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4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48화(48/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48화
48화. 제가 누굴까요?
저놈은 정화자였다.
인간으로서 존엄성마저 잃은 존재였다.
왜 태호가 저놈들만 보면 이를 그렇게 갈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선명히 알아버려 너무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환수를 죽였을까.
다른 걸 다 떠나 타인에게 고통을 줬다면 본인 역시 그 고통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푸하하하!”
내내 입을 다물던 놈이 웃었다.
“뭐야, 변절자였네.”
그저 지나가다 더러운 걸 본 듯이 눈동자에 남아 있던 불안마저 지워버렸다.
“죽여.”
두 눈썹을 올리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러운 네놈한테 비느니, 죽는 게 낫지. 죽여.”
“내가 널 왜 죽여? 얻을 것도 없고, 더러워질 게 뻔한 진흙탕 속에 손을 넣는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은데?”
은호가 등을 돌려 문으로 걸어가자 흑견은 은호의 그림자에서 등장했다.
저놈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저 귀찮다고 생각해 피해 갔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살기를 드러내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에 하지 않았을 테지만, 저놈은 달랐다.
“그 입 다물어라.”
우레와도 같은 소리도 모자라 밀려드는 기세에 정화자는 몸을 떨었다.
몸을 찌르는 건 겨우 날이 선 가시가 아니었다.
거대한 칼날이 몸통에 꽂히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와 입을 꾹 다물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환수들과 격이 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정화자는 흑견을 바라보았다. 샛노란 눈동자와 어둠과도 같은 저 외형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흑견이 아닌가.
“아주 혼내줘, 멍멍이 형님.”
은호는 뒤를 살짝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폭시가 바로 은호에게 달려와 물었다.
“멍멍이 형님, 화났어? 엄청 크게 기세를 드러내던데?”
“내가 화나서 그래.”
“그럼, 나도 화났어.”
폭시는 꼬리를 위로 올리며 눈마저 가늘게 떴다.
화난 척하는 모습도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몰랐다.
그래서 더 미안해졌다.
“친구야, 꼴 보기 싫은 인간이 있는데, 불러서 미안해.”
“아닌데? 그 인간들 골탕 먹이는 거라면 나는 너무 좋은데?”
폭시는 혀를 날름 내민 채 제자리에서 붕붕 뛰었다.
이런 모습은 여우가 아니라 여우의 탈을 쓴 벌처럼 너무도 통통 튀었다.
“정말?”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은호. 나는 저 인간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정말 싫어.”
잠깐 행동을 멈춘 폭시는 가늘어진 눈을 크게 떴다.
그 눈동자 속에 짙은 분노가 일렁거렸다.
“남을 해치는 건 싫어. 그런데 저 인간들까지 내가 왜 마음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마음을 부서트리고 싶어.”
은호는 폭시가 꺼내기에 잔혹한 말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마음으로 멍멍이 형님이 나를 말려줬네.’
복수고 뭐고 그냥 폭시의 마음이 다칠까 걱정스러웠다.
분명 멍멍이 형님도 그랬을 테지.
폭시는 고개를 올렸다. 은호는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슬퍼 보였다.
“왜… 슬퍼?”
“오늘 내가 저 못된 놈을, 죽일 뻔했거든.”
“안 돼! 그건 안 돼!”
폭시가 다급히 은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면 슬퍼. 그러면… 은호는 아플 거야. 그래서 지금 슬픈 거야?”
폭시의 주변으로 푸르른 나비가 날아다녔다. 금세 일렁거리는 눈을 보자 은호는 딱밤을 때렸다.
딱.
폭시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황당함이 가득 보였다.
“나도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슬프니까, 금지.”
활짝 핀 은호의 미소에 폭시는 그제야 웃었다.
“응, 금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 얼굴로 슬쩍 문을 밀자 그 뒤로 일렉트와 레비아탐이 보였다.
앞발을 꼬물거리는 레비아탐과 벽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일렉트를 보자 은호는 놀랐다.
“얘들아……?”
“…안녕, 은홈.”
“뭐 캘 거 있다며? 내가 전기 쏴 해줄까?”
은호는 눈을 반짝거리며 레비아탐과 일렉트를 향해 다가가 안아주었다.
품에 안긴 레비아탐도 일렉트도 눈이 커졌다.
“내가 너희들을 진짜, 진짜 좋아하는 거 알아?”
“나는 알암!”
레비아탐이 힘껏 대답했고, 일렉트는 그대로 굳어졌다.
“나도, 나도 안아줘.”
폭시가 앞발로 은호의 다리를 긁자 은호는 폭시까지 안아줬다.
복도에 웃음이 가득 번졌다.
그들을 내려놓은 뒤 은호는 당당히 외쳤다.
“가볼까?”
“응!”
힘찬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환수 친구들을 보며 은호는 안으로 다시 발을 디뎠다.
흑견이 눈동자를 힐끔 돌리자 은호는 다가가 두 팔로 끌어안아 주었다.
“멍멍이 형님. 아까 나 말려줘서 고마워. 앞으로 이렇게 휘둘리는 일은 없을 거야.”
작게 속삭이는 말에 흑견은 조용히 미소를 흘리며 뒤로 빠져주었다.
“…됐다.”
은호 역시 웃었다.
“폭시야.”
은호의 부름에 폭시가 다가왔다. 제법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더러운…….”
은호는 그대로 손을 뻗어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 헤드셋을 벗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친구들에게 개같은 말을 지껄이면 살아 있는 지옥이 뭔지 보여줄게.”
놈의 초능력은 가시를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그 힘으로는 숲에 던져놔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테지.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하. 네가…….”
“궁금하면 해봐. 나도 궁금하니까.”
은호는 비웃음을 흘렸다.
* * *
“…형.”
은호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태호의 눈이 커졌다.
병원복을 입고 태연하게 들어와서는 소파에 앉는 그 모든 행동이 꿈같이 느껴졌다.
“나 사고쳤어요.”
“……?”
태호는 산뜻하게 꺼낸 은호의 말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뿌듯해하는 얼굴인데 방금 꺼낸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태호는 멍한 눈이 되었다.
“권석현이 부리던 정화자를 잡았어요. 폭시의 힘을 빌려서 내막을 들었는데, 예상과 다르더라고요.”
“…….”
너무도 당황해 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권석현이 정화자를 조종해서 내 뒤를 감시한 줄 알았더니, 그 반대더라고요. 내가 의도치 않게 권석현을 구석으로 몰았나 봐요.”
은호의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 자식의 이름은 김성태, 환수 관리국 소속이 맞습니다.
김성태는 저번에 병실을 찾아와 자신을 찌르려고 했던 환수 관리국 사람이었다.
오늘 석현이 찾아와 환수 관리국 사람이 맞다며 확정 짓지 않았는가.
하지만 놈의 입방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으로 오는 길에 김성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척 안타깝습니다.
아직도 그 말을 꺼내던 석현의 비웃음이 머릿속에 가득 남아 있었다.
김성태는 부울 사건을 일으킨 정화자의 죄까지 다 떠안고는 죽어버렸다.
사건을 묻어버리려 값싸게 사람 목숨을 내버린 셈이었다.
여기까지 본다면 석현의 뒷배에 정화자가 있고, 그들을 짓누를 힘까지 가진 존재였다.
―…야, 약점을 잡으려고 했어. 그 새끼, 김성태를 죽여달라고 우리한테 찾아와 빌었거든. 그때 얼마나 볼 만했는데.
하지만 방금 상황 자체를 뒤집는 말이 정화자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권석현과 정화자의 관계는 온전히 위와 아래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환수 밀렵꾼과도 어떤 관계일까.
아마 비슷하겠지.
“얼마나 초조했으면 칠칠치 못하게 정화자한테 약점이나 잡혀요?”
“……그러니까, 은호 씨가 지금 권석현의 약점을 아는 정화자를 붙잡았다는 거지?”
“네. 여기 있어요.”
“나는 몰랐는데?”
“형은 바빴잖아요? 내가 데려온 그 친구를 구해야 했으니까요.”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다고 했다.
오늘, 내일이 고비라고 했다.
은호는 저절로 쥐어지는 주먹을 풀었다.
“대신, 가을 씨한테 말했어요. 물론, 병원에서 뛰쳐나왔다고 혼났어요.”
“…가을 씨가 왜 나한테 먼저 말을 안 했는지, 알만하네.”
“신경 쓸 게 많으니까요?”
“아니! 나도 똑같이 은호 씨를 혼낼 거니까. 그리고 그 새끼들, 내가 목을 움켜쥐었을 테니까!”
태호가 책상을 두드리며 일어나자 은호는 소파에 기대며 배에 얌전히 손을 올렸다.
방금 진짜 거대한 호랑이 같았다.
“…무서운데요, 형?”
그 말에 태호는 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그 새끼들만 생각하면 이가 갈려서 그래. 그놈들은…….”
“쳐 죽일 놈들이잖아요?”
은호가 미소를 그렸다.
“…그렇지. 바로 그거지.”
살짝 머뭇거리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은호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상당히 날이 선 게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그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형. 물어볼 게 있어요.”
“말해 봐.”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라는 이지혜. 이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왜?”
“찾아가려고요. 그게 맞잖아요?”
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호에게 걸어왔다.
소파에 앉은 채 손가락을 깍지 끼며 만지작거렸다.
“초능력 관리국의 부국장이었어. 그것도 다음 국장이 되리라 촉망받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왜 환수 관리국으로 온 거죠?”
“내막을 나도 완전히는 알지 못해.”
“그래도 말해주세요.”
“전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 잘리고 이지혜가 그 자리에 올랐어. 퍼진 소문으로는 전 국장이 비리를 저지른 걸 이지혜가 고발했고, 정부에서 이 사태를 묻고자 그 자리에 앉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아니야.”
“아니라고요?”
“전 환수 관리국 국장은 진짜 환수를 위해 일했어. 환수들이 머무는 보호 구역도 넓히고, 여기 연구소의 권한 강화를 적극 찬성해주고. 어쨌든, 그랬지.”
태호는 말이 길어질까, 도중에 잘라냈다.
“그래서 은호 씨는 이지혜를 왜 만나려는 건데?”
“필요하니까요. 형이 내 질문에 답변하면 나도 말해줄게요.”
“이지혜가 믿을만한 사람이냐. 그건 말이지.”
태호는 잠깐 뜸을 들이다 손을 내렸다.
* * *
차가 멈췄다.
“하…….”
태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제 맞는지 정말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제 와서 왜 한숨입니까? 솔직히 몇 번을 생각해봐도 이게 옳습니다. 질질 끄는 것도 여기서 끝 아닙니까?”
가을은 안전벨트를 풀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서은호 씨가 많은 걸 가져왔습니다. 박사님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습니까?”
안전벨트를 붙잡은 가을의 두 손아귀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환수를 관리 및 담당하는 관리국의 부국장이 범인이었다.
정화자와 환수 밀렵꾼이 어떤 존재인지 그 누구보다 아는 이들이 저지른 일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만큼 역겨웠다.
이 두 연결 고리를 은호가 가져왔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연결 고리를.
“은호 씨가 다친 걸 압니다. 이런 마음을 먹는 제가 나쁘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태호는 가을의 얼굴에 느껴지는 생생한 분노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웬만하면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그녀였기에 얼마나 간절한지 느껴졌다.
정화자와 환수 밀렵꾼을 잡고 싶은 건 태호 본인 역시 그랬다.
“형. 나 믿죠?”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호는 뒷자리에서 태연하게 물었다.
“은호 씨.”
“네?”
“안 떨려?”
“떨리죠. 굳이 비유하자면 남들 앞에서 첫 발표를 할 때와 비슷한데요?”
아주 긴장됐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워? 대체…….”
태호는 말을 하려다 삼켰다. 과거를 잃어버린 은호를 여기서 재촉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나도 사람이니까요.”
은호는 자동차에서 내렸다.
아직 달빛이 내려왔다.
달빛에 비친 은호의 얼굴과 손아귀에 붕대와 반창고가 가득했다.
손목에는 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사실 아직 걸을 때마다 덜 나은 상처로 욱신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욱신거림보다는 기쁨으로 심장이 뛰었다.
범인을 잡았고, 그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조금만 더 한다면 석현을 잡을 수 있었다. 손을 뻗을 수 있는데, 왜 그만둘까.
전신에 감싸는 묘한 희열에 은호는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환수 관리국의 정상화.
이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그래, 은호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길은 내가 뚫어줄게. 내 이름 하나면 되니까.”
자동차에서 내린 태호는 옷깃을 바로잡은 채 은호의 앞을 걸어갔다.
은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시선을 올렸다.
환수 관리국.
고개를 올려야 할 만큼 아득한 건물 아래에 한 동상이 있었다.
찬란한 태양을 드러내듯 화려한 가면을 쓴 채 우아한 망토에 둘린 환수.
저게 어떤 환수인지 몰랐다.
지금은 그저 끝없이 높은 건물에 둘러싼 채 감시당하는 환수의 처지를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 * *
“…소장님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찾아왔습니까? 또… 사건이 터진 겁니까?”
열린 문과 함께 긴 생머리카락이 같이 흔들렸다.
태호를 보자마자 눈가 밑에 점이 덩달아 움직였다.
까다로워 보이는 얼굴 너머에 근심이 차차 어리며 눈동자를 돌렸다.
그녀는 가을을 보았고, 마지막으로 은호에게 도달했을 때,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상황을 파악하는 듯 잠깐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췄을 때, 그녀, 이지혜가 미소를 흘렸다.
적의.
그 감정이 제일 먼저 보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지혜는 자리를 권했고,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후에 입을 열었다.
“저를 끌어내리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대화를 위해 오신 겁니까?”
지혜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태호와 가을 뒤에 있는 저 남자는 서은호였다.
석현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밀려왔다.
태호라면 그럴 힘이 존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태호 형이 말하길, 이지혜 씨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말문을 연 건 은호였다.
의외의 말을 시작했지만, 지혜는 당황하지 않은 채 여유롭게 그를 바라보았다.
“현명함이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요. 긴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왔습니까?”
“당신과 협력을 하러 왔어요.”
시원시원했기에 은호 역시 주저 없이 의도를 드러냈다.
지혜는 손가락으로 턱을 괬다.
“서은호 씨와 저의 협력입니까? 아니면 환수 연구소와의 협력입니까?”
“둘 다예요.”
지혜는 손가락을 내린 채 진지하게 은호를 바라보았다.
얼토당토않은 상황이지만, 그의 뒤에 태호와 가을이 있었다.
정말 이상한 조합이었다. 연관관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상은 권석현.”
은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에 지혜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서은호는 그저 피해자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은호는 달랐다.
은호는 그 물음에 조용히 웃었다.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꼭대기 위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묘한 미소에 지혜는 입가에 남겨두었던 웃음을 지웠다.
“멍멍이 형님.”
갑자기 은호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을 내뱉자 지혜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방에 어둠이 드리웠다.
지혜는 밀려드는 그 어둠을 보며 눈동자를 움직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샛노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치자 어깨에 들어간 힘을 천천히 풀었다.
무엇이겠는가.
어둠이라 칭할 수 있는 환수가 누구겠는가.
이 거대한 어둠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왜 모를까.
‘…흑견이다.’
눈동자에 남아 있던 적의마저 지워지며 그제야 굳센 시선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지혜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자, 제가 누굴까요?”
은호는 장난스럽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