재미있지 않아요?”
“재미있다마다, 이건 또 다른 기회지. 환수 관리국을 청소할 좋은 기회.”
태호는 본인의 허벅지를 때리며 속이 다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런 순간이 찾아올 줄이야.
말이 좀 거칠어졌지만, 그냥 환수 관리국이 제 기능을 하길 바랄 뿐이었다.
“지금까지 써먹을 수 있는 게 사실 내 이름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라. 은호 씨가 얼마나 큰 걸 던져줬는지 하룻밤을 줘도 다 못 설명한다니까?”
“형도 진짜 겸손한데요?”
“내가? 내가……?”
“던져줘도 못 받아먹는 사람이 가득하고, 제발 받기라도 해달라고 빌 때도 있는데, 형은 이걸 이용까지 했잖아요?”
파트너가 무능하면 그것만큼 괴로운 게 없었다.
태호에게는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할 힘이 있었다.
어느 쪽을 봐도 태호는 최고였다.
“훌륭한 파트너를 만나서 너무 기쁜데요?”
진심이 섞인 칭찬이라 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오늘, 한잔하자!”
이것보다 기쁨을 드러낼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탁탁.
갑자기 흑견이 발톱 끝으로 간이 책상을 건드렸다.
그림자에서 빼꼼히 내민 얼굴은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자 태호는 민망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환자한테 술은 좀 그렇지? 그래서 흑견이 화가 난 거 맞지?”
“음…….”
은호가 숟가락을 잡자 그제야 찌푸려진 흑견의 인상이 풀렸다.
은호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꾹 참은 채 미소를 지었다.
“아뇨. 밥 안 먹는다고 혼내는데요?”
“미안, 미안. 내가 좀 어정쩡한 순간에 와버렸네.”
“매일 와줘요. 진짜, 연구소로 도망가고 싶다니까요.”
병원 생활을 또 할 줄은 몰랐다.
또.
“퇴원 날짜는 들었지?”
“언제래요? 내일이죠? 그렇죠?”
은호가 기대하며 묻자 태호는 눈썹을 만지작거렸다.
“은호 씨.”
“네?”
“다음번에 그냥 우리 연구소에 입원할래? 의료 기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의사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농담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맞아. 농담 아니야.”
태호는 꼬았던 다리를 내려놓으며 무릎을 매만졌다.
“은호 씨 회복 속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빨라. 일부러 저번에 입원했던 병원을 권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냥 연구소에 입원시키는 게 낫겠다 싶…….”
“좋아요! 당장 가요!”
은호의 반응이 너무 격렬했기에 태호는 휘둥그레진 눈을 감추지 못했다.
“연구소에 점점 친구들이 많아질 테고, 노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정말?”
“내 회복 속도가 남다르잖아요?”
은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형. 형한테도 나쁘지 않아서 제안한 거 아니에요?”
태호는 그 말에 본인의 이마를 치며 웃었다.
“이야, 앞으로 은호 씨한테는 뭘 속이지도 못 하겠네.”
“속여도 괜찮아요. 파악해버리면 되는 거죠.”
제법 매서워진 눈빛에 태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에 보지 못한 표정이라서 그럴까.
“아, 물어보는 게 늦어졌는데, 부울은 괜찮아요?”
은호가 웃으며 묻자 태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은호 씨라면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 얼굴에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병원 탈출해서 몰래 연구소로 왔잖아.”
어쩐지 오늘 이상하게 일렉트와 레비아탐, 그리고 폭시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신이 연구소 밖에 나가기만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우르르 달려오는 게 기본이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하루의 활력소가 사라졌기에 얼마나 슬펐는데, 범인이 여기 있었다.
“내가요?”
태호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은호를 향해 결정적인 증거를 언급했다.
“CCTV를 잊은 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태호는 말문을 닫았고, 은호는 입으로 음식을 쑤셔 넣었다.
‘……어떻게 알았지?’
몰래 나간 건 사실인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밑을 바라보자 흑견 역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서는 평온했다.
“내가 갈게.”
태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십니까?”
문을 열자마자 태호는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왼쪽 팔에 붙여진 사자 얼굴 문장을 보자 바로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남자가 웃자 태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환수 연구소의 소장님이 아닙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은호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자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심서율이었다.
“…서은호 씨? 대놓고 기분 나쁜 표정을 하면 저 상처받습니다.”
서율은 문 사이로 보이는 은호의 표정에 실망을 숨기지 못했다.
“환수 관리국에서 무슨 낯짝으로 여길 나타났지? 또 피해자를 달달 볶을 생각인가?”
태호가 문틀에 손을 얹으며 서율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서율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오해입니다, 소장님.”
“오해? 서은호 씨가 정화자한테 공격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보복까지 받을 동안 환수 관리국은 뭐했는데? 피해자 보호는커녕 와서 피해자한테 칼을 들이밀어 놓고, 오해? 나도 이참에 아주 큰 오해로 환수 관리국에 기술 지원과 자문을 끊어버리고 싶어지는데. 어때?”
‘이야, 저 형 봐라.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모르겠네.’
은호는 태호의 말과 그 속에 섞인 감정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괜히 허투루 최연소 연구소 소장이 된 게 아니었다.
아예 이참에 자신을 환수 관리국의 약점으로 만들 셈이었다. 이러면 태호의 의도가 잘 굴러가도록 도와줘야지.
“저, 저 그러면 국장님한테 죽습니다!”
서율의 눈이 커졌다.
“그걸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차가운 태호의 시선에 서율은 두 손을 들며 고개마저 흔들었다. 그 설태호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모두 환수 관리국의 잘못이 맞습니다. 무조건 환수 관리국이 잘못한 거 맞습니다!”
―이건 빌어야 해. 무조건 가서 빌어!
저번에 이곳에서 환수 관리국의 대원 하나가 은호를 습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자 상사인 지혜가 꺼낸 결론에 자신도 무조건 찬성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주 깁니다. 그 이야기를 하러 왔으니 제발 너그러이 들어주십시오.”
은호는 서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설태호 소장님. 솔직히 심서율 씨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그렇죠? 저도 모르겠네요.”
태호 역시 의심을 담아 서율을 바라보았다.
“환수 관리국에서 요새 떠드는 사건을 이용해 절 범인 만들려고 했잖아요.”
서율은 갑자기 쏟아진 은호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사과하려고 온 건 맞는데 이건 아니었다.
“아, 아, 아닙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무조건 사과를 하러 왔다니까요?”
“제가 모를 줄 압니까, 심서율 씨? 그때 분명히 제가 초능력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잖아요.”
은호의 주장에 서율은 태호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구, 궁금하긴 했지만, 확인하려고 한 건 제가 아닙니다! 그 자식이잖습니까?”
“그 자식하고 심서율 씨하고 같은 편인지 아닌지 누가 알아요?”
“아닙니다! 그 자식과 저는 다릅니다. 그 자식은…….”
“죽었습니다.”
굵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율은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또각.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식의 이름은 김성태, 환수 관리국 소속이 맞습니다.”
남자가 서율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남아 있는 한쪽 눈으로 태호를 바라보았다.
“환수 관리국 소속임에도 비소속 초능력자, 그것도 정화자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를 발견했죠.”
남자의 말에 태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 묵직함에 도리어 흔들리는 건 태호였다.
저 남자가 오면서 무슨 말로 시작했는지 떠올린 탓이 컸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 증거를 바탕으로 조사하던 중 최근, 아니, 어제 김성태와 관련된 새로운 사건이 터진 걸 확인했습니다.”
남자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시선을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정화자를 시켜 환수들을 죽이던 중, 우연히 사람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했지 뭡니까.”
부울 사건을 콕 집는 거라는 걸 은호는 알아차렸다.
자신들이 ‘환수’를 빼려고 했던 그 사건에 환수를 다시 집어 넣어버렸다.
“그런데 병원으로 오는 길에 김성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척 안타깝습니다.”
아주 잠깐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았다.
은호는 그 뻔뻔스러운 미소를 보자 덩달아 웃음이 났다.
‘너구나.’
태호를 지나 은호 앞에 도착한 남자는 고개를 숙인 뒤 천천히 올렸다.
“여러 번 미숙한 점을 보여 무척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환수 관리국의 부국장 권석현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운 눈을 한 저 남자가 폭시 사건과 부울 사건을 주도한 그 개새끼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