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5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56화(5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56화
56화. 꽃을 피울래(3)
묵직하게 깔린 흑견의 발언에 은호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멍멍이 형님?”
“말 그대로다. 여기에 어떤 힘이 사용됐다. 그 힘을 사용한 대상이 인간인지 환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힘이 죽음의 냄새와 비슷하다.”
“그런 힘이 왜 여기서 발휘가 된 거지?”
은호는 의아함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나무 하나를 없애고자 그렇게 공을 들일 이유가 있을까.
“나도 모른다. 흔적을 보아하니 며칠 된 모양이다. 인간이 병원에 있던 그때 벌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으음.”
은호는 고민하다 살짝 문 손가락을 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플라빗 형제가 불안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내가 저 나무를 봤을 때, 죽지 않았어. 정말이야. 정말인데…….”
형 플라빗의 짧은 귀가 축 늘어졌다.
이럴 리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동생이 겨우 낸 용기는 어떻게 될까. 부디,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지 않길 바랐다.
“이제 꽃… 못 피우는 거야?”
“아니. 그럴 일은 없어.”
은호가 당당히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있으니까.”
이러라고 드루이드의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지금 해야 하는 분명했다.
은호가 죽어버린 땅으로 발을 내딛자 아주 뾰족한 가시가 온몸을 찌르는 느낌이 몰려왔다.
‘……와.’
실제로 통증이 온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몰려온 순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만큼 아프다는 걸까.
식물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 자신을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이걸 경계심이라고 해야 할지 몰라도 은호는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은호는 가방에서 통을 꺼냈다. 신선함이 살아 있는 자신의 피였다.
―그런 거라면 제가 미리 뽑아드릴게요! 왜 무식하게 상처를 내는 거예요?
환수의 의사인 아윤이 팔과 손목의 상처가 난 이유를 묻길래 설명했는데, 혼만 났다.
플라빗 형제가 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사이, 은호는 뚜껑을 열고 쏟아부었다.
피가 땅으로 쏟아지자 플라빗 형제는 기겁했다.
“왜 갑자기 피를 쏟는 거야?”
“맞아. 피는 식물한테 안 좋아!”
하지만 죽어간 땅에서 새로운 냄새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플라빗 형제는 천천히 코를 건드리는 냄새에 입을 벌렸다.
눈을 감으면 그립고, 눈을 뜨면 따스함이 밀려오는 이 냄새는 분명히 봄의 냄새였다.
땅에서 슬그머니 새싹이 머리를 내밀었다.
“새싹이다…….”
형 플라빗이 중얼거렸다.
분명히 땅이 죽었는데.
말도 안 되는 사실에 플라빗 형제는 가슴 속에 꺼져가던 희망을 껴안고는 누구 할 것 없이 고개를 올렸다.
푸르름이 나무로 번져갔고, 속살을 내보일 정도로 바스러졌던 줄기는 누군가 다독인 것처럼 한 겹씩, 한 겹씩 뒤덮였다.
흐느적 늘어진 나뭇가지가 다시 하늘 높이 뻗었고, 가지를 따라 푸르른 잎사귀가 솟아나자 꼭 지나간 여름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몇 번이나 눈을 깜박여도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나무가…….”
형 플라빗은 잠깐 아랫입술을 떨었다. 이내 두 앞발을 높이 뻗었다.
“나무가 살아났어!”
동생이 낸 그 용기가 꺼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진짜야. 진짜 나무가 살아났어.”
동생 플라빗은 크게 뜬 눈으로 나무를 만지작거렸다.
생명이 느껴졌다. 숨을 쉬고 있는 게 이토록 선명하게 다가올 줄이야.
“하지만 인간의 피는 식물을 되살릴 수 없는데…….”
동생 플라빗이 의문을 품었지만, 은호는 조용히 나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진짜 살아난 게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자신의 피는 식물의 성장을 돕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이걸로 진짜 해결이 됐을까.
은호는 나무에게 손을 대며 눈을 감았다.
그의 손에서 잎사귀를 닮은 초록색 빛이 새어 나왔다.
플라빗 형제가 감탄을 터트렸다.
“형. 저 빛은 여름 같다, 여름.”
“나는 봄 같은데.”
은호의 손에서 번지는 빛은 각자의 눈에 다른 빛깔로 보였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섞인 빛이라는 건 분명했다.
은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나무 친구야. 이제 괜찮은 거 맞아?”
나무가 은호의 목소리에 반가움을 표하듯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은호는 놀란 눈을 했다.
‘나를 반가워한다고?’
나무에게서 선명히 느껴지는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은호는 이 얼떨떨함을 풀어내질 못했다.
이제껏 다른 식물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를 주었는가.
그들마저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떤 점이 식물들의 경계심을 세우는지 몰랐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는데, 방금 그 당연함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반가워하니 좋긴 한데, 좀 당황스럽네.’
은호의 마음과 달리 나무는 싱그러운 잎사귀를 흔들었다.
사각거리는 그 소리에서 귀를 잘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흐릿한 목소리가 아주 느리게 실려 왔다.
기다렸습니다,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말을… 했어?’
은호는 저절로 뒷걸음질 치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은호?”
폭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은호는 그제야 자신만 들렸다는 걸 알았다.
오래 살았기에 다른 나무와 다른 걸까.
‘자연의 대리자. …그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은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했다.
―자연의 대리자이시여. 당신을 보내주신 이 땅에 많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자연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걸 오늘에서야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가을의 권유로 처음 초능력을 확인할 때, 아주 잠깐 환각을 본 적 있었다.
‘…그거, 환각이 아니었어?’
은호는 밀려오는 혼란을 누른 채 목소리를 냈다.
“너 지금 괜찮은 거 맞아?”
이렇게 땅이 썩고, 나무가 메말라버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현재 자신의 피로 나무가 과성장인 상태가 되었지만, 회복이라는 부분은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이게 단지 일시적인지, 아니면 진짜 괜찮은 건지 은호는 그 사실을 알고 싶었다.
나무는 은호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다른 나무와 달리 선명한 장면이 은호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썩어버린 뿌리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위와 별개로 뿌리는 생각보다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나무는 기뻐했다.
그대의 자비로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나무는 또 나뭇잎을 흔든 채 희미한 목소리를 더듬더듬 냈다.
그 말을 들으며 은호는 통에 남은 피를 바라보았다.
‘…내 피로 식물을 회복할 수도 있었네.’
지금까지 여러 번 보았지만, 머리로는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 새삼스레 은호에게 스며들었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렸음에도 은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가진 이 힘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저 나무가 인간한테 뭐라고 한 건가?”
흑견이 굳어진 은호의 표정을 보며 넌지시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냥 놀라워서.”
“힘이 무거운가?”
“그런 느낌을 받았어. 하지만 다행이야.”
은호는 나머지 손 역시 올려 나무를 만졌다.
생명력이 선명하게 꿈틀거렸다.
“이 친구를 도울 수 있었으니까.”
나무는 자신에게 많은 걸 알려주려는 듯 열심히 나뭇잎을 흔들었지만, 뭔가 말이 빨랐고, 중간중간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자신을 향한 고마움이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친구야.”
은호는 플라빗 형제를 가리켰다.
갑자기 지목되자 플라빗 형제는 몸에 자라난 꽃잎을 꼭 붙잡은 채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뭘 들으려고 해도 은호의 말밖에 들리지 않았고, 진짜 건강해진 건 맞는지 불확실했기에 조마조마한 눈을 했다.
“날 이리로 데려온 건 이 친구들이야.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이 친구들한테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나무가 플라빗 형제를 향해 나뭇가지를 뻗었다.
“형. 나무가… 엄청 빨리 자라났어.”
“그러게. 나무는 이렇게 자랄 수 없는데?”
플라빗 형제는 눈을 의심할 만한 일에 뻣뻣해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나무는 분홍 꽃을 피워내 플라빗 형제에게 건넸다.
“우리 주는 거야?”
“진짜 주는 거야?”
플라빗 형제는 도무지 믿기지 못한 표정으로 그 꽃을 바라보았다.
늘 꽃을 피웠지만, 이렇게 꽃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일렁거리는 느꼈다.
“친구야.”
은호는 나무를 불렀다.
“혹시 괜찮다면 이 친구들이 너에게 꽃을 선물해도 될까?”
은호가 던진 물음에 플라빗 형제는 분홍 꽃을 앞발로 쥔 채 뻣뻣한 얼굴을 드러냈다.
“내, 내 꽃이 예쁘지 않을 수 있어. 널 슬프게 할 수도 있어.”
동생 플라빗이 앞으로 나와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괜찮다면, 내가 너한테 꽃을 피우고 싶어!”
이렇게 나무에게 허락을 구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동생 플라빗은 굳어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저 초조하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동생 플라빗은 기다렸다.
바람이 불지 않았음에도 나뭇잎이 신나게 흔들렸다.
동생 플라빗과 형 플라빗은 거의 동시에 은호를 바라보았다.
“해도 된대.”
은호가 알려준 그 말에 플라빗 형제는 활짝 웃었다.
얼른 은호에게 다가가 분홍 꽃을 내밀었다.
“잠깐만 맡길게.”
“나도.”
형 플라빗부터 나무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없자 고개를 돌렸다. 부드럽게 웃으며 앞발을 내밀었다.
동생 플라빗은 그 앞발을 본 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앞발을 부르르 떨었다.
결심했어도 무서운 걸까.
“넌, 할 수 있어.”
폭시가 앞발로 동생 플라빗을 밀었다.
강제로 한 발 내디딘 동생 플라빗은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득할 만큼 높았다.
그때 꽃을 피운 나무보다 더 컸다.
‘하지만 형이 들어갔던 그 바다보다 크지 않아.’
동생 플라빗은 고개를 내리며 형 플라빗을 보았다.
―저 하늘을 봐봐. 저렇게 별이 반짝 빛나는 건 어둠이 있기 때문이야. 어둠은 네가 피우는 꽃을 닮았어.
형과 수많은 별을 보았다. 그때마다 언제나 다른 말로 자신을 위로 해주었다.
동생 플라빗은 한 걸음 내디뎠다.
―이것 봐! 열매가 까맣게 익었어. ……오, 엄청 달아!
살아 숨 쉬며 가까운 곳에 얼마나 많은 검정이 있는지 여행을 통해 알지 않았는가.
동생 플라빗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괜찮아. 형은 괜찮아. 여기 봐. 네가 피우는 꽃이랑 닮은 꽃이 가득해.
자신의 꽃과 닮았다며 절벽 밑까지 내려가 그 꽃을 보여주었다.
형은 여행 중에 언제나 앞서가 자신을 기다렸다.
지금도 먼저 가 여느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앞발을 흔들고 있었다.
자신이 꽃을 피울 그 날을 위해 늘 한 그루의 나무를 비워둔다는 걸 너무도 늦게 알아버렸다.
동생 플라빗은 더 빨리 형에게로 달렸다.
코앞에 나무가 보였다.
숨을 들이마시면 느껴지는 나무의 냄새로 심장이 크게 뛰었다.
무섭지 않았다.
이건 설렘이었다.
동생 플라빗은 형을 바라보며 기쁨에 몸을 떨었다.
“형. 내가 나무 앞에 섰어!”
“잘했어, 잘했어!”
“나 형하고 꽃을 피울래. 아주, 아주 크게 피울래.”
부드럽게 감기는 동생 플라빗의 눈웃음을 따라 형 플라빗은 아주 잠깐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쑥쑥! 쑤우욱!”
형 플라빗이 나무를 안은 채 크게 외쳤다. 평소보다 더 큰 외침이었다.
동생 플라빗은 그 외침에 코가 시큰거렸다.
하지만 앞을 보고 나무를 안았다.
“자라라! 자라!”
동생 플라빗은 형보다 더 크게 외쳤다.
외침이 끝나자 플라빗 형제의 몸에 피어난 꽃이 반짝거렸다.
플라빗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다음 무얼 해야 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앞발을 떼어서는 나무를 중심으로 방방 뛰었다.
경쾌한 걸음걸이를 따라 쑥쑥 자라라는 말이 플라빗 형제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뛰는 발자국이 땅에 남으며 천천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형제를 닮은 두 개의 발자국이 나무를 타고 걸어갔다.
플라빗 형제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무를 타는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발자국은 오르면 오를수록 작은 발자국으로 쪼개졌고, 가지를 향해 더 힘차게 뛰어가며 빛을 뿌렸다.
은호는 나무로 걸어갔다.
“마음껏 피워 봐. 내가 살짝 거들어줄 테니까.”
은호의 손아귀에서 초록색 빛이 퍼졌다.
그 빛과 플라빗 형제가 만들어낸 빛이 합쳐졌다.
눈이 내린 듯 빛이 가지에 앉자 플라빗 형제는 다시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앞발을 힘껏 위로 올렸다.
“자라라!”
물감을 칠하듯 꽃봉오리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앞으로 그릴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채 꽃봉오리는 웅크렸던 손을 길게 뻗었다.
순백의 하얀 꽃이 먼저 피어나 반짝이는 빛깔을 뿌렸다.
그림자처럼 뒤이어 피어난 검은 꽃은 밤을 그려나갔다. 별을 품은 밤하늘처럼 나뭇가지를 채우며 서로 얽히고, 얽혀 완성된 모습은 하나의 하모니 같았다.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꽃잎과 반짝거림을 품에 안은 꽃은 아름다움으로 모든 걸 짓눌렀다.
“……와!”
은호는 그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바보처럼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감탄만 흘렸다.
이 풍경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예쁘다. 진짜 예뻐.”
폭시 역시 홀린 듯이 그 풍경을 바라보았고, 흑견은 진지한 눈을 하며 꽃을 하나씩, 하나씩 따라갔다.
그들의 반응에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형 플라빗은 동생이 앞발을 내밀며 다가오자 말없이 끌어안았다.
“잘했어!”
동생의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형이 없었으면 나는, 나는.”
“네가 해낸 거야. 난 그저 용기만 줬을 뿐이야. 잘했어, 동생아.”
“…형.”
동생 플라빗은 형을 더 끌어안았다.
이 용기도.
앞으로 나갈 기회도 전부 형이 주었으니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