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5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58화(58/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58화
58화. 밤놀이는 즐겁다(2) (컨셉 아트)
“그게…….”
윈디드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해결이라니.
원인이 뭔지 그걸 알아보려고 얼마나 뛰어다녔던가.
그 과정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허망한 감정이 뒤이어 몰려왔다.
“그래서 삐약아. 원인을 알아?”
은호는 윈디드의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현장을 알기에 무엇이 되었든 자신보다 많은 걸 보지 않았나 싶었다.
“일단, 부끄럽지만 검은 꽃과 흰 꽃이 피어난 그 나무가 내가 봤던 나무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
메말라버려 금방 죽을 것 같은 나무가 그토록 화려한 꽃을 피울 거라고 누가 생각이라도 할까.
윈디드는 마음을 바로잡았다. 허망했지만, 동시에 기뻤다.
“고마워, 말썽꾸러기.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될지는 몰랐어. 꽃이 활짝 핀 그 나무가 있던 곳이 내가 봤던, 바스러진 땅이라니.”
윈디드는 고개를 살짝 내렸다. 머리 위에 존재하는 링이 햇살에 닿아 반짝였다.
이내 푸른 눈동자가 부드럽게 감겼다.
“원인을 너한테 알려주면 좋을 텐데, 나도 아직 모르는 상태야. 네가 날 부르기 전까지 해결 방법과 더불어 원인 역시 찾아다니던 중이었으니까.”
“그러면 좋았겠지만, 괜찮아. 지금 가장 속상한 건 너잖아?”
은호는 손을 뻗어 윈디드를 쓰다듬었다.
윈디드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은호의 손바닥에 닿는 따스함은 꼭 햇살 같았다.
“상냥한 말썽꾸러기야. 솔직히 내가 가장 속상한 건 그게 아니야. 몇 밤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곳에 살던 존재들 때문이었어. 원인을 해결한다고 해도 돌아와 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아마 수십 번의 밤이 찾아와도 오지 않을 거다.”
흑견이 꺼낸 말에 윈디드의 푸른 눈이 흑견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일어난 일이 두렵기 때문이야?”
“그래. 그 존재들에게는 원인 모를 재앙일 테니까. 뭘 바라고 왔는지 몰라도 인간이 해결했으니 이제 가라.”
꺼져.
흑견은 은호 옆에 서서는 윈디드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말썽꾸러기가 해결해줬지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바람을 따라갈 수 없어.”
“어째서지? 이대로 여기에 정착할 셈인가? 인간 옆에?”
흑견의 물음에 웃음이 터진 쪽은 은호였다.
노골적이자 명백한 경계심이 보였기에 흑견의 시선을 느꼈음에도 은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애초에 윈디드는 정착하지 않는 환수였다.
“나한테는 정착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아, 친구.”
윈디드도 흑견의 질투를 느꼈을까, 어쩐지 웃음기가 얼굴에 드러나 보였다.
“이번 일을 해결하고, 그곳에 살던 존재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주변을 맴돌 생각이야. 내 말이 답이 됐을까, 친구?”
윈디드는 흑견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날렸다. 흑견이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 친구라는 말…….”
“자자, 일단 온 김에 다 같이 밥이나 먹을까?”
은호는 흑견이 폭발하기 전에 우선 말렸다.
윈디드도 흑견도 쓰다듬어 준 뒤에 마지막으로 품에 안기는 폭시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주 좋지!”
“나도 좋아!”
윈디드와 폭시가 흔쾌히 허락한 것과 다르게 흑견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 * *
“…형?”
은호는 옆에 앉아 멍하니 윈디드를 바라보는 태호를 건드렸다.
“……형?”
은호가 다시금 태호를 보았다.
“어, 어?”
그제야 태호가 깜짝 놀라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요. 많이 피곤해서 그래요? 아니면 옆에 가을 씨가 있어서 그래요?”
“정말입니까, 박사님?”
가을은 고기를 먹던 젓가락을 잠깐 내려놓으며 태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가을 씨?”
“지금 식사 시간입니다. 일을 위해서 제대로 드시죠.”
“가을 씨. 지금 내가 믿을 수 없어서 그래.”
“그래 보입니다. 눈앞에 1++의 소고기가 있어도 눈동자가 환수에게 향해 있으니까요. 그럼, 계속 쳐다보고 계십시오. 고기는 서은호 씨와 먹겠습니다.”
“그래요. 형은 소고기 안 먹어도 배가 부른가 봐요. 이게 그거죠? 부모님들이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라고 꺼내는 말이요. 역시 형인데요?”
은호가 태호의 그릇에 놓인 소고기를 향해 젓가락을 뻗자 태호는 손바닥을 뻗었다.
“그건 안 되지, 은호 씨. 이건 선을 넘는 일이야.”
꽤 진지한 표정으로 태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연히 장난이죠. 형이 하도 안 먹길래 그래봤어요.”
장난이라는 말과 달리 은호는 입맛을 다셨다.
아직 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다.
“침은 닦고 말해, 은호 씨.”
“티 났어요?”
“은호 씨. 내가 진짜 일부러 그랬겠어?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형이요.”
은호가 실실 웃으며 태호를 가리켰다.
“아니, 저기 봐봐.”
태호는 다급히 윈디드를 가리켰다.
“윈디드가 있다니까?”
바로 손가락을 움직여 흑견마저 지목했다.
“그 옆에 흑견이 있어!”
평범한 일상이라 은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폭시도 있고, 레비아탐도 있고, 끌려온 일렉트도 있네요.”
은호는 태호를 대신해 한 마리씩 가리켰다.
“아, 우리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헤인도 있어요.”
책상 귀퉁이에 앉아 자신들을 빤히 보는 헤인은 빙그레 올라간 입꼬리를 혀로 핥았고, 커다란 눈을 깜박거렸다.
“나, 조용히 있었는데? 소리도 안 냈어.”
“알지.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안 먹어도 돼?”
“아까 은호 네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썼잖아?”
“그랬지?”
“나 지금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인간은 고기를 좋아한다고 했어. 쇠로 된 도구를 쓰는데, 도구 형태가 똑같다고 했어. 그런데 다 진짜야! 나 지금 딱 그래. 배불러.”
헤인이 밀려오는 지식에 희열을 느끼며 앞발을 덜덜 떨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은호 씨!”
태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소 밖, 이곳에서 인간인 자신들이 환수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주책없이 날뛰는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흑견은 멸종되었다고 알려졌고, 윈디드는 바람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 내가 봤다고!”
“맞아요. 역시, 형인데요?”
은호가 갓 구워진 소고기를 얼른 입에 넣으며 우물거렸다.
“‘맞아요’가 아니야, 은호 씨! 지금 이 그림 자체가 학회에서 발표만 해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날 그림이야! 논문만 얼마나 나올지 모르고, 모든 환수 학자가 이곳으로 몰릴지도 모른다고.”
상상만으로도 아득한 그런 광경을 또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형. 나한테는 이게 일상이에요.”
은호는 자랑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평범하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늘 은호 주변에 환수가 끊이질 않는다는 걸 태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태호는 깜짝 놀라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특히 오늘은 더 그랬다.
―형. 환수 친구들하고 밥 한번 먹어요.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그 말 하나에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형이 얼마나 놀랐을지 알아요. 그런데 형.”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
“이런 광경도 나쁘지 않잖아요?”
“그렇습니다. 살면서 얼마나 볼 수 있는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은 평화로운 이 모습을 눈에 담았다.
태호 옆에서 수많은 환수를 보았지만, 이런 광경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주 즐거운 식사 시간이 아닙니까, 박사님?”
가을의 말까지 이어지자 태호는 주르륵 미끄러지듯 앉았다.
“…그렇지.”
너무 놀란 게 문제였다.
태호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그는 어깨에 가득 들어간 힘을 뺐다.
저 모습은 자신이 이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다짐하던 풍경이었다.
지금은 오로지 은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이라는 걸 알았다.
“밥 먹자.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어.”
태호는 그제야 본인이 했던 상황이 웃긴 건지 웃음을 흘렸다.
“형.”
“왜?”
“막 고기를 먹으려던 차에 미안한데, 하려던 말이 생각났어요.”
“하려던 말? …음, 살짝 불안한데?”
“연구소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숲에 문제가 벌어졌어요.”
“문제라고……?”
막 고기를 먹으려던 태호는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땅과 나무를 썩게 만든 힘이 발동됐는데, 혹시 조사할 수 있을까요?”
“조사할 수 있냐고 묻는 게 아니라…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인데?”
태호가 물티슈로 입가를 닦은 뒤 은호를 바라보았다.
차로 30분 거리라면 연구소랑 무척 가까웠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일단 사람을 보낼 테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자세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게 전부니까요.”
“그럼, 언제 벌어졌는데?”
“삐약아.”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윈디드를 불렀다.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흑견이 사라지자 윈디드는 탄식했다.
“친구! 너무한 거 아니야? 거참 밥 한번 먹자는데, 왜 이렇게 싫어해? 내가 또 자리를 옮겨야 하잖아.”
“꺼져라.”
흑견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자 윈디드가 호쾌하게 웃었다.
“이 친구 참, 부끄러움이 많네? 원래 그래?”
윈디드는 은호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눈치가 좀 빠른데? 멍멍이 형님이 부끄러움이 좀 많아.”
그 소리에 흑견은 털 같은 어둠을 부풀렸다.
“인간!”
바짝 약이 오른 목소리를 들으며 은호는 배가 불렀다.
“그래서 말썽꾸러기. 왜 날 불렀지?”
윈디드가 꼬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은호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그 일이 언제 벌어졌는지 알고 있어?”
“구체적인 건 모르나, 내가 갔을 때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뒤였어. 네 밤. 어쩌면 다섯 밤 전에 일어난 일일지도 몰라.”
“고마워, 삐약아.”
은호는 윈디드에게 더 걸어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멍멍이 형님이랑 너랑 좀 잘 맞는데? 잘 지내봐.”
그 말에 윈디드의 부리가 벌어지며 어쩐지 기뻐 보였고, 흑견의 귀가 쫑긋 섰다.
은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흑견을 바라보았다.
‘아까 삐약이 말에 실컷 웃었지? 이제는 내가 웃을 차례잖아, 멍멍이 형님.’
허.
허탈한 소리가 흑견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렇지, 폭시야?”
은호는 든든한 지원군까지 불렀다.
“맞아!”
일렉트에게 기대어 팔을 핥던 폭시가 성큼 일어났다.
“멍멍이 형님 옆에 있을 수 있는 존재는 별로 없을 거야. 멍멍이 형님이 인상만 써도, 아주 아주 따가운 기운이 느껴져.”
“그건 맞아. 옆에만 가도 따끔따끔해. 전기랑 또 다른 맛이라 좋은데.”
일렉트가 묘한 아쉬움을 담아 흑견을 힐끔 바라보았다.
“진짬? 멍멍이 형님 옆에 있어도 화날 때 말고는 그런 건 별로 못 느꼈엄.”
나무껍질을 ‘욤욤’ 먹던 레비아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 가도 흑견은 딱히 화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알 것 같은데.”
은호는 레비아탐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도 흑견이 보기에 레비아탐이 제일 얌전하고, 말도 안 걸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점에서 제일 잘 맞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폭시는 흑견에게 있어 시끄럽고, 귀찮게 구는 존재고, 일렉트는 이상한 존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꽤 재미있었다.
은호는 실실 웃으며 다시 가벼운 발로 태호에게 걸어갔다.
“삐약이가 말하는데, 5일 전이래요.”
“그런데 은호 씨. 윈디드 이름이… 삐약이야?”
“아뇨. 원래 이름은 몰라요. 그냥 내가 붙였어요.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 크흠, 가을 씨. 혹시 그 시간 안에 환수 반응이 있는지 알아보고, 초능력 반응도 있는지 확인해줄래?”
“밥을 다 먹고 알아보겠습니다. 밥말입니다.”
가을은 밥그릇을 꽉 쥐었다. 그 손길을 보며 태호는 젓가락을 든 채로 억지로 웃었다.
밥 먹을 때 가을을 건드리면 안 되는데, 그 법칙을 깨버릴 뻔했다.
“…그, 그렇지. 밥부터 먹어야지. 밥 먹자.”
“그럼, 밥 먹고 밤놀이 좀 갔다 올게요.”
젓가락을 든 은호는 가을과 태호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씩 웃었다.
권석현을 무너트렸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영상을 찍을 때 만났던 환수가 있었다.
다시 놀러 가기로 약속했기에 찾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 환수가 등에 품은 푸른 불꽃이 아직도 눈앞에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
* * *
은호는 공간을 열었다.
“이건 무슨 힘이지?”
윈디드는 은호가 연 공간을 이리저리 바라보다 냄새를 맡았다.
생전 보지 못한 낯선 힘이 느껴졌다.
“당연히 내 힘이지.”
은호가 당당히 자신을 가리켰다.
회사원 때 이런 힘을 가졌다면 기가 막혔을 텐데.
“그런데 너희도 같이 가려고?”
은호는 자신의 뒤로 우르르 쫓아온 환수 친구들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폭시와 윈디드만 눈이 말똥말똥했다.
“나는 별로 갈 생각이 없는데. 나는 그냥 내 보금자리에서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일렉트는 작은 단추 같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살짝 뒤틀었다.
“나도 가만히 있는 게 좋암. 움직이는 건 힘드니까, 무슨 마음인지 알암!”
레비아탐은 은호의 팔에 꼬리로 매달려 배시시 웃었다.
아마 은호가 없었으면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저기 너머에 색다른 전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아?”
폭시가 모르는 척 일렉트를 살살 긁자 단번에 날아가 은호에게 매달렸다.
“진짜? 정말이야?”
일렉트의 눈동자에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대단한데?’
은호는 폭시한테 책사의 모습을 보았다. 구워삶는 게 아주 익숙해 보였으니까.
“나도 잠깐 갔다 온 거라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나도 갈래. 갈래.”
일렉트가 얼굴을 흔들자 폭시가 앞발을 힘껏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그럼, 출발!”
은호가 슬쩍 폭시를 바라보자 폭시는 한쪽 눈을 잠깐 감으며 윙크했다.
<폭시 컨셉 아트2>