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4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49화(49/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49화
49화. 제가 누굴까요?(2)
지혜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원래라면 흑견에게 무언가 술수를 썼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옆에 태호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올 답은 하나였다.
‘서은호가 내가 찾던 그 사람일 줄이야.’
환수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은호를 보호하고 있었던 걸까.
지혜는 이다음이 몹시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서은호 씨는, 제가 보호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묵직한 말을 꺼내며 바로 손을 뻗었다.
뭘 망설일까.
이미 태호와 가을이 다 알려주고 있었는데.
“저는 환수 관리국의 국장, 이지혜입니다.”
지혜는 미소를 지었다.
은호가 어떤 초능력을 쓴 건지, 무슨 힘을 사용한 건지, 그건 뒤로 미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은호의 힘이었다. 태연하게 흑견을 만질 수 있는, 바로 저 힘.
지혜는 흑견을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쳤다는 사실만으로 샛노란 눈동자에 금세 격렬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눈을 내리깔라는 건방짐 속에 고고한 자태를 드러냈다.
이처럼 환수는 절대로 길들일 수 없었다.
그게 어떤 환수인지를 떠나 모두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그걸 깨부쉈어.’
지혜는 말도 안 되는 사실에 주먹이 떨려왔다.
절대적 규칙을 깨버린 은호의 힘이라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짧은 순간에 수많은 미래가 펼쳐졌기에 지혜는 떨리는 심정을 억눌렀다.
“앞으로 서은호 씨와 지속적이며 깊은 협력을 기대하겠습니다.”
천천히 다가가야 했다.
자신은 이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 아닌가.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의 머리이자 얼굴이기에 신중해야 했다.
“저도 그래요.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내보일 차례지.’
사람은 원래 쓰임새에 따라 대접이 달라졌다.
정체를 깐 지금, 자신은 그 무엇도 얕보일 수 없었다.
환수들의 임시 보호소가 된다고 했으면 그만한 능력을 내보이는 게 당연했으니까.
“인간.”
“왜 그래, 멍멍이 형님?”
흑견은 평소와 다름없는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얼 바라는지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숨을 저절로 길게 새어 나왔다.
인간들이 은호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별짓을 다 하는 상황을 계속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정체를 밝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은호는 멍청했다.
지금도 왜 은호가 웃고 있는지 몰랐다.
지금 그와 마주 보고 있는 저 인간, 위험한 냄새가 풍겨왔다.
‘…참, 손이 많이 간다.’
은호는 지금 저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을까.
다른 힘을 가진 인간과 달랐다.
이걸 알기에 은호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다시금 느꼈다.
자꾸만 은호에게 시선이 가는 것도 이런 것일까.
미련한데, 멍청한데, 그 행동들이 무언가를 바꾸고 있었다.
지금 은호는 어떤 마음일까.
“저 인간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내가 찢어 죽이겠다.”
지금 자신이 은호를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러면 안심할 수 있을까.
“산책 가자.”
은호가 활짝 웃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은 귀에 담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워하는 흑견만 바라보았다.
“이번 일 끝나면 산책하러 갔다가 늘어지게 자는 거야. 아, 모닥불도 피워서 불을 보고 마시멜로도 구워 먹고, 멍도 때려보고. 어때?”
따사롭게 웃는 저 미소를 보자 흑견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에 가장 혼란스러운 건 태호였다.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흑견이 웃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이는 학계에서도 발표된 적 없는 사실이었다.
“좋다.”
흑견은 기분 좋게 그림자 속에 넣어둔 것들을 죄다 꺼냈다.
지혜는 오묘하게 흘러가는 상황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권석현의 약점을 아는 이놈들을 줄게요.”
은호는 묶인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세 놈을 가리켰다.
“시작부터 굉장한 선물을 주시는데요?”
지혜는 이빨을 내보이며 이 어마어마한 선물 보따리를 먹음직스럽게 바라보았다.
“우선 저들이 비소속 초능력자이자 정화자라는 사실부터 밝히겠습니다. 나중에 따로 국장님께서 확인하셔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가을은 흑견이 꺼내놓은 정화자들을 차갑게 바라보며 저들이 누구인지 알렸다.
이어 고개를 들어 지혜를 바라보았다.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가을 씨라면 몹시 유명하죠. 무려, 환수 연구소의 창과 방패이니까요.”
“하지만 이걸로는 재미없지 않아요?”
은호가 실실 웃었다.
달콤한 냄새가 방 가득 풍겨 왔다.
“절 당신들이 처음 알게 된 환수 납치 및 감금 사건을 해결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친구 때문이었어요.”
은호는 자신의 무릎으로 올라온 폭시를 가리켰다.
“폭시……?”
지혜의 손가락이 굳었다. 은호의 힘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달랐다.
“폭시만 있다고요?”
은호는 섭섭함을 드러냈다.
위를 가리키자 일렉트가 전등에 돌돌 매달려 있었다. 전등이 깜박거렸다.
‘…일렉트.’
이어 그녀는 옆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도도도 달려가는 모양새에 시선을 내렸다.
“이건…….”
“도로롱입니다. 아주 귀여운 녀석이죠.”
태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꺼냈다.
‘…환수와 관련된 능력을 가졌다. 그것도 확실히.’
지혜는 새어 나올 것만 같은 감정을 억눌렀다.
주도권을 온전히 놓치지 않도록 은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서은호 씨는 제게 이 정도나 되는 힘이 있다고 알려주는 겁니까?”
“맞아요. 기왕 정체를 밝힌 자리니, 맛있게 보여야죠. 저, 꽤 먹음직스럽게 보였나요?”
“네. 제가 서은호 씨를 잘못 판단했습니다. 상당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환수와 대화까지 통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이런 사람이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다는 사실에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죠?”
우쭐함이 담긴 은호의 표정은 대수롭지도 않게 넘겼다. 그는 그래도 됐다.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환수 관리국은 앞으로 서은호 씨와 절대적인 협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에이, 좀 약하네요.”
“더 드려야죠. 하지만 저는 한꺼번에 드리지 않습니다. 천천히, 오랫동안 음미하게 해드리죠.”
오랫동안, 길게. 이 점을 강조하며 지혜는 눈동자에 드러나는 열망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걸 다 떠나 환수 관리국을 위해서 은호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지혜는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를 던져주었으니 자신 역시 하나를 주는 게 맞았다.
당장 종이를 꺼내 무어라 적은 뒤, 도장까지 깔끔하게 찍었다.
“제 이름으로 된 협력장입니다. 제가 서은호 씨에게 먼저 협력 제안을 구했으며 서은호 씨는 언제든 저한테 협력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책임은 저한테 있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이만큼 드리겠습니다.”
지혜는 종이를 바로 은호에게 내밀며 자신감 있게 바라보았다.
이 정도,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유능한 사람에게 언제나 빛이 날 만큼 잘 대우해야 하는 게 맞았다.
지혜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은호가 글자를 읽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저는 제 가치를 아는 사람을 좋아해요.”
은호는 종이에서 시선을 떼며 지혜를 바라보았다.
어려운 법적 용어 따위는 때려치운, 그야말로 간단하며 명료한 내용만 담겨 있었다.
“잘 부탁드려요.”
은호는 종이를 내려놓은 채로 손을 뻗자 지혜는 기꺼이 손을 맞잡았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현을 무너트린 뒤에도 이 관계는 유지되는 게 좋았다.
환수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으니까.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폭시야.”
은호는 무릎에 웅크려 앉은 폭시를 건드렸다.
“응?”
“저 자식을 한 번만 더 웃게 할 수 있어?”
“아까처럼 해달라는 거지?”
폭시의 미소가 길어졌다. 제법 사악해 보였다.
“맞아. 폭시는 아주 내 마음을 찰떡같이 잘 알아 들어주네?”
“당연하지. 나는 이제껏 만났던 인간 중에서 은호를 제일 좋아하니까.”
다시 동글동글해진 눈으로 은호를 바라본 뒤, 폭시는 소파 밑으로 내려왔다.
성큼성큼 당당하게 정화자에게 다가가자, 그는 바로 소리쳤다.
“아니이이! 권석현이 김성태를 죽였다고! 그게 맞다고 했잖아! 이제 없다고! 진짜 없어!”
술술 잘도 나오는 소리에 은호는 웃었다.
“하나가 빠져 있잖아.”
“……뭐, 뭐가?”
“권석현과 만나는 장소. 이제부터 그걸 알려줘야지. 지금 당장 전화해.”
은호는 다리를 꼬며 놈을 내려다보았다.
태호와 가을이 이곳에 왔다.
이 사실이 석현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을까.
‘아니, 분명히 들렸겠지. 이건 무조건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이니까.’
태호와 가을. 이 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환수 연구소의 얼굴이었고, 태호 자체는 그 존재만으로 시선을 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은호는 창문을 힐끔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너머에 있는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뒤를 부탁해요.”
“갑자기? 지금?”
태호가 덩달아 일어났다.
“놈을 마중 가야죠.”
대수롭지도 않게 꺼낸 그 말에 태호는 입을 다물었다.
놈이라고 한다면 권석현이 아닌가.
은호는 환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얘들아, 멍멍이 형님이 그림자로 들어가자고 하면 들어줄래?”
“아까 우리, 은호랑 약속했는뎀?”
레비아탐이 앞발을 뻗어 은호의 손가락을 만졌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었어.”
“그런데 밖에 그 무서운 인간이 은호를 공격하면 어떡햄? 은호 혼자 무서우면 어떡햄?”
레비아탐이 걱정을 담아 묻자 은호는 실실 웃었다.
“괜찮아. 너희가 있는데, 내가 뭘 걱정하겠어?”
아직은 석현의 뒤통수를 칠 때가 아니라 조금 더 묵혀야 할 순간이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 견딜 수 없을 만큼 자극할 순간이기도 했다.
“갔다 오십시오, 서은호 씨. 박사님이 있다면 뒷수습은 쉽습니다.”
가을이 은호를 내보냈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왔다.
은호가 석현을 상대한다면 자신이 지혜를 상대해야 했다.
지혜가 준 이 협력장에 확실한 공신력을 추가시키려면 태호의 이름이 필요했고.
“네. 가을 씨가 잘해주리라 믿어요. 가을 씨에게 맡길게요.”
가을은 은호의 말을 뒷배 삼아 지혜를 보며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은호 씨는 우리가 발견한 보물이라고.’
내어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 뒤부터는 제가 서은호 씨를 대신해 담당하겠습니다.”
가을은 은호가 앉았던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거, 상당히 긴장해야겠는데요?”
지혜는 가을을 보며 눈꼬리를 올렸다.
만만찮은 상대가 아닌가.
‘이런 인재를 독차지하겠다는 거지?’
그럴 순 없었다.
처음 생각과 달리 무얼 내어준다고 해도 붙잡아야 할 존재임이 분명했으니까.
둘 사이에 낀 태호는 굳어진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형. 믿어요.
그런 눈빛이 어딜 봐도 가득하기에 태호는 당당한 표정을 지은 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유리한 건 자신들 쪽이었으니.
은호는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나무가 흔들렸다.
석현이 온다고 열심히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왔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이쪽으로 오겠지.’
얼마나 열 받을까.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반쯤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건데, 나를 만나면 무슨 생각을 하려나.’
은호는 들려오는 발소리에 맞춰 미소를 활짝 지었다.
복도에서 튀어나온 석현이 은호와 눈을 마주치자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아주 잠깐 당황스러운 감정이 석현의 얼굴에 드러났다.
이내 석현은 미소를 지었다.
“서은호 씨가 이곳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병원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몸은 괜찮으…….”
“국장님을 만나러 왔어요. 권석현 씨도 만나러 오셨나 봐요.”
“국장님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철판처럼 깔린 석현의 얼굴에 금이 가는 소리가 은호의 귓가에 들려왔다.
“네. 지금 잠깐 화장실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렸네요. 어딘지 안내해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석현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상상이 가자 은호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급한 일이 생기셨습니까?”
석현이 말문을 열었지만, 은호는 그저 간단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딱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 자신을 재촉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네. 급한 일이 생겼네요.”
은호의 대답 후 침묵이 내려앉았다.
은호는 기꺼이 이 침묵을 즐겼다.
“이쪽입니다.”
석현은 눈앞에 보이는 화장실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은호는 석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 볼일은 거의 끝나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아요.”
“아닙니다. 급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오셨으니 오랫동안 국장님과 대화를 나누시죠.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말에 뼈가 가득했기에 은호는 입꼬리를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권석현 씨도 절 만나서 반갑나요?”
“그렇습니다. 무척 반갑습니다.”
석현은 그대로 고개를 숙인 뒤 돌아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은호는 물을 틀고는 손을 씻었다.
쏴아아아아.
‘이제 상황 파악이 됐으니까, 급하게 움직여야지, 권석현? 정화자든 뭐든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징징거릴 시간이라고.’
은호는 고개를 든 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가득 올라간 입꼬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