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5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53화(53/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53화
53화.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나요?(4)
은호는 놀랐다.
평소 흑견이 낼 반응이 아니었다.
자신을 감싼 두 앞발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흑견을 안았다.
“……대체.”
흑견의 격한 감정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대체 왜 그랬는가!”
이내 사납게 언성을 올렸다.
은호는 동그란 눈으로 흑견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놈에게 접근했냔 말이다!”
“접근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힘을 가진 인간들은 기절하기 전까지 계속 힘을 쓸 수 있다!”
“진짜? …와, 이거 몰랐는데.”
은호는 괜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기에 당황스러운 건 흑견이었다.
“…왜 인간이 모르는가?”
“그거야 모르니까. 누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오히려 은호가 눈을 살짝 좁혔다.
이세계에 왔는데, 이걸 티 낼 수도 없고.
“원래 당연히 알아야 한다. 너는 인간이니까.”
따악!
은호는 흑견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조금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흑견은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물론, 다음에 이런 일도 없을 거야. 약속해.”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 모습에 흑견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인간은 대체 왜 아무것도 모르는가.”
모르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이곳을 몰랐다. 그 사소함이 자칫하면 큰일로 넘어갈 뻔했다.
“왜 이렇게 자꾸 손이 많이 가는가. 그러니까 내가 걱…….”
흑견은 순간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절대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소리가 너무도 쉽게 튀어나왔다.
걱정이라니.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어떻게 내뱉을까.
흑견은 몸에 힘을 빼고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어렸다.
저 바보 같은 표정 하나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게 묘하게 열받았다.
“알아. 멍멍이 형님이 날 얼마나 걱정하는지. 그래서 아까도 나한테 망토 같은 거 씌워줬지?”
은호가 실실 웃으며 다가오자 뒤로 물러서던 흑견이 걸음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니, 아까 멍멍이 형님이 망토 같은 걸로 나를 덮어서 저놈의 공격을 막았잖아.”
은호는 만신창이가 된 석현을 가리켰다.
“내가 하지 않았다.”
“뭐?”
“그저 잠깐 뭔가… 이상했다.”
“어떤 게 이상했는데?”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 석현이 은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 거리에서 은호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며 웃는 게 어디 있는가.
그 아득함은 다시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는 두려움이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한 적이 없거늘, 원치 않게 생겨버렸다.
그 웃음이 너무도 무서워졌다.
“나도 그런데?”
은호가 깜짝 놀라자 태블릿이 자랑스럽게 등장했다.
《서은호 님이 드루이드의 힘을 끌어내신 겁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맞습니다.》
“이거 보여? 내가 힘을 막 끌어냈대. 나 천재 드루이드인가 봐.”
은호가 태블릿을 가리키며 오두방정을 떨었지만, 흑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드루이드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자를 말합니다. 자연이라는 말에는 많은 걸 포함하고 있고, 환수 역시 자연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서은호 님의 힘은 기록된 내용이 아닙니다. 하여, 비슷한 상황을 찾아냈습니다. 현재 상황은 ‘맹금류의 힘’을 빌릴 때와 유사합니다.》
《저는 더 진화된 힘으로 추측합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임시로 기록했습니다.》
“역시, 태블릿 씨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거든요.”
은호는 태블릿을 쓰다듬다 또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숨을 깊게 마셨다.
온몸에 힘도 빠져 제대로 서기가 어려웠다.
은호가 그냥 땅에 드러눕자 아래에서 풀들이 몸을 엮고, 자라며 해먹같이 만들어주었다.
손으로 그들을 쓰다듬어주고는 식물을 바라보았다.
“네 이름은 ‘거대한 손’으로 하자. 어때?”
은호는 식물에게 물어보았다.
식물은 가지를 움직여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태블릿에 이름이 등록된 걸 보며 은호는 휴대전화부터 꺼냈다.
‘이제 보자…….’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인 뒤에 태호에게 연락했다.
“형. 여기 위치…….”
<대체! 대체 왜 전화를 안 받고 그래?>
휴대전화 너머로 전해지는 목소리가 너무도 컸기에 은호는 슬쩍 떼어냈다.
미안함에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던 차, 흑견이 환수 친구들이 밖으로 내보냈는지 시야 안으로 그들이 보였다.
초롱초롱한 레비아탐과 작은 눈을 깜박거리는 일렉트, 그리고 바로 자신을 보자마자 웃어주는 폭시까지.
“…화났어요?”
은호는 밀려드는 미소에 입을 막으며 태호에게 슬쩍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은호 씨가 무작정 권석현 그 개자식한테 갔다는 말을 듣고 진짜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니까?>
“형은 오래 살아야 하는데요.”
<은호 씨! 지금 그거 농담이라고…….>
“형. 나… 지금 진짜 힘들어요. 기절할 것 같아요.”
<권석현 체포당하는 모습 봐야지? 내가 진짜 금방 테니까, 정신 잡아야 해.>
“맞네요. 권석현 체포당하는 모습 봐야죠.”
은호는 웃으며 휴대전화를 끊었다.
“…진짜 기절할 것 같암?”
식물을 타고 올라오던 레비아탐이 그대로 멈춰 은호를 바라보았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은호는 눈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살짝?”
말을 꺼낸 뒤, 은호는 더는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가볍게 뛰어오른 폭시는 앞발로 은호의 얼굴을 만졌다.
“…은호 얼굴이 평소랑 다르게 뜨거운데?”
그 말에 흑견이 앞 발가락을 뻗어 은호의 이마를 콕 짚었다.
눈동자를 굴리다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살짝 올랐다. 엄살을 부릴 정도는 아니다.”
“멍멍이 형님은 바보야?”
폭시가 꺼낸 소리에 은호는 고개를 돌려 어깨를 흔들었다.
너무 당돌했다.
“지금 뭐라고 했는가?”
흑견이 폭시를 내려다보았다.
그 거대한 몸집에 폭시의 귀가 살짝 내려갔지만, 해야 할 말은 놓치지 않았다.
“바보냐고 했어. 은호는 인간이야. 인간은 우리랑 다르게 체온이 조금만 올라도 죽어. 멍멍이 형님은 왜 그걸 몰라?”
“주, 주, 죽엄? 은호가 죽엄?”
레비아탐이 그대로 굳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몸을 보자 폭시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야! 은호는 안 죽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은호의 체온이 확 오르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었어! 은호는 괜찮아!”
덩달아 당황해 빨라진 폭시의 말에 레비아탐은 추욱 늘어져서는 꼬리를 흔들었다.
“…나 진짜 놀랐엄. 은호한테 큰일이 나는 줄 알고 무서웠엄.”
고개를 빼꼼히 든 레비아탐은 은호에게 네 발로 총총 걸어가서는 짧은 앞발을 내밀었다.
은호의 이마를 짚어보자 통통한 꼬리가 바짝 섰다.
“…달람. 은호의 온도가 달람! 빨리 확인해 봠! 빨림!”
제자리에서 방방 뛰자 폭시도 앞발을 내밀었고, 그 와중에 깃털이 달린 새로운 앞발이 꼬물거리며 은호의 볼을 찔렀다.
“은호한테 전기도 안 흐르는데 왜 뜨거워?”
일렉트가 폭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그건…….”
폭시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흑견을 바라보았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 은호하고 있었던 존재는 흑견이었다.
그 시선에 흑견이 불쾌함을 담아 콧바람을 내쉬었다.
“놔둬라. 인간은 이 정도로 안 죽는다. 지금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겠지.”
잠깐 눈을 감았을 뿐, 다시 눈을 떠 저들을 껴안고는 예쁘다며 말할지도 몰랐다.
제자리에 앉은 흑견은 생각만으로 언짢아 고개를 휙 돌렸다.
“아닌데? 은호, 기절했는데?”
일렉트가 은호의 볼을 누르며 말을 꺼냈다.
그 말에 흑견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인간?”
조심스럽게 앞발 하나로 은호를 흔들었다.
이내 깊어진 숨소리가 들렸다.
“……잔다.”
흑견이 불만을 담아 이빨을 살짝 내보였다.
* * *
“…하. 귀찮게 진짜.”
주머니에 손을 넣은 한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그 앞에 여기저기 붕대가 칭칭 감긴 석현이 침대에 묶인 채 발악하며 몸을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당장 풀어! 풀라고! 풀라고, 새끼야!”
“꼬물거리는 게 진짜 지렁이 같네. 참, 용쓴다, 용써.”
“네놈이랑 이지혜! 그래! 그렇게 손을 잡았네! 네놈이 환수 관리국을 먹으려고 이지혜를 보낸 거지?”
남자는 귀찮음이 가득 묻어난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석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혜랑 나랑 뭘 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잠자고 있는데 불려 온 내 기분 좀 이해해줘야지.”
남자의 손아귀에는 뭉텅이로 된 종이가 가득 있었다.
“대충 뽑아도 네가 한 일이 이 정도더라. 적당히 좀 처먹지. 내가 귀찮은 일에 휘말렸잖아. 우리 서로 편하게 그냥 죄를 인정하자. 어때?”
딱.
남자가 손가락을 다시 튕기자 석현은 악에 받친 채 소리쳤다.
“거긴, 내 환수 관리국이라고! 누구도 뺏을 수 없어! 내 걸 탐내는 새끼는 다 죽여버릴 거라고! 알고 있냐고, 이도현!”
촤악.
도현을 석현을 향해 종이를 뿌렸다.
흐리멍덩하던 남자의 눈동자가 또렷해지며 의자에 기댔던 등을 뗐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딱 너 같은 새끼야.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새끼. 환수 관리국이 왜 네 거야?”
“네놈이 이지혜를 환수 관리국으로 보내지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될 리가 없다고!”
도현은 그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천천히 두 손을 쥔 채 한쪽 눈썹을 올렸다.
“기대해도 좋아. 네놈은 방금 내 역린을 건드렸으니까. 초능력 관리국 국장의 이름을 걸고, 네가 바깥 세상을 볼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는 그를 보며 석현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아아아아악!”
* * *
깜박.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낯선 천장부터 자신을 맞이했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보이는 링거에 이내 안도했다.
환수 친구들이 무어라 말하는 걸 듣다가 그 뒤로 의식이 사라졌다.
‘너무 많은 식물을 하나의 새로운 종으로 만드는 게 나한테 되게 부담으로 왔나 봐.’
은호는 입을 오므렸다.
아무리 부담이라도 기절할 줄은 몰랐다. 권석현이 체포되는 걸 봤어야 했는데.
은호는 상체를 일으키자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몸이 왜 이렇게 무겁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커튼을 조심스럽게 걷자마자 그 앞에 웅그려 있던 흑견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 깜짝아!”
“깼나?”
“아니, 멍멍이 형님. 밖으로 나오면 안 되잖아.”
“여기 연구소다.”
“……아.”
은호는 뒷덜미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연구소라고…?”
자신이 기절하는 사이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하지만 전에 태호가 연구소에도 의사가 있으니 앞으로 다치면 이쪽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부상은 아니지. 그냥 기절이니까.’
은호는 익숙하게 링거를 빼내서는 바로 옆에 있는 링거 거치대에 걸었다.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은호를 흑견이 붙잡아 올렸다.
허공에서 은호의 발이 바둥거렸다.
“아니, 왜?”
“진정해라.”
“진정하고 있어.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그래. 권석현은?”
“인간들이 데려갔다.”
“거봐. 그것밖에 모르잖아.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열이 났다. 하루를 넘어서 이틀째 깨어났다.”
“…휴, 휴대전화로 보면 되긴 하겠네.”
흑견이 내려주자마자 은호는 다시 얌전히 침대로 돌아갔다.
“나 왜 이렇게 많이 잤어?”
침대에 누워서 흑견을 슬쩍 바라보았다.
“나도 모른다.”
“걱정했어? 아니면 울었어?”
그 물음에 흑견이 기분 나빠하자 은호는 낄낄 웃었다.
“가방이나 받아라.”
흑견이 어둠으로 가방을 건네자 은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흑견을 바라보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새벽 4시네? 어쩐지 어둡더라.’
누군가를 깨우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간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은호는 이래저래 검색하며 살펴보던 중 갑자기 빛이 들어오자 눈을 찌푸렸다.
“너는 인간이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볼 수 없다.”
“틀린 말은 아닌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시간을 좀 줘.”
“어떤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건가?”
“갑자기 불이 켜지면 나는 깜짝 놀라.”
흑견은 콧바람을 세게 내쉬었다.
“인간은 정말 손이 많이 간다. 빛 속에서 살면서 왜 놀라는지 모르겠다.”
“그거야 어둡다가 갑자기 빛이 쏟아지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하려던 걸 해라.”
흑견에 대충 앞발을 휘휘 젓자 은호는 기가 찬 얼굴로 휴대전화를 보았다.
「충격. 환수 관리국의 부국장 권석현의 이중인격. 비소속 초능력자와 손을 잡고 A씨를 살해하려고 했다.」
「[속보]환수 관리국의 부국장 권석현, 현재 병원 입원 중.」
「[속보]환수 관리국의 부국장 권석현, A씨를 살해하려고 하다 실패 후 도주.」
눈살이 찌푸려지는 기사 제목에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A라고 되어 있지,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은 없었다.
지혜가 약속을 지켜주리라 믿는 것과 별개로 환수 관리국이 이번에 입을 타격이 상당해 걱정이긴 했다.
‘징계도 들어갈 테고, 이참에 싹 물갈이도 돼서 되게 바쁘겠지?’
은호는 휴대전화를 내렸다. 바쁜 건 환수 연구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흔적을 지워야 했으니까.
정보는 찾고 읽는 와중에 여러 정보와 비난이 가득했지만, 석현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이이잉.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호 형.
“여보세요? 나 깬 거 어떻게 알았어요?”
<불이 갑자기 켜졌으니까. 이거 깨어났다고 알아달라는 신호 아니었나?>
“멍멍이 형님이 켰어요.”
<흑견이 불을 켤 수도 있지. 어쨌든, 몸은 괜찮고?>
“그거야 괜찮은데, 형. 지금 새벽 4시인데요? 혹시 밤잠이 없어요?”
<밤샘은 연구자로서 훌륭한 자질이지.>
하하하.
뒤이어 모든 걸 내려놓은 웃음이 들렸다.
<휴대전화로 이것저것 검색해서 알겠는데, 권석현, 붙잡혔어. 죄질이 너무 나빠서 사회 복귀는 어렵겠더라.>
‘여긴 형벌이 센가 보네?’
은호는 그저 맞장구만 쳤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기도 한데, 마음이 뒤숭숭하더라. 내가 막지 못했던 일 중 권석현이랑 연관된 일도 꽤 있었어. 은호 씨는 어때?>
“나는 홀가분한데요?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니까요. 권석현을 잡아넣은 걸로 다 끝났죠.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요.”
은호가 실실 웃자 헛웃음이 휴대전화 너머로 들렸다.
<맞는 말인데, 배가 좀 아프네?>
“업무는 확실하게 끊고 맺는 게 좋지 않아요? 괜히 하나 더, 하나 더 하다가 수없는 업무가 떠밀려올…….”
<잘했어.>
“…….”
조용히 울리는 칭찬에 은호는 그대로 얼이 빠진 얼굴을 했다.
<잘했다고, 은호 씨. 딱 보니까 앞으로 ‘하나 더’ 같은 소리는 안 해도 되겠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래요?”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상사에게 칭찬을 받는 것 같은데, 이게 참 낯설었다.
<그래. 머리 굴리지 말고, 얼른 자라고. 그거 이야기하려고 전화했어.>
“정말요?”
<은호 씨. 내 이름 팔아먹어서 환수 관리국의 국장 만난 일은 벌써 잊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봤잖아?>
나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게 꺼내는 말에 은호는 웃음이 터졌다.
<환수 관리국도, 연구소도 다 각자 알아서 할 테니까, 좋은 꿈이나 꾸라고.>
“그럴게요.”
<일어나면 환수한테 인사 좀 해줘.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멍멍이 형님도요?”
은호가 두근거리며 흑견을 바라보았다.
<아니.>
딱 잘라 꺼내는 태호의 말에 은호는 실망을 드러냈다.
“왜 날 보는가?”
여전히 뚱한 표정이라 은호는 방긋거렸다.
“그럼, 힘내요, 형.”
<그래, 얼른 자.>
연락이 끊어지자 은호는 휴대전화를 내렸다.
잠을 자야 하는데, 이상하게 들뜬 기분을 느꼈다.
팀 단위로 이뤄야 하는 업무를 혼자 다 해내고, 확실한 결과까지 냈을 때도 느끼지 못한 강한 성취감이 몰려왔다.
“왜 갑자기 웃는가?”
“나는 여기가 좋아!”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은호의 말에 흑견은 고개를 뒤로 빼며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가끔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는데, 오늘도 그랬다.
흑견이 꺼낼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자라, 인간.”
* * *
탁. 탁.
뭔가를 뜯는 소리에 폭시가 가볍게 뛰어가다 말고 귀를 쫑긋 세웠다.
‘뭐 하는 거지?’
나무 뒤로 가서는 눈을 깜박거렸다.
“…싫어! 또, 또 검은색이야!”
꽃을 입은 듯한 모습을 한 환수가 앉아 꽃잎을 뜯고 있었다.
땅으로 흩어지는 색은 환수가 입고 있는 꽃 색과 같은 검은색이었다.
‘왜 애꿎은 꽃잎을 떼는 거야?’
폭시가 발을 동동 굴렸다.
은호가 보면 기겁하지 않을까 싶었다.
안타까움을 품다 말고 폭시는 고개를 돌렸다.
놀라게 해주려 힘껏 손을 올린 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
은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