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5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52화(52/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52화
52화.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나요?(3) (컨셉 아트)
무얼 주저할까.
석현은 그대로 양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에 맺혀 있던 압축된 공기가 그대로 은호에게 뻗어나갔다.
눈을 깜박거리기에도 벅찬 그 짧은 시간에 소리도 없이 다가온 석현의 공격이 은호의 목에 닿으려던 그때, 바닥에서 거대한 어둠이 일어났다.
모든 걸 삼켜버린 어둠 속에서 흑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번개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로 주변에 있던 새들이 힘껏 날아올랐다.
은호는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는 흑견을 토닥거리며 석현을 바라보았다.
꼴이 엉망이었다.
꼭 폭발에 휘말린 사람 같았다.
“여기서 더 추락하지 말자, 권석현.”
오만하게 들리는 그 말에 석현의 목에 핏대가 바싹 섰다.
“…서은호.”
석현은 그 이름을 내뱉었다.
자신의 모든 걸 망쳐버린 새끼가 눈앞에 있었다.
또, 또 그 새끼가 뭔가를 지껄이고 있었다.
“서은호!”
석현은 다시금 그 이름을 내뱉으며 두 손을 뻗었다.
은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공기를 모조리 끌어당겼다.
활시위처럼 팽팽해져 주변에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릴 때까지 당기다 그대로 손을 놓아버렸다.
바람이 거센 파도처럼 요동치며 석현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죽어.”
석현이 은호를 보며 죽음을 예고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파바바바방!
공기 속 산소가 터지며 숲에 격렬한 폭탄 소리가 귀를 찔렸다.
석현은 경쾌하게 들리는 그 소리를 따라 웃었다.
그때, 섬뜩함이 밀려왔다.
거대한 발이 나타나 석현을 후려쳤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석현은 보이지 않는 공기의 벽을 만들어 급히 몸을 멈췄다.
앞을 보자 어둠의 힘이 뱀처럼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저 빌어먹을 짐승!”
석현은 악에 받친 채 소리쳤다.
급히 당겨온 공기를 압축해 흑견의 힘을 상쇄시켰다.
파앙!
공기가 터지며 일어난 충격으로 석현은 여러 바퀴나 굴렀다.
비틀거린 채 땅에 손을 짚자 그림자가 길게 졌다.
석현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죽었어야 했는데. 아예 사라졌어야 했는데.”
적의가 가득한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했다.
직접 본 흑견은 너무도 거대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밀려오는 묵직함에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빌어먹을 짐승 새끼.”
석현은 풀을 뽑아버리며 흑견을 향한 살의를 드러냈다.
그의 주변에 바람이 몰아치자 눈에 보이지도 않은 칼날이 흑견을 향해 돌진했다.
흑견은 어둠에 녹아들었다.
그대로 석현이 서 있는 땅에 진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뾰족하게 날이 선 발톱 끝에 어둠이 일어났다.
석현의 목을 뜯을 기세로 들이밀다 흑견은 아주 잠깐 망설였다.
저자의 목이 떨어지고, 피가 튀긴다면 은호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콱!
공기에서 일어난 바람이 흑견의 앞발을 뚫어버렸다.
“짐승 새끼야! 네놈이 우리에게 힘을 줬다고 해도, 강한 건 인간이다!”
석현은 뚫어버린 흑견의 앞발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부웅!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석현이 고개를 돌리려던 차 나무 몸통만큼 두꺼워진 나뭇가지가 석현을 후려쳤다.
콰앙!
석현이 날아가든 말든 은호가 다급히 흑견에게 달려왔다.
“마, 마, 많이 아파? 괜찮아?”
흑견의 앞발을 붙잡으며 은호는 무릎을 꿇었다.
흑견이 누군가에게 당한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석현이 그 정도로 강한 걸까.
“…아무렇지도 않다. 다른 존재들은 대피시켰나?”
흑견은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대피시켰어.”
은호는 밀려드는 속상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흑견이 석현에게 밀리는 게 아니라면 그럼 대체 왜 멈췄겠는가.
“때려도 돼, 멍멍이 형님! 저딴 새끼한테 왜 망설여?”
“저놈 때문이 아니었다.”
“…나 때문이야?”
은호가 놀란 눈을 했다.
이내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괜찮아! 멍멍이 형님이 그랬듯이, 내가 말릴 테니까! 그러니까…….”
흑견은 은호를 물고는 그림자로 들어갔다.
콰과과과광!
위에서 터지는 소리에 은호는 깜짝 놀랐다.
“…엄청난데?”
“놈에게 공기는 무기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불리한 건 우리다.”
“요컨대, 공기를 가두면 된다, 이거지?”
은호가 장난스럽게 웃자 흑견은 미간을 좁혔다.
“나와! 나오라고!”
위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흑견은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멍멍이 형님.”
“말해라.”
“싸움은 원래 패싸움이야.”
은호는 꽤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자 흑견이 귀를 쫑긋 세웠다.
“무얼 하려고 하는가.”
“내가 얼마 전에 말했던 두더지 게임. 그거 해보려고.”
“전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전이다.”
흑견은 눈가를 좁혔다.
환수들을 불러 어둠 속에 놓은 뒤, 필요할 때마다 뺐다 넣었다 하는 작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환수들이 땅 위로 오르는 타이밍이 중요하기에 상대적으로 은호에게 둔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꽤 쓸만한 작전 아니야?”
공기는 어디든 존재했기에 흑견이 말한 대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자신들이었다.
석현은 점점 강해질 테니까.
“…그런데 멍멍이 형님.”
은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런가?”
“권석현, 여기에 가두면 안 돼? 아, 여기도 공기가 있어서 안 되려나.”
“인간.”
“응?”
“그건 불가능하다. 내가…….”
“알았어! 그건 제외하고, 바로 올라가자.”
은호는 웃으며 위를 가리켰다.
“왜… 묻지 않는 건가?”
“나도 비밀이 많은 사람이야. 누구나 비밀 정도는 간직할 수 있잖아?”
흑견은 그 대답에 그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은 채로 위로 올라갔다.
지상을 밟자마자 따가운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숲.
자신의 영역이었다.
은호는 안경을 쓰고는 시야를 조절했다.
자신들을 찾으려 나무란 나무는 보이는 족족 죄다 터트리는 석현의 행동에 은호는 주저 없이 칼로 손목을 베어버렸다.
‘저 쳐 죽일 놈. 자연보호 몰라?’
은호는 땅을 이용해 피를 움직였다.
석현을 중심으로 둥글게 포진해서는 단번에 피를 퍼트렸다.
그곳이 이미 울창하게 잡은 나무들이 몸집을 불려 가기 시작했다.
은호는 석현이 무언가를 하기 전, 주변에 자라난 풀을 이용해 놈의 숨통을 죄려 뱀처럼 몸을 거세게 묶어버렸다.
그대로 목으로 손을 뻗던 풀이 어떤 소리도 없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이게 네 힘이냐, 서은호!”
석현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지는 풀을 보며 웃음을 토해냈다.
겨우 풀포기라니.
겨우 이따위로 본인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는 것부터가 무척이나 열이 뻗쳤다.
‘반응이 너무 빠른데?’
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변에 칼날을 둘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반응이었다.
이로써 은호는 석현의 주변에 공기를 치우지 않으면 제압이 어렵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공기를 어떻게 치우겠는가.
지워야 하는 건 바로 저 산소였다.
저렇게 귀찮게 터지는 게 다 산소 때문일 테니까.
‘얘들아, 시간을 잠깐만 끌어줘.’
은호는 쭉쭉 자란 식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식물은 산소를 만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흡수도 했다.
과성장으로 자라났기에 흡수하는 양 자체가 다르겠지.
‘가자, 얘들아.’
은호는 손목을 벤 팔을 꽉 붙잡으며 피를 더욱 쏟아냈다.
퐁.
어디선가 거품이 나오는 소리가 식물들을 통해 들려왔다.
하나씩 생겨난 거품이 수없이 석현을 향해 밀려갔다.
나무가 높이 솟았기에 그림자 역시 길어졌고, 그 속에서 레비아탐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거품을 만들었다.
석현의 시선은 오로지 풀이 자라난 방향, 즉, 레비아탐이 있는 곳과 다른 방향을 향했다.
은호는 일부러 나무 한 그루를 흔들었다.
단번에 석현의 눈동자가 움직이며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를 비틀 듯 손을 움직이다 이내 놓아버렸다.
콰앙!
허공에서 귀가 아플 만큼 폭발음이 터지며 나무를 부서트리고, 뒤이어 바람이 몰아쳤다.
돌풍 같은 바람이 나무의 뿌리를 뽑으려고 사납게 흙을 파고들자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아주 좋아 죽네. 자연보호도 모르는 놈이.’
멀리서도 석현의 표정이 아주 잘 보였다.
자신을 짓밟고 우위에 섰다는 쾌감이 표정에 드러났으니까.
그간 어떻게 감정을 억눌렀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은호 역시 웃었다.
‘내 피가 들어간 나무 친구들을 만만하게 보면 곤란하지.’
흙먼지가 가라앉자 조금 전과 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자란 나무가 석현을 맞이했다.
툭.
툭. 툭. 툭.
그때, 무언가 석현의 뒤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황급히 얼굴을 돌리자 수많은 거품이 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석현의 눈썹이 위로 올라간 그때, 괴성에 가까운 소리가 그를 사정없이 찔러왔다.
찌르고, 또 찌르며 귀와 머리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무얼 하기도 전에 기어코 귀와 코, 그리고 눈에서 피를 쏟았다.
“…우웨에엑.”
석현은 토악질하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땅을 보며 눈을 감았다.
‘총 맞고도 살면서 엄살은.’
은호는 레비아탐을 바라보며 엄지를 올렸다.
자신을 본 건지 몰라도 레비아탐은 배시시 웃더니 그림자로 쏘옥 들어갔다.
콰르르릉.
그때,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풍성하게 자란 풀숲에 몸을 숨기며 달려온 일렉트가 하늘을 날아서는 석현을 향해 양 날개를 펼치듯 팔을 쭉 뻗었다.
콰아아앙!
내려친 번개가 일렉트의 몸을 타고 흘러서는 꼬리 끝에 머물렀다.
일렉트에 빛줄기가 감돌았다.
그대로 허공에서 꽈배기처럼 몸을 배배 꼬아서는 석현을 향해 꼬리를 강렬하게 휘둘렀다.
파악!
착 달라붙는 소리와 함께 석현의 얼굴부터 돌아갔다.
그의 몸이 땅에 닿기 전 일렉트는 두 앞발을 몸쪽으로 끌어당기며 전기를 내뿜었다.
파지지지직!
허공에서 부르르 떨며 땅으로 떨어진 석현은 조금 전, 레비아탐이 한 공격의 충격으로 다시금 토악질했다.
‘빌어먹을 짐승 새끼들…….’
초능력은 머리, 그리고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힘이기에 방금 당한 공격으로 머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힘을 주나, 이마저도 어려웠다.
털썩 쓰러진 석현의 시야에 푸르른 나비가 날아다녔다.
‘짐승 새끼가 또…….’
“빌어!”
폭시는 이빨을 드러내며 석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친구를 납치한 그 일당과 관련된 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우리한테 빌란 말이야!”
폭시의 눈꼬리에 나비 문양이 짙어지고, 석현의 머리를 뒤흔드는 힘이 작동했다.
“왜 우리한테 그랬어? 우린… 우린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목이 터지라 외치던 폭시는 이내 입을 꽉 다물었다.
감정에 휩쓸릴 순 없었다. 은호와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폭시의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가 석현에게로 향했다.
뇌를 녹일 듯이 달콤한 냄새는 석현의 콧속을 파고들었고 그대로 머리로 향했다.
쿠우우웅!
“아아아악!”
머리를 짓누르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뇌를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마저 밀려와 석현은 거칠게 비명을 터트렸다.
석현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아무렇게나 손을 휘적거렸다.
콰앙!
폭시의 뒤편에 공격이 가해졌다. 전혀 닿지 않았지만,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쾅!
맞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마치 폭시를 위협하듯 석현은 계속 초능력을 사용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수없이 들려오며 계속되는 초능력 사용에 석현의 얼굴에 핏대가 서고 더욱 코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면 안 되지.’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은호는 석현의 의도를 파악했다.
공격의 범위가 점점 폭시에게 향했기에 조심스레 길게 자라난 나뭇가지로 폭시를 붙잡았다.
키아아악.
날을 세운 폭시가 나뭇가지를 발톱으로 긁다 코를 벌름거렸다.
‘…은호다.’
폭시는 고개를 돌리다 특정 방향을 향해 귀를 세웠다.
“그쪽이냐!”
석현이 고개를 돌렸다.
콰앙!
은호가 있는 곳 근처에 석현의 공격이 들어갔다.
‘와, 진짜 위험하긴 하네.’
그렇게 공격을 당하고도 아직 초능력을 사용할 기운이 있는 것도, 점점 정밀하게 공격을 조절하는 것도 모두 다 위험했다.
이 위험은 점점 더 심해지겠지.
은호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너무 다행이네.’
석현이 다른 얘들을 상대할 사이에 은호는 나무들을 움직이고 더 크게 자라게 하며 범위를 좁혔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해서 말이야.’
은호의 입꼬리가 차차 올라갔다.
범위를 좁힌 나무를 움직여 그 무엇도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석현을 가둬버렸다.
쿵!
‘……?’
석현은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였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숨이 거칠게 내쉬어졌다.
누구 할 것 없이 어둠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석현은 눈동자를 굴리다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알아버렸다.
‘힘이…….’
손아귀에 잡히는 공기의 양이 턱없이 적었으며 그중 자신의 힘에서 가장 중요한 산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사라지고 있다.’
석현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리며 눈동자를 움직였다.
‘저 식물이 내 산소를 흡수하는 거야!’
콰앙!
석현은 남은 산소를 끌어모아 거슬리는 나무를 부서트리려 애를 썼다.
‘늦었어, 권석현!’
자신의 피가 섞인 이 나무들은 특별했다.
평소라면 몰라도 놈을 위해 만들어진 이 감옥에서는 불가능할 테지.
사아아아.
은호는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말을 들었다.
변하고 싶다는 식물들의 외침이었다.
권석현은 어지간히도 자연에 미움을 받은 모양이었다.
은호는 손아귀에서 천천히 초록색 빛을 꺼냈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수없는 나무와 식물이 얽힌 그들을 향해 은호는 손을 뻗었다.
초록색 빛이 그들을 향해 번져갔다.
반딧불처럼 수없이 늘어난 빛에 휩싸인 식물들은 형태를 바꿔갔다.
《새로운 종이 탄생 되었습니다.》
태블릿이 옆에서 힘차게 알려주었지만, 무언가 쭈욱 빠져나가는 느낌에 은호는 이를 보지 못하고 아득해진 정신과 함께 몸이 뒤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정신 차려라, 인간.”
흑견이 은호를 앞발로 붙잡았다.
은호는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식물이 수없이 엉켜가며 하나의 뿌리를 두었고, 수없이 뻗은 가지는 마치 하나의 손처럼 변했다.
거대한 손아귀에 석현이 감싼 것 같은 모습에 은호는 웃었다.
“…아주 기가 막힐 만큼 멋지네.”
은호는 마음에 들었다.
마치 식물이 석현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가자고.”
하나가 된 식물은 손아귀를 힘껏 쥐듯 석현을 가둔 범위를 급격히 좁혀 네 사람 정도 들어갈 크기로 몸집을 줄였다.
드드드드.
그대로 식물은 본인의 몸을 위로 들어 올렸다.
오른쪽으로 힘껏 본인의 몸을 땅에 박았다.
콰아앙!
땅이 요동치며 이내 다시 몸을 들어 올린 식물은 똑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박듯 움직였다.
콰아앙!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부서진 식물의 몸 일부는 은호의 피로 빠르게 자라났기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몇 번이나, 계속, 모든 울분을 토하듯 바닥으로 들이박고, 또 들이박았다.
석현이 외치는 비명마저 모조리 괴성에 가까운 충격 소리에 잡아먹혔다.
죽이고 싶다.
죽여버리고 싶다.
오로지 하나의 증오가 식물에게서 점점 느껴지자 은호는 단호히 목소리를 냈다.
“그만.”
식물은 행동을 멈췄다.
“그건 안 돼, 친구야.”
은호는 식물에게 걸어가 손을 뻗었다.
동조 현상인지 몰라도 배가 뜨겁게 익을 만큼 강하게 맴돌던 증오가 빠르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식물은 가지 하나를 꺼내 은호의 뺨을 어루만졌다.
화났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내 피 하나면 충분하잖아?”
은호가 식물을 토닥거리자 더러운 걸 뱉어내듯 석현을 토해냈다.
굳이 날을 세우지 않아도, 날카로운 가지에 여기저기 찔린 석현의 꼴은 엉망이었다.
당장 피 냄새가 밀려왔고, 얼굴은 누군가에게 쉴 새 없이 맞은 것처럼 부어올라 얼굴을 알아보는 것도 어려웠다.
손가락과 다리가 부러졌는지, 뒤틀린 모양새가 보기 좀 그랬다.
‘이래도 안 죽었네?’
은호는 그 점이 정말 놀라웠다.
“……서, 은호.”
희미한 목소리가 석현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은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의식이 있다고?’
은호가 나무를 움직이기 전에 석현이 입을 뻐금거리며 웃었다.
그 눈동자에 어린 건 패배가 아닌 강한 희열이었고, 그 입으로 꺼낸 말은 하나였다.
죽어.
무언가 다가오는 게 은호의 눈동자가 선명히 보였다.
석현의 증오가 가득 담긴, 칼날이었다.
저 칼날이 자신의 심장을 향했다.
아직 아무것도 닿지 않았거늘, 벌써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자연이 내게 보여주는 건가?’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석현의 힘이 보이는 것도 이상했고, 자신을 지키려 뻗어 나오는 가지가 느리게 자라나는 것도 이상했다.
‘지금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
안 돼. 안 돼.
갑자기 누군가의 강렬한 열망이 들려왔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에 은호는 고개를 돌려 흑견과 시선을 마주했다.
‘…멍멍이 형님?’
이토록 간절해 보이는 흑견의 눈동자는 처음 보았다.
석현이 만든 칼날이 은호의 심장과 손가락 하나를 두던 그때, 은호는 흑견을 보며 웃었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힘이 느껴졌다.
차르르륵.
어디선가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의 손목을 휘감았다.
찰그락.
늘어진 사슬을 따라가자 흑견의 손목에도 감긴 게 보였다.
‘이게… 뭐지?’
은호는 생각을 더는 이을 수 없었다.
그 사슬을 통해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이자마자 은호의 몸을 뒤덮었다.
차갑지만, 이상하게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은호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망토?’
흑견의 몸을 뒤덮은 어둠과도 같은, 까맣고도 우아한 망토가 발끝까지 내려왔다.
망토가 멋대로 나풀거리며 자신을 감싸는 것도 모자라 소리도 없이 저 칼날을 먹어 치워버렸다.
흑견의 힘과 너무도 유사한 느낌이었다.
은호가 망토를 붙잡으려던 그때, 갑자기 눈앞에 새카만 어둠이 보이며 무언가 자신을 끌고 갔다.
“……인간!”
푸르던 하늘 안으로 흑견이 보였다.
은호는 손을 뻗으며 흑견을 안았다.
방금 그 힘이 무엇인지 몰라도 흑견과 관련된 힘이었다.
흑견은 은호를 안은 채로 앞을 보았다.
자욱하게 깔린 모든 그림자에서 어둠이 일어났다.
고요하게 울리는 검은 불꽃은 살아있는 존재를 잡아먹을 듯 일렁거렸다.
흑견은 그 어둠 중 일부를 번개처럼 석현에게 쏘아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콰득!
살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석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만해, 멍멍이 형님!”
은호가 흑견을 찰싹 때렸다.
흑견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자 은호는 두 손으로 흑견의 뺨을 잡았다.
“우리가 이겼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승리를 외치는 은호의 미소와 싱그러운 눈빛에 흑견은 고개를 돌려 석현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의식을 놓아버렸다.
“안 죽었어. 숨 쉬고 있잖아?”
은호는 들락날락 움직이는 석현의 배를 가리켰다.
“우리가 이긴 거야.”
흑견은 다시금 당당히 외치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를 잃어버릴까, 바로 껴안았다.
아주 소중히.
아주 조심스럽게.
<흑견 (아기.ver) 컨셉 아트>
53-54화는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