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5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55화(55/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55화
55화. 꽃을 피울래(2)
“그럼, 거기로 갈까?”
“나도 갈래.”
폭시가 은호를 껴안으며 말했다.
“그래. 폭시도 같이 가자. 그전에 잠시만.”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권석현을 쫓아가 가을과 태호에게 들은 잔소리가 상당했기에 갈 땐 가더라도 말하고 가야 하는 걸 확실히 각인했다.
“형.”
<…은호 씨? 지금 어디?>
“연구소에요.”
<하……. 깜짝이야. 어디 나간 줄 알았네. 회복이 비정상적으로 빨라도 며칠간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아윤 씨 말, 기억하고 있지?>
“기억은 하는데, 지금 좀 나가려고요.”
<뭐?>
“플라빗이 왔는데…….”
<자, 잠깐만. 잠깐만 누, 누가 왔다고?>
“아아, 잠시만요.”
은호는 휴대전화를 내렸다.
플라빗 형제에게 사진 허락을 받고 난 뒤에 태호에게 사진을 전달했다.
자신이 봐도 꽤 잘 찍혔다 싶었다.
“여기요. 방금 보냈어요.”
바로 1이 사라지는 걸 보며 은호는 웃었다.
<5분. 아니, 3분만 기다려줘. 제발!>
태호가 간절히 외쳤다.
* * *
“…그 인간은 좀 이상했어.”
형 플라빗은 은호의 왼쪽 어깨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맞아. 왜 우리를 보자마자 숨소리가 거칠어져?”
“그… 오해가 있는데, 태호 형이 너희들을 아주아주 많이 좋아한 나머지 급히 뛰어와서 그래.”
은호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정말 3분 안에 도착한 태호는 플라빗 형제를 보며 거칠어진 숨을 막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맞아. 우리는 그 인간을 모르는데, 활짝 웃어줬어.”
형 플라빗이 앞발을 올리며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나는 좀 이상했어. 형 이외에 누군가랑 친해진 적도 없어.”
“정말? 그럼, 나랑 친해질래?”
은호의 앞에 웅크려 앉아 있던 폭시가 꼬리를 흔들며 플라빗 형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좋아.”
형 플라빗이 들뜬 얼굴을 한 것과 달리 동생 플라빗은 우물쭈물했다.
“나는 너 싫어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아.”
폭시가 주저 없이 동생 플라빗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자 동생 플라빗은 은호의 목을 잡았다.
“……왜?”
“너는 따뜻한 존재니까.”
폭시의 눈꼬리가 길어졌다.
“그건… 모르겠어.”
동생 플라빗이 힘없이 말했다.
어딜 봐도 따뜻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항상 형한테 걸리적거리기만 했으니까.
“아니야, 너는 따뜻한 존재가 맞아.”
형 플라빗이 당당히 말하자 동생 플라빗은 눈치를 살폈다.
“…형은 내가 안 미워?”
“내가?”
“나하고 여행을 다니지 않았으면… 형은 지금쯤 형을 좋아하는 여러 존재 하고 어울려서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테고, 피워내고 싶은 꽃도 마음껏 자라게 했겠지?”
“내가 결정한 거야.”
똑 부러진 형 플라빗의 말에 은호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막지 못했다.
아주 좋은 형이었다.
“너하고 있는 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니까. 그래서 이 여행을 선택한 거야.”
처음 듣는 형의 말에 동생 플라빗은 은호의 어깨에서 주르륵 내려와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엇보다 너는 내 동생이야.”
화사한 꽃처럼 피어난 그 미소를 보자 동생 플라빗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왜 저렇게 웃는지 몰랐다.
그냥, 따끔거렸던 마음에 천천히 통증이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다 내려라!”
흑견은 더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
등에서 쫑알쫑알 들려오는 말도 짜증 났고, 왜 저들을 태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참았지만,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멍멍이 형님. 지금 아주 좋은 순간이었단 말이야.”
은호는 어깨에 있는 형 플라빗마저 내려놓은 뒤, 흑견의 머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쩌면 동생 플라빗이 마음을 조금 더 열 그런 기회였을지도 몰랐는데.
“나는 분명히 인간만 태웠다.”
흑견은 다른 이들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제법 살벌해 폭시가 털을 부풀렸고, 플라빗 형제는 주르륵 땅으로 내려왔다.
제법 높이가 높았을 텐데, 착지까지 완벽했다.
“저것들이 멋대로 내 등에 올라탔다.”
“나도 알지. 그런데 예외는…….”
“그것도 내가 정한다.”
흑견이 이빨을 내보이자 은호는 흑견의 목을 안으며 온몸을 기댔다.
“큰일이다, 진짜.”
“뭐가 말인가?”
“그 선에는 나는 예외라는 거잖아? 이것 참 아주 아주 기쁜데?”
은호가 크게 웃자 흑견은 대답 대신 그림자로 들어갔다.
땅에 털퍼덕 쓰러진 은호는 아픔보다 당황함이 먼저 밀려와 눈을 깜박거렸다.
바로 옆에 흑견이 다시 튀어나오며 꼬리로 은호의 얼굴을 때렸다.
“정신 차려라, 인간.”
흑견이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가자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쉬움을 가득 담아 구시렁거렸다.
“아니, 나는 태워준다며.”
“은호. 그렇게 아쉬우면 내가 태워줄까?”
폭시가 기대를 품은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꺼내는 말이었기에 은호는 실실 웃었다.
“마음만 받을게, 폭시야. 좀 더 자라면 꼭 태워줘.”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몇 걸음 앞으로 나간 플라빗 형제를 보자 은호는 웃음이 터졌다.
기대하지 않을 것처럼 굴었던 동생 플라빗의 눈빛이 이전보다 달라진 게 보였다.
아주 작고 희미하지만, 희망을 품은 눈이 되었으니까.
은호는 그 눈빛이 꺼지지 않았으면 했다.
“가끔 보면 은호가 웃는 기준이 이상해서 신기해.”
폭시가 은호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지어졌기에 은호 역시 너스레를 떨었다.
“살면서 웃는 척은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진짜로 자주 웃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봐.”
“그럼, 앞으로 더 많이 웃을 일이 가득하겠네? 그렇지?”
활짝 웃은 폭시는 꼬리를 흔들더니 그대로 플라빗 형제를 따라 신나게 뛰었다.
그 뒷모습을 은호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어 세 마리의 웃음소리가 퍼지자 은호는 새삼스럽게 폭시의 친화력에 감탄했다.
“안 가나?”
흑견은 은호를 재촉했다.
“한 번씩,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이 나오면 심장이 다 떨리더라.”
“딱히 특별한 말은 아니었다. 떨릴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는데, 적어도 나한테는 특별해.”
살면서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원래 세상에서는 더더욱.
폭시에게 친구를 찾아주기로 약속했기에 은호는 다시금 그 약속을 속으로 다짐하며 머리 뒤로 손깍지를 낀 채로 걸었다.
몇 걸음 걸었을까, 괜히 피식하고 웃음이 흘렀다.
“멍멍이 형님, 뭔가 산책하는 기분이지 않아?”
“나쁘지 않다.”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혹시 저기야?”
이미 멀리서부터 혼자만 우뚝 솟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말을 하는 동안에도 은호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진짜 큰데?’
그런데 색이 뭔가 이상했다.
바랬다고 해야 할까, 염색이 빠진 듯한 느낌이라 은호는 새로운 종인가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맞아. 저기야.”
형 플라빗이 대답하며 동생 플라빗을 바라보았다.
이미 뒤로 물러난 동생이 뒷걸음까지 치자 거리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형.”
동생 플라빗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형 플라빗을 바라보았다.
“여, 여긴 싫어. 저 나무는 싫어, 형. 작은 나무부터 하자. 그러자. 응……?”
간절히 바라는 눈에도 형 플라빗이 앞발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
“형! 내가,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알잖아?”
동생 플라빗이 내지르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다들, 그때처럼 나를 비웃을 거야.”
쏟아지는 시선에 동생 플라빗은 몸에 자라난 검은 꽃잎을 꽉 쥐었다.
지금보다 더 어리석을 때, 그때,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큰 나무에 꽃을 자라게 한 적이 있었다.
더 큰 나무에 너 많은 꽃을 피워낸다면 모두가 좋아해 줄 거라 생각했다.
“아무도 너를 비웃지 않을 거야.”
“…형. 내가 피운 그 꽃은, 커다란 나무에 달린 그 꽃은… 내가 봐도 무서웠어. 다른 꽃과 달랐어. 흉측했다고!”
생각과 다른 모습에 놀라 뒤늦게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숲에 사는 이들이 그 꽃을 바라보았다.
형이 자라나게 한 꽃과 다른 시선이 쏟아졌다. 차갑고, 싸늘한 그 시선이.
“이번에도, 이번에도… 그럴 거야.”
동생 플라빗은 구슬픈 눈으로 형 플라빗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여기라면 네 꽃이 얼마나 예쁜지 알릴 수 있어! 형을 믿어 봐!”
“형. 나는…….”
동생 플라빗은 몸에 피어난 꽃잎을 바라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추악한 이 검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역시…….”
“괜찮아.”
은호의 목소리가 퍼졌다.
강한 확신이 담긴 감정에 동생 플라빗이 놀란 듯 고개를 올렸다.
“그럴 일은 없다고 약속했잖아?”
은호가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잔잔하게 번지는 미소가 반짝거렸다.
“네가 무서워하지 않게 나무로 다 가려줄게.”
“…어떻게? 인간한테는 그럴 힘이 없어.”
“나는 할 수 있어. 널 위해 그렇게 해줄게.”
“나는 너를 모르는데, 왜 그렇게 날 위해서… 뭘 해주려는 거야?”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거든. 네가 활짝 웃으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없을 거야.”
“왜…? 왜 내가 웃으면 행복해?”
동생 플라빗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로 물었다.
동그랗게 말린 앞발을 꼭 쥔 채 코를 벌름거렸다.
은호는 동생 플라빗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 이유는 아마 형하고 같지 않을까?”
은호는 동생 플라빗의 굳어진 얼굴을 찔렀다. 동생 플라빗은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까 너희 형이 모은 것들을 봤어. 아름다운 검정을 모은다고 했어. 검은 구슬도 있고, 검은 돌멩이도 있고. 하여튼 많더라고. 여행을 떠나면서 너도 봤어?”
동생 플라빗은 그 물음에 어깨에 힘을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검은 구슬이 아니라, 진주야.”
“진주라고?”
은호는 말을 내뱉으며 동시에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흑진주보다 훨씬 까무잡잡했다.
“흑진주는 그것보다 색이 더 옅은데?”
깊은 의문을 품은 은호의 표정을 보자 동생 플라빗은 입이 간지러웠다.
그는 모르고, 자신은 아는 이야기였다.
“맞아! 흑진주는 이것보다 색이 옅은데 그건 엄청 진해! 앞으로 그것보다 더 특별한 건 보지 못할걸?”
동생 플라빗은 다시금 어깨에 힘을 주며 신이 나게 말했다.
―얘들한테 들으니까, 바다에 검은 진주가 있대! 진주는 다 하얗잖아? 얼마나 예쁠지 내가 확인시켜줄게! 넌 거기서 기다려.
“형이 계속, 계속 바다로 들어가서 구해왔어. 나는 헤엄을 못 치는데, 형은 헤엄을 잘 쳐!”
하늘처럼 흔들리는 파란 빛깔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 자신은 형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여 바다가 형을 삼켜버릴까, 무서운 날이 있었다.
하늘이 어둡고, 거친 바람이 불던 그때도 자신은 그곳에서 계속 서 있었다.
“바람이 엄청 거칠어서 파도가 ‘우우우웅’하고 소리쳤는데, 형은 바닷속에 그 진주를 구해왔어. 사실 그때, 좀 무서웠어.”
―…나도 이번에는 조금 무서웠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 보여주고 싶었어.
바닷물로 홀딱 젖어 덜덜 떨던 형은 까만 진주를 보여주며 장난기를 담아 활짝 웃었다.
그 기억에 동생 플라빗은 미소를 지우며 형 플라빗을 바라보았다.
“형도 그때…….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무서웠을 거야.”
이번에는 그때와 달랐다.
형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형이 여행을 떠나자고 말했던 그때부터 계속, 계속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나 해볼래.”
아주 조심스럽게 동생 플라빗은 바람을 언급했다.
이곳이 형이 들어갔던 바다는 아니었지만, 자신한테는 바다 같은 곳이었다.
형이 그랬듯, 자신도 용기를 내고 싶었다.
“꽃을 피워볼래.”
동생 플라빗은 결심하며 형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번지는 형 플라빗의 미소는 햇살같이 반짝거렸다.
바다에서 올라오던 형을 봤을 때, 자신도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동생 플라빗은 형을 향해 가볍게 걸어갔다.
* * *
“…….”
은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족히 3천 년은 된 것 같은 아주 커다란 나무가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은호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더는 다가가지 못한 채 걸음을 멈췄다.
혼자만 그늘이 진 것 같은 세계가 시선 끝에 펼쳐졌다.
폭시가 덩달아 숨을 삼켰다.
“은호… 나무가 이상해.”
“그러니까. 나무가 이상한데?”
푸르름을 드러내야 할 풀은 메말라버렸고, 곱고 길게 뻗어가야 할 가지는 힘없이 늘어졌으며 나무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줄기는 껍질이 벗겨져 새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나무를 중심으로 무언가 썩어버린 듯 악취까지 몰려왔다.
이상했다.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아주 많이 이상했다.
‘병인가?’
아니.
은호는 바로 생각을 부정했다.
만약에 병이라고 한다면 이 일대가 모조리 병충해에 시달려야 할 텐데, 특정 장소만 증상이 드러났다.
은호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따스하게 내리쬔 햇살을 받으며 푸르름을 드러낸 나무를 보자 마치 세계를 나눈 것처럼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 주변에 아직 냄새가 남아 있다.”
흑견은 냄새를 맡았다. 그 소리에 덩달아 냄새를 맡은 폭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모르겠어.”
“미세하지만, 아주 불쾌한 냄새다.”
“불쾌하다니? 그게 어떤 냄새야?”
은호의 물음에 흑견은 잠깐 생각해야 했다.
아주 익숙했지만, 동시에 멀어진 그 냄새.
“…죽음의 냄새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